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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4 회


34. 따라온 편석대사

아직 단약한 이편의 세력을 키우고말고 할 겨를이 없었다. 엊그제부터 로약자들을 피란시키는중이였으므로 그들을 령거해간 장정들까지도 많이 준 때였다. 오직 가까운 동금강암에서 서산의 편지를 받고 6~7명의 중들이 오늘 낮에 도착했을뿐이다. 그 6~7명중에는 법근이가 서산에게 말했던 활 쏠줄 알고 칼 쓸줄 안다는 젊은 중 두사람과 그밖에 편석대사도 같이 나왔다.

편석대사는 서산스님이 조만간 동금강암을 거쳐 다시 묘향산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했으므로 기다려서 모시고 갈양으로 그곳에서 묵고있었다. 그런데 도리여 중들을 산에서 나오라고 한 서산의 편지를 본 편석은 자기도 따라나와서 친히 스님의 말씀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이때의 편석대사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면 《서산스님께서 망녕이 아닌가?》 했던것이다. 그래서 제가 스님의 말을 들어본다기보다도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존경하고 아끼는 스님을 이 위험한 평양근처에서 모셔내여 다시 산으로 들어가도록 할 심산이였다.

서산은 마을앞 떡돌에 걸터앉아서 그들을 맞았다. 마침 점심때라 산너머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버드나무밑에서 쉬고있었다.

《편석도 나오셨소?》

같이 온 중들중에 가장 나이도 많거니와 승려간의 지위로 보아 장로의 한사람인 편석이 먼저 앞에 나서서 합장했을 때 서산 역시 합장하며 말했다. 다음 중들의 인사를 받던 서산은 《오냐, 네가 활을 잘 쏜다지? 잘 왔다.》, 《오, 너는 칼을 쓸줄 안다지? 잘 왔다.》 하고 말했다.

《너희가 보다싶이 저 평양성에는 왜적아수라의 무리가 들어와있다. 부산서 여기까지 그들의 발길이 멎는데마다 이 강산은 황페되고 우리 동족의 피로써 우리 강토를 적시게 하는 왜적아수라들이 들어있다. 지금까지 너희가 활을 쏘고 칼을 익힌것은 한 장난이였을는지 모르나 우리가 선조적부터 우로(비와 이슬)의 혜택을 같이 입어온 이 땅의 생령들이 지금 왜적의 창검아래 어육이 되려는 이때 너희들의 활과 칼이 저 잔악무도한 아수라들을 무찌르고 무고한 우리 동족의 생령을 보호할수 있다면 너희들의 병쟁기는 활인검(사람을 죽이는데 쓰는 칼도 때에 따라서는 사람을 살리는 칼이 될수도 있다는 뜻)이 될것이요, 또한 너희들의 용맹은 곧 불보살의 대자대비가 될것이다. 선을 좋이 여기고 악을 미워하는것- 미워할뿐아니라 악을 징치할수 있는 용기! 그것이 곧 불성이고 그러한 용기가 있음으로써만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을 제도하려는 불법을 수호할수도 있을것이다. 만일 우리가 저 아수라들이 우리의 강토를 분탕하고 우리 동족을 도륙하는것을 보고만 있다면 우리 역시 저 왜적아수라와 다를것이 무엇이냐. 지금 여기는 나라와 동족을 위해서 저 왜적과 싸우려는 의롭고 용감한분들이 모여계신다. 너희도 그들과 함께 한몸을 바쳐 싸워야 할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너희들이 산에서 내려온줄 안다. 잘 왔다.》

말끝마다 《잘 왔다, 잘 왔다!》 하는 로선사앞에서 다시금 합장하는 젊은 중들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기도 했다. 전 같으면 대선사의 법력에 눌린달가 그앞에서는 바로 서기조차 어려워했던 사미들이 로스님의 얼굴을 정답게 마주보기도 했다.

