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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 회


36. 잡약산마을의 첫 싸움


마을앞 넓은 마당은 비였다. 룡악산머리에 가로 걸친 구름을 피빛같은 노을로 물들이며 기우는 해살에 마당기슭에 늘어선 버드나무들의 그림자마저 동구앞 큰길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널려있는 수수밭들과 우물도랑 터물받이 논배미들을 덮었을뿐으로 동네안은 자글자글 끓이는듯 한 개우랑볕과 침묵과 긴장과 살기만이 가득찼을뿐이였다.

그 한가운데 아직도 홀로 남아있는 서산은 짙은 그림자로 덮인 마을앞의 수수밭들과 그 좌우쪽에 매복해있는 사람들의 살기띤 호흡을 느끼면서 서있었다.

《로장- 서산로장!》

뒤에서 나직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였다. 고충경의 음성이다.

《이제는 로장께서도 뒤산으로 올라가셔야지요.》

동구앞 큰길을 정면으로 내다볼수 있는 초가지붕의 곱새너머로 망건만을 쓴 고충경의 얼굴이 뵈였다. 자기가 지금 어데 있다는것조차 잊은듯이 서있던 서산은 그에게 머리를 끄덕이고 발길을 돌려 뒤산으로 선장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동구밖에서 마른벼락을 치는듯 한 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졌다. 이집저집의 지붕에서 먼지가 일고 이영이 한모숨씩 거슬러섰다. 또 뒤산중턱에 서있는 큰 나무들의 가지가 분질러지기도 하고 혹은 그 체대에 대못을 박듯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자 메마른 길바닥을 제껴차며 달려오는 말발굽소리와 와- 와- 기세를 올리는 적의 함성이 들렸다. 어느새 동구밖의 큰길은 먼지로 찼다. 자욱한 먼지속에서 벌깃벌깃 불을 뿜는 조총이 또 몰방으로 터졌다. 이번에는 문들을 첩첩히 닫아둔 집들의 앞뒤담에서 먼지가 일고 구멍이 뚫렸다. 요란한 총소리에 눌렸다가 다시 살아나는듯 한 아우성소리와 함께 충천한 먼지속으로 적들의 시커먼 형체가 우뚝우뚝 나타나기 시작했다.

말우에서 긴칼을 빼든자가 먼저 동구안에 들어서자 말을 세우고 마을안을 이끝에서 저끝으로 훑듯이 살폈다. 그자의 얼굴에는 문득 불만과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생소한 마을의 지형을 살피는것이기도 하려니와 그보다도 먼저 그자가 찾는것은 사람이였다. 공포에 떨며 쩔쩔매는 조선사람이 있어야 할것이였다. 또 저희 조총에 단 한둘이라도 쓰러진 시체가 있어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시체도 산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말끔히 치워놓은 마을은 오직 고요할뿐이였다. 적들의 얼굴에는 분명히 실망과 또 불안한 기색까지도 떠올랐다.

몇순간 주저하던 적장은 조심조심히 말을 몰아 마당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이때였다. 마당기슭에 치렁치렁 늘어진 버드나무가지사이에서 윙윙거리는 소동에, 쉬파리소리까지도 분명히 들릴만치 가라앉은 정적중에 윙- 소리를 끌며 날아온 한대의 화살이 적장이 탄 말의 동가슴 한복판에 들어박혔다. 말은 소리를 지르며 선자리에서 앞다리를 쳐들고 공중 치솟듯이 일어섰다. 허옇게 드러난 이발로 한두번 허공을 물어뜯자 굳은 땅에 제 몸뚱이를 메치듯이 쓰러졌다. 고충경의 첫 화살이였다. 놈이 활 한바탕안에 들어서기를 기다렸던 그는 일부러 그 말부터 쏜것이였다. 사족으로 땅바닥을 헤적이는 유착한 말배때기에 한쪽다리가 깔리운 적장은 칼을 지팽이삼아 상반신을 일으키며 고함을 질렀다. 부하들에게 구원을 청하는 모양- 아연했던 적들은 비로소 발이 떨어지는 모양으로 쓰러진 대장앞으로 달려갔다. 이때 또 날아온 두대의 화살이 맨앞의 두놈을 일시에 쓰러뜨렸다. 창을 들었던 놈은 울꾸리에 박힌 살대의 뒤초리를 쥐고 자빠지고 조총을 들었던 놈은 네활개를 펴고 엎어져서 복통에 박혔던 살촉이 잔허리를 꿰뚫었다. 뒤따라오던 군졸들은 주춤했다.

