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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 회


40. 파괴된 일본군의 작전계획


한편 그러한 가등청정의 경쟁자이고 동료인 소서행장, 《톰 오규스탄》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그리스도교도 소서행장은 지금 자기의 회답을 가지고 다시 한성으로 돌아가는 우끼다의 기별군이 타고 강을 건느는중인 배를 향하여 이마와 가슴을 짚어서 십자가를 그리였다.

전신 벌거숭이에 궂은 비를 맞아가며 범람한 붉은 물살을 헤쳐 노질을 해가던 왜구가 뭣이라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삿대를 들어 배전에 와붙는 송장을 뚱기쳐 밀어떼고있었다. 그 시체 역시 일본군이였다. 리질이나 장질부사 같은 염병이 아니면 고마인에게 살해된 시체일것이다.

장마가 계속될수록 염병에 죽는자가 많았다. 하루에도 20~30명씩 무리죽음이 나기도 했다. 련일 그치지 않는 비에 화장을 할수도 없고 일일이 묻을수도 없어서 성밖으로 내던지므로 대동강에는 언제나 왜군의 시체가 떠돌았다.

일본군사가 축나는것은 염병으로만도 아니였다. 고마인에게 살해되는 수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축나는것은 단 하나가 없어져도 전률할 일이였다. 그런 일을 처음 당할 때는 의외였다. 군사가 아닌 보통 고마백성이 조총과 창검으로 무장한 일본사무라이를 죽인다? 있을수 없는 일같았다. 저희 일본에서는 사실 그런 일이 없었다.

수백년간을 소위 전국시대라고 하여 60여주에 군웅할거한 대소의 번주(제후)들이 저마다 패권을 잡으려는 야심으로 서로 싸우는 전쟁이 그칠 사이가 없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말하자면 그 자국지란은 우선 저희 이웃의 령지를 빼앗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번주와 번주사이의 싸움 즉 갑이라는 번주와 을이라는 번주가 거느린 사무라이사이의 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백성들은 그런 전쟁이 일어나면 보따리를 싸가지고 일시 피란을 했을뿐 직접 그 전쟁에 참가하는 일은 없었다. 갑이라는 이웃의 번주가 을이라는 번주를 죽이고 그 령지를 차지하게 되면 그곳 백성들은 지금까지 을에게 복종했던것 같이 승리자인 갑의 백성으로 자처하여 새 상전인 그에게 유공불급으로 복종했을뿐이였다.

그런데 이 조선땅에서는, 이 고마인들은 그자신 군사가 아닌 보통백성인데도 일본사무라이들을 죽이는것이였다. 그것은 놀라운 뜻밖의 일이 아닐수 없었다.

《려염촌부역취림박간등고후망량적다소혹진혹퇴개위살적위심》

이것은 《평양지》에 있는 우리의 기록이다. 즉 《촌의 려염집사람들까지도 숲속에 모이거나 높은데 올라가서 왜적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그 수효가 많고 적은것을 헤아려 혹은 내닫고 혹은 물러서면서 적을 죽이기만 위주했다.》는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람의 기록이므로 다소 과장이 있으리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를 왜구(해적)만치 여기고 산으로 들어가 숨습니다. 그래가지고는 적은 수효의 사람(일본군)이 지나가게 되면 반궁(작은 활)으로 해합니다. 참 놀랍고 딱한 일입니다.》

이것은 임진년 5월 25일에 일본군 제7군의 대장 모리 데루모도가 경상도 성주에서 자기 고향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구절을 가감없이 번역한것이다. 모리 데루모도는 일개 병졸이거나 이만저만한 사무라이가 아니라 년수 십만여석의 령지를 차지한 대번주의 한사람이였고 자기 군사 3만명을 거느린 소위 조선원정군 제7군의 총수였다. 또 5월 25일이면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한지 불과 한달 열흘만이다. 지금 인용한 그의 편지에서는 또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찾아볼수 있다.

《…그리고 또(조선에는) 무슨 성이 그렇게 경치게 많습니까!… 8월중에는 각각 쳐들어간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대로 당나라(명나라)에 쳐들어간다는것은 우선 사람(일본군)이 모자랄것입니다.》

그 당시 일본의 대번주이며 대군의 총수인 모리 데루모도는 저희가 일으킨 조선침략전쟁의 시초부터 이렇게 비명을 지른것이였다. 그 비명은 곧 그들이 세웠던 작전계획의 파탄이였다.

일본사무라이의 원흉 풍신수길은 조선으로 대군을 실어보내면서 《이 전쟁은 자는 사람의 모가지를 자르는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니까 《지일가성(손가락으로 해를 가리키듯 인차 성공한다는 뜻)》으로 며칠 안해서 곧 끝나리라고 했던것이다.

풍신수길의 이런 호언장담이야말로 한낱 잠꼬대에 지나지 않았다. 왜군이 부산에 발을 붙인지 불과 20일만에 한성을 점령할수 있은것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한성이 함락되고 왕이 달아났어도 조선백성들은 싸우고있다. 그후에 소서행장군은 평양을 점령하고 가등청정군은 영흥을 점령하고, 조선왕은 조선땅의 끝인 압록강가로 물러갔다. 그러나, 그러나가 아니라 그럴수록 조선백성은 더욱더 치렬히 싸우고있다.

