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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4 회


54. 이 아침에 조국의 산머리에서 뜨는 해


먼저 서쪽하늘에 희멀건 려명의 빛을 던지고 마침내는 간밤의 암흑을 깨뜨리는 서광의 금빛화살을 뻗치면서 동쪽산머리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뜨고 저녁이면 지는 해, 사람들은 나서 죽을 때까지 그 변함없는 반복을 보아왔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이였다. 그 항구불변한 반복에 비하여 자기네 일생이 너무 덧없음을 탄하는 사람들은 뜨고지는 해가 평범한것이기는 하나 일변 또 무정세월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어제 밤 이 보통벌에서 추수를 하고 적과 싸운 사람들은 이 새벽에 솟는 해를 그저 평범하다거나 또는 무정세월의 한토막으로만 보는 사람은 없었다. 밝아오는 새벽빛에 드러나는 보통벌! 거기서 우리가 쟁취한 승리의 전과들을 력연히 보여주는 오늘의 아침의 해는 우리 조국땅 산머리에서 뜨는 반가운 해가 아닐수 없다. 하루밤사이에 자기네 로력으로 베여놓은 보통벌을 내려다보는 우리 사람과 함께 경탄과 회심의 따뜻한 미소를 던지는 해였다. 마침내 산머리에 둥실 솟아오른 해는 아직도 검은 연기속에 잠긴 성내의 적진을 건너다보는 우리 사람들과 함께 조롱의 웃음을 던졌다. 일본군은 우리 닭과 비둘기들이 지른 불을 끄기에 아직도 바쁜 모양이였다.

추수를 위한 우리의 책략과 로력과 전투는 마침내 성공을 보았다. 이날 밤 싸운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네의 힘을 믿을수 있는 기쁨을 가지게 되였다.

이러한 기쁨중에도 한편 또 엄숙한 슬픔이 없지 않았다. 희생자가 적지 않았다. 늙은 봉군 오장과 황서방같이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장렬히 희생된 사람들외에도 어두운중에 어데서 누가 쓰러지는지 모르게 죽은 사람도 있었다. 고충경이를 비롯하여 상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또 종적을 모르게 된 사람도 몇이 있었다. 보패가 그중의 하나였다.

보패 역시 처음에는 칠성이 어머니, 주복이 어머니와 처, 김첨지 마누라, 차돌이 어머니들과 함께 논판에서 벼단을 끌어내는 일을 했다. 베여나가는 논배미를 따라 얼마쯤 성가까이로 다가갔을 때 거기에서도 녀인들이 왜 따라왔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뿐아니라 한논판에 녀인들이 몰려서 일을 빨리 못 치운다는 말썽까지도 생겼다. 녀인들은 갈려서 이패, 저패로 흩어졌다. 여기서부터 보패가 어느 패에 끼여갔던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둡고 또 저마다 바빴으므로 녀인들이 한데 몰려다닌다면 표가 나겠지만 그 많은 사람중에 한둘씩이나 섞인것은 누가 누군지도 알수 없었다.

우선 없어진 사람들의 종적을 알아보아야 할것이였다. 이때 잡약산에서는 더욱 바빴다. 조만간 놈들이 또 습격해올것을 예상하고 잠시 뒤로 물러갈 차비를 해야 했던것이다.

마침 김응서조방장이 와있었다. 거둬들인 군량에 대한 의논을 하려고 서산대사를 찾아왔던것이다.

이때 김응서는 자기가 평양성으로 들어갈 작정을 했다. 그것은 벌써부터 생각해온 일이였다. 성내의 적정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도 이때까지는 우선 군사를 초모하고 조련해서 우리의 병력을 기르는것이 더욱 긴급한 일이였다. 어느 정도 그 성과를 거두게 된 이제는 적정을 렴탐하는데까지도 손을 뻗칠만 한 시기가 되였다. 더우기 지금 평양성내에는 내응해줄 우리 사람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것은 계월향이다.

계월향이가 북촌으로 피란가던 길에 놈들에게 붙들려서 평양성내에 억류되여있다는것은 고충경의 말로써 이미 아는 일이다.

고산진 첨사를 지내기 전부터 무장으로 출신한지 오랜 김응서는 평양출입이 잦은중에 평양기생들을 알았고 그중에도 계월향이와는 가까운 사이였다. 단지 가까울뿐아니라 계월향이의 사람됨을 믿을수도 있었다. 한낱 천기라는 기생이기는 하나 계월향은 긍지가 높았다. 자기의 문재, 필재에 대해서만 아니라 재물에 팔리거나 권세앞에 굴하지 않는 하나의 떳떳한 인간으로서의 긍지와 기백을 가지는 기생이였다.

《이 국란에 막중한 장신의 몸으로 가벼이 적진중에 들어가서 될 일이겠소?》

김응서가 평양성으로 들어갈 의향을 말할 때 이같이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김응서는 계월향이로 하여금 내응하게 하는데는 잘 아는 자기가 나서는것이 가장 좋으리라고 했다.

김응서는 첫 착수로 먼저 계월향이를 영명사로 불러낼 방도를 생각했다. 기생들은 굿하고 재올리고 불공드리기를 좋아한다. 기생방출입을 하는 활량들치고 자주 다니는 기생집의 굿, 재, 불공에 쌀이나 상목을 실어보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 쌀과 상목의 일부분은 절의 중들의 차지가 되는것은 물론이다. 즉 기생들은 대개 중들의 소중한 시주였다. 평양기생중에도 명기로 이름난 계월향이를 모른다고 할 영명사 중은 없을것이다.

이때 고충경은 누워있었다. 상한 다리때문에 제가 어쩔수는 없지만 혹여 계월향이를 통해서 할수 있다면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라도 욕되게 죽지 말라는 말과 함께 보패에게 전해달라고 하면서 제 옷고름의 장도를 끌러서 김응서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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