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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회


37. 복수의 칼을!


잡약산마을의 첫 싸움은 적의 전멸로써 끝났다.

그러나 처치하기 위해서 모아놓은 적의 시체의 수효로 보아 몇놈을 놓친것이 판명되였다. 그중의 하나는 작은칠성이의 손가락을 끊고 달아난 적의 둘째 대장이였다. 차돌이랑 따라갔으나 아직도 잡았다는 소식이 없다. 그외에도 달아난 놈이 한둘은 더 있을 모양이였다.

접전이 끝나자 뒤처리할 사람을 내놓고는 몇명씩 패를 갈라 부근일대를 샅샅이 뒤지기로 했다. 뒤처리는 우선 우리 부상자들을 구호하는것이였다. 바른쪽어깨에 상처를 입은 젊은 중과 한쪽손가락이 뭉청 떨어진 작은칠성이외에도 중경상자가 7~8명 있었다. 왜놈의 조총에 쓰러진 젊은 봉군 오장은 그 즉석에서 절명하였다.

그는 이번 첫 접전에서 전사했으나 그가 마지막으로 김첨지에게 말한 즉 《아무리 조총이라두 장약을 채 하기 전에야 쇠부지깨 아니갔소.》 한것은 이후에 왜놈들과 싸우는 우리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것이다.

다음으로 시급한것은 서장대앞에까지 복로군을 잠복시켜야 했다. 밤에는 비록 달이 있더라도 봉수대에서 살피는것만으로는 안심할수 없으므로 복로군을 두어서 보통벌에 출몰하는 적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다음에는 마을안을 정돈하는 일이였다. 총탄에 거슬러선 이영을 고르어놓고, 담벽에 뚫린 구멍들을 막고, 마당의 피흔적을 없애고, 쓰러진 벼포기와 수수대까지도 바로세울수 있는것은 세우고 그렇지 못한것은 아주 없애버림으로써 마치 이 마을에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것 같이 하는 일이였다. 그뿐아니라 집집의 문짝까지도 남기지 않고 다 뒤산 숲속으로 떠옮겼다. 단지 이집저집 부엌에 간장을 칠해서 새빨갛게 녹이 쓴 솥만을 한둘씩 남겨두었을뿐 그래서 이 마을은 이미 사람들이 없어진지 오랜것 같이 만들었다.

여기서 달아난 적들이 설혹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성안의 놈들은 이 방향으로 출동했다가 돌아오지 않는 저의 군사들의 소식이 궁금해서라도 다시 나올것이다. 그런 경우에 만일 적이 마을의 집들을 불사르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이편에서는 적이 많거나 적거나 종적을 감추고있을 작정이였다.

마을안에서 로인들과 녀인들이 그런 일을 하노라 한창 바쁜 때 뒤산 숲속에서는 한가지 애달픈 일이 생겼다. 작은칠성이가 경풍을 일으킨채 깨나지 못했다. 하도 놀라고 또 피를 많이 흘린 작은칠성이는 서산이 안겨주는 제 어머니의 품안에 안기자 한번 크게 소리쳐 울고는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까무라쳤다. 서산이 그 당장에서 할수 있는 조치는 다 해보았으나 종시 피여나지 못하고말았다.

날이 저물었다. 이때 마을에서도 한가지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젊은 아낙네 몇이가 마을앞 수수밭에서 부러진 수수대를 베내기도 하고 우리 매복들이 쓰고있던 청초무더기들을 거두기도 하던 낫끝에 왜놈 하나가 드러났다. 정갱이가 부러져 더 달아나지 못하고 밭속으로 기여들어가 풀을 쓰고 숨었던 그자는 제앞에 낫을 들고 서있는 녀인에게 두손을 모으고 수없이 머리를 조아릴뿐이였다. 하도 뜻밖이라 처음에는 미처 소리를 지를수도 없을만치 놀랐던 젊은 녀인은 드디여 낫자루로 꾸벅거리는 그놈의 머리를 내려패면서 사람들을 불렀다.