돌아서서 내빼는자도 있었다. 그중의 한놈의 머리가 떨어져 먼지속에 굴렀다. 저희 군졸의 목을 찍은자는 피흐르는 칼을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적들은 넓은 마당기슭으로 산개했다. 그동안에 조총수가 또 한놈 쓰러졌다.

우리 궁수들은 먼저 적의 조총수들을 노리였다. 이때 버드나무쪽으로 달려가는 조총수들은 활 한바탕거리로는 좀 멀었다. 그러나 원체 궁력이 강하고 겨냥이 바른 고충경의 화살은 그놈의 뒤더수기의 급소를 맞혔던것이다.

단 몇순간동안이지만 이때까지는 접전마당이라고 할수 없을만치 조용했다. 활시위소리를 따라 쓰러지는 적들의 외마디비명과 저희 부하들을 꾸짖는 적괴의 소리뿐이였다. 마침내 적들은 조총질을 시작했다. 큰 버드나무를 하나씩 안고 앉은 조총수들은 화살이 날아오는 지붕에 대고 불질을 시작했다. 산개했던 적들은 저희 조총질에 지붕에서 날아오던 화살이 잠시 멎은 틈을 타서 그 집들을 에워싸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전에 마당 한가운데 쓰러졌던 적장의 머리가 떨어졌다. 간신히 다리를 빼낸 적장이 비척거리며 달아나려고 할 때 이편 집모퉁이에서 달려나온 법근이가 한칼에 베였다. 이때 또 달려나온 차돌이는 마당 한가운데 어푸러져있는 놈의 손에서 조총을 채가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저편 집모퉁이에서는 동금강암 젊은 중이 칼을 빼들고 나섰다. 그들뒤에는 륙모로 깎은 참나무짝지들을 가진 십여명의 중들이 달려나왔다. 곧 혼전란투가 시작되였다. 그중의 법근이와 그의 동무중은 보는 눈이 현혹할만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놀았다. 달려드는 적이 많아서 좀만 틈을 주면 놈들의 창칼에 묻혀버릴는지 모른다. 임욱경이의 말로써 놈들의 멱을 따려는만치 칼을 치켜든 놈들이 앙큼하게 덤벼들 짬수를 노리노라 주춤거리는 동안에 이편에서는 우선 한바탕 선손을 쓰고볼판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넘나들다가 혹은 검 하나로 제 한몸을 휘감아서 마치 은두겁을 한 큰 팽이같이 돌기도 하는 법근이의 칼에 벌써 두놈이 쓰러졌다.

마당 한가운데서 싸움이 벌어지자 이쪽 버드나무밑에서도 결투가 일어났다.

짙은 버드나무그림자로 덮인 수수밭고랑에서 청초무더기를 쓰고 엎드려서 마당쪽을 엿보고있던 젊은 봉군 오장이 옆에 있는 김첨지에게 속삭였다.

《둘이서 저놈 하나 때려잡지 못하갔소?》

가리킨것은 바로 이십여이랑의 수수대사이로 내다보이는 적의 조총수였다. 버드나무밑에 붙어앉아서 이편으로 등을 돌려대고있는 그놈은 방금 불질한 총에다 또 장약을 하는중이였다.

《조총가진 놈을?》

김첨지는 낫을 들었을뿐이다.

《조총이라두 장약을 채 하기 전에야 쇠부지깨 아니갔소.》

이런 말과 함께 젊은 봉군은 창을 들고 청초속에서 뛰여나갔다. 김첨지도 따라나갔다. 어느새 수수밭을 벗어났는지 모른다. 이제 여라문발자국만 달려가면 창으로 찌르거나 낫으로 내려찍을 판이다. 그러나 바로 귀전에서 터지는듯 한 조총소리와 함께 한걸음 앞섰던 젊은 봉군이 《앗.》 소리를 지르며 두팔을 쳐들고 핑그르르 돌다가 쓰러진다. 저편 버드나무밑에서 먼저 장약을 했던 놈이 이편으로 돌려대고 쏜것이다. 김첨지는 한걸음 주춤했다. 그러나 눈앞에 쓰러진 봉군의 가슴이 금시 시뻘겋게 젖는것을 본 김첨지는 저도 모르게 《에익, 이놈아-》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며 낫을 둘러메고 내달렸다. 장약을 하다말고 이편을 돌아보던 놈은 쏠수 없는 총을 꺼꾸로 잡고 대들었다.

