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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 회


41. 이 나라는 조선사람의 나라


조금후에 대동문거리로부터 갑옷, 투구를 갖춘 젊은 장령 소 요시도모가 말을 타고 종졸에게 고삐를 잡힌 소서행장의 말을 령거해가지고 왔다.

그동안에 소서행장은 고조리도리의 손을 빌어 갑옷, 투구의 장속을 갖추었다. 오래간만에 소풍하러 가는 길이라 파탈하고 경쾌하게 한바퀴 돌아왔으면 했으나 고약을 붙이고 헝겊으로 싸맨 귀를 부하들에게 보이고싶지 않아서 투구를 쓰게 되니 따라서 손끝, 발끝까지도 무겁고 두터운 갑옷으로 감싸고 묶어야 했다. 가슴에 붙인 거울같이 닦은 강철 호심경을 비롯하여 어깨와 팔다리를 가리우게 은실금실로 누비고 꿰매서 비늘 달듯 한 울긋불긋한 갑옷과 이마에 마에다데라고 하는 황금뿔을 뻗친 투구는 색갈과 모양이 호화롭고 장중하면 할수록 무게가 더 나가기마련이였다. 유독 소서행장만이 치기가 있어 그런것이 아니라 무장은 누구나 그같이 장중하게 장속을 갖추고보면 그자신이 하나의 장식물이 되는만치 이왕이면 보아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것은 인개상정(누구나 가지고있는 심정)이라고도 할수 있다. 그러나 대동문거리로 해서 종로 큰 거리로 올라가는데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 조선땅에서 왜구대접을 받을뿐인 자기 군졸들은 간혹 보이나 (그들은 소서행장의 행차를 보자 진창에 철썩철썩 주저앉아 이마를 조아렸다.) 정작 자기의 위풍을 보이고싶은 조선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오늘만 우연히 없는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다.

조선왕과 그 조정이 이 평양에 그냥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성들은 있어야 할것이였다. 그 역시 없었다. 살아움직이는것이라고는 파리떼와 쥐와 지붕에서 기와골을 뽐재보듯이 사족을 벌려딛고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와 빈방의 걷어간 삿눈자국만이 남은 먼지속에 굶은쇠벼룩뿐이였다.

어떤 성시이든 단지 그 성안에 고루거각과 민가와 우물과 파리, 벼룩, 고양이 같은것만이 있어서는 성시라고 할수 없을것이다. 사람이 있어야 할것이다. 더우기 만리원정에 군사를 일으켜 점령한 성시는 더욱 그렇다. 우선 정복자인 자기들에게 도륙을 당하고 벌벌 떨고 유공불급으로 아첨하는 피정복자가 있어야 할것이다. 그런것이 없는 무인지경을 점령한다는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누구를 노예로 부릴것인가? 풍신수길은 조선사람을 다 죽여없애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무인지경같이 항거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하나의 형용구일뿐 그렇지 않고서야 누구를 노예화하고 누구를 압박할것인가? 당장만 하더라도 비자루더러 저 혼자 이 거리를 청소하랄수도 없고, 나락이 저 혼자 쌀이 되랄수도 없고, 넉가래더러 저 혼자 측간(변소)을 치랄수도 없고, 또 성가퀴나 집의 섬돌들을 압박해본댔자 무의미한 일이 아니겠는가, 또 일왈 정복자인 자기네의 위풍을 누구한테 뽐내보일것인가. 그러지 않아도 란숙(발전)한 문물제도와 례의범절과 특히 엄격하다는 남녀유별과 깍듯한 내외의 풍속으로써 동방례의지국으로 자처하는 이 나라 사람들앞에서 감추는것 없이 벌거숭이로 활보해보이는것으로써 례의인지, 《쿠소》인지 하는것이 자기네의 폭력앞에 얼마나 무력하다는것을 한번 증명해보이려고 벼르기도 했던 사무라이들에게 그럴 기회가 없었다는것만으로도 빈성을 점령하게 된것이 불만이였고 무의미한 일이기도 했던것이다.

지금의 평양거리는 말이 아니였다. 그새만 해도 말이 아니게 황페했다.

