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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0 회


50. 우리 농민들


8월 29일 한로. 이무렵에 보통벌에서는 논고들을 터치고 물을 찌워서 논판을 말리기 시작하였다. 추수할 준비였다. 밤중에 나가서 논고들을 터쳤다. 그러나 그 물을 그저 보통강으로 흘러보내지는 않았다. 요긴히 쓸데가 있으므로 논과 논사이의 보뚝을 높여가면서 논에서 뺀 물을 잡아두도록 했다.

이런 일들을 시키면서 추수할 시기가 박두해올수록 서산은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또 우리 사람들이 피를 얼마나 흘려야 할것인가. 지금의 보통벌곡식을 거둔다는것은 귀한 인명으로써 곡식을 바꾸는 일이라고도 할것이였다. 단 한두명의 우리 사람이 희생된대도 역시 그것은 못할 일같이도 생각되였다.

9월에 들어서부터 날씨는 더욱 음랭해졌다. 가을 소슬한 금풍이라기에는 좀 지나치게 거세고 맵기조차 한 서북풍이 때려부는 때가 많았다. 잡약산일대의 수림들은 밤을 자고난적마다 잎이 성글어지고 가지들이 앙상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절기로 보아서는 벼갈이 4~5일쯤은 이르다고 할것이였다. 제대로 한다면 상강 대시해서 5~6일전부터 시작하는것이지만 공교롭게도 상강이 보름날(9월)이다. 밤의 어둠을 타서 해야 할 일인데 열아흐레날도 너무 밝을것이고 또 달떠있는 동안이 길것이다. 보름을 지나 그믐초생을 기다리자면 그때는 서리가 와서 벼이삭이 내려질 념려가 십분 있으므로 좀 이르더라도 며칠 앞당겨하는편이 나을것이였다. 일찌기 시작한 추위에 나락의 성숙도 일러서 4~5일쯤 일찍 베더라도 별로 축갈것 같지는 않았다.

점심때가 기울어서부터 서재골에서는 2천 5백~2천 6백명의 승군과 5백여명의 농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기 밥과 된장들을 싸가지고 왔다. 숟가락까지도 가지고 왔다. 대개는 혹시 건사하지 못하고 내버리게 되더라도 아깝지 않을 바가지에다 밥과 날된장을 곁들여가지고 왔다. 오는족족 된장을 모아냈다. 서재골안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기슭에는 돌아가며 큰 딴솥들이 40~50개나 걸려있었다. 그것은 식구많은 절의 큰 솥과 부근농가에서 빌려온 소여물가마들이다. 본시부터 있던 집과 또 전쟁중에 림시로 지은 움막들도 있지만 삼천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들어앉을수도 없고 또 많은 사람들의 끼식을 끓여낼 솥이 없었으므로 딴솥들을 붙인것이다. 밥은 찬밥을 먹더라도 밤새워 일할 사람들이니만치 된장국만이라도 더운것을 먹게 하기 위해서이다. 농군들중의 소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썰은 조짚에 콩을 섞은 여물들을 모아냈다. 근 백짝이나 되는 소들도 역시 밤새워 일할것이므로 더운 여물을 먹이고싶었던것이다. 《밥이 일》이라고 하는만치 농군들은 제 소건, 빌려온 남의 소건간에 같이 일할 소생각을 끔찍이 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우선 일손패거리들을 짜야 했다. 승병들은 이미 패거리가 째여있었다. 본시부터 한절, 한암자에서 공동생활을 해왔을뿐아니라 지난여름내 김맬 때부터 패거리가 정해있었다. 문제는 각처에서 모여온 농군들이였다. 한골짜기의 풀판을 차지하고 모여앉은 농군들은 우선 자기네 마을사람들끼리 의논을 시작했다.

《밤일루 다과쳐 비면 하루밤에 얼마나 빌수 있을가?》

《글쎄, 누가 해본 일이야 알지… 낮일 같으면 한마지기 반이나는 넉넉히 빌수 있는데.》

《한마지기 반이라? 그렇지, 저마다 다는 못해두 상마루일군으루 되면 그쯤은 빌걸.》

낫을 두세가락씩 갈아가지고 온 사람들의 의논은 대개 이렇게 시작되였다.

