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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 회


46. 전촌 장거리


고충경은 그동안 근처의 절과 암자들로 다니면서 그곳에 나뉘여있는 승병들중에 전부터 활을 좀 쏘거나 지금부터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활을 가르쳐왔다. 이번에는 룡악산 법운암에서 4~5일 류했다. 차돌이도 같이 왔었다. 승병중에는 차돌이에게 돌질을 배우고 또 조총을 배우려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애숭이지만 손때매운 석전군으로 이름난 차돌이는 또 한가지 재간이 늘었다. 잡약산싸움에서 로획한 조총을 몇번 쏴보자 묘리를 얻어서 돌질 못지 않게 능숙해졌다. 이번에도 그는 어머니가 지어준 좁다란 자루에 넣은 조총을 메고 철환과 화약통을 차고 왔었다.

이날 조반후에 승병들과 함께 한편에서는 활을 몇순 쏘고 또 한편에서는 돌질을 몇차례씩 한 고충경이와 차돌이는 큰길로 나서기 위해서 전촌 가는 길로 들어섰다. 길은 좀 돌지만 혹시 비가 오더라도 무인지경인 지름길보다 비를 그을수 있는 인가들이 있는 큰길이 나을것이였다. 룡악산을 떠날 때부터 날씨가 변변치 않았는데 과연 먼 하늘에서 뢰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전촌까지는 아직도 한참 길이 남았다.


전촌장은 비때문에 더 일찌기 파장이 되였다. 전촌은 본시장이 아니였다. 평시에는 한 고을에 하나나 혹은 둘씩 지정이 있어서 아무데서나 장이 설수 없었다. 전쟁전에는 평양장을 보아온 조개메(지금의 팔동교근처), 궁골, 옥고개, 세거리, 긴재, 룡악이, 형제산 같은 이 근처의 사람들이 평양장을 못 보게 되였으므로 자기네 마을에서 어중간한 전촌에다 림시로 장을 세우기로 했던것이다. 새로 된 장인데다 또 추석명절을 지낸지 며칠 안되는 장날이라 장군들도 많이 모이지 않았고 물건들도 많지 못했다. 몇말씩 지고 온 햇곡식이 그중 많은편이였다. 그밖에는 서해변 소산인 조개, 새우 같은 젓갈들과 칼치, 복 같은 어물들이 좀 나고 또 서해변의 갈로 결은 삿이 있었다. 그런 수공품으로는 나무밥주걱과 방치, 씨아(토리개) 같은것도 있고 또 긴재에서 굽는 물동이, 버주기, 뚝배기 같은 토기들도 있었다.

불과 여라문집 되나마나한 주막거리의 길바닥에 널어놓은 그런 물건들 외에 또 한가지 장군들의 눈을 끄는것이 있었다. 보라매 두손이 났다. 비슷하게 늙은 두 로인이 날은 솜토시를 낀 손목에 보라매를 한놈씩 올려앉히고 장마당가운데로 서성거리고 다니는 모양은 지금이 란시라 그런지 뚱딴지같아서 좀 우습강스럽기도 했다.

이 근경치고는 산골인 순안봉, 청령이에서 동네로 내려와 닭, 짐승들을 채길래 어리를 놓아 잡았다는 그 보라매들은 결코 팔리지는 않지만 장군들의 인기는 끌었다. 날렵하게 생긴 몸매, 암팡스럽게 까부러진 부리, 총명한 눈! 저마다 《그놈 잘 생겼다.》 하며 혹은 소매끝을 감쳐쥔 손목에 받아보기도 하는 장군들중에는 《우야- 매 봐라!》 하고 소리를 질러보며 웃기도 했다. 꿩을 달아놓고 상투가 풀리고 귀가 빠져도 모르게 달려가던것이 불과 지난 정초의 일이건만 어느덧 한 옛날일같기도 했다. 세상이 다시 평정돼서 언제 또 매사냥을 하게나 될가 하는 생각이 없지도 않아서 더욱 그렇기도 했다.

그래서 사는 사람은 없지만 이런 란시에 장에 보라매가 났다는것만으로도 한번 웃을만 하게 반가운 일이기도 했던것이다.

《머리에 서리발을 이구 다니는 두상이 언제 매사냥을 하갔다구 매를 다 잡아가지구 다니우?》

저 역시 머리가 센 한 늙은이가 이런 말을 해서 매임자 늙은이는 《그러게 내가 팔라구 잡은건 아니웨다.》 이런 대답을 했다.

