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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7 회


47. 소금


이때 서쪽으로 엇맞은편인 거리줄의 맨 끝집에서도 새로운 이야기거리가 생겼었다. 퍼붓듯 하는 비에 쫓겨서 그 집 추녀아래로 7~8명의 장정들이 우뚝우뚝 들어섰다. 그중의 나이 더 지긋한 5~6명은 큰 섬에 든 무거운 짐들을 지고있었다.

《소금인가분데… 그것이 다 소금이요?》

방안에서 내다보던 사람이 누진 섬거적에서 풍기는 서슬냄새로 짐작하고 묻는 말에 한 짐군이 《그런가부웨다.》 했으나 《어데루 가는 소금이요?》 또 이렇게 묻는 말에는 대답을 안했다. 짐군들은 토지방에 털썩털썩 짐들을 벗어놓았다.

《한두섬두 아니구… 다섯, 여섯섬이나 되는 소금이 다 어데루 가노.》

《성안으로 가는건 아닐게구.》

《그렇지, 그래두 팔 소금이갔지.》

《…》

방안의 사람들이 저희끼리 하는 이야기겸 묻는 의사로 이런 말을 했으나 그 일행중에는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입술이 퍼렇게 얼어가지고 젖은 무명적삼을 벗어서 쥐여짜고 펴서 털고 하는 짐군들은 저희들을 령거해온 두사람을 흘깃흘깃 곁눈질해볼뿐이였다. 빈몸으로 따라온 두사람은 하나는 패랭이를 썼고 하나는 갓에 갓모를 받쳐썼는데 나이는 삼십안짝으로 뵈였다.

《저 숱한 소금을 혼자서야 누가 다 쓰나. 정녕 팔 소금은 팔 소금이갔는데… 그래두 아직은 김장때두 아닌데.》

《그렇지, 9월 립동에는 립동전에 한다지만 금년 립동은 9월에 들기는 해서두 9월 그믐날인데다 또 9월이 커서 삼십일이 그믐날이라 시월 립동이나 다름없어서 김장은 아직두 멀었지.》

저편의 대답이 없으므로 이편끼리만 찧고 까부는 투로 말하던 방안사람들중에는 저 혼자 금년 립동타령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덧 비발이 좀 가늘어졌다.

《망할 놈의 날거리두! 그렇게 오구말 놈의 비가 새없이 쏟아져서 생 이 고생을 시키지 않나.》

《웬걸, 아주 멎는 비가 아닐세. 날씨 하는 꼴이 왔다말았다할 모양이네.》

토지방에 느런히 쭈그리고 앉아있는 짐군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하는 소리다.

《어데서부터 빌 만났소?》

방안의 한사람이 이렇게 새로 꺼낸 말을 들어서야 비로소 짐군들과 방안사람들의 수작이 어울리게 되였다.

《민모루 지나 룡악고개 좀 못미쳐서부터 빌 만났소.》

《이것이라니! 거기서부터는 무인지경인데 그랬으면 정말 외상없이 다 맞았갔군.》

《소금은 어데 증산서 받았소?》

《쑤꾸지 누에머리에서 받았소.》

《아이구, 그 먼데서!》

《말에 얼마씩이나 합디까?》

《우린 그건 모릅네다.》

《이편네 물건이 아닌게구려?》

《…》

《그거야 물으나마나 뻔하지 않소.》

짐군들의 대답이 또 막힌 때 채수염이 긴 한 중늙은이가 남의 말을 누르듯이 말하고 문턱앞으로 썩 나앉으며 《대관절 어디루 가는 소금이요?》하고 짐군들에게 아까부터 물어온 말을 되살려 물었다. 그러자 《비가 그만그만하니 또 가보지. 자, 어서들 지라구.》 하며 짐군들이 더 말할 사이가 없이 재촉하는 소리가 났다. 이때까지 웃간 문턱에 걸터앉아서 괴춤에서 꺼낸 수건으로 갓모를 벗긴 갓의 모자와 양태의 물기를 닦고있던 사람의 말이였다.

《비가 시재는 멎은것 같애두 얼마 안 가서 또 쏟아질걸요.》

그 재촉하는 소리에 한 짐군은 다시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가다가 또 그으면 될거 아닌가. 어서들 썩썩 나서라구.》

다시 갓에 갓모를 받쳐쓰며 그 사람은 또 재촉했다. 짐군들은 쥐여짠 적삼을 아주 입을것도 없다는듯이 등에 걸치고 토지방아래로 내려서서 소금짐의 멜바를 꿰기 시작했다.

