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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단, 우리 춤가락으로

 

최승희의 무용예술활동과 교육에 있어서 새로운 출발점은 1946년 9월에 진행된 무용연구소창립행사를 위한 무용작품준비와 공연을 계기로 하여 마련되였다.

그는 학생들에 대한 무용교육을 정력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무용 《김일성장군님께 올리는 헌무》를 준비하고있었는데 민족의 태양, 전설적영웅을 칭송하는 춤가락과 률동은 어떤것이여야 하겠는지, 또 그것을 어떤 장단에 태워야 좋겠는지 몰라 모대기고있었다.

바로 그러한 때인 1946년 9월초에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께서 무용연구소를 찾아주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최승희의 건강과 학생들의 학업에 대하여 일일이 물어주시고 어버이수령님께서 연구소운영을 위해 30만원이라는 거액의 자금을 보내주신데 대하여 이야기하여주시였다.

갓 해방된 조국을 일떠세우던 당시의 어려운 조건에서 그것이 얼마나 크고 귀한 돈인가를 잘 알고있는 최승희는 너무도 감격하여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그는 백두의 녀장군이신 그이께 자기들이 준비하고있는 《김일성장군님께 올리는 헌무》의 구성과 내용을 일일이 말씀드리고 가르치심을 주실것을 거듭거듭 간절히 청드리였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처음에는 무용을 잘 모른다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겸손하게 사양하시다가 너무도 간절한 그들의 청을 들으시고는 웃음을 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인민을 믿고 사랑하시기때문에 늘 인민들속에 계신다고, 그래서 우리 인민들은 오직 한마음 장군님만을 우러러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기고 따른다고, 내 나라의 이러한 생활, 이러한 지향과 뜻을 화폭으로 펼치자면 지금의 구성안은 어딘가 선이 가늘고 격조가 낮아보이는데 이것을 극복하자면 혼자 추는 춤에 여러명이 어울리면서 받쳐주면 어떻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최승희는 녀사의 그 말씀에 접하자 대번에 눈앞이 환해지는것을 느끼였다. 자기 고충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발견하였던것이다.

독무형식의 무용창작에만 몰두하다보니 헌무의 사상주제적내용을 훌륭히 보여줄수 있는 군무형식의 폭넓은 형상에 대해서는 미처 주의를 돌리지 못하였던것이다.

이날 김정숙어머님께서는 또한 최승희에게 무용의 앞부분에 헌시를 넣는것이 좋겠다는 새로운 방도도 내놓으시였는데 이것은 최승희로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헌무형식의 작품에 필수적인 새로운 발견이였다.

이러한 가르치심속에서 최승희는 무용창작에서 자기의 부족점이 무엇인가를 깊이 깨달았고 독무를 군무로 바꾸고 앞에 헌시를 넣으면서 송가무용창작에 박차를 가하였다.

드디여 무용연구소창립기념공연이 막을 올려 1946년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15일부터 19일까지 11일간 낮과 밤 2회씩 진행하였다.

첫 공연의 막을 올린 10월 5일 최승희와 무용연구소는 또다시 크나큰 영광을 맞이하였다.

어버이수령님김정숙어머님께서 공연을 보아주시였던것이다.

막이 열리면서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관현악반주가 장중하게 흐르는 가운데 한 학생이 헌시를 랑송하였다.

구만리 장천 높다한들

천첩 암흑이 가로막고

살륙과 공포 으르렁대고

기아와 살륙이 아우성치던 날

 

죄없는 민족의 아들딸들

끝없는 고난의 길 헤매이고

정의를 찾던 전사의 붉은 피

넓은 대지를 물들이던 날

 

광명은 영원히 이 강토를

버린것 같았고

원쑤는 영원히 이 강토를

지배하리라 호언하던 날

 

우리 인민은 죽지 않고

조국은 정복되지 않았나니

절세의 애국자 김일성장군님

항일의 혈전만리 넘고 헤치시며

조국해방의 새봄 안아왔나니

 

아, 영광을 드립니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

인민은 다함없는 축원의 마음담아

감사의 노래 삼가 드리옵니다

 

시랑송이 끝나는것과 동시에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 후렴반주에 맞추어 최승희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한없이 경건한 마음을 안고 무대중심에 나와서고 이어 흰 치마저고리에 붉은 수건을 목에 걸고 두손에 진달래꽃을 든 여러명의 무용수들이 좌우에서 사선으로 주인공을 향해 달려나왔다.

이렇게 시작된 작품은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조국을 찾아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업적과 혁명선렬들의 투쟁모습을 보여주는것과 함께 해방을 맞이한 인민들의 기쁨과 감격도 잘 펼쳐보임으로써 관중들의 대절찬을 받았다.

조국해방을 위한 투쟁과 해방된 현실의 감격을 보여준 거창한 화폭을 우리 민족의 독특한 무용예술적기법으로 펼쳐놓을 때마다 관중들은 장내가 떠나갈듯 박수갈채를 보냈다.