《그럼 왜 훨훨 저 좋을데루 날아다니는걸 잡기는 했소.》

《잡히는 놈을 안 잡갔소? 기왕 잡았으니 또 그저 놔주기두 안됐구 그래서 살 사람 있으면 팔라구 왔소.》

《그럼 눅게라도 팔테요?》

《눅게라도 팔갔소.》

《암만 눅대두 이 나는 안 사갔소.》

《그러게 누가 이편더러 사라우?》

《팔갔다면서 이편더러 사라우는 또 웬 소리요?》

《하! 이 손이 누굴 히야치긴가, 원?》

《히야치기는 고사하구 매를 보니 하두 반가와서 하는 말이요.》

《그렇게 반갑거들랑 보는 값은 안 달랠테니 실컨 보우.》

《아이구! 마침 잘됐소. 비가 쏟아지니 저 집에 들어앉아서 실컨 봅세다.》

참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은 곧 파장이 되였다. 장은 파했어도 비에 걸려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리의 집들은 사처에서 모였던 장군들로 꽉 차게 되였다.

이 작은 거리에서도 왜놈들이 들어있는 평양성이 그리 멀지 않은만치 로약들은 대개 다 피란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미 지어놓은 농사의 가을걷이를 하기 위한 사람들뿐이였다. 그래도 역시 방이 좁아서 문턱에까지 걸터앉은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발을 격하여 맞은 집의 사람들과 큰소리로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대편에서는 금년농형이 어떻소?》

누가 이같이 한대중으로 묻기도 했다. 그럴밖에 없는것이 한집에 들어앉은 사람끼리도 어데서 온 누구인지 모를 사람들이 많았기때문이였다.

《우리 룡악이 말이요?》

이렇게 되묻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니, 룡악이는 말구… 나두 그대편에서 왔소.》 하는 그 사람은 《우리 형제산말이요?》, 《우리 조개메 말이요?》 하는 난데 사람의 대답이 나오기까지 그대편 농형을 물었다.

《우리 사는데는 밭고장이 돼서 청초적의 농사는 곧잘하구두 두달 장마에 다 녹구말았소.》

《우리두 그렇쉐다. 정말 가문그루테기는 있어두 장마그루테기 없다드니…》

《이번 그 장마에 논고장 아닌데야 다 그렇지요.》

《금년 이 근경의 농사치구는 아마 보통벌에 흠씬 실렸나 붑디다.》

이렇게 묻고 대답하는 말로써 이곳저곳의 농형이야기가 끝났을 때 보라매를 가져온 늙은이들중의 하나가 《궁골이나 조개메에서는 잡약산이 가깝지 않소?》 하고 역시 한대중으로 물었다. 그 말에 조개메에서 왔노라는 한 로인이 《가깝소. 하나 아직두 서산대사라는이를 찾아보지는 못했소.》 이런 대답을 했다. 물론 지레짐작으로 한 대답이였다. 하나 그 지레짐작이 신통하게 맞은것도 같았다.

《그 원,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두 한번 찾아보질 않았단 말이요?》

《그렇게 날 나무래는 이편은 왜 안 찾아봤소.》

《하기는 나두 그런 말 들어 싸우. 좀 멀다기루서 백리가 되우, 이백리가 되우. 생각이 부족해서 그랬소.》

《하, 그 두상 롱담두 못하게 고지식한 두상이로군. 우리 피차 나물내기는 그만하구 언제 한번 찾아볼 의논이나 합세다.》

조개메늙은이의 말이였다.

《아무나 가두 만날수 있답디까?》

《그 도승이 늘 잡약산에 있기나 한가.》

《웬걸, 헌쇠동냥다니는 중들의 말을 들으면 순안 어느 절인가 암자루 가져다가 부처를 만든다기두 하구 병쟁기를 만든다기두 하는데 그 로승두 아마 거기 가있는 모양입디다.》

이렇게 제각기 말참견들을 해서 이야기의 주인이랄것이 없이 된 판에 《서산이라는 그 늙은 중이 손수 왜적을 죽였다니 참말이요?》 하고 누구는 또 이런 말을 한대중으로 물었다.

《거 모를 말입디다.》

《모르긴 왜 몰라요. 분명히 그랬다는데요.》 하는 정반대의 대답이 나왔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들이 말했다.

《하기는 나두 무쇠동냥을 다니는 중들한테 물어봤는데 처음 왔던 중은 〈우리 서산스님이 그런 살생을 하실리가 있소?〉 하구 펄쩍 뛰다싶이 하더니 그 다음에 온 중은 〈과연 그랬다.〉구 하니 뉘 말이 옳은지 모르갔습디다.》

《그 말이 비슷하우. 나두 물어봤는데 중따라 말이 다르습디다.》

《거 어째서 그럴가. 한속에서 나온 말이갔는데.》

《거참, 모를 일인데요.》

하여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마는가 할 때 《그럴것 없이 우리 한번 또 물어봅시다.》 하는 사람이 있었다. 문턱앞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던 그 사람은 아직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오는 두 중에게 비를 그이여 가라고 권했다.

