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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 회


45. 보통벌의 추수준비


뒤산에서는 오늘도 젊은이들이 패를 짜가지고 권법(정신수양과 신체단련으로 주먹을 놀리여 하는 운동)과 짝지쓰는 법을 배우고 익히고있었다. 권법과 짝지쓰는 법은 예로부터 중들이 자기네의 불법을 수호하기 위한 무예의 일종이였다. 중이란 저자신이 곧 불법을 지닌 몸이라고 하는만치 자기 한몸을 어떤 박해로부터 수호하는것도 다름아닌 불법의 수호였던것이다. 중들은 흔히 험한 산길을 다니게 되고 그런 산길에서는 또 흔히 맹수를 만나게도 된다. 마주서는 범이나 곰에게 합장하고 설법을 한대도 소용이 없다. 그런 짐승들에게는 주먹이나 몽둥이가 유효한 설법이다. 때려눕히거나 쫓아버림으로써 불법을 수호할수 있었다.

지금 무예를 련습하는 잔디밭기슭의 언덕우에는 정갱이에 기장이 좀 짧아보이는 군복에다 긴 검을 차고 한손에 묵중한 선장을 짚은 사명당이 서있었다.

《그래가지구야 시라소니새끼라면 몰라도 왜적아수라들을 쳐죽일수 있을가.》

그는 이따금 이런 말을 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수염속에서 울려나오는 보통 하는 말이라도 우렁찼다.

젊은이들은 중, 속인 할것없이 짚으로 단단히 결은 투구들을 눌러썼다. 권법을 배우는 패는 짤막하게 깎은 참나무방망이를 하나씩 들었다. 실지 접전에서 쓸 철퇴대신이였다. 지금 동금강암에서 만드는 철퇴들도 그만한것들이다. 말하자면 맨주먹만으로는 안될것이므로 쇠주먹들을 만드는것이다.

앞으로 가지게 될 검대신으로 짝지를 가지고 련습하는 사람들의 짝지도 그리 길지 않았다. 륙모로 깎은 그 참나무몽둥이는 두팔을 과히 벌리지 않고도 량끝을 쥘수 있는 길이였다.

그들은 우선 몸을 날쌔게 하기 위해서 제손으로 량끝을 쥔 짝지를 모두발로 뛰여넘는 련습부터 했다. 그 다음부터 철퇴패는 철퇴로, 짝지패는 짝지로써 치고 막는 법을 익혔다. 무기가 무기니만치 지금의 련습부터도 육탄과 육탄이 부딪치는 단병접전이였다. 적의 가슴으로 뛰여들듯이 달려드는데는 긴칼이나 창이 필요치 않았다. 긴칼, 긴 창을 가진 적들로 하여금 오히려 그 긴칼, 긴 창이 주체궂게 할것이였다. 우리 민병들뿐아니라 우리 관군의 무기도 역시 그런 단병(창이나 칼 등과 같이 가까운 거리에서 싸우는데 쓰는 병기)이였다.

후일에 명군의 총사령 리여송이가 크게 놀랬던것도 바로 이 점이였다. 평양성을 탈환하자 그는 물었다.

《우리 명나라에서도 아직 널리 알려지지 못한 척계광의 륙화진법을 당신네 나라에서는 언제 그렇게 익히 배웠는가?》고. …

눈을 《륙화》라고도 한다. 그 당시 명나라에서 새로 창안된 륙화진법이라는것은 눈의 결정체가 이모저모로 아로새겨진것과 같이 적진속으로 속속들이 파고들듯 꿰들어가서 단병으로 싸우는 백병전법이였다. 그때 우리는 륙화진법이란 말조차 처음 듣는것이였다. 그러나 자기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맨주먹으로라도 싸워야 했던 조선사람은 몸소 륙화진법의 모범이 되였던것이다.