《좌우간 요새는 낮보다 밤이 길지 않소.》

《이 사람아, 아무리 길어두 밤이야 밤 아닌가.》

《아무러문요. 길은 밤길이 붙는다지만 일이야 낮에 대면 탁이 있소.》

《넉넉잡고 도무지루 몰밀어서 하나앞에 한마지기 이편저편할게요.》

《몰밀어 한마지기라? 그게 밉지 않은 말일세.》

《매 사람 한마지기씩만 치드래두 삼천명 잡구 삼천마지기인데 매 마지기에는 헐테 두섬씩만 쳐두 6천석… 야, 크다!》

《크기야, 아니 〈사방 십리 보통벌이라 괘천동-〉 하는 투전불림에두 나오는 논벌인데 크다는 소리해.》

《투전불림 말이 났으니 말이지 정말 해볼만 한 투전인데.》

《해볼만 한 투전이라니?》

《6천석이 어데야. 큰 투전 아닌가. 좌우간 서산대사라는이가 어드런인지는 몰라도 통량 크게 큰 투전을 했소.》

《큰 투전이나마나 삼천명이 다 낫들구 비기만 하면 어떻거나.》

《그러게 지금 하는 소리가 그 소리 아닌가. 한양으루 하는 벼갈 같으문야 비여서 깔았다가 나중에 묶어들여두 되지만 이거야 비는족족 게눈감추듯 자작대야 할판이니 아마 비는 품보다도 묶어나르는 품이 더 갈게네.》

《그럼 반반씩 해서 안될가.》

《그래두 안될걸. 아사리 모르긴 해두 십리벌에 다 소바리루 나른대두 모를데, 거지반 등짐으루 나르게 될테니 절반품두 더 들걸세.》

《그 말이 옳쉐다. 여기서두 그쯤 료량들 하구있소.》

《여기서라니, 그럼 댁은 본시 여기 사람이요? 어데 난데서 먼저 왔소?》

《나말이요? 난 여기 사람이요.》

《아, 그렇소? 아니, 그러며는… 첫인사에 대바람 이렇게 말한다구 나무람일랑은 마소. 한데 봐하니 나만큼이나 늙은 두상이 그동안에 숱한 경난두 하구 고생두 많이 했갔소. 뉘시요? 좌우간 우리 알구나 지냅시다.》

《좋은 말씀이웨다. 나는 이 동네에서 늙어온 김첨지웨다.》

《김첨지! 아, 그렇드랬소? 원, 두상두 어디서… 아까부터 꿔온 보리자루처럼 한옆에 앉았길래 우린 또 우리처럼 어데 난데서 온 보리동진줄만 알았드랬소. 벌써 나웨다 할것이지. 하긴 두상의 말은 많이 들었소, 이렇게 합석해보기는 첨이라두. 대관절 늙은 두상이 웬 기운꼴이 있어서 왜놈을 다 때려잡았소? 이야기 좀 하우.》

《아니, 저 아주바닌 제편에서 먼저 통성하자구 해놓구는 초면에 이 두상, 저 두상 하구 남의 이야기만 듣자니 외상통성을 할 작정이요?》

《나말인가? 촌놈의 성 김가 아니면 리가라구 상기두 왜놈의 눈이 하난지 둘인지두 모르고있는 두상인데 뭐 그쯤 알면 그만 아닌가.》

《그래두 이 아주바니가 지난 전촌 장날에는 여기분들한테 한번 대탁을 했쉐다.》

《옳지! 그럼 그때 보라매 놔줬다는 두상이 바루 이 두상인게로군.》

《그때 왔던 고생원인가 하는 활량이 이 아주바니 이야기를 합디까?》

《들었소. 듣구 여기 사람들두 아닌게 아니라 누군지는 몰라두 멋은 다 아는 두상이라구들 했소.》

《우리는 그때 장에 안 갔드래서 못 봤는데 그 활 잘 쏘는분이 지금도 여기 있나요?》

《있소.》

《쇠주머군가 하는 전서방이랑 승검술이랑 또 을지문덕의 후손이라는 돈서방이랑두 다 있소?》

《예, 있소. 그 사람네는 아마 먼저들 나갔을거웨다.》

《다 한다한 장사들이라지요?》

《예, 이제 보시면 알게요.》

《그런 장사들두 장사지만 나 같은 늙은것은 실인즉은 두상의 소문을 듣구 왔소. 그네들은 본시부터두 누구여다 하니 하다못해 씨름으루라두 이름이 났던 사람들이니 말할것두 없지만 두상 같은 늙은 보리동지까지두 한몫했다길래 우리두 하 병신노릇은 안할것 같애서 엄두를 내서 왔쉐다.》