두 늙은 중은 짚으로 바랑모양으로 결은 조그마한 헌쇠오쟁이를 토지방에 벗어놓고 올라왔다. 삿갓, 장삼 할것없이 물이 줄줄 흐르게 젖은 그들은 방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토지방에 말아세운 짐밑에 놓인 섬거적을 깔고 앉았다.

《들어와서 몸들을 좀 녹이시우.》

《찬비를 맞아가며 늙은 대사들이 장히 수구들을 하시오.》

방안사람들의 인사에 《수고랄것이 없소이다.》 하는 한 중은 송낙을 벗어들고 반백이 지난 깎은 머리를 훔쳐서 물을 쥐여뿌리고나서 말을 이었다.

《저희 승려들은 애시적부터 이보다 더한 설한풍 찬 날씨에라도 가야 할 길이면 아무리 험한 첩첩산발도 노 걸어놔서 이만것쯤 수고라고 할것이 없소이다.》

그의 말에는 상숙치 않은 문자도 문자려니와 어덴가 《좀 봐라.》는듯이 젠체하는 어기가 있었다.

《여느 동냥짐과 달라 헌쇠가 돼서 더 무겁갔소.》

누가 또 이렇게 하는 말에는 《무겁기야… 하나 우선 동냥도 아니고요.》 하고 그는 이렇게 발을 달았다.

《동냥이 아닐 래력이 간 곳마다 시주님네가 우리 서산스님께서 쓰실거라고 일부러 헌쇠를 모아두었다가 저희가 오기를 기다려서 주시니까요.》

그 말이 사실이기는 하나 역시 젠체하는 말투였다.

이때 문득 사람들이 주고받던 말을 잠시 중둥무이시키는 일이 생겼다. 방안구석에 매두었던 보라매 한쌍이 갑자기 날개를 부치며 요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들이 토지방에 벗어놓았던 짚바랑속에서도 날짐승들이 푸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망태속에 웬 닭이 있소?》

《예, 닭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둘기두 있구만! 거 집비둘기요?》

《예, 집비둘기올시다.》

방안사람들의 말에 대답하면서 두 중은 짚망태들을 매가 안 보일데로 치워놓았다.

《그건 뭘 할게요? 더구나 비둘기 같은거는?》

《글쎄올시다. 저희는 그저 서산스님께서 상목을 주시면서 사들이라구 하시기에 사가는것뿐이올시다.》

《아니, 그것두 서산대사가 구해오라는거요?》

《예.》

《닭은 몰라두 집비둘기는 무슨 소용일고?》

《비둘기는 못 먹나.》

방안사람들의 이런 말에 《본시두 누린걸 안 자시던 서산스님인데 그럴리가 있습니까.》 하고 우선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라는듯이 머리를 흔든 늙은 중은 이런 말을 했다.

《옛날 삼국시절의 공명이는 돌을 가지고도 팔진도를 벌려서 적군을 파했는데 저의 서산스님께서 이런 날짐승들을 구해들일적에야 저희들은 몰라도 무슨 조화가 있겠지요.》

《여보 대사, 우리가 하나 물어볼것이 있소.》

이때 또 한사람이 내다보며 아까 이야기가 있었던것을 물었다.

《그럴리가 있습니까.》

늙은 중은 이번에도 또 완강히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 서산스님께서야 〈운주유악지중(장막안에서 펼친 작전의도)〉 해서 〈결승천리지외(천리밖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뜻)〉 하시는 지략이 있는분인데 그런 졸한 일을 하실리가 있습니까. 더우기 자신 손에 중생의 피를 묻히시다니 천부당만부당한 랑설이올시다. 자, 이젠 또 가봅시다. 어서 일어나오.》

이렇게 다음 말로는 같이 온 중을 재촉하면서 늙은 중은 부산히 헌쇠짐을 지고 아직도 비가 쏟아지는 행길로 내려섰다.

《여보 대사.》

이때 방안의 한사람이 중로배치고는 좀 큰편인 상투를 밖으로 내밀며 물었다.

《우리는 서산로장이 정말 그랬다면 크게 장한 일루 알구 물은 말인데 대사는 왜 졸한 일이라구 하우?》

《저희 승려들중에두 서산스님의 그 일을 장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번에는 지금까지 별로 말이 없었던 중이 짐바에 팔을 꿰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먼저 나섰던 늙은 중이 《어서 오오.》 하고 역정낸 소리를 질렀다.

《혹여 서산스님의 덕행에 흠절이 될가 해서 그 일을 숨기는 승려들도 있습니다. 더우기 편석대사 같은이는 그런 발설은 영 말라고 신칙한 일도 있고 해서…》

말하던 중은 또 재촉하는 소리에 총총히 내려갔다. 마침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에 나선 두 중은 말다툼을 하는 모양으로 피차 어성을 높여 지껄이면서 자욱한 비발속으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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