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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 회


56. 백절불굴하는 우리 사람들


소서행장은 련광정에 오르자 평의지이하의 장수들과 중 현소를 불렀다. 다음에는 현재 자기 진중에 사로잡혀있는 고마인을 다 잡아내라는 령을 내렸다. 그의 령은 군졸들에 의하여 곧 거행되였다. 련광정앞으로 다 끌어냈다는것이 불과 7~8명… 소서행장은 《어째 이것뿐이냐?》고 놀랬다. 그의 령을 거행하던 군졸들도 의외였다. 있는대로, 보이는대로 다 잡아낸것이 그뿐이였다. 엊그제까지도 여러 십명의 포로가 있었다.

왜군은 평양을 점령하자부터 대동강연안을 비롯하여 나다닐수 있는데서는 닥치는대로 우리 사람들을 랍치해들였다. 소서행장은 앞으로 즉 오는 봄에 감행하려는 작전을 위해서 될수록 많은 고마인을 잡아들이기 위주였다. 행군중의 군량과 짐을 나르는 인부로 쓰는것은 물론 저희 병력을 보충하기 위한 군사로 쓰려는 엉뚱한 생각까지도 하고있었다.

우리는 여러 기록에서 그것을 볼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지 못했다. 될리도 없는 일이지만 저희 본국에서 증원군을 받을 가망이 없었던 소서행장은 그런 렴치없는 생각까지도 했던것만은 사실이다. 랍치됐던 사람들은 혹은 병들어죽고 혹은 학살되기도 했다. 그러나 엊그제까지도 여러 십명 남아있던 그들이 한꺼번에 없어진것은 성내에 불이 난 때였다. 대동강물을 길어들이기 위해서 열어놓았던 대동문, 장경문으로 많이 달아나고 혹은 달아나다가 학살되고 또는 갇혀있던 집과 함께 타죽기도 했다. 우리가 이미 들어서 아는 김순량의 권속들도 없었다. 김순량이가 돌아오지 않게 되자 일본군은 그들을 학살하고말았던것이다.

소서행장이 지금 고마인을 다 끌어내라고 한것은 사기저상된 자기 군졸들에게 한번 선혈의 향연을 베풀어주려던것이다. 즉 자기 군졸들에게 마음껏 잔학성을 발휘할 기회를 주려던것이다. 그들의 손을 고마인의 피로 물들게 함으로써 썩어가는 사기에 자극을 주려던것이다. 그뿐아니라 우선 저자신이 고마인에 대한 앙심을 참을수 없는 소서행장은 장차 저희 군졸로 보충해보려던 《원대》한 용의까지도 돌보지 않았다.

세례명으로 오규스탄이라고도 하는 소서행장은 서양선교사들한테서 들은 네로의 로마대학살사건을 기억하고있었다. 그야말로 대규모적인 선혈의 향연이였다.

수천명을 학살하면서 네로는 즐기였다. 그러면서도 네로는 그들이 죽음앞에서 반항하지 않는것이 큰 불만이였다고 하지 않는가.

《황차!》

소서행장은 7~8명의 조선사람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한장면 즐기려던 학살극에서 살벌성, 잔학성을 더욱 효과적이게 할수 있는 그들의 반항을 기대할수 없기때문이였다. 그들은 이미 치명상을 입도록 반항한 나머지 더 반항할 기력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그뿐아니라 제 부하장졸들까지도 많이 모이지 않았다. 그 역시 만사가 다 시들하다는 사기저상의 또 하나의 표시가 아닐수 없는것이였다.

소서행장은 처음 계획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학살을 그만두는것은 아니다. 그들을 멀리 끌어내다가 죽이라는 령을 내렸다. 그중에 끼여있던 저들의 앞잡이는 제외되였다. 전촌 장거리에서 김순량이와 같이 나타났다가 도망한자였다. 지금까지 고마인을 다 끌어내라는 경우에는 그자도 례외가 아닌 모양이다. 혹은 이번 같은 경우에는 일단 사지에 떨어뜨렸다가 특히 제외한다는 《특전》으로써 그자에게 한층 더 굴종을 요구하는 술책일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왜놈앞잡이 김삼근이는 의례 그럴것으로 알았다는듯이 그들속에서 빠져나왔다. 또 다음으로 제외된것은 한 늙수그레한 중이였다. 어느 정도 자유롭게 성내출입을 하도록 허용된 영명사 중으로서 이때 공교롭게 무슨 볼일이 있어 들어왔다가 붙들렸던 그는 제외한다는데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면서 저편 성가퀴밑으로 물러섰다.