《좌우간 잘들 오셨소. 그런데 아사리 모르긴 해두 당신네를 논밭에 내세울는지는 모르갔소.》

《왜요?》

《그럼 우린 헛길이게요?》

《왜 헛길이야 되갔소. 날이 새기 전에 저 북쪽 말메산뒤에까지는 다 날라야 할테니 할 일이야 좀 많쉐이까.》

《아니, 김첨지아주바니, 그럼 우린 여기까지 왔다가 벼포기에는 낫두 못 걸어보구 간단 말이요?》

《바루 성밖에서 비구 묶구 하는건 아무래두 위태위태한 일이니 그래서 되두룩은 난데서 온이들은 뒤의 일을 도와달라는것 아니겠소.》

《난데서 온이라니, 그럼 우릴 나그네대접을 할 작정인가요?》

《여보게, 우리가 난데서 온건 틀림없으니 나그네야 나그네지 뭔가.》

《누가 그 말을 탓하나요. 여기까지 왔다가 일이 우서우니 하는 말 아니요.》

《우섭다말다 할것없이 우리 할탓 아닌가.》

《그 말이 옳소! 뒤에서 나르구싶은 사람은 나르래구 나부터라두 나가서 빌 사람은 비구 제 소청대루 하면 될게지 누가 못한다구 하갔소.》

《자, 그럼 이젠 그걸 알아봅세다.》

《알아보나마나 말하는걸 들으니 제왈 다 나간다지 뒤에 처지갔달 사람은 없을것 같네.》

《아주바니 같은 늙은이두요?》

《허- 초면에 좀 과한걸. 모르기는 해두 이 날 보구 그렇게 말하는 이편두 봐하니 수염이 반절음은 된걸 가지구 그러는구만.》

《수염이 반절음이라는것은 또 뭐요?》

《반절음두 몰라? 청모(청서의 털)에다 흰 장액(노루의 앞다리, 겨드랑이에 난 보드라운 털)을 섞어서 맨 붓이 반절음이웨니.》

《청모구 장액이구간에 좌우간 소청대루 말들 합세다. 장액이 다된 아주바니부터 말씀하시우.》

《하나마나 나두 벼갈한다기에 낫 차구 왔네.》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있을 때 한편에서 《저기 오는 저 중이 서산대사 아니요?》 하고 누가 물었다.

《아닌가봐, 서산대사는 수염두 없구 좀 자그마하다는데.》

《아이구, 그럼 아니로군. 저 수염은 키가 커서 그렇지 댑싸리비자루가 걸어온다고 하겠는걸.》

《정말 오좀눌 때 거칫같소.》

이때 사명대사가 농군들앞에 나타났다. 골짜기 저편 언덕에는 승병들이 모여있고 이편 언덕에는 농군들이 있었다. 그가운데로 나선 사명대사는 이쪽 경사진 언덕을 따라올라가며 늘어앉은 농군들을 향하여 한번 합장하고 말을 시작했다.

