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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9 회


39. 소서행장과 가등청정


이야기의 순서는 좀 바뀌나 여기서 우리는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이의 이때까지의 관계를 대강만이라도 밝히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충주에서 신립의 배수진을 돌파하고 한성길로 접어들 때 소서행장과 가등청정간에는 누가 어느 길을 택하느냐 하는것이 문제가 되였다. 죽산, 룡인을 거쳐 한성 남대문으로 통하는 길이 퍽 가깝기는 하나 한강이 가로 걸쳐있었다. 려주와 양근을 거쳐 한성 동대문으로 통하는 길은 한강 같은 난관은 없으나 전자보다 사흘길이 더 멀었다.

그때 가등청정은 한강의 난관이 있더라도 자기는 가까운 길을 택하겠노라고 했다. 소서행장은 선선히 그러라고 했다. 가까운 길을 선뜻 양보하여 생색을 내면서도 소서행장은 속으로 삵의 웃음을 쳤다. 참새대가리에 굴레라도 씌울수 있는 자기라고 자처하는 소서행장과 그 삵의 웃음에는 마치 옛날 연극에서 관중들은 다 듣는데도 바로 옆에 있는 같은 배우들만이 모르는 방백 같은 말이 포함되여있었던것이였다.

한강은 바로 한성의 코앞이다. 지금까지는 조령까지도 무인지경같이 몰아왔지만 한강은 그렇지 못할것이다. 조선조정이 지금까지는 아무리 잠자코 있었다 하더라도 바로 자기네 문앞인 한강을 거저 건느라고는 안할게다.

《가등이, 너 좀 곯아봐라.》

소서행장의 방백은 바로 이러한것이였다. 아닌게 아니라 가등청정은 한강에서 조선군의 저항을 받아 사흘동안이나 걸려있었다. 그사이에 강행군을 한 소서행장은 이미 사흘전에 떠난 왕을 붙들지는 못했으나 어쨌든 한성을 함락시켰다는 공을 세울수 있었다. 가등청정은 김명원이하 조선군이 벌써 한성이 함락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한강수비를 포기한 후에야 비로소 한성으로 올수 있었다. 그것이 단 한나절차이였다. 한성 성가퀴에 들여세운 소서행장군의 기발을 보게 된 가등청정은 그야말로 얼굴이 《쿠소》빛이 되였던것이다. 원훈수공을 경쟁자에게 빼앗긴 그는 절치부심했다.

《요 반드러운 상인놈이!》

평소에도 늘 이렇게 소서행장을 깔보아온 가등청정이였다. 자기는 대대로 내려오는 진짜사무라이라고 생각하는 가등청정의 눈으로 보면 본시 한 상인의 자식이던 소서행장은 돈으로 우겨서 그 지위를 산 얼치기사무라이에 지나지 않는다. 또 자기는 일본의 정통적국교인 일련종의 신도인데 소서행장은 이국의 사교인 야소교(그리스도교)의 신자였다. 그러한 소서행장은 제 본이름외에 세례이름인가 하는 그 구역질나는 《톰 오규스탄》이라는 양인번데기의 이름까지도 달고다니는 초라니였다. 그런데다 또 가등이로서 더 참을수 없는것은 자기와는 촌수는 좀 멀지만 이종형제간인 풍신수길이가 자기보다 도리여 얼치기사무라이, 갑작 도노사마인 소서행장을 더욱 긴히 알아주는것이였다. 어쩌면 이 가등청정이를 내놓고 그런 초라니를 제 군장의 선봉장으로 내세운단 말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자기의 이종형이고 또 상전인 풍신수길이에 대해서까지도 불만이 없을수 없는 가등청정이였다.

《주인앞에서 꼬리치는 땅개같이 간교한 자식.》

가등청정은 자기의 이번 실패가 누구를 원망하고말고가 없을 일이지만 역시 교활한 소서행장에게 속은것만 같아 분하기도 했던것이였다.

《두고보자.》

그는 별렀다. 벼를만 한 일이 있었다. 점령한 한성을 우끼다 히데야에게 맡기고 둘이 같이 떠나서 림진강을 건너 황해도 안성고을에 들어선 그들에게는 또 누가 어느 길을 택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겼던것이다. 이번에는 한 목적지를 누가 앞서고 뒤에서 가는 문제가 아니라 아주 길이 갈리는 판이였다.

하나는 조선왕을 추격하여 개성, 평양으로, 다른 한길은 함길도쪽으로인데 이번만은 누구나 선선히 양보하는체라도 할수 없었다. 만일 그 길로 진군을 못할바에야 무엇하려 이 전쟁에 참가했는가 할만치 조선왕을 추격하는 서쪽길은 이 전쟁을 승리로써 마감하는 최대의 전공을 세울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은 각기 자기네의 측근자들을 대동하고 모여서 회의를 열었다.

《평양으로 가는 길은 물론…》

소서행장이 먼저 운을 떼였다. 다른 일 같으면 가등청정에게 먼저 말을 시켜가지고 그 급급한 성미에 동닿지 않게 지껄이는 가등청정의 말꼬리를 꺼들어가지고 론박, 면박으로 몰아세워놓고 천천히 이편의 주장을 내놓는것이 지금까지의 전술이였지만 이번만은 소서행장이 선손을 걸었다. 이 일은 그런 경위나 말주변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므로 애초부터 내려씌우는 명령조가 유효하리라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말하자면 의논하러 모인것이 아니라 기정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가등청정을 부른것으로, 그래서 그 일에 한해서는 더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도록 하자는것이였다.