다음 또 하나 따로 끌어내세운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남은 사람들이 창과 조총부리에 내몰려 사형장으로 떠나려 할 때 그들가운데로 뛰여들었다. 그것은 보패였다. 왜놈들은 처녀를 다시 끌어내려 했다.

《같이 가요. 저두 죽겠어요.》

이같이 웨치는 보패는 그 품안으로 뛰여들듯이 한 로인을 붙들었다.

《제발 저를 이놈들의 손에 남겨두지 마십소. 저두 여러 어른과 같이 죽겠어요.》

흐트러진 맨 상투바람의 머리와 성글고 긴 채수염이 백발이 다되게 센 그는 자기를 붙드는 처녀를 한팔로 끌어안았다. 로인은 한손이 없었다. 끊어진 팔목의 생생한 상처에서는 피가 흘렀다.

《이놈들아, 네 보느냐?》

로인은 문득 고함을 질렀다. 목은 갈리였으나 찌르릉 울리는 소리였다. 처녀를 끌어안은 그는 손없는 팔을 들어 련광정란간안에 드높이 앉아있는 소서행장을 가리키며 우렁찬 소리로 꾸짖었다.

《너희 같은 왜구오랑캐들이 알랴마는 그래두 인두겁을 썼으니 조금이라도 사람다운 마음보나 눈이 있거든 이 갸륵한 처자를 보아라. 죽을지언정 욕되지 않으려는 우리 조선사람의 딸을 보란 말이다. 너희가 아무리 여기까지 와서 우리 사람을 죽이고 갖은 포악한짓을 다 한다마는 우리 사람들의 기백을 꺾지는 못한다. 우리는 죽을지언정 너희놈들의 종노릇은 안한다. 보느냐, 이놈들아! 이 극흉극악한 왜적들아!》

이렇게 웨치던 로인은 한팔로 끌어안은 처녀를 굽어보았다. (이때 소서행장은 김삼근이를 불러서 로인이 한 말을 묻는 모양이였다.)

《장해, 옳거던! 그래야지.》

로인이 이번에는 나직한 소리로 보패에게 말했다.

《그렇다구 이 늙은 내가 한창 살 청춘의 목숨을 애끼지 않아서 하는 말은 아니야. 뉘 댁 처자인지는 모르나 장하거던! 다 죽으나 다름없던 내가…》

이런 말을 하다가 목이 메는듯 말을 끊고 다시금 보패를 보는 로인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였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처녀의 아름다움에 놀라는듯이…

《이제 죽을 내가…》

로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죽을 림박에 규수같은 우리 사람을 보게 되니 여한이 없어…》

맑은 눈물방울이 길게 흘러내리는 채수염을 흔들며 그윽히 웃기조차 하던 로인이 문득 한마디 신음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울부짖는듯 한 소서행장의 소리가 나자 로인의 등뒤에 지켜섰던 군졸이 창질을 한것이였다.

소서행장은 금시 자기의 생각을 변경했다. 불과 5~6명, 반항할 기력조차 없으리라고 했던 조선사람들의 강강한 기백을 보게 된 소서행장은 이가 갈렸다. 자기 눈앞에서 그들을 살륙하라고 명령했다.

우리 사람들은 창검을 겨누며 다가서는 적들에게 육탄으로써 달려들었다. 그들은 죽으려 안했다. 혹은 한손만을 가지고도 적의 모가지를 끌어잡아 쓰러뜨리고 엎치고 뒤치면서 놈의 숨통을 물어뜯기도 했다. 손을 못쓰는 사람은 몸을 솟구쳐 적의 면상을 받고 가슴팍을 내지르기도 했다. 그들은 종당 죽었다. 그러나 전률한것은 적이였다. 누구보다도 전률한것은 잔학성의 만족을 탐냈던 소서행장이였다. 그는 그들의 반항이 있기를 바랐다. 그것은 희학질해가며 죽이려는 잔인성의 요구였다. 그러나 희학질하기에는 너무나 억세고 장렬한 반항이였다. 5~6명의 조선사람은 육탄으로써 당당히 싸운 전사로서 죽었다. 련광정앞뜰은 극히 짧은 동안이나 격렬한 결전장을 이루었다. 피를 흘리는 저희 군졸들을 본 소서행장은 철선으로 란간을 치며 《무슨 꼬락서니냐?》고 울부짖었다.