이편의 낫보다 그놈의 총대가 길었다. 김첨지는 미처 손쓸새가 없었다. 먼저 제 머리를 겨누고 내려치는 놈의 총대를 두손으로 받아쥐여야 했다. 엉겁결에 맞잡은 총대를 몇번 밀고당기던 김첨지가 발앞에 떨어진 낫에 눈이 팔린 순간 놈이 나꾸채는 바람에 꼬꾸라지듯 총대를 따라 몸이 숙었다. 그러자 놈이 제 등뒤의 버드나무에 뒤더수기를 짓찧으며 기대서는것을 본 김첨지는 허덕이는 소리로 《이놈아! 이놈아!》 소리를 지르며 그놈의 명치끝에 닿은 총부리를 죽신죽신 밀었다. 금시 창자가 쓸어나오듯이 입을 딱딱 벌리는 놈은 그래도 제 허리띠에 찌른 칼자루를 더듬었다. 그러나 칼을 뽑기 전에 먼저 혀를 빼고 총대우에 까부라졌다. 단 몇순간의 일이였다.

이동안에 김첨지는 몰랐지만 봉수대에서는 뚜- 길게 웨치듯 하는 천아성이 울렸고 그러자 마을 앞, 좌우에서는 일시에 와- 함성이 일어났다. 도끼를 둘러메고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면서 수수밭속으로부터 달려나온 전주복이를 비롯하여 저쪽에서는 황서방, 이쪽에서는 박서방이 각각 십여명씩의 장정들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넓은 마당을 에워싸고 달려들었다. 그 기세에 우선 김첨지를 노리고 달려가던 적의 둘째 괴수놈이 돌아서고 또 아직도 버드나무밑에 남아있던 조총수 두놈이 자리를 떴다. 마당 한가운데로 달려든 우리 장정들은 이때 더욱더 날랜 솜씨로 검을 휘두르고있는 법근이와 그의 동무중들을 둘러싸고 덤비는 적들을 낫으로 후리고 도끼로 내려패기 시작했다. 등뒤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함성에 놀랜 적들은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드는데 당황했다. 저희 대장이 선참으로 꺼꾸러지고 또 크게 믿어온 조총수들이 다음다음으로 쓰러지는데 이미 기가 꺾였던 적들은 더욱 황겁했다.

이때 적의 둘째 괴수는 접전마당을 벗어나 마을 뒤산으로 올라붙었다. 자리를 뜨지 않을수 없이 된 두 조총수를 데리고 뒤산으로 올라가서 지붕우에 있는 우리 궁수들을 없애버리고 높은데서 조총질을 하며 싸움을 돋우어볼 작정이였다. 마을 저쪽기슭을 에둘러온 적괴는 숲속으로 접어들면서 벌써 몇번째 뒤를 돌아보았으나 따라오라고 했던 조총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노리고 왔던 지붕에도 고마인궁수들은 없었다.

먼지가 충천한 마을안에서는 여전히 함성과 함께 소란한 발소리들이 들린다. 좀더 높은데서 궁수들이 따라오는가를 보려고 올라가던 적괴는 어데선가 인기척이 나는듯 해서 주춤하고 귀를 기울였다. 중턱에 누가 있는것 같았다. 적괴는 《딴은 그렇지!》 하고 중얼거렸다. 좀전에 고마인의 매복을 불러일으킨 천아성은 분명히 이 산마루에서 울렸다.

《필시 이 산상에는 고마인민병들의 대장이 있을게다.》

또 이렇게 중얼거린 적괴는 걸음을 재촉했다.

나무숲이 거의 끝나자 령마루가 쳐다보일만 한 때 문득 뭐라고 웨치는듯 한 사람의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한그루의 큰 도토리나무밑에 흘러내린 괴춤우로 배꼽을 드러내놓고 입에다 한손가락을 빗문 한 어린 놈이 쿨쩍쿨쩍 울고있었다. 고마인의 아이가 분명했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씽긋 웃은 사무라이는 그앞으로 다가섰다.

