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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5 회


55. 파멸전야의 침략군


평양성내의 일본군진중은 해이할대로 해이한 만만한 타기(게으른 마음이나 기분)와 또 그런가 하면 살기등등한 살벌, 이 량립될수도 조화될수도 없는 두가지의 현상이 서로 교차되고 충돌하여 일종의 무겁고 음험한 분위기속에 잠겨있었다.

화재는 그날 낮까지 침식되였다. 서북풍을 거슬러 동남쪽에서 일어난 불이라 성안일판을 휩쓸지는 못했다. 그러나 장경문안을 비롯하여 련광정, 대동문근처에 있던 초가들은 거의다 타고말았다. 불을 대강 끄게 되자 소서행장은 다시 군사를 몰아 보통벌주변의 산들을 일시에 습격했다. 결과는 허사였다. 아무데서도 고마인을 찾지 못했다. 잡약산근처의 마을들에서는 남아있는 집들의 부뚜막에 온기는 있었으나 사람들은 없었다. 출동했던 왜놈들은 보통벌에 널려있는 수다한 저희 군사들의 시체를 거두어 영명사의 늙은 중들을 불러서 화장을 하는 등 온갖 시달림을 시킬뿐이였다.

오늘 아침에 소서행장은 두세명의 장수들을 대동하고 말을 달려 불탄 골목들을 돌아보았다. 허다한 장졸들이 거처를 잃었다. 그중에도 많은 군졸들이 재더미사이를 방황하고있었다.

하루밤사이에 불고 쓴듯이 빈 보통벌, 역시 하루밤사이에 재더미로 화한 성안의 집들, 성밖으로 내몰았던 군사를 불시로 다시 거둬들여야 했던 창황망조! 생각하면 소서행장은 마치도 어떤 보이지 않는 긴 팔이 뻗쳐서 제 상투를 꺼들어 휘두른것 같기도 했다.

어느 골목에서는 타다 남은 담밑에서 군졸들이 해바라기를 하며 졸고있었다. 어떤자는 피워물었던 곰방대를 들고 상하지 않은 무릎에 세운 이편 손으로 턱을 고이고 앉아서 반쯤 뜬 눈으로 제 발부리를 응시하고있었다. 눈앞의 재더미를 보는것이 아니라 먼 고향을 바라보는 눈이였다.

그러나 그나마도 오래지 못했다. 상처가 쑤셔서 곧 눈을 크게 떠야 했다. 피뜩 정신이 든 그들은 아픔을 참을뿐만아니라 없는 원기도 있는듯 벌떡 일어나서 태연히 걸어보이고 일부러 옆의 사람에게 수작을 붙이고 큰소리로 웃어보이기까지도 해야 했다. 그같이 원기를 가장하지 않으면 더 쓸데없는 페병으로 지목되여 목이 떨어질 념려가 없지 않기때문이다.

그같은 군졸들이 모여있는 옆에서는 고삐로 앞다리를 얽어매서 세워둔 군마가 목을 길게 늘여서 타다 남은 지붕의 고삭은 이영짚을 뽑아물고 자갈고리를 절그럭거리며 씹어넣고있었다. 그 역시 소서행장으로서는 눈살이 찌프러지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또 어느 골목에서였다. 짝지발로 세운 나무에 솥을 매달고 밥을 끓이는 모닥불옆에서는 3~4명의 군졸들이 모여앉아서 어데선가 주어모은 헝겊나부랭이들로 벗은 발과 정갱이를 싸매고있었다. 그것은 당장 눈에 홰불이 서는 꼬락서니들이 아닐수 없었다. 소서행장은 부지중 제 칼자루로 손이 갔다. 그러자 또 어데선가 군졸들이 다투는 말소리가 들렸다.

《이 겁쟁이! 비겁한 놈 같으니…》

목이 꽉 잠긴듯 거쉰소리기는 하나 격분에 떨려나오는 음성이였다.

《너희 놈 같이 비겁한 놈들이 감히 무슨 수작이냐? 이 비겁한, 비겁한!》

《뭣이? 이 내가 비겁한이라구? 헹! 꼬락서닐 봐, 제 꼬락서닐!》

전자의 침울한 말소리와는 반대로 원기왕성하게 코방귀를 탕탕 뀌면서 득의연하게 지껄이는 소리다.