만여명의 일본군이 들어있기는 하나 역시 주인이 없다는것이 분명했다. 장마에 마른나무가 없어서 문짝을 떼서 불을 때고 그대신 섬돌을 들춰서 문을 막고 총구멍을 낸 집들이 많았다. 이영을 벗긴 집들의 방바닥은 논판이다. 골목들에서 쏟아져내리는 비물이 넘치는 거리거리는 악취가 풍기고 파리떼가 들끓는 오물천지였다. 거리 좌우쪽에 늘어선 버드나무들은 그 풍만하고 부드러운 선으로 실실이 드리웠던 가지들이 모든것을 아끼지 않고 함부로 다루는 손들에 꺾이고 훑이워서 이지러지고 병신 안된것이 없었다.

소서행장은 심기 또한 불편했다. 자기의 위의를 자랑하고 구경시킬 사람이 없다는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다. 이렇듯 황페한 성시를 점령했다거나 이런 거리를 활보한다는것이 이제는 자랑일것도, 자존심을 만족시킬것도 못되는것이 불만이였다.

소서행장은 사창고앞 로적낟가리밑에서 말을 세웠다. 고개를 쳐들어서야 꼭대기가 보일만치 높은 로적더미는 마치 봄에 묵은 북새를 헤치고 돋아나는 풀에 덮인 둔덕과 같이 퍼렇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근처의 초가이영들을 벗겨서 고깔씌우듯이 덮기는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벼섬도 이영도 다 젖었으므로 련일 계속되는 장마에 싹이 나고 뿌리가 내렸다. 나락이 불어서 섬거죽이 터지기도 한 로적더미에서는 탁주냄새가 풍겼다.

그옆의 컴컴한 빈 창고안에서는 들끓는 파리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났다. 일본군사들은 저희 동료가 염병에 걸리면 장지로 해서 이 창고에 처넣었다. 죽어가는 병자들은 미처 처치 못한 시체들과 함께 누워있는 때도 많았다. 열이 나서 앓아눕기만 하면 의례히 염병으로 알고 동료들이 하는대로 끌려왔다가 하루밤 지내자 정신이 들어서 시체속을 헤치고 기여나오는 학질환자도 있었다.

소서행장은 창고안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성한 사람은 없었다. 병자와 시체뿐, 앓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문어구에서 나는 인기척에 쥐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그 소리에 가로세로 누워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덮었던 꺼먼 보자기를 벗기듯이 파리떼가 날아났다. 누렇게 부황이 뜨거나 반대로 피골이 상접한 사람의 형태가 드러났다. 마치 누구를 원망하는듯이 흡뜬 그 눈들…

《이 나를? 칙쇼, 천만에-》

이런 광경앞에서는 의례히 그러한 그리스도교의 풍습대로 십자가를 그으려던 소서행장은 문득 이런 생각에 이마로 올라가던 제 손을 뿌리치듯이 다시 내렸다. 원망과 저주로 찬 그 눈들을 보는것만으로도 장차 천국으로 올라가야 할 제 령혼에 큰 흠집이 생길것 같아서 불쾌했던것이다.

곧 말머리를 돌린 소서행장은 (저것들은 모두 칙쇼같은 천한것들이니까. 그리고 또 태초부터 예정된 저들의 숙명일테니까. …) 이같은 생각으로써 제 마음이 다시 밝아지는것을 느꼈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이러한 장군휘하의 군졸들은 비단 접전마당이 아닐지라도 그들의 수천수만의 해골이 이국산야에서 마르게 될것은 피치 못할 일이였다.

《저 김삼근이란 놈과 그놈이 어데선가 데려왔다는 김순량인가 하는 고마인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는가?》

말을 달리기 시작했던 소서행장이 소 요시도모를 돌아보며 물었다. 김순량이 같은자를 조종하는데는 자기네 일본사무라이보다 조선사정을 좀 안다는 대마도출신이 나으리라고 해서 소 요시도모에게 맡겼던것이다.

《네네, 아직…》

아직 안 돌아온것이 자기이기나 한듯이 소 요시도모는 자기 장인인 동시에 또 무서운 상전이기도 한 소서행장앞에서 공축했다.

《그자들이 소금을 다문 얼마라도 속히 구해가지고 와야겠사온데…》

그는 대마도출신인 자기가 얼마나 일본사무라이들을 위해서 생각하는가를 보이려고 이런 말을 시작했다.