군졸들에게 붙들려있던 보패는 련광정 란간아래로 끌려갔다. 소서행장이 뭐라고 지껄였다. 보패는 쳐다보려고 안했다. 군졸들이 보패의 얼굴을 받쳐들었다. 보패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또 몇놈이 달려들어서 보패를 붙들었다. 련광정으로 끌어올리려는것이다. 보패는 뿌리치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돌층계에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내려오는자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있던 보패는 코앞에 서리발같이 랭랭한 찬김을 느꼈다. 그것은 실로 서리발같은 긴 검날이였다. 머리우에서 말소리가 났다. 알지 못할 말이다. 그러나 그 음성만은 들은적이 있는 소리다.

어제 저녁이였다.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되였던 보패는 자기가 지금 어데 있는가조차 알수 없어서 누워있는 방안을 살펴보고있을 때 방문밖에서 나는 알수 없는 그 말소리를 듣고 《아! 내가 종내…》 하는 생각에 까무라쳐서 다시 정신을 잃게 되였던 바로 그 음성이였다. 그 집은 기생 계월향이가 들어있는 집이였고 그 말소리의 주인은 소서행장의 부하장수인것을 계월향이한테서 들어 알았다.

왜장놈은 뭐라고 거퍼 지껄이면서 그의 눈앞에 들이댔던 검날등으로 처녀의 턱밑을 한번 길게 스치였다. 처녀를 죽음으로써 협박하던 왜장놈은 놀랜 소리를 질렀다.

보패가 치마폭을 감싸쥐고있던 손으로 놈의 검날을 붙들었다. 제손으로 잡은 칼끝에 자기 몸을 맞대려 했다. 그러나 순간 놈의 손에 팔목의 급소를 눌리운 보패는 검날을 놓쳤다. 피가 철철 흐르는 손가락으로 보패는 땅바닥에 글자를 썼다.

《가살불가욕》 깊이 패운 획마다 피가 고인 큼직큼직한 다섯자였다. 《죽일수는 있으되 욕되게는 못하리라.》는 뜻이다.

란간너머로 처녀의 움직이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던자들중에 땅바닥에 뚜렷뚜렷이 나타나는 글자들이 바로 보이도록 몸을 틀고앉았던 왜승 현소가 먼저 신음소리를 내면서 뭐라고 지껄였다. 소서행장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날카로운 얼굴에는 경련이 일었다. 쉬파리가 꾀이게 농이 흐르다가 지금은 검붉은 딱지가 앉은 그 귀뿌리까지 빨개지도록 격앙한 소서행장은 발을 구르며 지껄였다.

이때 뜻밖의 일이 또 하나 생겼다. 련광정앞 성가퀴우로 검은 그림자 같은것이 하나 걸핏 넘어가고 다음순간에는 철썩, 퉁겨지는 물소리가 났다. 아까 희생자들중에서 제외되였던 늙수그레한 중이 대동강에 몸을 던졌다. 련광정에서 내려다보이는 대동강에는 몇가닥 둥글게 번져가는 파문이 보일뿐 중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죽은 중이 영명사의 로전승이였다고도 하고 혹은 편석대사였다고도 하나 자세치 않다. 불가의 기록들에 의하면 임진란후에도 편석대사는 살아있은것으로 되여있으므로 더욱 자세치 않다. 어쨌든 그 중은 차마 더 살아있을수 없었던것만은 사실이다. 죽이지 않는다고 할 때 적앞에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고 물러섰던 그는 다음다음으로 자기 눈앞에 나타난 우리 사람들의 높은 기백과 장렬한 죽음을 보고 자기를 느꼈던것이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였을 때 동래성의 남문을 지켜싸우던 동래부사 송상현은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자기의 직책과 사명을 상징하는 인궤를 들었던 바른팔이 끊기우자 왼손으로, 왼손마저 끊기자 입으로, 마침내 목이 떨어져서도 인궤를 물고있었던것이다. 이같은 조선사람 송상현은 그 한사람만이 아니였다. 지금 련광정앞뜰에서 전사한 사람들도 다 그러한 조선사람이였다.

이 진정한 조선사람들과는 감히 한하늘을 이고 살 렴치가 없는자는 스스로 물속으로 몸을 던질밖에 없었던것이다.

이때 련광정에서 문득 껄껄대는 너털웃음소리가 났다. 소서행장이였다. 한손에 긴칼을 들고 섰던 그는 온몸을 들까불면서 소위 앙천대소식의 웃음을 웃었다. 사라져가는 대동강의 파문을 바라보며 웃는 그 너털웃음은 자기가 보이려던 위풍도, 자기가 베풀려는 은덕도 모두가 다 보잘것없는것이였다는 기막힌 너털웃음이였던것이다.

이때 영명사에 나갔던 계월향이가 련광정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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