이때 법근이는 짝지훈련을 하고있었다. 웬 까닭인지 이즘의 법근이의 짝지는 몹시 매워졌다. 그뿐아니라 웃음도 적어졌다. 본시 철색이던게 좀더 칼칼해진 그의 얼굴에는 눈만이 더욱 날카롭게 빛나보이기도 했다. 생재기짝지패와 어울려질 때의 그는 언제나 막아가다가 간혹 내려치는 때가 있더라도 손짐작을 봐가며 쳤고 또 치고는 씽긋하거나 호탕히 웃기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얻어맞은 자리가 좀 얼얼하다가도 그 씽긋하거나 걸걸한 웃음에 금시 아픈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덤벼들수 있었다. 그런데 웬일일가? 지금 또 쨍 울리는 법근이의 《에익!》 소리와 함께 짝지를 떨어뜨린 주복이는 두손으로 짚투구쓴 머리를 움켜쥐고 몇걸음을 물러서며 《너 정 이러기가?》 했다. 그리고는 무엇을 찾는지 두리번거렸다. 짝지와 방망이를 가지고 서로 치고 막으며 날뛰는 젊은이들의 발길에 번번해진 잔디밭기슭의 나무숲밑에는 혹은 짚투구를 벗은 꼭대기를 쓸기도 하고 혹은 어깨죽지와 팔목을 주물며 앉아있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황서방과 박서방도 있었다. 법근이의 매운 짝지에 얻어맞고 물러앉은 사람들이다. 주복이는 실은 일종 의분을 가지고 맞섰던것이다.

《정말 그러기문 한번 해보자니?》

뜬쇠가 달면 더 뜨겁다는 격으로 두리번거리던 주복이는 가까이 서있는 크지 않은 노긋한 오리나무를 통채로 뽑아들자 내두르기 시작했다.

법근이는 별수없이 뒤로 물러서며 막아야 했다. 그의 짝지는 앞에서 휘둘리는 생나무뿌리의 흙을 털어줄뿐이였다.

《이자식, 어데 보자.》

주복이는 법근이를 겨누고 뿌리채, 가지채 엇댔다 내려치기도 하고 풀망같이 내두르기도 하면서 접어들었다. 법근이의 날파람도 무섭게 날렵했다. 이번에는 박살이 나나부다 했던 순간에 보면 어느결에 퉁겨진 제기같이 저만치서 몸을 솟구쳤다. 혹은 감겨돌듯 혹은 새나가듯이 몸을 뒤치고 날리던 법근이는 짝지를 버리고 허리띠에 찔렀던 검을 뽑았다. 검 역시 통나무에 낫이기는 하나 어지럽게 휘둘리고 떠도는 나무뿌리와 가지들은 떨어졌다. 가지와 뿌리를 피해가면서 법근이는 그 나무를 한팔로 껴안고 접어들 기회를 노렸다.

(접어들어서는 어떻게 할가, 검날등으로 한번 후려볼가?)

이런 생각을 하는 법근이는 이제라도 제가 한번 껄껄 웃고 손을 내저으며 물러서면 그만이 아니냐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면 주복이도 그럴수 있지 않은가? 또 이렇게도 생각하는 법근이는 자기보다도 응당 주복이가 그래주어야 할것이 아니냐고도 했다. 주복이가 누구보다도 지금의 자기 심정을 잘 알아줄 사람이기때문이다.

법근이는 지금의 자기는 속이 텅 빈 등신이 된것 같은 때가 많았다. 이때까지 마음속에 그득했던것을 잊어버리려고 결심하고 생각을 안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의 별이 제아무리 아름답고 그래서 아름답게 본단들 구만리장천을 사이에 둔 별과 이편이 하상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런 생각도 했다. 잊자는것이였다. 그같이 잊으려고 한즉 저자신마저 망연자실하게 되는 때가 많았다. 그의 짝지가 매워지는것은 바로 그런 때였다. 눈앞에서 휘둘리는 저편의 짝지를 막아가다가 저도 모르게 그저 손에 오른 힘으로 내려치게 되는것이 이런 때였다. 이러한 내 심정을 주복이는 잘 알아줌직도 하건만 하는 법근이는 그냥 씨근거리며 생나무를 휘두르며 덤벼드는 주복이가 실로 밉기도 했다.