《오늘일은 왜적과 싸우려는것이 아니라 막부득이한 경우외에는 적들과 맞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일이올시다. 우리가 가꾼 우리 땅의 곡식을 마치 도적질이나 하듯이 이 서리찬 밤중에 여러분이 수고를 하셔야 한다는것부터 분한 일이지만 이 역시 앞길을 내다보고 참아야 할 일이올시다. 그러니만치 되도록 조용조용히 해야 할 일인데 그렇드라도 왜적이 알고 쓸어나오는 경우도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서 미리 조처들을 안한바는 아니올시다. 그런 조처들을 맡은 사람들은 벌써 다 나갔습니다. 그러나 일하시는중에 어떤 불측한 일이 없으리라고는 장담할수 없다는것을 미리 알아두셔야 하겠습니다. 일은 바로 성가까이까지 가서 비고 묶는것과 여기까지 날라온 벼뭇을 더 뒤로 이운다는 일, 두가지가 있는데 여러분이 다 성밑에까지 나가서 빌수는 없을것이올시다. 그렇다고 어느분이 나가서 비고 어느분은 여기 남아계시라고 소승이 말씀할수는 없고 여러분께서 자량해서 하실 일인데 그러나 한가지 말씀드려둘것은 오늘 밤도 미상불 몹시 추울것 같소이다. 긴긴밤에 허허벌판에서 찬서리를 맞게 되면 추울것은 말할것도 없고 시장도 하실것이올시다. 그래서 제 말씀은 그렇게 춥고 시장하더라도 기침을 안 깇으실분은 성앞에 나가서 일하셔도 좋고 그렇지 못한분은 아마 여기서 일하시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사명대사의 말은 끝났다. 한순간 좀더 무슨 말이 있을가 해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마침 쓸쓸 불어오는 랭랭한 저녁바람결에 가슴에 가득 흩어지는 수염을 쓸어모아쥐고 돌아서는 사명대사를 보자 입을 열었다.

《기침?》

《기침으루 작정들을 해라?》

《하기는 그래.》

《거 옳은 말이요.》

그들은 웃으며 더 군말들이 없이 각기 할 일을 《기침》으로 작정했다. 그 결과는 거의 반반씩으로 나뉘였다. 역시 늙은이들이 많았다.

사명대사의 말과 같이 각각 소임을 맡아가지고 벌써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중들은 홰를 몇자루씩 가지고 떠났다. 황서방과 그밖의 젊은이 7~8명은 두세뽐 되는 나무가지들을 칡으로 엮어서 만든 작은 다래끼에다 닭과 비둘기를 몇마리씩 넣어서 지고 떠났다. 또 어떤 건강한 사람들은 작으나 달망지게 무거운 짚오쟁이들을 지고 떠났다. 그중의 돈서방같은 사람은 조그마한 질화로 하나만을 들고나가기도 했다. 또 십여명 한패거리는 큰북을 하나씩 싸지고 떠났다. 그 북들은 고충경이가 김응서를 찾아가서 우리 조선군진중에서 쓰는것을 빌려온것이였다.

사명대사가 마을로 내려간지 얼마 안돼서 골짜기에서는 저녁들을 먹게 되였다. 저마다 국솥, 국버주기, 국함지에 띄워놓은 쪽박으로 더운 국을 퍼부어서 먹기 시작했다. 당장 솥에서 설설 끓는 국이 먼저 들장이 났다. 종당은 먼저 끓여서 좀 식은 버주기와 함지의 국까지도 다 말리고야말았다. 한패씩 둘러앉은 사람들은 섶가랑잎에 얹어서 도중으로 내놓은 된장에 각기 주머니에서 뒤져낸 마늘쪽을 찍어먹는것이 식찬이였다.

《서산대사는 볼수 없으니 웬 일이요?》

언덕중턱쯤에 둘러앉아서 먹던 사람들중의 아까 김첨지와 외상통성을 했던 늙은 농군이 김첨지에게 물었다. 김첨지도 같이 먹는중이였다. 김첨지뿐아니라 이 동네에 제 집이 있는 사람들도 같이 일할 사람들은 외처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마 나와두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안 나오나부웨다.》

《할 말이 없다니.》

《그 로장이 이런 일을 앞두구는 하두 걱정이 돼서 그런지 우리들한테 무슨 죄스러운 일이나 하는것처럼 뒤에서 합장하구 머리를 숙이구만 있지 별로 말하는 법이 없쉐다.》

《그 로승이 그렇게두 마음이 예린가, 원-》

《마음쓰는것두 기운따라 간다는건데 팔십고개를 바라보는 늙은이가 그럴지두 모르지.》

《암만 늙었대두 8도승병대장이 아니요. 중들의 대장이라두 대장은 대장이니 하다못해 대장싼 뼈쪼가리 하나쯤은 아무데라두 백혔갔지.》

《이재 그 사명당이라는 중은 기골이 정말 대장싸보이던데.》

《그 대사는 수염만 해두 대장감이더군.》

《사명당이 대장감이문 그 선생은 대장의 대장 아니겠나.》

《좌우간 누구나 사람을 애끼는 사람한테 감겨들게마련입디다.》

김첨지가 이번에는 딴청같은 말을 꺼냈다.