달아난 적의 종적을 찾아나섰던 사람들중의 한패가 서쪽으로 몇고개 넘은 산속을 다 수탐하고나서 막 큰길로 내려서려는 때였다. 늦게 떠오르기 시작한 달빛에 어렴풋이 드러난 큰길 한끝이 서쪽으로 휘돌아간 산모퉁이에서 비명을 지르는듯 한 사람의 소리가 났다. 알아들을수 없는 말이지만 분명히 울부짖는 왜놈의 소리였다. 차차 더 크게 들리는 소리가 이리로 오는것이 분명했다.

길을 건너 맞은 산으로 오르려던 장정들은 길가 숲속에 숨어앉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글쎄 제발 그러지 말라구야. 안돼, 글쎄 안된다는데두 그런다.》 하는 우리 사람의 말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퍽 부드러운 소리로 누구를 타이르는듯도 한 말투였다.

《…네놈들의 수작을 알아듣지는 못하갔다 해두 봐하니 필시 우리더러 용서해달라는 모양인데 안돼. 너희두 내 말을 못 알아듣갔지만 좀 생각을 해봐라. …》

이런 말소리가 더욱더 가까와지며 저편 산모퉁이로부터 우걱지걱 길마소리를 내면서 소가 먼저 나타나고 그 다음다음으로 우뚝우뚝 늘어선 사람들의 희끄무레한 륜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글쎄 너의 나라에선들 할 일이 뭐이 없어서 그 먼 우리 나라루 일삼아 사람을 죽이러 온단 말이가. 네놈들두 아마 숱한 우리 사람을 죽였을게다. 필경 지금두 우리 사람들을 죽이다가 도망해왔을게다. 안돼, 글쎄 암만 손이 발이 되두룩 빌어두 안돼. 우린 정말 용서 못한다. 글쎄 생각을 좀 해봐라. 너희놈들 손에 부모, 동생이 죽구, 처자식을 잃구, 집은 불타구 해서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 사람들이 얼마나 많갔니? 응, 이놈들아! 그런데 너흰 우리더러 살려달라구? 어림없다. 암만 싹싹 빌어두 소용없어. 아! 그러다 상투가 빠지든지, 모가지가 빠지든 해서 툴렁 떨어질라. 그래, 어서 서루 어깨를 끌어안구 가만들 있가라.》

이런 말소리와 함께 가까이 오는 소잔등에는 길마꼭대기에서 좌우로 축 늘어지게 붙들어맨 두 왜놈의 모양이 뵈였다. 상투를 맞잡아매서 이쪽저쪽에 갈라 걸치운 두 왜놈은 더 지쳐내리지 않도록 서로 팔을 뻗어서 길마너머로 피차의 겨드랑이를 끌어안고 매달려오는중이였다.

《거 돈서방 아니요?》

길가 숲속에 들어앉았던 장정 한사람이 소리치며 나섰다. 긴 사설을 하며 소궁둥이에 채찍질을 하며 오는 사람은 과연 돈정신이였다.

