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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 회


38. 리순신장군앞에 제압된 소서행장


오늘도 역시 비가 온다.

평양성을 점령한 일본침략군의 선봉장 소서행장이 련광정에서 련일 그쳐본적이 없는 락수물과 비발을 사이에 두고 대동강의 붉은 탁류를 내려다보고있은지 벌써 20여일째다. 그는 지금 혼자서 련광정안을 왔다갔다 거닐고있었다.

《여(나)는 심기 자못 불편하다. 아아, 약약하기란! 에이, 똥같으니!》

그는 혼자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소서행장의 이러한 독백중의 그 첫 말과 마지막말은 딴 사람의 말이나 같이 격조가 전연 다른만치 혹여 독자들중에는 그렇게 격조를 뚝 떨어뜨린 마지막말을 할 때의 그는 즉 일본군 선봉장 소서행장은 필시 쓴웃음이라도 웃고 또 활활 부채질이라도 해가면서 거닐었을것이라고 상상할이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였다. 만일 그 자리에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는 누가 있다면 그는 곧 칼을 빼기라도 할만치 눈에는 살기가 있었다. 지금 그의 말중에 《여는…》 하고 운운한 첫 말투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기는 하나 그리 익숙치 못한 한문투의 말로서 자기가 위의를 차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때 빌어서 쓰는 말이였고, 실은 그 마지막말이 지금 그의 자포자기적인 약약한 심정을 단적으로 표현할수 있는 《쿠소》라는 자기네의 말이였다. 궂은 장마비가 계속하면 할수록 소서행장이 련발하는 《쿠소》는 더욱더 잦았다.

《뭣이? 현소? 현소라구? 음, 들여보내라. 그리구 이봐… 아니, 저 다른자는 누구든지 들이지 말라는 말이다.》

마루문턱밖의 돌층계에 꿇어엎드려서 연통하는 부하에게 이런 분부를 내린 소서행장은 서성거리다말고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옷깃을 여미고 앉음새를 바로하고 다시금 신변을 살핀 그는 《여는 자못…》 또 한번 이렇게 중얼거리다말았다. 그에게는 당장 또 적지 않게 불쾌한 일이 하나 있었다. 자기 등뒤에 있어야 할 금병풍이 없었다.

아침마다 상투밑까지 파랗게 밀어서 더욱 길고 날카롭게 보이는 스스로 단아하다고 믿는 얼굴을 오연히 쳐들고 큰 순색 금병풍을 배경으로 여러개 포개놓은 비단방석우에 마치 련화대에 안치한 불상이나 같이 단정히 앉아서 손님이나 부하들을 불러보는것이 그의 오래전부터의 습관이였다. 그러나 며칠전에 그 금병풍이 오랜 장마에 누져서 한쪽귀때기가 서리맞은 련잎같이 축 늘어졌다. 이 전선에 표구사까지는 데려오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현신한다는 중 현소가 해본다고 몇번 붙여보다 못해 인두를 구해다가 누르기까지 했으나 결국 걷어치울수밖에 없었다.

방금 현소 이외의 다른자는 들이지 말라고 한것은 꼬집어한 말은 아니나 어제 밤에 한성서 온 우끼다 히데야의 기별군을 가리킨것이였다. 우끼다한테서 온 편지사연외에도 그 기별군을 불러 직접 들어보고싶은것도 많았다. 그러나 소서행장은 그자를 결코 부르려고 안했다. 지금의 자기를 우끼다의 사자에게 보이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금병풍의 배경이 없는것은 제껴놓고라도 지금 자기에게는 쉬파리들이 꾀여드는 형편이다. 왼쪽귀바퀴에서 고름이 흐르기때문이다.