《장과 소금이 없어서 뜰안의 흙과 박석들을 물에 울궈서 먹으니까 저렇게 염병이 들리기도 하는 모양이올시다.》

《다 알고도 남은 소릴 새삼스럽게 지껄일건 뭐야?》

와락 불쾌해진 소서행장은 사위의 말을 막질렀다. 실은 소서행장자신도 소금이 긴한 생각에 저들의 앞잡이노릇을 하는 김삼근이와 그자가 앞장세우고 소금을 구하러 떠난 고마인 김순량이가 돌아왔는가를 물었던것이다. 그러나 같은 걱정이지만 부하들이 하는 걱정은 귀에 거슬렸다. 이런 사태에 처해서도 이렇다할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상관인 자기를 힐난 하는 말같이도 들렸기때문이다.

《현소, 귀 승은 리순신을 아는가?》

장경문쪽으로 말을 달리던 소서행장이 불쑥 이런 말로 물었다.

《하?》

현소는 제 귀를 의심할만치 놀랐다.

《저 리순신을 말이지.》

말을 채질해서 자기뒤에 붙어서며 사뭇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는 현소에게 소서행장은 또 이렇게 물었다.

《이 우승놈이 조선의 리순신을 아느냐 말씀이오니까?》

이같이 되묻는 현소의 눈에는 단지 뜻밖에 놀랍다기만보다도 벌써 애원에 가까운 빛이 어리였다.

(이 무슨 트집을 잡으려는 시초인고?) 하는 불안때문이였다.

《그래그래. 아 참, 물론 귀 승이 리순신을 보았을리는 없을것이고…》

하던 말을 잠시 끊은 소서행장은 그만 놀라도 좋다는듯 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자기의 한번 웃음, 한마디 말로써도 능히 부하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수 있고 기쁘게도 할수 있다는것을 잘 아는 소서행장은 이번에는 또 한번 크게 웃었다.

《저 여의 말은 대체 리순신은 어떻게 생긴… 에-또, 아니, 어떻게 생겼다는것은 물론 알수 없을것이고… 그렇지, 대체 리순신은 어떤 복색을 하고있을가 말이야.》

《하, 그 복색을 말씀이오니까?》

《그래, 여가 알고싶은것이 아니라 귀 승이 그것을 알아야겠거던.》

《하? 우승이 말씀이오니까?》

처음같지는 않았으나 현소는 또 한번 놀랐다.

《자네가 그것을 알아볼수 있겠는가?》

《네, 저 한성서 걷어온 조선책들중의 〈경국대전〉이라든가 〈오례의〉(나라에서 지내는 다섯가지의 례) 같은 책을 상고하면 혹시… 물론 리순신의 용모파기까지는 없겠지만 조선수군절도사가 어떤 복색을 한다는것쯤은 알수 있을듯도 하올시다.》

《알아서 그대로 옷을 한벌 지으란 말이야. 그래가지구는 등신을 하나 만들어서 그 옷을 입히란 말야. 알겠나? 등신을 만드는데는 이봐, 상투밑을 미는 외에는 결코 칼을 얼굴에다 안 대는것이 조선사람의 풍속이라니까 리순신도 필시 수염을 길게 길렀을것이 아니겠나.》

《하! 지당한 말씀.》

《그러면 그렇게 만들어서 우리 군졸들이 많이 볼수 있는 저 창고앞에다 세우란 말야.》

《하.》

《그래서 말이지, 누구를 원망하려거든 조선사람 리순신을 원망하라고. 알겠어? 우리 일본군이 이번 전쟁을 속히 이기지 못하고 따라서 빨리 끝내지도 못하는것은 모두가 저 리순신탓이라는것을 알게 하란 말야. 알겠어?》

이러한 소서행장의 명령은 불일내로 거행되였다.

옛날에는 소위 전통법이라는 극히 원시적인 민간료법이 있었다.

례컨대 편두통이 심할 때는 이마가죽을 피가 나게 꼬집어서 골속이 아픈것을 겉가죽의 아픔으로 전환시키는것이다. 이때의 소서행장이 취한 조치 역시 일종의 《전통료법》이라고 할것이였다.