서산이 말을 마치고 자기 처소로 돌아가자 중들옆에 서서 그의 말을 듣고있던 주복이는 버드나무아래에 모인 사람들한테로 가면서 《아, 그 늙은이가 그런 말을 벌써 했으면 남 속이 좀더 씨원했을거 아닌가!》 하고 투덜거렸다. 제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감격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때 편석대사만은 언제 보나 그 무표정하던 얼굴이 퍽 어두워진듯 했다. 그는 좀전에 영명사에서 나왔노라는 한 늙은 중과 같이 떡돌에 걸터앉았다. 편석은 지금 자리를 인 서산스님을 따라들어가는것이 자기의 도리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그럴 경황이 없을만치 마음이 번거로왔던것이다. 스님을 산으로 모셔가기 위해서 마음속에 준비해가지고 왔던 말을 서산앞에 비쳐볼 여지도 없었다. 말해볼 여지가 없이 서산은 자기의 심회를 다 말했다. 그러한 서산의 말에 동감이라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그뿐아니라 처음부터 놀라운것은 스님께서 웬 말씀이 저렇게 많아지셨노 하는것이였다. 즉 서산이 전에없이 그보다도 대선사답지 못하게 수다스러워졌다는것이다. 선승이란 본시 말을 많이 안하는것으로써 첫째 계행을 삼는다. 우선 삼함이라는것이 있다. 식불언, 정불언, 와불언이라고 하여 먹을 때, 참선할 때, 자려고 누웠을 때는 말을 아니하는 법이다. 더우기 선방(불교에서 참선하는 방)이라는데는 무엇보다도 말이 금물이였다. 즉 무언지행(말이 없이 행동한다는 뜻)의 수련을 쌓는데다. 서산은 삼십소리 하면서부터 선방의 조실이였던 선승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는 어느 절의 선방도 아니고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선승들도 아니다. 또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부처같이 가부좌(불교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음)를 틀고앉아서 할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때까지 오십여년간 몸에 배여온 선승의 습속을 버려야 할 일이 많았다. 더우기 이제부터 할 일은 나이많은 그로서는 무언지행으로 단지 자기 한몸으로 솔선해서 하는것만으로 될 일도 아니므로 서산은 결국 말을 많이 하기로 결심했던것이다. 지금 동금강암에서 나온 젊은 중들을 이 마당 한가운데서 맞은것도 그때문이였다. 뒤산에서 세간과 쌀을 묻고 새로 움막을 짓던 사람들이 점심참이 되여 많이 내려와있었다. 하고싶은 말을 그 중들만이 들으라는것이 아니므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을 택한것이다.

편석대사는 그러한 서산대사의 심정을 몰랐다.

이때 버드나무그늘에서는 의관을 방정히 한 속인(고충경)이 금방 쪄온 뽕나무가지의 껍질을 벗기고있었다. 그의 앞으로 모여간 젊은 중들이 물었다.

《그건 활줄을 만드실겁니까?》

《우리 산에는 츨한 뽕나무뿌리껍질이 없어서 나는 아직두 갖풀멕인 삼줄을 메웠는데 우리 같이 만듭시다.》

활을 든 젊은 중이 나앉아서 《이 더위에 갖풀멕인 줄이야 껍적거려서 왜적에게 련주전(련달아 쏘는 화살)을 멕일수 있겠어요.》 하며 웃기도 했다.

지척에서 이런 말을 능당히 하는 불문의 사미들을 이윽히 바라보던 편석대사는 깊은 한숨이 나오고 머리가 가로흔들렸다. 말하자면 공공연히 살생할 차비를 한다는것이였다.

불제자로서 이런 파계가 있을법인가? 이 뉘탓인고?

한숨을 지은 편석대사는 옆에 앉은 늙은 중에게 물었다.

《지금 영명사에 남아있는 로장들은 무엇들을 하고계시오?》

《예. 조석으로 〈성수무강〉, 〈국가안태〉와 왜군들이 수선지악(선한 일을 하고 악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해서 저희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흉기를 거두어 돌아가도록 불전에 축원을 올리고있소이다.》

이러한 영명사 늙은 중의 대답에 편석대사는 깊이 찬의를 표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그렇게 있을수 있을 모양이오니까?》

《지금 같애서는 왜병들이 아무런 침책도 없었소이다. 어제는 우리 중들이 동대원에서 전몰한 군사들의 시신들을 거두고 시다림(시체앞에서 념불하는것)을 했는데 왜장의 말이 수구했다고 하면서 절에 공양미가 없거든 성내에서 가져다 먹으라고까지 했소이다.》

이런 말을 하는 영명사 늙은 중은 이곳 사람들에게 한가지 중요한 소식을 전해주었던것이다.