조선백성은 왕이 없어도 적과 싸울줄 알고 싸울수 있는 사람이라는것을 왜놈들은 알게 되였다. 조선땅에 발을 들여놓은 놈들은 저희 발길이 이르는 곳마다 그곳 사람들의 치렬한 반격에 부딪치게 된다는것을 각오해야 했다. 저희들이 진군하면 할수록 전선은 늘고 늘어난 전선은 언제 어느곳에서 조선백성에게 끊기고 묻혀버릴지 모를 한낱 가냘픈 선이고 한낱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잠시도 안심이 안되는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군사들을 후방에 남겨두면서 전진해야 했다. 모리 데루모도가 조선에는 《무슨 성이 그렇게 경치게 많습니까?》고 한탄한것은 이때문이였다. 진군하는 곳마다 일일이 싸워서 점령해야 하는 많은 성들은 또 일일이 군대를 머물러 지켜야 했다. 많은 군사들은 작은 점들인 성과 가냘픈 선에 지나지 않는 전선을 조선백성의 끊임없는 반격으로부터 유지하기 위해서 태반이 중로에 잠겨버리고말았다. 《…8월중에는 각각 쳐들어간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대로 당나라에 쳐들어간다는것은 우선 사람이 모자랄것입니다.》 한것은 결코 모리 데루모도 한사람만의 걱정은 아니였다.

소서행장이 평양이북으로 진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륙군병력의 보충과 일본해군이 서해로 진출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여러번 보채다싶이 한것도 이때문이였다. 즉 처음 예상했던 병력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작전계획의 파탄이였다.

왕을 비롯한 중앙관청이 없어도, 지방의 수령방백들이 달아났어도 능히 싸울수 있는 조선백성들이 침략자 일본군의 작전계획을 파탄시켰던것이다.

평양을 점령한이래 벌써 20일째나 허무하게 대동강의 붉은 물만을 내려다보고있게 된 소서행장은 간간이 떠내려오는 저희 군사의 시체를 볼 때마다 이마와 가슴을 짚어 그리스도교의 의식대로 십자가를 그려오던중에 이번에는 불현듯 《쿠소.》, 《칙쇼.》를 련발했다. 지금 벌거숭이사공놈이 뚱기치는 바람에 번듯이 제껴졌다가 다시 엎어지는 그 시체에는 코가 없었기때문이였다.

《관백합하의 지엄한 명령이 저런 투로 실행되는가?》

개탄한 소서행장은 더욱더 《아아, 칙쇼, 쿠소.》였다. 풍신수길의 《지엄한》 명령이라는것은 《조선사람을 다 죽여서 조선땅을 비게 하라.》는것이였다. 군사들이 그대로 실천하는가 않는가를 알기 위해서 풍신수길은 매 군사에게 조선사람의 코를 한되씩 베여 소금에 절여서 보내라는 《지엄한》 과업을 내렸던것이다. 사람의 머리는 무겁고 부피짐이 되므로 한사람에 하나씩 있는 작은 코로써 대신하라는것이였다. (얼마나 악독하고 비인도적인 추악한 일인가. 그러나 사실이였다. 그 당시의 일본사람들의 손으로 씌여진 기록도 많으려니와 일본 교또에는 비총이라는 코를 묻은 무덤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관백의 《지엄한》 명령에 일본군사들은 책임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자기 군사의 시체에서 코까지도 훔쳐야 했다. 소서행장은 그런짓을 못하도록 금했다. 본보기로 그런짓을 하는 놈의 목을 베기도 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또 그 모가지의 코가 없어졌다. 무가내하로 금할수 없는 례사로운 일로 되였다.

저 코없는 시체는 흘러내려가서 대동강하류에 얼마전부터 결진해있다는 조선수군의 배에 걸릴것이다. 사람의 코를 베는것은 일본군사밖에 없다는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 그리고 그 머리모양으로써 저 시체가 일본사람이라는것도 누구나 알수 있는 사실.

《칙쇼- 챙피하기란! 괘씸하기란!》

소서행장은 무릎우에 세워짚었던 철선으로 앞의 붉은 란간을 탁 치면서 일어섰다. 귀언저리에 달라붙었던 쉬파리들이 윙 소리를 지르며 날아났다.

《도노사마, 차를 어떻게 하오리까?》

뒤방에서 나온 고조리도리가 모아짚은 제 손등에 이마를 조아리며 물었다. 고조리도리라는것은 그 당시 일본 고급사무라이에게 시중드는 하인의 일종으로 남자이면서도 반드시 소매긴 녀자의 복색을 한 미소년이였다.

《차를 이리로 내오리까?》

《…》

《지금 비가 좀 멎어서 뒤방에서는 저 풍월지라든가 하는 못의 련꽃이 잘 보이옵는데 어떻게 하올지.》

《아아, 여는 심기 자못 불편하다.》

이같이 대답 아닌 대답을 하며 거닐던 소서행장은 문득 《내 말을 끌어오라구 일러라. 그리구 현소두 오라구 일러라.》 하고 란간밖을 향하여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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