《네 정 그러면 한번 곯아볼테냐?》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는 법근이는 칼을 뺐을 때부터 《법근아, 네 그 무슨짓이냐.》 하는 사명스님의 우렁찬 고함소리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칼을 휘둘렀다. 주복이의 나무가 이제는 하나의 몽둥이나 다름없이 되였다. 이리 뛰고 저리 날아 피하던 법근이는 휘둘리던 나무끝이 한순간 땅에 내려진 틈을 타서 그 중동을 왼팔로 껴안았다. 주복이는 더욱 용을 썼으나 전같이 휘두를수는 없었다. 그 짬을 놓치지 않고 한걸음 성큼 내짚은 법근이는 날을 뒤집어잡은 검을 쳐들었다. 주복이의 어깨죽지를 겨누고 막 내려칠듯 한 순간이였다. 등뒤에서 산이 찌렁 울리듯 꾸짖는 목소리와 함께 날아온 선장이 법근이의 볼기짝을 후렸다.

《네 마(귀신)가 접했느냐.》

사명당의 호통소리가 또 떨어졌다. 매에보다도 그 불호령에 씨그러지듯 한 법근이는 풀썩 주저앉았다.

《롱이올시다.》

법근이는 앉은채 사명당을 쳐다보며 말했다.

《롱? 네 눈에는 살기가 있어.》

사명당은 집어든 선장끝으로 한번 땅을 구르며 책망하기 시작했다.

이때 《사명사주.》 하고 부르는 서산대사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편 숲속에서 칡넝쿨을 몇오리 걷어가지고 나오던 서산은 《법근이를 이리 보내시오.》 하며 봉수대쪽으로 올라갔다.

보통벌이 바라보이는 봉수대아래 숲속에서는 십여명 늙은 중들이 산중에서 찍어모은 나무들을 자르기도 하고 다듬기도 하고있었다. 추수할 때 이 잡약산의 서쪽기슭을 스쳐흐르는 보통강 곁갈래줄기를 리용해서 벼단들을 끌어올릴 자그만큼씩 한 떼목들을 만드는중이였다.

김첨지와 주복이 아버지도 한몫 들어서 일하고있었다. 김첨지는 떼목들이 물을 덜 먹도록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한다고 하면서 중들이 다듬어놓은족족 낫으로 나무껍질을 벗기고있었다. 그옆에서 널려있는 나무가지중의 가늘고 곧은 놈으로 추려서 두뽐 혹은 세뽐씩 되게 도끼로 잘라 모으고있던 주복이 아버지는 《이걸루 작은 닭의 가리들을 여러개 만든다니 그래서는 뭘 하노?》 하고 혼자서 흐흐흐 웃기도 했다. 서산대사가 시작한것을 《내 하마.》고 맡아하기는 하면서도 어째 일이 좀 장난같기도 했던것이다.

《글쎄 그건 참 무슨 소용인지? 그 말씀은 안하시드군.》

역시 이런 말을 하는 김첨지는 옆에서 대자귀질을 하던 중을 쳐다보기도 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서서 이마의 땀을 소매끝으로 씻고있던 중 역시 《글쎄올시다.》 하고 웃으며 다시 쩡쩡 울리게 대자귀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사실 서산대사는 《추수때는 혹시 닭들도 한몫하게 될는지 모를것이올시다.》 했을뿐 하던 일을 주복이 아버지에게 맡기고 자기는 또 돌아가며 흩어진 대자귀밥중에서 소나무부스레기와 관솔가지들을 주어모으기 시작했었다.

《저건 또 무슨 소용인가, 불쏘심인가?》 하고보면 그런것을 주어모으고있는 서산은 마치 살림살이에 찬찬한 한가정의 할아버지같기도 했다.