무대에는 《장고춤》, 《고구려의 무희》 등 최승희가 발굴정리한 민속무용들도 올랐고 조선민족무용의 기본동작들과 신흥무용기본, 남방무용기본동작들도 펼쳐졌다.

공연관람이 끝나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연구소가 사업을 시작한지 한달밖에 안되는데 공연준비를 잘했다고 치하하시고나서 우리 민족무용동작들을 더 발전시킬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의 이 가르치심을 심장에 새기며 최승희는 자신의 무용연구와 공연의 부족점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심심히 돌이켜보게 되였다.

더구나 1946년 10월 13일 어버이수령님께서 최승희에게 우리 나라 무용예술의 전반사업을 맡아보는 조선무용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중책을 맡겨주시자 최승희는 조국과 민족앞에 지닌 자기의 사명감을 두고, 더우기 자기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높으신 기대와 신임을 두고 온몸을 휩싸는 감격과 함께 어깨가 무거워지는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조선민족무용을 발전시킬데 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의 무용을 세계에 빛을 뿌리게 해야 한다는 자각이 그의 가슴에 더더욱 든든히 자리잡게 되였다.

최승희는 무용가동맹위원장의 첫 사업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 깊이 관심하여 무어주신 봉산탈춤보존회를 잘 운영하기 위한 사업에 착수하여 그것의 민족적특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적미감에 맞게 좋은것을 찾아 발전시킴으로써 봉산탈춤정리와 공연에 대하여 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을 훌륭히 관철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최승희를 1946년 11월에 진행된 첫 민주선거에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위원으로, 1947년에는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으로, 1948년 8월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내세워주시였다.

이것은 식민지민족의 예술인으로 눈물속에 몸부림하며 물우에 뜬 부평초처럼 곡절많은 인생길을 방황하던 최승희에게 있어서 생각조차 할수 없었던 영광의 상상봉이였다.

해방후 김정숙어머님께서는 무용연구소를 5차례나 찾아주시였다. 이 나날에 어머님께서는 최승희를 고무격려해주시였으며 그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되였을 때에는 몹시 기뻐하시면서 나라의 정사를 의논하는 인민주권기관의 당당한 일군으로 된 영예와 책임감을 언제나 명심하고 모든 사업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두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최승희는 어버이수령님김정숙어머님의 당부를 언제나 잊지 않고 우리 인민이 좋아하는 춤, 혁명과 건설에 일떠선 인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무용작품창작에 전심전력하였다.

그리하여 《농악무》, 《칼춤》, 《봄타령》, 《풍년맞이》 등을 잘 만들어 무대에 올리여 어버이수령님께 커다란 만족을 드릴수 있었고 항상 도식주의를 반대하는 끝없는 고심과 탐구를 기울여 새로운 형식의 무용작품을 창작해내군 하였다.

최승희가 보다 새로운 우리의 민족무용창작에서 주되는 힘을 기울인것은 우리 민족장단을 살려 작품전반을 형상하면서 속도를 당기거나 타악기(특히 장고)의 장단으로 절정을 이루군 하여 말그대로 우리 민족의 향취가 철철 넘쳐흐르도록 한것이였다.

이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최승희에게 가르쳐주신 우리 무용이 나갈 길이였고 바로 그 길에서 최승희가 이룩한 귀중한 성과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어 우리의 민족무용을 발전시키기 위한 최승희의 노력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판가리하던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그칠줄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고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순안군 석암리에 소개시켜주시고 다시 중국 베이징으로 들여보내시여 우리 무용발전과 중국무용발전에 다같이 이바지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하여 중국국무원 곽말약부총리는 자기의 글에서 《최승희와 그의 동지들은 중국예술전선으로 달려온 조선인민지원군이라고 할수 있다. 그가 지도해준 우리 중국무용가들의 공연은 중조인민의 영광스러운 전선을 더욱 강화하고 항미원조애국주의운동에 떨쳐나선 중국인민을 크게 고무하였다.》라고 썼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문학예술인들과 하신 담화 《우리의 예술은 전쟁승리를 앞당기는데 이바지하여야 한다》에서 제시하신 과업을 높이 받들고 최승희는 무용극 《조선의 어머니》를 창작하였다.

작품은 원쑤놈들에게 자식을 빼앗긴 어머니의 슬픔과 울분, 증오와 복수의 감정을 무용언어로 훌륭히 형상한것으로 하여 싸우는 조선인민의 불굴의 기상과 영웅적투쟁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무용극의 줄거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작품의 첫부분에서 적들에게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복수심으로 가슴을 불태우며 적진속에 뛰여들어 수류탄으로 놈들의 병영을 까부시는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는 적들에게 체포되여 처참한 고문과 협박을 당한다. 빨찌산의 행처를 대라는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굴하지 않고 적들과 대결한다.

놈들이 어머니를 사형장으로 끌어내갈 때 노도와 같이 진격하던 인민군대가 어머니를 구원하고 적들을 모조리 소탕해버린다.

작품의 주인공인 어머니역을 맡은 최승희는 완벽한 연기로 첫 공연부터 관중들의 심장을 틀어잡았다.