저희들 사무라이가 일으킨 침략전쟁때문에 이국만리의 전쟁마당으로 마지못해 끌려나온 군졸들이 걸음마다 당하게 되는 고마인들의 치렬한 반격과 또 나날이 번져가는 염병으로써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는 무서운 운명앞에서 그 얼마나 전률하며 따라서 사기가 꺾이여 오직 자기네 부모처자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만을 초조히 바란다는것을 소서행장은 모르지 않았다. 따라서 그러한 군졸들이 결국은 자기네 장수들을 원망하고 저주하리라는것도 모르지 않았다. 부하들의 그러한 원망과 저주를 딴데로 돌려야 할것이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사기를 돋구는 효과까지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뿐아니라 일본선봉군으로 하여금 평양이북으로는 한걸음도 더 나갈수 없도록 못을 박아놓는것이 저 먼 남해에서 조선수군을 지휘하는 리순신이 아닐수 없다고 생각하는만치 누구보다도 절치부심하는자가 소서행장자신이였다.

장경문앞을 지나서부터는 성가퀴를 따라서 을밀대로 말을 몰았다.

원경으로 바라보는 평양성은 역시 여전히 아름다운 성시였다. 서북쪽으로 연연 십리에 걸쳐 혹은 성벽안에 안기고 혹은 성벽을 에워싼 락락장송의 울창한 송림, 동남쪽에 천작으로 금성탕지를 이루어놓은 청류벽줄기와 그 깎아지른 석벽을 스쳐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 그안에 들어앉은 만호장안은 복잡한 성시라기보다도 집 절반, 록음 절반으로 휘늘어진 버드나무 사이사이로 빼여난 추녀, 붉은 기둥들의 루대와 전각들이 은현(숨었다나타났다 함)하는 시가, 그것은 옛날의 도원경인듯도 했다. 멀리서도 알아볼수 있게 곳곳에 류록장을 둘러친듯 한 버드나무가운데로 거울같이 드러나는 맑고 잔잔한 련못들! 그 한가운데는 조산(쌓아서 만든 산)이 있고 조산우에는 날듯이 추녀가 들린 루각이 섰고, 붉은 란간의 무지개다리밑에는 피여난 련꽃과 송이송이 떠도는 수련이 향기롭고, 그 련꽃과 련잎, 창포잎사이에는 문자그대로 은린옥척(비늘이 은빛처럼 빛나는 큰 물고기)이 뛰놀았다. 오랜 세월을 두고 운치를 사랑할줄 아는 사람들의 손으로 이룩되고 매만져진 아름답고 평화로운 성시였다.

을밀대에서 말을 세우고 이윽히 성안을 바라보던 소서행장은 중 현소를 돌아보며 무두무미하게 이런 말을 물었다.

《이 평양성은 유명한 색향이였다지?》

《예예, 우승도 그런 말을 들은적이 있는듯 하올시다. 딴은 다른 녀자는 볼 기회가 없었지만 이곳 기생이였다는 계월향인가 한 계집은 참말 극가한 계집이올시다.》

잠시 말을 끊고 소서행장의 눈치를 살핀 늙은 중은 또 말을 이었다.

《그 자색도 자색이려니와 그 문재, 그 필재는 참! 히야- 참말로 놀랍습니다.》

《뭘 그렇게 감탄하는가?》

소서행장은 그러면서도 노상 흥미가 없지도 않은것 같았다.

《아니올시다. 실로 이만저만한 재간이 아니올시다. 한문도 잘하려니와 더우기 그 필재! 란 같은것은… 사군자(매화, 국화, 란초, 대나무를 일컫는 말)중에도 특히 란은 우승이 보기에는 놀랠만 한 경지올시다.》

계월향의 란보다도 제 견식을 자랑할 기회를 만났다고 생각한 현소는 거슬러선 장눈섭우의 커다란 검은 사마귀를 치켰다내렸다하면서 지껄이는 제 말솜씨에 신이 나는 모양이였다.

《그러다보니 귀 승은 노상 그 고마기생의 풍류속에 놀아났구려.》

소서행장은 코춤을 추는 웃음을 띠였다.

《그렇지도 못하올시다. 그저 말을 몰라 필담을 하게 되니 그 글재조를 엿볼수 있었고 또 그림은 궐녀의 짐짝속에서 뒤져낸 이전것을 보았을뿐이올시다. 하도 훌륭하길래 몇번 청했지만 영 붓을 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노께서나 한번 부르셔서 부채에 란을 한폭 받도록 해보십쇼. 부채에서 향기가 풍길만 한 란이올시다.》

《여는 그런 풍류는 모르니까.》

《아니올시다. 그런 문재, 그런 필재가 있다보니 본시두 아릿다운데다…》

《오호- 그러다보니 누구보다도 귀 승이 먼저 반한 모양 아닌가. 어쨌든 그런 계집이 그 무지꿍한 놈한테 고분고분할가?》

《계월향은 무척 말랐습니다.》

이런 대답 아닌 대답을 하는 늙은 왜승의 어음에는 다소 애틋한 여운이 들리는듯도 했다.