《지난 6월달에 이 동네에서 처음으루 왜적들과 맞다들게 됐는데…》

《첨지령감이 왜놈 때려잡을 때 말이요?》

《그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내 뭐 해자랑을 할라구 하는 말은 아니구요.》

《이편 해자랑두 좋으니 어서 하시우.》

《활잡은 사람, 검가진 사람, 낫, 도끼든 사람들이 이제는 숨을데 숨구 올라갈데 올라가야 할판인데… 제각기 살붙이들이 달라붙어서 언제 떨어들 줘야 하지 않소.》

《놔주질 않는다!》

《그렇기두 할게야.》

《그래서요?》

《왜놈들은 다가오지, 녀편네, 자식들은 떨어져갈라구 안하지… 자, 그러니 이런 땐 누가 있어서 한번 꽥 호통을 해줘야 하갔는데… 그래서 저마다 바라보는데 서산대사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고개를 숙이구 륙환장 짚은 손을 후들후들 떨구만 있지 않소?》

《이편이 떨구만 있다.》

《거 정말 야단인데.》

《그 대사가 제가 겁이 나서 떨지야 않았겠지.》

《그러게 말이요. 그러게 그 담에 주복이 전서방네 령감이랑 우리 늙은이들은 이런 말두 했소.》

김첨지는 이런 말로써 자기 이야기를 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구 서서 아무 말두 못하구 소스라지게 떨구만 있는 그 로장을 보니 할 일은 하면서두 우리 사람들을 얼마나 애끼구 인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면 저럴가싶은 생각이 들어서 우리두 60이 다되게 늙은 두상들이지만 그 로장이 바루 다심한 할우바지처럼 보이드라구들 했소. 그래서 정말 더 기운두 나구 악이 오르기도 합디다.》

《그래서 아주바닌 아주반네 마누라를 붙들어맨다구 했소?》

《…》

《그러게 사람따라 어인지술두 각각이거던.》

《어인지술이라는건 또 뭐요?》

수염센 타령을 했던 로인의 말에 어떤 젊은 농군이 물었다.

《사람다루는품이 말하자면 사람들을 휘여잡아부리는 법수가 각각 다르다는 말일세.》

《그럼 서산대사가 그랬다는것두 그 무슨 〈술〉인가 한거란 말씀이요?》

《그러구보면 서산대사두 눙칙(감정이나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서 누그러지게 한다는것)한 중인 모양이요.》

이런 이야기들을 할 때 저편아래서부터 《서산대사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작달막한 중이 근가?》

《그렇다는군.》

이편 언덕우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중에는 혹은 바가지에 숟가락을 세워둔채 일어서서 이렇게 말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는이도 있었다. 골짜기밑에서 한 늙은 중이 짤막한 지팡막대끝에 두손을 포개짚고 서서 이쪽 언덕을 뒤덮어앉은 사람들을 올려다보고있었다. 이때까지 그의 이야기들을 해오다가 비로소 처음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서산이라는 로승이 그리 눈에 차지 않았다.

지금 막 지는해의 락조를 받아서 수묵색장삼우에 걸친 비색가사가 더욱 유난히 붉은것과 또 길게 드리운 은실같은 눈섭으로써 무척 깨끗한 로인이라는 인상뿐이였다. 이윽히 내려다보던 사람들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먼저 서둘러서 설설 끓는 솥의 국이 차례에 온 사람들은 혀를 굴려가며 먹노라 떠지고 뒤늦게 좀 식은 국을 받은 사람들은 훌훌 떠먹어서 먼저 시작한 사람과 후에 시작한 사람들의 식사가 거의 같이 끝나게 되였다. 다 먹은 그릇과 숟가락들을 축축한 가랑잎으로 닦던 농군들중에서 《서산대사님.》 하고 크게 부르는 소리가 났다.