작품을 보고 감동된 인민군용사들은 멸적의 기세를 더욱 가다듬었고 장내에서는 미제를 단죄하는 구호가 우렁차게 울려나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승희의 이러한 성과를 높이 평가하시면서 그와 그가 양성한 청년배우들을 1951년 제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도록 하여주시였고 1953년 8월 로므니아의 수도 부꾸레슈띠에서 진행되게 될 제4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도 나갈 준비를 잘할데 대한 대책을 취해주시였다.

최승희는 《농악무》, 《북춤》, 《물동이춤》, 《시내가에서》, 《장검무》와 같은 민족성이 짙고 아름다우며 힘있는 민족무용작품들을 가지고 축전에 참가하였다.

최승희네 일행은 로므니아로 가던중 씨비리의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렬차칸에서 전승의 소식을 듣고 울고웃으며 만세를 불렀다.

최승희와 예술인들은 종목마다에서 영웅적조선인민의 기상을 높은 예술적기교로 남김없이 보여줌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독무 《장검무》는 축전의 특등상을 수여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어버이수령님의 높은 신임과 끝없는 사랑속에서 펼쳐온 최승희의 무용세계를 돌이켜볼 때 스쳐지날수 없는 작품은 《사도성의 이야기》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55년 8월 14일 조국해방 10돐경축공연무대에 올린 이 작품을 몸소 보아주시고 지도하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주인공 금이가 녀자의 몸으로 왜적을 물리치기 위한 결전장에 탄원하여나선 장면에서 제일먼저 박수를 보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작품이 이룩한 성과에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무용극 《사도성의 이야기》는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켜싸운 선조들의 슬기와 용맹을 잘 보여주었다고, 그들의 애국주의정신을 잘 반영하였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무용극대본을 가리키시면서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의 무용극을 보면 높이 평가할것이라고, 다른 나라에서는 민족무용으로 된 무용극을 만들지 못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창작하였다고, 이 무용극을 보면 우리 나라 민족무용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잘 알수 있다고 대단히 기뻐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1955년 12월 21일에도 이 무용극을 다시 보시고 이 작품을 두번째로 보았는데 내용이 좋다고 하시면서 이 작품을 영화로 찍어 보존할데 대하여 이르시였으며 영화가 나왔을 때에는 제일먼저 보아주시고 잘 되였다고 평가해주시였다.

최승희는 《사도성의 이야기》를 창작공연한 후 무용극 《맑은 하늘아래》와 《계월향》을 만들어 또다시 우리 나라 민족무용의 수준을 한단계 더 올려세웠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작품들뿐아니라 그가 제자들과 더불어 창조공연한 무용조곡 《평화의 노래》와 음악무용서사시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을 다 보아주시고 수정방향을 주시였으며 그들이 거둔 성과를 두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렇게 보아주시고 지도하여주신 최승희의 무용작품은 수십편이나 되며 그 과정에 최승희는 우리 민족, 우리 인민이 요구하는 우리 식의 민족장단을 타고 흐르는 주체가 선 무용을 창작하는 무용예술인으로 성장할수 있었다.

그는 우리의 민족무용을 종합체계화한 도서 《조선민족무용기본》(1, 2)을 집필하여 내놓음으로써 어버이수령님께 기쁨을 드리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57년 10월 29일 그의 피타는 노력과 탐구가 깃든 이 도서를 보시면서 무용극장 총장으로 일하고있던 최승희의 설명도 들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책장을 번지시던 손을 멈추시고 최승희를 매우 대견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면서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정말 대단합니다. 총장동무가 우리 인민의 자랑할만 한 훌륭한 국보를 마련하였습니다. 세상에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지만 자기의 무용기본을 가지고있는 나라나 민족은 별로 없을것입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최승희가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에 도전하여 유구한 우리 민족무용을 발굴하고 체계화하기 위해 조국의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면서 예로부터 내려오던 춤가락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여 정리하고 그것을 가지고 현대민족무용의 기초를 쌓았다고,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고 치하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총장동무의 설명을 들으면서 책을 보니 더 잘 리해됩니다. 민족무용의 기초동작들과 함께 부채춤, 칼춤, 탈춤, 장고춤, 북춤의 기본동작을 비롯한 우리 인민들이 즐겨 추던 춤종류의 기본동작들과 매 춤에 대한 반주곡들을 다 기록하였는데 정말 이 책에 바쳐진 총장동무의 심혈과 피타는 노력이 그대로 안겨옵니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린 최승희는 그후 련이어 《조선아동무용기본》(1, 2)도 집필하였고 《무용극대본집》과 《무용극원본강좌》를 비롯한 도서들과 수많은 론문들도 집필하여 신문과 잡지들에 소개함으로써 우리 나라 무용예술발전을 위한 사업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와 같이 최승희는 우리 장단, 우리 춤가락으로 수령을 받들어온, 우리 나라 무용예술사에 특출한 공적을 남긴 예술인이였고 문필가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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