《어째서?》

소서행장이 물었다.

《궐녀 역시 이 평양성에서 피란해나가다가 공교롭게도 우리 일본군사들한테 붙들려서 끌려왔는데… 와서는 근 열흘이나 식음을 전페했으니까요.》

《식음을 전페하다니… 통 먹지를 않았단 말인가?》

《하.》

《어째서?》

《글쎄올시다.》

현소는 속에서 나오는 말을 일부러 어금이로 씹어누르는듯 한 얼굴이였다.

《열흘이나 굶었다! 죽으려구-》

한번 《흥!》 코장구를 친 소서행장은 《소위 의리라는것을 내세우기 위해서? 저 혼자라도 〈신쥬〉(정사라는 뜻)를 해야 할 정랑(사랑하는 남자)이라도 있었던가?》 하며 웃는다.

《글쎄올시다. 정랑탓이라면 그 정랑이란것이 사람이기나 한지요.》

《사람이기나 한지요란 또 무슨 소린가? 유령정랑도 있는가?》

《그야 계월향이 고마녀인이니까요.》

《고마녀인은 유령정랑을 두기도 하는가?》

또 이런 말을 묻는 소서행장은 저자신 정색을 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듯 한 낯빛이였다.

《저, 말씀은 그렇습니다만 도노께서도 아까 말씀이 계셨기에 하는 말인데 수천리나 떨어져있는 우리까지도 저주하지 않을수 없을만치 우리앞에 커다란 위력으로 막아서는 저 남해의 조선수군장 리순신이도 유령이라면 유령이라고도 할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말을 하는 늙은 중은 소서행장의 노염이나 사지 않을가 하는지 그의 눈치를 흘금흘금 살피며 지껄였다.

《이봐, 여는 중이 아니니까 그런 선문답 같은 말은 그만하고 그래, 계월향이가 어쨌다는건가?》

《네에- 제가 하고저 하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올시다. 여기까지 미친 리순신의 그림자에 우리 일본군이 위혁을 받는다는것을 혹시 안다면 계월향의 마음은 곧 남해로 달려갈것도 같사와…》

《허어! 그런 건방진 계집이던가? 대체 제가 몇푼에치나 건방진가 한번 불러 구경해야겠소.》

이런 말을 하며 말머리를 돌려 다시 달리려던 소서행장은 눈에 뜨인 영명사를 내려다보며 현소에게 물었다.

《저 절에는 고마인중들이 아직두 남아있는가?》

《네, 한 십여명 되나보올시다.》

《그자들만이 어째서 아직도 이 평양성근처에 남아있는가?》

《거의가 다 나다니며 동냥도 하기 어려울만치 늙은것들인데 도노께서 특별한 처분으로 남겨주신 절의 식량이 아직도 좀 있으니까 연명할 때까지는 그냥 있을 모양이겠지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연명할만치 식량을 대주게.》

《하?》

현소는 그 까닭을 모르겠다는듯이 소서행장을 쳐다보았다.

《여의 말은 평양성가까이 있는 큰 절이니만치 그 중들은 이 지방에 아는 사람이 많을게고 또 이곳 백성들중에는 그 중들의 말이면 신청할자도 많을것이니까…》

여기서 잠시 말을 끊었던 소서행장은 다시 이런 말을 했다.

《아, 그렇지! 말 무중이를 하나 건사했더니 천리룡마가 찾아왔다는 속담이 있지 않는가. 앞으로는 이곳 백성들을 될수록 많이 끌어들여야 할게고. 그러자면 저 중들이 고마인의 민심을 수습하는데 도움이 될지두 모르니까. 알겠어?》

《네네, 그러지 않아두 저번 동대원에서 시다림을 할 때 그들과 필담을 했더니 비록 나라는 다르나 피차 불제자이기는 마찬가지라 이같이 만나게 된것도 부처님의 인연이라고 하는자도 있었습니다.》

《아첨이겠지.》

소서행장은 《내 예리한 판단이 어떤가?》 하고 묻듯이 현소의 말끝에 이런 한마디를 던졌다.