지난달 열이튿날 밤 동대원에서 있었던 전투때 한 조선군교가 말을 달려 육박해오다가 등뒤로부터 던진 칼에 베진 상처였다. 벌써 한달이 가까와오건만 합창이 되기는 고사하고 더욱더 지적지적 고름이 흘렀다. 진중에 데려온 의원의 말에 의하면 귀는 원래 연골이라 연골은 뼈이므로 뼈가 상하면 살과 달라서 속히 합창이 안된다는것이다. 흘러내리는 고름에 귀바퀴뿐아니라 그쪽 뺨을 반이나 먹어들어가게 여름살이 짓물렀다. 괴롭고 보기 흉한것은 물론 그보다도 그 상처는 자기 위신에 관한것이기도 했다. 한번 말머리를 돌려서 겨루어볼 여유도 없이 급박했던 정황, 말머리를 돌리고 어쩌고 했다면 영낙없이 죽는 판이였다. 오직 달아나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실지정황이야 어찌되였든 소서행장이 일개 고마인군교앞에서 칼 한번 어울러보지 못하고 오직 달아나기만 했다는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였다.

《무슨 잔사설이 이렇게 많은가?》

이때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와서 자기앞에 엎드린 현소가 내놓은 편지를 집어서 한번 훑어본 소서행장은 반드러운 량미간 한가운데 외줄기로 깊이 패이는 주름살을 더욱 깊게 찌프리면서 불쾌한 한마디를 던지듯 했다.

《하!》

송구한 외마디소리와 함께 한순간 얼굴을 들었던 현소는 빡빡 밀어서 오히려 더 서리발이 서리는듯 한 센 머리를 다시 숙이고 소서행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중언부언 다 집어치우고 간단히 쓰라고 몇번 이르던가? 여가…》

다시금 훑어본 편지를 덜렁 내던진 소서행장은 이렇게 나무랐다. 그것은 우끼다에게 보낼 답장을 현소가 대필한것이다. 사실 소서행장은 되도록 간단히 쓰라고 일렀던것이다. 한학에 다소 소양이 있는 현소가 현학적으로 미사려구를 제법 잘 늘어놓는 솜씨를 긴히 리용하는 때도 많지만 이번의 답장만은 간단명료하게 쓸 필요가 있다고 소서행장은 생각했던것이다. 왜냐하면 되여가는 일이 이것도 저것도 모두가 《쿠소》이므로 한성에 있는 우끼다에게 《대체 너희는 무엇들을 하고있느냐?》 하는 힐책과 제 불만을 인사치레없이 단적으로 표시하자는것이다.

일본관백 풍신수길의 사위로 이번의 소위 조선원정군의 제8군장으로 군사 만여명을 거느리고 한성 남별궁에 들어앉아있는 우끼다가 보낸 편지사연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씌여있었다.

지난(7월) 7, 8 량일간에 한산도해전에서 조선수군 전라도 좌수사 리순신의 함대에게 일본군함 오십구척이 격침되였다는것과 그러니까 소서행장의 서로군이 조선왕을 추격하여 압록강, 보다 더 북진하여 명나라까지 쳐들어가는 작전은 일본해군이 다시 재기하여 서해로 들어갈 때까지는 극히 유감스럽지만 중지하지 않을수 없다는것이다. 따라서 소서행장이 더 많은 군사를 보내달라는데 대해서는 당장 보낼 병력의 여유가 없기도 하려니와 일본해군이 재기할 때까지는 평양이북으로 더 나갈수 없으므로 그렇게 급급히 증원군을 보낼 필요도 없으리라는것이였다.

이러한 우끼다의 편지는 말하자면 소서행장이 평양성을 강점한이래 곧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쳐들어가는데는 더 많은 병력의 보충이 필요하다는것과 아울러 수륙병진이 필요하니 일본해군을 하루바삐 서해로 돌려달라고 여러번 재촉한데 대한 회답인것이다.

지금 소서행장은 또 《쿠소!》 하고싶었으나 위신에 그럴수 없어서 꿀꺽 삼켰다.

얼마전에 그 역시 현소에게 대필을 시켜서 《이제 우리 일본군이 만산편야(산에 차고 들을 덮는다는 뜻)하는 륙군과 서해를 뒤덮을만 한 해군으로써 수륙병진하여 압록강으로 쳐들어갈터인즉 대왕은 장차 어데로 가려는가?》 하는 뜻의 협박장을 조선조정에 보냈던것을 생각하면 더욱 일은 《쿠소》가 아닐수 없었기때문이였다.