《이번 전쟁에서 출병하는 시초부터 태합전하(풍신수길)께서는 여를 선봉으로 임명하시니만치 서쪽길은 여의 제1군이 담당하게 될것이니 그리 아오.》

《안될 소리!》

가등청정의 말은 첫마디부터 거칠었다. 그 탁하게 거슬러선 눈섭아래 두눈망울은 금시 불구슬알같이 번쩍거렸다. 그는 거퍼 나오는 소리로 말을 이었다.

《출병때의 선봉이라는것은 떠나는 순서였을뿐이지 이 전쟁마당에 와서까지도 선봉일가?》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소서행장은 애써 자기의 흥분을 누름으로써 상대방의 격앙까지도 억제하려는듯이 침착성을 가장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또 태합전하의 처분을 받아서 선봉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말인가? 일단 태합전하께서 정하신 선봉장이 지금 선봉장이 못된단 말인가?》

《전쟁마당의 선봉은 누구에게 묻구말구 할것없이 의례히 용감한 사람이 되겠지.》

이런 말을 씹어뱉듯 하는 가등청정의 어성도 한층 부드러워진듯 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오히려 더 딩딩했다. 만만한 자신이랄가, 느물거리는 태도이기도 했다.

《뭣이 어째?》

소서행장은 더 참지 못하고 발끈했다.

《그러면 이 소서행장이 그대만 못한 용장이란 말인가?》

저도 모르게 발끈한 소서행장의 말은 사나왔다. 말을 뱉아놓은 그는 다음순간 《아차!》 했다. 이런 경우에 먼저 골을 올리고 성을 내는것은 지는것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과연 그랬다.

《이러구저러구 잔소리 할것없이 해보면 알것 아닌가. 자, 일어서!》

저 먼저 일어서는 가등청정은 무척 유유했다. 그리고는 한마리 긴 뱀이 풀숲을 기는듯 한 소리를 내며 칼을 뽑았다.

소서행장은 파랗게 질렸다.

《조선 그리고 명나라까지도 정복하려고 여기까지 왔다가 우리끼리 싸워?》

소서행장은 자기딴은 이런 사려있는 생각을 하노라 했다. 그러나 그보다 이 안성군수가 비우고 간 동헌 대청마루에 떨어져 구으는 자기의 모가지가 먼저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것이 혹은 가등청정의 모가지일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세가 이렇게 된 지금에는 그런 말은 사려있는 말이기보다 사무라이답지 않은 비겁한 말밖에 될것이 없었다. 소서행장도 어쩔수없이 칼을 빼들고 일어섰다. 그러자 등뒤에서 우뚝우뚝 일어선 부하들도 칼을 뽑았다. 소서행장의 뒤에는 그가 가장 믿는 부장과 첩의 사위인 소 요시도모와 부장들중에 가장 젊으면서도 문무의 재질이 출중하다는 구로다나 가마사와 비서격인 늙은 중 현소 등등이 따라와있었고 가등청정의 뒤에도 이러저러한 그의 부장들이 따라섰다. 그들 역시 자기네의 대장들이 하는대로 칼을 뽑아들었다. 이자들의 군사회의는 곧 류혈의 도살장으로 화하게 될 판이였다.

《마… 마, 두분 도노사마.》

이때 소서행장의 등뒤로부터 늙은 중 현소가 무릎걸음으로 두편사이에 나와서 엎드렸다.

《두분 도노사마께서는 지금 다소 지나치신것 같소이다. 마… 마, 우선 앉으시죠. … 어리석은 이 중놈의 생각에는 이런 방법도 있을가 하옵는데… 저, 제비를 뽑아서 결정하시는것이 어떠하올지.》

《…》

《옛 성현의 말씀에 진인사연후에 대천명이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현소는 잠시 고개를 들어서 좌우쪽에서 자기를 굽어보는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의 얼굴을 반반씩 쳐다보고 다시 부복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두분 도노사마께서는 선봉을 백인(시퍼런 날카로운 칼)으로써 결정하시려고까지 하셨은즉 이는 군사로서 할만 한 인사를 다 하신바라 이제는 천명의 지시를 기다리시는 뜻으로 제비를 뽑으시는것도 결코 망녕은 아니라고 이 어리석은 중놈은 생각하는바올시다. 두분 도노사마의 처분은 어떠하올는지.》

다소 한문에 소양이 있는 현소는 이런 아이들의 장난같은 말도 제법 장중하게 수식할수 있는 말솜씨가 있었다. 장난같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어느 한편의 죽음으로써 결말을 내느니보다는 퍽 현명한 일인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도 그럴듯싶은 말인데 어떤가?》

소서행장이 먼저 동의하는 뜻으로 가등청정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될대로 되라지.》

가등청정이 역시 동의하는 뜻으로 두덜거리며 칼을 집에 꽂았다.

제비를 뽑은 결과 《천명》은 소서행장에게 내렸던것이다. 소서행장의 득의와 반대로 실의락담한 가등청정은 《남무묘법련화경》이라고 쓴 흰 만장같은 기발을 등에 지고 부하장졸을 몰아서 동쪽 곡산길로 들어갔다. 그 기발은 풍신수길이가 이번 출정의 전별로서 그에게 준것이였다. 그 글발의 뜻은 불교경전중의 하나인 법화경에 귀의하노라는것으로 《부처와 사람은 그 근본이 하나이며 따라서 일체 중생은 다 부처가 될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만치 인간이면 누구나 다 존중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한 기발을 등에 지고 우리 조국땅에 들어온 가등청정은 그야말로 《살생은 좋아하면서도 부처에게는 아첨하는》 전형적인 일본사무라이 즉 흉악한 왜구의 두목의 하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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