《하, 미상불 아첨이 아닌바도 아니겠지요.》

아첨했다는것이 바로 자기이기나 한것 같이 현소는 공축했다.

《아니, 여의 말은…》

소서행장은 자기의 말이 하나의 역설이였다는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첨하는자일수록 좋다는게야. 우리에게 진심으로 열복할 고마인이 있을리도 없겠지만 설혹 있더라도 진심으로 열복하는자는 또 결사적으로 반항할수도 있는자니까. 알겠어? 처음에는 옳은줄 알고 그랬다가도 그것이 잘못인줄 알게 되면 그때는 또 진심으로 반항할테니까. 또 그런자는 령리하지가 못하거던. 그런 우직한자들보다는 아첨도 할줄 아는 령리한자일수록 리용하기가 쉬우니까. 그런자들에게는 량식을 좀 주어도 좋아. 주어.》

이런 분부를 내린 소서행장은 말을 몰았다. 성가퀴를 따라 서북쪽으로 갈수록 일본군사가 많았다. 칠성문과 보통문을 중심으로 주력부대가 배치된것이다. 칠성문루에서 바라보이는 무연한 보통벌에는 논밭곡식들이 한창 성숙해가는중이였다. 계속 내리는 비에 기온이 내렸다가도 좀만 개인때면 땅에서 김이 오르는 중복머리라 한창 자라는 곡식들은 아침저녁이 다르게 컸다. 논판에는 붉은 물빛도 안 보일만치 오른 벼로 푸른 물결을 이루었다. 그런 논벌에는 오다가다 손가래를 든 조선농군들이 뵈였다. 초록일색인 들가운데 혹은 해오라기가 아닌가싶기도 한 흰옷입은 그 사람들은 퇴수구를 넓히기도 하고 낮은 뚝에 보토를 하기도 하는 모양이였다.

《이 농가들도 역시 비였는가?》

성밑의 이전 전주복이네가 살던 동네의 5~6호 농가를 굽어보며 소서행장이 물었다.

《네, 다 비였습니다. 한사람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소서행장의 말앞에 꿇어 엎드린 성문지기장교가 대답했다.

《그러면 저렇게 여전히 농사를 하는 저 고마인백성들은 다 어데 있나?》

자못 의아한 소서행장은 혼자말같이 물었다.

《저 고마인백성들 말씀이오니까?》

땅에 댔던 이마를 잠시 들어 보통벌을 바라보며 문지기장교는 말했다.

《글쎄올시다. 저자들은 어데서 나오는지 날이 밝아서 보면 벌써 나와서 일들을 하고있습니다. 저녁에는 또 어데로 돌아가는지 알수 없게 어두울 때까지 일을 합니다.》

《그래서?》

《네. 그래서 지금은 다 끝난 모양이올시다만 한창 논김을 맬 때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일수록 저 백성놈들은 더 많이 쓸어나오군 합니다. 그런것이 밉살머리스럽기도 해서 우리 군사들이 몇번 습격하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소서행장은 또 그자의 말을 재촉하듯이 물었다. 그러나 그자가 말하는 사실을 지금 처음 듣는것은 아니다.

평양성을 점령하자 저 산기슭의 어느 마을로 략탈하러 나갔던 근 30명의 장졸들이 온데간데 모르게 없어졌고 그래서 그날 밤으로 그들을 찾아본다고 나갔던 군사들은 어느 마을에선가 벌써 녹이 쓴지 오랜 솥을 몇개 발견했을뿐 아무런 형적도 찾지 못하고말았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측근자들의 보고로써 이미 다 들어 아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도 소서행장은 여기서 제눈으로 본 장교의 말에 일종 흥미를 느끼는것 같기도 했다.

《우리 군사들이 이 성문으로 나가는 낌새가 보이기만 하면 어느새 다 없어지고맙니다. 산지사방 흩어져서 산속으로 물잦아먹듯이 숨어버립니다.》

이번에도 또 《그래서?》 하는 소서행장은 자기가 처음부터 그자의 말보다도 그자의 류달리 굵은 목덜미에 더 흥미를 느끼면서 굽어보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처음 한두번은 우리 군사가 끝까지 추격한적도 있사온데 저 산속으로까지 쫓아갔던 군사들은 대개는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뭣이? 대개는 어쨌다고?》

《예에, 돌아오지를…》

《돌아오지를 못했다고?》

《예, 예…》

《거짓말말아, 이놈아.》

소서행장의 이번 말은 무서운 호통이였다.