《여보슈, 대관절 이 소금을 다 어데루 가져가는거요?》

문턱앞에 나앉았던 중늙은이가 성근 채수염을 만지다말고 이번에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이편은 아까부터 뭐이 긴해서 그렇게 자꾸 묻소?》

갓쓴자는 장히 시끄럽다는듯이 시까스르는 투로 되물었다. 채수염 중늙은이는 꼬리가 좀 치째진 봉의 눈으로 기름한 눈을 잠시 찌프렸으나 탓할것 없다는듯이 도리여 싱긋이 웃기까지 하면서 말했다.

《이 란시에 많은 소금을 보니 보기만 해두 탐스러워서 묻소.》

《뭐이 그렇게 탐나두룩 많긴들 하우.》

《대관절 어데루 가시오?》

《시산으로 가오.》

《시산? 시산이면 초담(지금의 조촌)이 지나가서 있는 동네말이요?》

《맞아요.》

갓쓴 사람은 《이젠 씨원하냐?》 하는 투로 대답했다.

《그 근처에 이 많은 소금을 풀어멕일만 한 사람들이 아직두 사우?》

채수염 중늙은이는 기름한 봉의 눈을 한층 더 가늘게 하고 이렇게 또 물었다. 그러나 갓쓴 사람은 그 말에는 대답을 않고 《왜들 이러구있어. 어서 나서지들 않구.》 하고 어성을 높여 짐군들을 재촉했다.

《시산이 말이요?》

이때 비가 멎은 짬이라 엇맞은켠 집에서 새 이야기거리가 생긴 이 집으로 건너왔던 사람들중의 누가 이렇게 묻고나서 말했다.

《웬걸요. 들리는 말에는 왜놈들이 만경대근처에다 배를 대구는 게발련해다니기때문에 그 근경에는 남아있는 사람이 별루 없답디다. 시산이서 만경대가 한 5리 되나마나하오.》

《아뿔싸!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말이요.》

누군가가 또 이렇게 말을 전줄러서 말했다.

《이 소금이 만경대루 해서 성내 왜놈의 손으루 넘어가기두 첩경 쉽지 않소?》

《그렇다면이 아니라 우리는 아까부터 그것이 미타해 깐깐히 묻더랬소.》

채수염 중늙은이가 신을 꿰고 나섰다. 다른 사람들도 따라나왔다. 어느새 이집저집에서 나온 사람들이 소금짐을 지고 나섰던 그 일행을 에워싸게 되였다.

《자, 빨리빨리.》

이때까지는 아무런 말도 안하고 갓쓴자옆에 서서 사람들의 눈치만을 살피고있던 패랭이 쓴자가 마디마디 잘라하는듯 한 말을 그야말로 빨리빨리 지껄여대면서 짐군들을 재촉하며 저 먼저 둘러선 사람들을 헤치고 나섰다.

이때 저편에서 문득 《여보소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쪽으로 엇맞은편에 있는 집앞에서 어린아이를 업은 로파와 무슨 말을 하는 모양이던 몇사람이 길을 건너오면서 말했다.

《이 동네 사시는 저 아주머니말을 들으면 이 사람들이 저렇게 소금을 많이 날라가는것이 이번만이 아니랍네다.》

《저런!》

《그렇다면 정말 심상히 볼일이 아닌데.》

《안됐소.》

《그저 보구만 있을 일이 아니요.》

《여보, 그 소금짐 다 벗어들 놓우.》

사람들은 짐군들앞으로 다가섰다.

《뉘 짐이게 벗어놓라 말라 해. 별 아니꼬운 일 다 보지 않나. 대관절 이편네가 남의 일에 상관이 뭔가?》

갓쓴자가 대돌아래로 내려서면서 금시 심사꿰진 소리를 했다.

《봐하니 댁이 이 소금의 물준 모양인데 대관절 어데루 가져가는 소금인지 우리 그거나 알자구.》

둘러선 사람들중의 뒤쪽에 처져섰던 보라매주인늙은이가 앞으로 나서며 의논성있게 물었다.

《아무데루 가는 소금이건 이편네가 뭐이게 미주알고주알 캐묻잘 리면이 어데 있소. 어서 이편네 갈길이나 가오.》

《우리가 뭐인가구?》

갓쓴자의 말에 아까 맞은집에서 늙은 중에게 《왜 졸한 일이라구 하우.》 하고 따지던 상투 큰 농군이 우선 이렇게 뇌까리고 나섰다.