《오마안-》

작은칠성이는 울음만 웨치면서 본능적으로 도토리나무뒤로 피해섰다. 다섯살짜리 어린 놈이지만 제앞으로 다가드는것이 흉악한 적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오마니이-》

어린 놈은 드러내놓은 배속에서 짜내는듯 한 소리로 연해 불렀다. 작은칠성이는 낮부터 어른들이 세간을 묻기도 하고 움막을 짓기도 하는 산에서 놀고있었다. 천아성이 울리자 산에서 내려가는 사람들과 마을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숲속에 퍼져 서로 엇갈리고 붐비는통에 어린 놈은 어머니와 형을 찾느라고 왔다갔다 헤매였다. 그런중에 마을로 달려가던 웬 사람이 이제 어른들이 올라올테니 내려가지 말고있다가 같이 가라고 했다. 문득 벼락을 치는듯 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마을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도 역시 사람이 가는데로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올라가기는 하면서도 역시 어머니와 형을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혹은 돌아서서 불러보기도 하는 동안에 어느덧 사람들은 다 없어졌다. 그래도 오지 않는 어머니와 형은 아직도 그냥 마을에 있는것만 같아서 망설이게 된 어린것은 혼자 울고있었다.

사무라이는 또 《오만-》을 부르면서 도토리나무의 굵은 원체와 그 밑둥에서 뻗은 곁가지사이로 눈물에 얼룩진 얼굴을 들어 자기를 쳐다보고있는 어린것을 겨누고 긴칼을 한번 내리쳤다.

그러나 다시 《오마안-》을 부르는 어린것이 이번에는 짧은 두팔로 아름이 버으는 나무의 원체를 쓸어안으며 소리쳐 울었다. 그 조그만 손끝에서는 피가 뿜었다. 원체로부터 물러나듯이 넘어지는 곁가지와 함께 그 애의 한쪽손가락이 거의다 떨어진것이였다. 일도량단의 쾌감을 못 본 살인귀는 먹을것을 다투는 승냥이같이 사려문 이를 허옇게 드러낸 입가에 잔악한 웃음을 흘리면서 도토리나무뒤로 돌아가려고 했다. 제 칼날아래서 떨며 우는 어린것을 굽어보며 막 발걸음을 옮기려던 사무라이는 문득 무엇에 찔린듯이 주춤하고 서서 놀랜 눈을 들었다. 귀청이 쨍 울리는 일갈로써 꾸짖는듯 한 한마디 고함소리가 들렸던것이다.

쳐다보는 산마루에서 수묵색장삼자락과 붉은 가사를 가볍게 펄럭이며 한 로승이 여섯개 주석고리가 쟁그렁거리는 륙환장을 가분가분 옮겨짚으며 내려오는것이 보인다. 로승은 분명히 이쪽을 향하여 걸어오고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앞에 누가 있는지 또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통 모르는것 같기도 했다.

도토리나무앞으로 내려온 로승은 허리를 굽혀서 작은칠성이를 한손으로 끌어안고 다시 일어섰다.

로승의 목을 얼싸안은 어린것은 목을 놓아 울었다. 몇순간을 멍청해 섰던 사무라이는 비로소 발걸음을 떼여 로승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새롭게 악이 올랐다. 한낱 늙은 중의 그렇듯 태연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에 기가 눌렸달가, 어쨌든 한동안 멍청했던 제자신이 우선 괘씸해진 사무라이는 이번에야말로 둘을 한꺼번에 요정낼 욕심으로 발장이 뜰만치 장검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남달리 긴칼이지만 도저히 미칠수 없는 거리가 생겼다. 로승이 뒤로 물러서서 그런것은 아니다. 로승은 단지 바른손에 들었던 선장을 가볍게 앞으로 내댔을뿐이다.

사무라이는 《아차!》 했다. 칼을 너무 치켜들었다. 버쩍 치켜든 두팔죽지아래는 빈틈여부가 없이 전신이 통 허한것을 느꼈다. 허한중에도 그 한가운데인 제 명문을 로승의 선장끝이 바로 겨누고있다. 선장끝이 그렇게 날카로운것이 아니나 명문을 한번 내질리우면 기절할는지 모른다. 이제 누가 먼저 손을 쓰는가? 우선 정신력의 승부가 끝난 후에야 누구든지 선손을 쓰게 될 판이다.