《하?》

금시 한점이 되다싶이 사지가 오그라든 문지기장교는 떨기 시작했다.

《여의 앞에서 능당히 거짓말을 하는 흉측한 놈같으니- 게 바루 앉으렷다.》

태도가 변한 소서행장은 씹어뱉듯 하는 말과 함께 칼을 뽑았다.

《제가… 아니 이, 이놈이… 감히 거짓말을?…》

이미 사색이 다된 장교는 입술이 아물리지 않아서 떨리는 말을 더듬다말고 단정히 꿇은 무릎우에 상반신을 일으키고 목을 늘였다.

《에잇!》

외마디소리와 함께 말우에서 내려친 칼에 장교의 머리는 진창에 굴렀다. 한번 휘둘러서 피를 뿌린 칼날을 마침 구름장사이로 새여나오는 해빛에 어리여보는 소서행장의 입가에는 득의연한 미소가 흘렀다. 그는 시험삼아 목을 벤것이다. 여벌로 새로 장만했던 칼을 시험해본것이였다. 마침 류달리 굵은 모가지가 눈앞에 등대해있었던것이다.

《우리 일본군사들이 저 토민 백성따위를 잡으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구? 그럴리가 없는것이다. 거짓말이다.》

이미 목을 찍은 시체에게라도 죽어마땅한 죄목을 일러줄 필요가 있다는듯이 말한 소서행장은 시험에 성공한 칼을 다시 꽂으며 《그렇지 않은가?》 하고 동의를 구하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중 현소와 소 요시도모는 지당한 말씀이라는 뜻으로 말우에서 허리를 굽혔다.

《앞으로는 저 고마인백성들이 농사하는것을 방해하잘것은 없겠지.》

소서행장은 허리를 굽혀 두사람에게 의논하듯이 새로운 말을 꺼냈다.

《하는대로 내버려두시렵니까?》

이렇게 묻는 소 요시도모에게 《저 고마백성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기에?》하는 소서행장의 말은 불쾌한 어조였다.

《그야 물론 농사이지요. 하나…》

현소가 그 두사이에 나서듯이 말을 시작했다.

《저 고마백성들은 지꿎게 보자면 그 얼마나 밉살머리스럽습니까요. 우리에게는 통 곁을 안 주고 겨울 개구리나 뱀같이 땅구멍속에 숨어있으면서도 굶을수는 없으니까 끈덕지게 농사만은 짓고있으니…》

《아니, 아니지.》

소서행장은 또 현소의 말을 막았다.

《저자들은 역시 겨울 개구리나 뱀같이 굶기도 할게요. 혹시 짚이나 먹을가. 곡식은 다 우리가 차지할테니까. 패배자는 언제나 자기네의 땀의 결실을 정복자에게 바쳐야 하는 법이니까.》

소서행장은 이러한 자기 말에 퍽 만족했다. 두사람을 돌아보며 그 말을 되풀이하고나서 또 입을 열었다.

《그뿐아니라 전쟁에는 언제나 군량이 남아돌아간다는 법은 없으니까. 또 다다익선이니까. 저 곡식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가 차지하도록 해야 할게요. 그러니까 고마백성들이 하는대로 내버려두오.》

말을 마친 소서행장은 성가퀴를 따라 보통문쪽으로 말을 몰았다. 얼마 못 가서 또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늘의 변화는 변덕스러웠다. 어느새 굵어졌던 비발이 칼로 베인듯 금시 멎기도 하고 멎었는가 하면 하늘을 뒤마는듯 한 뢰성과 함께 또 쏟아지기도 했다.

소서행장의 일행이 억수로 퍼붓는 소나기를 맞으며 만수대우에 올라선 때였다. 마침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방금까지 백포휘장을 둘러친듯 했던 비발이 걷히며 다시 초록일색으로 드러나는 보통벌가운데 한 자그마한 로인의 모양이 눈에 띄였다. 지팽이끝에 두손을 얹고 서있는것으로써 멀리서도 로인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대체 저것은 웬 사람일가?》

앞섰던 소서행장이 먼저 말을 세우며 말했다.