엊그제 전주복이네 소를 빌려가지고 가족들을 데리고 떠났던 돈정신은 서해변 한천근처로 갔던것이다. 가서 그는 어렵지 않게 방 한칸을 얻어서 가족들을 안접시킬수 있었다. 먼저 피란나간 사람들한테서 사창고가 터지고 평양거리에 간장탕수가 났더라는 소문을 들어온 그곳 사람들은 방금 평양서 나왔다는 돈정신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모여왔다. 그들중에는 지금 보통벌 어느 동네에는 왜군과 싸우려는 장사호걸들이 모여든다는데 정말인가? 묻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 장날이라고 생각한 돈정신은 자기가 바로 그 동네서 왔다는것과 아닌게 아니라 지금 그 마을에는 서산이라는 나많은 도승을 비롯하여 활 잘 쏘는 선비, 검 잘쓰는 중도 있고, 씨름 잘하고 주머구 센 농사군도 있고, 역시 농사군으로 아직 애숭이기는 하나 돌질 잘하는 석전군도 있고 그밖에도 제 앞채기는 다하는 장정들이 백여명 모여들었다는것과 그중에는 서산대사가 시켜서 평양성안에 간장탕수를 낼 때 혹시 대문이 걸려있는 집이 있으면 담장을 훌쩍 뛰여넘어가서 장독들을 부신 돈정신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이 나》라고 말한 돈정신은 제가 몸이 날쌔기로는 누구한테 지지 않게 날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잡약산에 모인 장사호걸들에 대면 내노라고 할것도 못된다고도 했다. 이런 돈정신의 말은 자기 겸양을 하면서도 허풍을 떨었다고도 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허풍은 그리 죄될것도, 해로울것도 없는 허풍이였다. 일왈 그런 이야기로써 자기 가족들을 안정시킬 집 한칸을 쉽게 얻을수 있었다. 돈정신이 여느 소금장사가 아니라 왜군과 싸우려는 장사의 한사람인것을 안 그곳 사람들은 저마다 방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뿐아니라 젊은이들중에는 왜군과 싸울 길이 열렸다고 하면서 돈정신을 따라나선 사람이 5~6명이나 있었다. 지금 함께 오는 사람들이 그들이였다. 그렇게 작반이 되여 오던 길에 여기서 한 3리밖에 있는 마을 뒤고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왜놈들을 붙든것이였다. 아직 달이 안 떠서 어두웠다. 막 고개마루에 올라섰을 때 길에서 얼마 멀지 않은 산비탈중턱에 서있는 큰 바위뒤에서 지껄이는 사람의 소리가 들리였다. 이상한 말소리에 《혹시?》 하는 생각이 든 돈정신과 젊은이들은 좌우편으로 바위를 에둘러 숲속으로 숨어가며 산비탈로 올리붙었다. 과연 시커먼 두 왜놈이 있었다. 두놈중의 한쪽어깨가 상한자는 아직도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보이면서 저의 대장인듯 한자의 옷자락을 붙들고 제발 저를 버리지 말고 데려가달라고 울며 애걸하는 모양이였고 붙들린 두목은 옷자락을 놓지 않으면 죽인다고 빼든 짤막한 칼로써 위협하는 꼴이였다.

그자의 뺨에서도 피가 흐르고있었다. 돈정신이 먼저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고 연해 돌을 던지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뒤이어 젊은이들도 고함을 지르며 몽둥이들을 둘러메고 달려나왔다. 애걸하던 놈은 달아날 생의도 못했다. 그놈을 앉은자리에서 붙들어놓은 돈정신과 젊은이들은 달아나는 두목놈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도망하는 놈은 결사적으로 달렸지만 돈정신의 걸음을 당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돈정신은 곧 따라잡으려고는 안했다. 칼을 빼든 놈이 돌아서서 대들 념려가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장바 한기장쯤 앞세워놓고 놈이 기진맥진해서 제풀에 주저앉을 때까지 길이면 길, 산이면 산, 벌판이면 벌판으로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혹시 놈이 칼을 휘두르며 돌아설 때에는 또 그만치 물러서기도 했다. 말하자면 따라다녔다기보다도 놈이 뽕이 빠져서 저 혼자 쓰러지도록 뛰고 달리게만 했던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다시 뒤산으로 모여왔다. 봉수대밑에는 붙들려온 두 왜놈이 꿇어앉아있었다.

산너머에서 칠성이 어머니가 보패와 차돌이 어머니에게 부축되여왔다. 봉수대밑에까지 온 칠성이 어머니는 풀썩 주저앉아서 앉은걸음으로 두놈앞으로 다가들면서 목이 꽉 멘 소리로 웨쳤다.

《칼! 칼을 줘요.》

앞에 둘러선 사람들을 쳐다보는 녀인의 눈은 애원하는듯도 했다. 머리태는 뒤로 흐트러졌다. 자기 품속에서 숨이 끊어진 어린 자식을 빼앗기듯 떼놓자 저 역시 몇번 기절했던 녀인은 기운이 없었다. 그러나 《칼, 칼을…》 하고 칼을 찾는 작은칠성이 어머니는 앉은걸음으로 더욱더 원쑤앞에 다가들었다. 둘러선 사람들 틈에서 전주복이가 들고있던 긴칼을 뽑아가지고 나와서 녀인의 손에 들려주었다.

《아주마니, 용쉐다.》

이런 한마디를 하고 손에 빈 칼집만이 남은것을 팽개칠것인가 혹은 그냥 들고있어야 하는것인가? 모르겠다는듯이 이손저손에 옮겨쥐다가 《맘을 독하게 먹으소. 밤낮 의젓하기만 하갔소.》 또 이런 말을 하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마침 구름밖으로 나온 달빛에 녀인의 손에 들린 긴 칼날은 퍼렇게 번쩍이였다. 그러나 칼을 잡은 칠성이 어머니의 팔은 후들후들 떨리기만 했다.