《야, 이 네 그 용감하노라는 놈들의 꼴을 보란 말이다. 네놈의 한팔이 날아나는 동안에 이 나는 주무셨다. 그래 잤으니 어드랬단 수작이냐? 헤헤헤…》

《게으름뱅이! 비겁한!》

또 침울하게 떨리는 나직한 소리…

《그래 옳다. 이 어르신네 나는 과연 게으름뱅이, 비겁한이다. 그래서? 그러니 어쨌단 말이냐. 헹!》

득의연한 소리가 또 상대방의 말을 억누르듯이 현하지변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용감하노라는 너희놈들은 성밖으루 싸우러 나가구 게으름뱅이 우리는 잤다. 이 어르신네가 주무시는 동안에 용감히 싸우러 나갔던 너희는 큰일을 치렀다. 고마인들이 벌써부터 파놓구 기다리는 함정으루 용감히 뛰여들었단 말이다. 그래서 큰일을 치렀거던! 6백~7백명을 죽이구 4백~5백명이나 팔다리부러진 병신을 만들었다. 또 그동안에 성내에는 불이 일어서 이 꼴이 됐단 말이다. 장히 장하다. 이 꼴을 봐, 이 꼬락서니를!》

《…》

《헹! 왜 말을 못하느냐? 이 어르신네, 나는 말이다. 주무시는 동안에 단꿈까지 꿨단 말이다, 헤헤헤… 정말 오래간만에 흐뭇하던걸, 좋더란 말이다. 장, 소금을 못 먹어서 밤눈은 안 보이는데두 꿈에 녀편네는 보이거던! 그렇게 꿈에 찾아온 내 마누라가 다정하기란! 따뜻하기란!… 그런데 칙쇼. 그놈의 화재때문에 그 단꿈이 그만 깨지구말았단 말이다. 너희놈들, 용감한 놈들때문에…》

이때 소서행장은 제 등뒤에서 말궁둥이를 갈기는 채찍소리를 들었다. 부하 하나가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으악-》 하는 외마디비명으로써 그 말다툼은 끝났다.

소서행장은 말을 몰았다. 얼마 안 가서 또 그와 비슷한 광경! 성밖 어데서 따왔는지, 혹은 어느 집구석에서 뒤져냈는지 모를 목화송이를 한바구니쯤 쌓아놓고 둘러앉은 군졸들이 저마끔 손톱으로 씨를 뜯어버리고 한두줌씩 모은 솜을 옷갈피에 쑤셔넣고있었다. 그 탐욕스러운 표정들!

소서행장은 더 참지 못했다. 칼을 뺐다. 두세놈의 목이 한꺼번에 떨어졌다.

소서행장은 이상 더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말머리를 돌렸다. 련광정으로 돌아오던 길에 애련당 련못가에 다달았던 소서행장은 저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일본사무라이의 낯을 묻히는 놈아-》

격앙한 그는 또 칼을 뺐다. 불을 끄느라 바닥이 드러나게 물을 찌운 련못가에서 한 군졸이 그 지저분한 웅뎅이에서 건져낸 모양인 붕어새끼를 긴칼로 저며서 게걸스럽게 먹고있었다. 그자의 모가지도 떨어졌다.

이런것은 구태여 일본군 선봉장 소서행장을 한낱 불칙한 살인귀로 묘사하기 위한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런 때의 그에게는 그러한 자기 부하들에 대한 측은한 감정도 노상 없지는 않았으리라고 우리는 상상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하게 앞섰던것은 무서운 절망감이였다. 단지 느껴지는 절망감이 아니라 실물로 행동하는 절망을 눈앞에 보았던것이다. 소서행장으로서는 그같은 절망을 자기앞에 드러내는 부하들을 오직 벌했을뿐이였다.

임진란을 직접 겪은 리수광의 기록인 《지봉류설》에 의하면 《왜노지용법극혹》이라고 하여 당시 일본군중에서 시행된 형벌이 얼마나 가혹했던가를 말하고있다. 《옛날 진시황의 유풍을 따르는지 사람을 풀베듯 했다.》는것이다. 그같이 형벌이 가혹한것은 그들의 전통이기도 하려니와 더우기 이때의 소서행장은 더 참을수 없었던것이다.