영명사에 남아있는 십여명 늙은 중들이 놈들에게 끌려나가서 동대원의 시체들을 수습하게 되였는데 우리 군사의 전사자보다 왜놈들의 시체가 훨씬 더 많았다는것이였다. 이 사실은 그만치 우리 군사가 용감히 싸웠고 또 그만치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는것을 말하는것이다.

《영명사에 공양미가 없을리 있소?》

편석이 또 물었다.

《아직은 좀 있지만 사전(중들이 관리하는 밭)이 모두 대동강건너쪽에 있어서 왜병들의 통로가 가까운만치 실농하게 된다면 노상 걱정이 안되는바도 아니올시다.》

《그렇단들…》

이렇게 하던 말을 채 마치지 않은 편석대사는 또 머리를 가로흔들었다. 그로서도 우리 나라를 위해서 국가안태를 축원한다는 영명사 중들이 만일 일본군한테서 식량을 얻어먹는다면 그것은 모순된 일일뿐아니라 부정한 일이라고까지 생각했기때문이였다. 그뿐아니라 종당은 일이 또 그렇게 부정하게 될것도 같았다. 왜냐하면 지금 영명사에 남아있다는 누구누구 하는 늙은 중들은 대개가 그 살진 로전승의 말을 들을만 한 사람들이기때문이다. 살진 로전승은 본시부터 성품을 바로하고 고기를 멀리하는것과 같은 선승의 경지는 모르고 배부른것을 무엇보다도 쾌사로 아는 위인인것을 편석대사는 잘 알았다. 그 점만으로도 편석대사는 로전승을 존경할수 없었다.

이때 한 사미가 와서 서산스님이 부른다고 전갈했다.

편석대사를 부른 서산의 말은 지금 이곳에 홀몸으로 많은 어린것을 데린 녀인이 동금강암으로 피란을 가게 되였는데 편석대사가 그들을 인도해주었으면 좋겠다는것이다. 보통벌머사니네 가족이다.

엊그제부터 로약자들을 피란시키는데 누구보다도 먼저 떠났어야 할 칠성이네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칠성이 어머니는 굳이 이곳을 안 떠난다고 고집했다. 남편이 생전에 벼르고별러서 제땅이라고 사서 논을 풀어놓고는 그렇게도 기뻐하고 대견해하던 그 논을 두고는 떠날수가 없다는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 논의 벼를 제손으로 거두고 쌀을 만들어서 죽은이의 혼백앞에 노구메 한그릇을 떠놓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이 되는 서산은 주복이 어머니와 보패에게 부탁해서 타이르도록 했다. 마지못해 칠성이 어머니도 떠나기로 했다는것이다.

서산이 방금 온 편석에게 동금강암으로 되짚어가야 하는 부탁을 하는데는 까닭이 있었다. 서산은 편석이 여기까지 따라온 까닭을 묻지 않고도 잘 알았다. 또 편석이 이곳에 머물러있더라도 별로 도움이 될 사람이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편석에게 다시 산으로 들어갈 기회를 주려는것이다.

서산이 들어앉은 먹통만 한 방앞의 토지방아래서 합장하고 서있는 편석대사는 스님의 말에 대답하려고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님께서 이 나를 멀리 하시려는구나.)

이런 생각에 편석대사는 입을 열면 말보다도 먼저 울음이 앞설것 같았다. 그렇다고 울수도 없는 일이다. 선승에게 눈물이나 울음이 있을리 없다. 그는 합장하고 우두커니 서있을뿐 대답을 못했다.

이때 봉수대에서 《왜적이야-》 웨치는 소리가 나고 뒤이어 천아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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