《저 볼편에서 피가 나는 놈이웨다.》

아까 싸움이 시작된 마당에서 거둔 왜군의 조총 한자루를 들고 한편에 서있던 차돌이가 찌를 놈을 가리켰다. 칠성이 어머니는 그 적괴의 얼굴을 원한과 고통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역시 그의 손은 떨릴뿐이였다. 둘러선 사람들은 다음순간을 기다릴뿐 더 말이 없었다. 이때 그 등뒤에 서있던 서산이 선장을 왼손에 옮겨쥐고 허리를 굽혀 녀인이 잡고있는 칼자루를 같이 잡아서 적괴의 앞가슴을 겨누었다. 사람들은 숨까지도 삼킬듯이 긴장하고 엄숙해졌다. 앞에 꿇어앉은 두 왜놈은 뭐라고 울부짖기도 하고 머리를 조아려 애원하기도 했다.

《스님, 스님께서 이 웬 일이시오니까?》

서산의 등뒤에 서있던 편석대사가 꼬꾸라지듯이 꿇어앉으며 서산의 장삼소매를 붙들었다.

《스님! 대선사스님께서 살생을 하시다니- 이 어찌하시는 일이오니까? 이런 비불사도가 또 있사오리까. 〈남무…〉, 〈관세음…〉 스님께서 손수 흉기를 잡으시다니! 스님손에 중생의 피를 묻히시다니…》

이러한 편석대사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이건 정말 누더기중이댔구먼.》 하며 그의 장삼고두리를 꺼들어 일으키는 사람이 있었다. 엊그제 밤에 《함지가 련꽃같다.》는 이야기를 한 황서방이였다.

《작은칠성아-》

문득 웨쳐부르며 칠성이 어머니는 또 목놓아 울었다.

《이것이 어째서 살생이겠소?》

이때 피가 흐르는 칼을 놓고 다시 일어서는 서산이 말했다. 달빛에 푸르게 빛나는 눈으로 편석대사를 굽어보며 그는 말했다.

《설사 살생이란들 어째서 비불사도의 살생이겠소? 지금 내 남편의 원쑤를 갚아달라! 내 자식의 원쑤를 갚게 해달라고 웨치는 사람이 어째 여기 있는 이 보살님(중들은 녀인을 존대해서 이렇게 부른다.) 한분뿐이겠소. 그러한 웨침은 지금 이 땅에 차고넘친 우리 조선백성의 부르짖음이 아니겠소. 만일 이러한 우리 동족들의 념원의 소리를 못 듣는다면 이 내나 편석사주(중들이 자기 제자를 대접해 부르는 말), 나를 막론하고 어찌 이 땅에서 생을 누리는 조선사람이겠소.》

잠시 말을 끊었다가 《편석사주는 지금이라도 곧 산으로 들어가시오. 사주 같은 사람은 여기서 할 일이 없을것이외다.》 또 이런 말을 하는 로승의 눈에는 한방울 눈물이 빛났다. 앞에 둘러섰던 사람들은 모두 숙연했다. 이때 사람들은 박수를 하거나 《옳소!》 소리를 지를줄은 몰랐다. 감격할수록 두 손길을 맞잡아 읍하고 머리를 숙일뿐이였다.

《좌중에 통할 말씀이 있쉐다.》

얼마후에 이런 말이 들렸다. 저만치 사람들뒤에 서있던 로농 김첨지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다른 말씀이 아니라 지금 돈서방의 말이 오늘래일중으로 떠놓구 비가 온다구 합네다. 돈서방은 제 잠뱅이가 비올걸 안답네다. 서슬밴 잠뱅이가 눅눅해지면 떠놓구 비가 온다구 내길 해두 좋다구 장담을 하는데 정말 비가 오면야 좀 반가운 일이웨이까!》

김첨지의 말을 반갑게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비의 싹을 맞으려는듯이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서 김첨지는 또 말을 이었다.