《뭣이? 적리와 염병으로 죽은 우리 군사가 도무지 이백여명밖에 안된다구?》

한번 설쳐보고 내던졌던 답장을 다시 집어 읽어가던 소서행장은 또 이렇게 나무랐다.

《그 배도 더 되는걸 왜 뭣이 꺼리껴서 이따위 거짓말을 썼느냐 말야!》

《전쟁 이외에 염병에 의한 군사의 손실이 많다는것은 이편의 불찰로 될듯도 하와…》

《뭣이? 이편의 불찰? 무슨 수작을 하는가.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던 군사가 이렇게 중도에 주저앉아서 이 궂은 장마에 묵새기고있는데 병인들 안 나겠는가? 그것이 이편의 불찰이라고? 그것이 이 여의 잘못이라고? 천만에…》

이러한 자기 말에 더욱더 격앙하는 모양인 소서행장은 한손으로 철선(부채살을 철로 만든것)을 세워짚은 무릎을 비비적거려서 현소앞으로 대들기라도 할듯이 체소한 몸을 일었다. 그같이 씹어뱉듯 하는 소서행장의 말끝마다 그저 《하! 하!》로 황공무지하게 공축해보일뿐인 현소는 마치 밀로 빚은 두꺼비가 녹아서 마루바닥에 처끈 늘어붙듯이 엎드려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소서행장의 귀가에서 윙윙거리는 쉬파리소리뿐.

《이봐!》

마침내 한층 부드러워진 소서행장의 말소리가 들리였다.

《하.》

비로소 약간 고개를 쳐든 현소의 얼굴에는 구슬땀이 흘렀다.

《이왕 다 써놓은것이니 병사자의 수효만은 사실대로 고쳐서 그냥 보내게.》

소서행장은 약간 가늘어진 비발을 사이에 두고 대동강의 붉은 물을 내다보며 말했다.

《저 이봐.》

편지를 집어들고 일어서 나가는 현소에게 소서행장은 또 말했다.

《지금 우리 군사들은 이렇게 중도에서 주저앉아있게 된때문에 군졸들은 발바닥과 궁둥이에서 잔뿌리가 내릴 지경이라구 전하라구 이르게.》

《하.》

또 공축해보이며 나가는 현소의 등뒤에서는 문득 소서행장이 분명히 지어서 웃는 소위 호걸풍의 웃음소리가 났다.

소서행장의 그 말은 벌써 20일째나 계속되는 장마비에 사창고앞에와 륙로문안 넓은 마당에 로적으로 가려둔 벼섬들에서 싹이 나고 잔뿌리가 내렸다는 보고를 오늘 아침에 들은데서 암시를 얻은것이였다.

현소가 물러나간 후에 소서행장은 문갑우에 놓여있는 우끼다의 편지를 집어서 다시 펴보았다. 맨끝에 가서 일전에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가등청정은 이미 미재령을 넘어 안변을 거쳐서 지난(6월) 24일에는 영흥을 함락시키고 일로 회령을 향하여 떠났다는 사연이 있었다.

《그러니 어떻다는 수작인가! 대체…》

다 읽고나서 쓰겁게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리는 소서행장의 말에는 두가지의 뜻이 있었다. 가등청정이 그렇게 승승장구하는것을 이 나더러 부러워하라는 수작인가 하는것이 첫째였고 또 한가지는 그래 가등청정이 그렇게 《승승장구》해서 회령 아니라 그보다 더한 하늘끝 닿은데까지 간단들 무슨 소용인가 하는것이였다. 여기에는 또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가등청정이 제아무리 함길도(함경도)끝까지 치달아간대도 산골에서 범사냥이나 하면 했지 별 뾰죽한 전공을 세울것은 없다 하여 이번 《조선원정》에서 원훈수공을 다투어온 경쟁자 가등청정이가 그런 곳으로 가게 된것이 두고두고 고소한것이 첫째라면, 둘째는 정작 급진군을 해야 할 내가 이같이 묵새기게 되니 이 좋은 길을 택했단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자탄이 그 하나였다.

지금까지는 내내 바른길 즉 원훈수공을 세울수 있는 길을 택할수 있는 행운을 가졌었다고 생각하는 소서행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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