《대사를 처음 보는 우리가 저마다 다 인사를 할수는 없고 하니 도중으루라두 대사의 말씀이나 한번 들어보자구 찾았쉐다.》

한 중년농군이 일어서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러자 《거 좋은 발론을 냈소.》, 《좋쉐다.》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농군들의 말에 고개를 숙여 합장한 서산은 몇걸음뒤로 물러섰다. 거기는 딴솥들에 불을 때기 위해서 장작을 패던 큰 나무토막이 놓여있었다. 서산은 그 토막에 걸터앉았다. 약간 벌려짚은 두무릎사이에 세운 지팽이를 한쪽어깨에 기대놓고 앉은 서산은 얼굴을 들어 사람들을 올려다보았다. 농군들은 자리를 옮겨 가까이 조여앉았다. 맞은편 언덕의 승군들도 서산의 등뒤로 모여왔다.

《여러분께서 들어주신다면 소승은 옛말을 하나 하겠습니다.》

목이 좀 갈린듯 한 서산의 말이 시작되였다. 비록 나직한 음성이나 어느 누구의 풍치있는 소매길에 쓸리운 양금줄이 싸르륵 우는듯 한 금속성의 여운이 들리는 그의 말소리는 널리 퍼졌다. 산정에서 나무숲을 스쳐가는 솔바람소리가 들려올뿐 골짜기안은 비교적 고요했다. 오직 수천명의 긴장한 숨소리만이 엉킨듯 했다.

《언제 어떤 어른이 먼저 시작해서 지금 우리한테까지 전해오는 이야긴지는 모르오나 그 이야기를 시작하신분은 몰라도 어느때 어느곳에서나 어질고 착한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보의 조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로승은 잠시 입안의 침을 모아삼키고 또 말을 이었다.

《이야기는… 어느 깊은 산중에서 큰 산불이 났더랍니다. 인가도 전혀 없는 산에서 불이 났으니 불을 끌 사람인들 있었겠습니까. 모진 바람세를 따라 불길은 번질대로 번지는데 그 숲속에서 살던 길짐승, 날짐승들은 불을 피해서 달아나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중의 한 작은 산새새끼 한마리가 저 멀리 있는 산개울로 가서 날개와 꼬리에 물을 적셔가지고 날아와서는 불타는 나무숲에 뿌리고 또 날아가서 물을 묻혀다가는 뿌리고 하더랍니다. 그런양을 본 어미새가 〈너 같은 한낱 작은 새가 무슨 일을 치르겠기에 그런 헛수고를 하며 애를 쓰느냐.〉고 한즉 새끼새의 말이 〈설사 일은 못 치를지 모르나 이 산은 우리가 이때까지 여기서 먹고 여기서 깃들어 자면서 즐겁게 살아온 산인데 지금 불타는것을 보고야 어찌 가만히 있을수가 있습니까.〉 했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미새도 제 어린 새끼와 함께 물을 묻혀다 뿌리고 또 그것을 본 다른 새들도 그렇게 했답니다. 그러다가 그 잔약한 새들은 지치고 날개의 힘이 다해서 불속에 떨어져 타죽기도 했답니다. 그 새들은 종당에 그 산불을 끄지는 못했을것이올시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야기해온 로승은 어깨에 기대세웠던 지팽이를 다시 짚고 또 한무릎을 짚으며 천천히 허리를 펴고 일어서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필코 일을 치를것이올시다. 우리는 헛수고를 하는것이 아니라 기어이 성공할것이올시다. 지금 우리 나라는 저 왜적아수라들이 지른 불로 인해서 불타고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삼천리강산은 인가도 전혀 없는 그런 무주공산이 아니라 지금 여기 모이신 여러분이 그 주인이올시다. 우리에게는 그 잔약한 새와 같은 지성만이 아니라 족히 이기여 성공할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어려울지언정 결코 못하거나 헛수고가 되고말리는 없는 일이올시다.》

말을 마친 서산은 한번 또 합장하고 지팽이를 옮겨 돌아섰다. 그의 뒤모양이 멀어지기까지 사람들은 여전히 꽉 엉킨듯 한 긴장속에 잠겨있었다. 마침내 여기저기서 굳은 침을 모아삼키는 헛기침소리와 코를 푸는 소리와 함께 두선두선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중에서 《자, 이젠 그만하면 일 떠날 때가 되지 않았을가요.》 하는 소리가 났다.

서쪽하늘가녁을 약간 물들였던 엷은 노을마저 사라지고 농군들이 흔히 개밥바라기별이라고 하는 장경성을 가까이 끌어붙인 실낱같은 금빛초생달이 대흥산머리에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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