《비가 오리라는 말에 나는 다시 생기가 나는것 같쉐다. 내놓구 말이지 아까는 엉겁결에 왜놈 한놈을 때려잡기는 하구두… 그래서 그까짓 놈들 막상 맞다들구보면 무서울건 없어두 그놈이 빼물었던 혀때기랑이 눈에 보여서 오금이 복닥한게 몸살이 나는것 같더니…》

와- 웃음이 터졌다.

《아니, 정말이웨다.》

《아주바니가 너무 정말을 하는것 같애서 웃소.》

《늙은이가 그렇기두 쉽지요.》

사람들은 또 웃었다.

《난 정말 비가 와서 저 여우리판에다 물을 잡구 김맬 생각을 하니 금시 몸이 거뜬해지는것 같쉐다. 그래서 제 말씀은 이제부터는 그 의논들을 좀 했으면 해서 하는 말이웨다.》

이러한 김첨지의 발론으로써 의논이 시작되였다.


× ×


과연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 이튿날부터 시작한 비는 7월 그믐까지 계속 왔다. 당시의 기록들에 의하면 한달 반동안이나 계속한 장마는 적아간의 군사행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것이다. 앞으로도 그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이때 명나라에서 파견했던 첫 후원군이 7월에 평양성을 공격하다가 실패한 원인을 전부 그 장마때문이였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중에도 그때 나왔던 명군의 대장 조승훈 같은 사람은 평양성밖에는 모두가 다 논판이므로 오랜 장마에 땅이 무솔아서 인마의 발이 빠지기때문에 군사행동이 임의롭지 못했다는것으로써 실패의 원인을 말했다.

그만치 비도 비려니와 또한 보통벌에는 논이 많았다. 물론 밭도 있었지만 이때는 조, 수수 같은 전곡은 이미 김이 다 끝났었고 벼농사도 대개가 여우리판이라 건판으로 두벌김까지는 다 맸던것이였다. 지난 열하루날 초복에는 초복물을 낸다는 흉내만 내고말았던 비가 지금 중복을 며칠 앞두고 오기 시작했으므로 농민들은 기다리던 비를 맞아가며 세벌, 네벌째의 논김으로 들어섰다. 더우기 보통벌에서는 쏟아지는 비를 연막으로 리용해가면서 논김을 매기 시작했다. 또 이때 마침 서산의 편지를 받은 묘향산일대와 그 주변의 중 일천 오륙백명이 달려나왔다. 그들은 거의가 다 농민출신이였으므로 저마다 발벗고 논판으로 들어섰다. 일을 할 때는 먼저 보통문과 칠성문근처에 복로군을 잠복시켜서 드나드는 적정을 살피게 했다. 일본군이 소부대로 습격해오는 경우에는 맞아서 싸울만 한 준비도 갖추었다. 묘향산에서 나온 중들중에는 병장기라고 할것은 못되더라도 큰 장도나 짧은 철퇴 같은것을 지니고 온 사람이 많았고 또 이번 잡약산마을싸움에서 로획한 적의 무기도 적지 않았으므로 이곳 농군들중에도 대개는 칼, 창 같은것을 하나씩 가지고 논판에 들어섰다. 병장기가 차례에 오지 않은 사람들은 낫과 도끼를 허리띠에 찔렀다. 그러나 막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적과의 충돌을 피하기로 했다. 더우기 벌판에서는 적과 맞다들지 않기로 했다. 적이 쓸어나오면 곧 가까운 산속으로 흩어져들어가서 적이 모르는 골짜기와 숲속에 잠복했다가 기습을 하기로 했다. 그뿐아니라 우선 적의 주목을 끌지부터 않기 위해서 한논판에 많은 사람이 들어서지 않고 넓은 논벌에 분산해서 일을 했다.

물잡은 여우리판의 세벌, 네벌김은 손이 덜 가고 일이 빠르기도 했다. 건판으로 맬 때는 호미로 긁고 손으로 뜯어야 하지만 물을 잡은 후에는 이랑사이에 들어서서 한발로 풀을 밀어가며 뒤의 발로 눌러 묻느니만치 어둑어둑한 새벽부터도 할수 있고 또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도 할수 있는 일이였다. 오히려 비가 많이 오는 때일수록 물안개 자욱한 때를 타서 성밑가까이까지도 가서 일할수 있었다. 즉 비를 연막으로 리용할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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