이때 법근이를 데리고 다시 봉수대밑으로 온 서산은 주어모았던 소나무부스레기와 관솔가지들을 칡오리로 차근차근 묶어놓고는 돌우에 걸터앉아서 자기가 데려온 법근이가 옆에 서있는것도 잊어버린듯이 한동안 보통벌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금의 보통벌은 거의다 익어가는 벼로써 논배미마다 제각기 제 색갈대로 넓은 벌판을 무늬놓았다. 그 논벌사이에 청량한 가을볕에 이삭이 산호구슬뭉치같이 붉게 빛나는 수수밭들과 두드러진 최뚝에 만발한 노란 들국화떨기들도 보였다. 또 보통문과 칠성문사이에 굽이쳐흐르는 보통강 좌우기슭에는 바람결따라 흐늑이는 갈풀의 은빛물결이 바라보이기도 했다.

《네 밝은 눈에 저 보통문밖의 다리가 보이느냐?》

법근이를 돌아보며 서산은 이런 말을 물었다.

《예, 보입니다.》

법근이의 대답에 머리를 끄덕인 서산은 또 무슨 생각에 잠심하는듯이 한동안 잠잠히 앉았다가 《네 부디 몸 조심해라.》 하고 목이 좀 잠긴듯 한 음성으로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이 다 늙은 나도 이 국난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수 있을가 해서 내게 고희(늙은 나이)의 수명을 주신 부처님께 나는 감사한다.》

이런 말을 한 로승은 한번 법근이를 돌아보고나서 또 말을 이었다.

《하물며 젊은 너는 이제부터 수천수만의 우리 동족들을 위해서 싸울수도 있고 일할수도 있으니 그 얼마나 큰 복록이냐. 또 네 얼마나 중한 몸이냐.》

《제가요?》

문득 이같이 놀란 말을 하며 한순간 서산의 눈을 마주보던 시선을 거두고 푹 고개를 숙인 법근이는 제 발부리에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

《네가 너 하나만의 몸이 아니라 수천수만의 동족을 위할수 있는 몸이라는것을 안다면 너도 네 몸을 중히 여기게 될것이다. 이제 추수때만 해도 네가 큰 힘이 될줄 믿는다.》

이같이 새로운 말을 시작했던 서산은 잠시 보통문을 바라보다가 한층 더 엄숙해진 얼굴을 돌려 법근이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만일의 경우에는 말이다. 저 다리에서 혹시 불이 일지도 모르고 그런 경우에는 네가 거기서 왜적의 무리를 막아 싸우게 될는지도 모를게다. 금강력사같이, 불사신같이 버티고 섰는 네 장한 모습을 나는 지금부터도 보는듯 하다.》

이런 말을 마친 서산은 지팽이를 짚고 일어서서 등뒤의 모여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법근이가 이리로 오자 쉴참을 낸 젊은이들은 봉수대근처로 모여왔던것이다.

《이번엔 또 누가 법근이의 매운 짝지에 얻어맞고 기가 나서 생나무를 뽑을고?》

은실같은 눈섭으로 그늘진 맑은 눈에 정다운 웃음을 띠우고 젊은이들을 둘러보는 서산은 이런 말을 했다.

《사명사주, 그런 장사에게는 큰 철퇴를 만들어주시오.》

또 이러한 로승의 말에 젊은이들은 와- 웃고 기세를 올렸다. 그중에 《법근이, 또 한번 맞서줄라나?》 하며 박서방이 팔을 부르걷으며 나섰다.

《가만, 내 아무래두 주복이놈을 한번…》 하며 돌아선 법근이는 옆의 사람의 짝지를 채들고 주복이에게로 달려갔다. 이때 주복이는 짝지를 들었을뿐 그 생나무도 없고 짚투구도 안 썼으므로 법근이의 맹렬한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야 했다. 격렬한 훈련은 다시 벌어졌다. 잔디밭과 나무숲속은 금시 백병전마당으로 화한듯 했다. 부딪치고 마주치는 방망이와 짝지소리, 겯고 틀고 내닫고 하는 소란한 발소리로 먼지가 충천했다. 그런중에 다시 소생한듯 법근이의 걸걸한 웃음소리도 련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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