《김지, 리지 할것없이 우리 다 한만둥이라구 합세. 명색없는 한만둥이라두 우리 조선땅에 사는 조선사람이니 묻는거야.》

《한만둥이? 허허- 제입으루 명색없는 한만둥이라는 작자들이 남의 일에 상관할게 뭐야.》

《상관? 상관을 따지자구? 그럼 이편은 왜놈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소금까지 날라다주나?》

《누가? 왜놈한테 가져가는 소금이라구 어떤 놈이 그래?》

《아니면 어데루 가는거라구 왜 밝히질 못하노.》

채수염 중늙은이가 겉쐐기를 치듯 했다.

《…》

《왜 대질 못해?》

《…》

《안됐소.》

《더 이러구저러구 할거 없잖소?》

그자가 말문이 막힌것을 본 사람들은 했다.

《봐하니 매끄작한 상통이 타작바리나 받아먹구 기생방에나 다니던 주젠걸.》

《꼴이 이런 란시에두 얌치머리없이 아무짓을 해서라두 저 혼자 잘살갔다는 심아지가 내발렸는걸그래.》

이때 갓쓴자의 뒤에서 철써덕하는 소리가 났다. 누가 장도를 빼들고 한 짐군의 멜바를 끊어서 소금섬이 대돌밑에 고인 락수물에 떨어진것이였다. 그러자 《여보, 그럴거 있소. 괜히 아까운 소금만 녹지 않소.》 하는 그옆의 짐군은 지고있던 소금짐을 토지방에 벗어놓으며 저희 동무들에게 말했다.

《일 잘됐네. 우리두 가구싶은걸 가던거 아닌데 그만두세.》

《그 말 옳쉐.》

《다 처음 보는이들이라두 하시는 말씀이 옳구만.》

《허- 그러다보니 우리 꼴은 뭐이라?》

짐군들은 이런 말을 하면서 짐들을 다 벗어놓았다.

《여러분한테 우리가 다 말씀하리다.》

역시 짐을 벗어버린 한 늙은이가 말했다.

《이 소금은 아닌게 아니라 왜놈들한테루 가는거웨다. 우리두 처음엔 그런줄은 모르구 상목자나 후히 준다기에 나섰던노릇이 이번엔 알면서두 한번 디밀었던 발목이 잡힌것 같애서 또 이노릇이드랬소.》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갓쓴자와 패랭이 쓴자앞으로 다가들면서 웨쳤다.

《이놈들, 이제두 할 말이 있어?》

《도대체 너희놈들은 왜놈들 하구 뭐이 되네?》

《고하간 왜놈들한테서 뭘 얼마나 받아먹었길래 이따위짓까지 한단 말이냐?》

《장사면 다하는줄 아니? 그러다가는 네놈들 나라까지두 팔아먹을 놈들 아니가.》

대드는 사람들가운데서 두자는 금시 낯빛이 노래졌다. 그러나 이때 뜻밖의 일이 생겼다. 바로 지척에서나 같이 요란한 조총소리가 났다. 그 두자를 둘러쌌던 사람들은 무춤했다. 하던 말을 삼킨듯 한 그들은 또 다음 총소리를 기다리는듯이 조총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귀를 기울이면서 《혹시 왜적들이-》 하는 눈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그사이에 패랭이를 쓴자가 둘러선 사람들의 체밖을 벗어나갔다. 저편 집모퉁이로 달려가는 그자는 뭐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웨치는 소리는 우리 말이 아니였다. 왜말로 왜놈을 부르는 소리가 분명했다. 그놈의 소리에 사람들은 더욱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거 큰일나지 않았소?》

좀 동떨어져 서서 업은 아이를 추석거리고있던 아까의 로파가 가까이 달려오며 말했다.

《정말 왜적들이 쓸어나오면 우리 동네는 몰사죽음이 나질 않소.》

얼굴에 거미줄같이 얽힌 잔주름살들이 가닥가닥 떨릴만치 놀랜 로파의 말은 금시 숨이 턱에 닿은듯 한 소리였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한데 모이는 법이라 그 로파뿐아니라 이 주막거리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떨쳐나왔다.

《조총소리가 웬일이요?》

《정말 왜적들이 옵네까?》

모두 불안해하는중에 《가만히들 있으소. 가서 동정을 봅세다.》 하며 장정 두셋이 나서서 패랭이 쓴자가 달려간 집모퉁이로 돌아갔다. 이 잠시동안에도 사람들은 초조했다. 이 동네사람들은 각기 집으로 드나들며 혹은 자는 아이를 둘러업기도 하고 또는 언제든지 지고 나설수 있게 꾸려두었던 짐짝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덤비지들 마소. 아직 왜적들은 보이지 않소.》

주막거리 뒤쪽으로 갔던 사람들중의 누가 이렇게 웨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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