사무라이는 로승의 눈을 건너다보았다. 역시 담담한 표정인 로승의 은실같이 드리운 눈섭밑의 눈은 무척 서늘해보이기도 하고 혹은 또 《꼼짝말아.》 하고 불호령을 하는듯도 했다. 검을 치켜든채 이마에서 진땀이 흐르는 사무라이의 호흡은 절박해졌다. 이때였다. 윙- 소리와 함께 날아온 돌이 그자의 뺨에 들어맞았다. 뒤뚝, 한편으로 기운 사무라이는 장검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돌질이 멀었던탓으로 오히려 그 충격에 정신이 든듯 한 사무라이는 로승과 맞옭았던 시선이 흐트러지는 틈을 타서 숲속으로 뛰여들었다. 고함을 지르며 달려온 차돌이가 연해 돌질을 하며 숲속으로 따라들어갔다.

한편 법근이옆에서 싸우던 젊은 중이 칼을 떨어뜨리고 주저앉았다. 이제는 법근이한테로 달려드는 놈들이 더욱 많았다. 《관세음!》 소리와 함께 또 한놈을 베인 법근이의 한쪽입귀에서는 피가 줄기져 흘러내렸다.

《법근아, 넌 좀 비껴라.》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피묻은 도끼를 든 주복이가 그의 앞을 막아나섰다. 그 짬에 법근이는 피에 젖은 흙을 한줌 쥐여 입에 넣고 씹었다. (지나치게 기운을 써서 내장의 피줄이 끊어진 때는 흙을 집어먹어야 한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동안에 여러놈의 칼날을 막노라 휘두르던 주복이의 도끼날이 내려졌다. 어느 놈의 칼에 자루가 끊기였다. 맨손이 된 주복이는 옳다구나! 하고 덤벼드는 모양인 적들중의 맨앞의 놈의 중동을 걷어찼다. 자빠지는 그놈이 안기는 바람에 그뒤의 놈의 머리가 걸핏 숙었다. 배지기를 들고 꼭두를 집어내던 솜씨로 재빨리 나간 주복이의 손이 그놈의 상투를 거머쥐였다. 팔뚝을 한번 내두르자 상투를 꺼들린 놈의 발이 떴다. 네활개를 뻗고 후루메자락이 박쥐날개같이 퍼져서 허궁 떠돌기 시작한 놈의 팔다리에 벌써 몇놈이 엎어지고 자빠졌다. 떠도는 놈이 저희 놈이라 칼질을 못하게 된 적들은 뭐라고 떠들면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내빼는 놈도 있었다. 흩어져 달아나던 적들은 련주전으로 쏘는 우리 궁수들의 화살에 쓰러졌다.

벌써 지붕에서 내려왔던 고충경과 젊은 중은 적의 조총수들이 자리를 뜨자 단살에 쓰러뜨리고 지금은 마을 좌우기슭으로 갈라서서 활질을 시작했다. 그들의 화살은 동떨어져 달아나는 놈들뿐아니라 아직도 우리 사람들과 겨루고있는 놈들까지도 하나씩 찍어내듯이 쓰러뜨렸다.

한편 상투를 꺼든 적으로써 적들을 후리치며 동구앞까지 달려간 주복이의 저자신 팽이돌듯 하며 휘두르던 팔뚝이 문득 허전해졌다. 순간 마당기슭에 있는 터물받이 논배미 한가운데에서 철-썩 소리가 났다. 네활개를 펴고 떠돌던 놈이 훌쩍 날듯이 나떴다가 벼포기속에 머리를 처박고 무논판에 판박히듯이 떨어지고 주복이의 손에는 상투만이 남았다. 주복이는 다시 마당 한가운데로 달려가서 적이 떨어뜨린 긴칼을 하나 집어들고 남은 적앞으로 달려갔다. 이때는 벌써 《여기 한놈 된다.》, 《저놈 잡아라.》, 《성안으루 들어가지 못하두룩 막아라.》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달아빼는 적들을 추격해서 이리저리 내닫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마당에는 뛸수도 없이 상한 적이 몇놈 남았을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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