《논에서 일을 하는 모양도 아니고…》

《글쎄올시다.》

역시 말을 세우고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던 현소가 말했다.

《고마인의 중이올시다. 저 붉은 가사가 보입니다.》

《중? 혹시 귀 승이 만났다던 영명사의 중은 아닌가?》

《글쎄올시다. 머니까 그렇게까지는 알수 없습니다.》

《이렇게 난데없이 중을 만나면 재수가 어떻다든가?》

《그야 물론 상상길(좋은 일)이겠지요.》

현소는 웃었다. 그런 물음의 대답으로야 중이 중을 헐어서 대답할리 있느냐 하는듯 한 웃음이였다.

《그럴가? 그러나 저것은 고마중이니까-》

소서행장 역시 웃었다. 그러면서도 벌판 한가운데서 늙은 중이 무엇때문에 비를 맞으며 서있는가 하는 소서행장은 《혹여 저 산속에도 우리가 모르는 절이나 암자가 있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나라는 고마인의 나라, 고마인들만이 아는 그 산, 그 길, 그 골짜기, 그 나무숲, 그 동굴들! 그리고 그들만이 통하는 말과 신호. 어느 바위뒤에서나 어느 나무사이로나 풀포기속에서나 이쪽의 행동을 엿보고있는 무수한 고마인의 눈동자들! 그러한 고마인의 산속에서는 단 한명의 고마인을 찾아내기에도 열명의 군졸이 필요하고 그 하나를 죽이기 위해서는 4~5명이 먼저 꺼꾸러져야 한다는것은 사차불피(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수 없다는 뜻)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때는 수하의 병력을 총동원해서 이 평양성부근의 산들을 모조리 불사르고 소탕해버렸으면 하는 욕심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바라보는 저 산밖에는 또 산, 그 산밖에는 또 산이다. 끝이 안 날 일. 결국은 고마인의 산속에 그리고 고마인의 바다속에 잠겨버리고말것이였다.

비가 또 쏟아지기 시작했다. 성을 한바퀴 돌려던 생각을 버리고 길을 꺾어 련광정으로 말을 재촉하는 소서행장은 자못 불편하다던 《여의 심기》가 조금도 펴이지 못했다.


이튿날 소서행장은 과연 계월향이를 련광정으로 불러냈던것이다. 여기서는 그 이야기를 대강만 스치고 넘어가기로 하자.

소서행장이하 그 부하장수들이 술자리를 벌리고있는 련광정으로 끌려나간 계월향은 해쓱하게 여윈 자태에 소복단장이나 다름없이 담소한 옷차림이였다.

소서행장은 미리 갖추었던 지필묵을 내놓고 현소를 시켜 필담으로 계월향에게 우선 란을 그리라고 했다. 계월향은 그 대답으로 붓을 들어 《송나라 정사초를 아는가?》 하고 썼다.

현소는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얼굴을 붉히며 모르겠다는 뜻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이때 계월향이도 와락 제 얼굴이 붉어짐을 깨달았다.

송나라 말년의 선비 정사초는 원에게 자기 나라가 망하게 되자부터는 그 능한 붓을 던지고 다시는 란을 그리려 안했다. 혹시 옛 친구가 굳이 청하는 때면 붓을 들기는 하나 란 한포기만을 댕그라니 그려놓을뿐이였다.

《왜 땅은 안 그리는가?》 물으면 《우리에게는 란이 뿌리를 박을 땅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고 했다.

그러한 강개지사 정사초에 감히 자기를 비기려 했던것이 계월향은 죄송스러울만치 부끄러웠던것이다. 왜승 현소가 그러한 정사초의 고사를 모르는것이 다행한 일이기도 했다.

계월향은 그 글줄을 지우고 다시 썼다.

《지금의 이 평양성에서는 란이 살지 않는다.》고.

《그 무슨 뜻이냐?》며 따지자고 강박하던 소서행장은 마침내 춤을 추라고 했다. 몸이 불편해서 춤을 출수 없노라고 잡아떼던 계월향은 《그같이 강요한다면 검무를 할터이니 칼을 달라.》고 썼다. 놀랜 눈으로 글자를 따라보던 현소는 제 붓으로 그 글줄을 지워가며 소서행장에게 뭐라고 지껄였다. 소서행장은 계월향이 몸이 추설 때까지 유예한다고 하며 돌려보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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