기세좋게 흐르던 물이 앞이 막혀서 더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면 이때까지 계곡을 울리던 물소리도, 바위돌을 굴리던 힘도 없어지고 마침내는 혼탁해서 썩게 된다. 그 역시 물은 물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물을 《죽은물》이라고 한다.

이때의 소서행장은 자기 군대에서 그러한 혼탁을 보았던것이다.

《우리 일본군사는 앞으로 나갈줄만 알고 뒤로 물러설줄은 모른다.》 고 한때 호언장담을 해온 군대가 여기서 주저앉아 이제는 헝겊나부랭이로 발을 싸매고 감탕투성이고기새끼를 먹고있는것이다. 그나마도 먹을것이 없어서 그렇다면 또 용혹무괴(괴이할것이 없다는 뜻)한 일일는지 모른다. 사창고앞에는 아직도 남은 군량이 있었다. 소서행장이 보통벌의 곡식을 탐냈던것은 당장 식량이 고갈해서보다도 앞날의 준비를 위한 《장구지책》이였고 또는 《여가 차지하고있는 이 성하에서 여의 무릎아래에 있는 곡식을 고마인에게 빼앗겨 될말이냐.》 하는 일종의 자존심과 위신문제가 보다 더 큰 문제였던것이다. 물론 쌀 이외의 다른것은 다 부족했다. 일왈 소금과 장이 없었다. 그런데다 또 추운 기후는 그들이 이전에는 그리 먹지 않던 고기를 요구하게 되였다. 그렇기때문에 그 당시의 어떤 기록에는 일본군이 개고기를 무척 좋아했다고 씌여있기도 하다.

고향과 처자생각에 정신이 팔리고, 붕어새끼를 저며서 먹고, 또 아직 이만 추위건만 헝겊으로 발을 싸매고, 비겁한자가 오히려 큰소리를 탕탕 하는 등등의 자기 부하들에게서 만만한 타기, 사기저상, 혼탁 그리고 썩어가는것을 보았다. 즉 절망을 보았던것이였다.

앞서 말한 《지봉류설》에 의하면 《승즉장구불고 패즉상기란주》 하는것이 일본군의 특징이라고 했다. 즉 그들은 저희 편이 이기는 싸움이라고 생각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헤덤비지만 조금이라도 불리하다고 보면 곧 기가 꺾여서 달아났다는것이다.

소서행장자신이 그같은 저희 군사들의 기질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한 기질이 당장 창검을 겨루어 싸우는 적의 앞에서뿐아니라 지금은 저희가 점령하고있는 이 성곽안에서까지도 발로되고있는것을 보았다. 소서행장은 약이 올랐다. 악에 받친 그가 살벌해질밖에…

련광정으로 돌아오던 길에 사창고앞 큰 거리에 세웠던 조선수군 절제사의 복색을 입힌 모습이 아직도 그냥 서있는것이 뵈였다. 그것은 소서행장이 자기 부하장졸들에게 일본군이 아직까지도 여기 주저앉아있게 되는 까닭이 리순신때문이라는것을 알리고 따라서 리순신으로 상징되는 조선사람에 대한 증오감을 일으키고 저주하도록 하자던것이다. 그 등상이 처음에는 다소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군장병들은 그 이상 더 흥분도 적개심도 느끼지 않는 모양으로 등상은 아직도 그냥 서있었다. 장병들의 그러한 무관심은 절망에서 오는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소서행장은 또 누구만 못지 않은 절망자가 자기자신인것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이상 더 진출할수 없는데는 자기 역시 죽은물로 썩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조선군의 력량은 이 성안에 들어앉아서도 압박감을 느낄만치 나날이 강대해가는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또 의병들 즉 이 나라 백성들의 힘! 전날 밤 보통벌의 추수는 곧 그것을 여실히 뵈여주는것이다. 자기의 군사는 이이상 더 나갈수 없다. 썩을밖에… 부하장병들의 사기가 썩는것을 근심하는 동안에 그 장수인 자기 역시 썩고있는것이다. 그는 밤낮 술타령으로 세월을 보내고만 있는 자기의 자포자기를 이렇게 설명할밖에 없는것이였다. 그는 지금도 목이 말라오는것을 느꼈다. 술의 갈증이였다.

《쿠소! 될대로 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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