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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 회


31. 황서방의 함지이야기


보름달이 높이 솟았다. 마을은 고요했다. 련일 밤을 새운 고충경, 전주복, 김첨지 같은 사람들은 지금 자는중이였다. 서산은 사람들의 말소리를 따라 마을앞 버드나무밑으로 찾아갔다.

《대사가 서산대사라는이요? 좀 앉으시우. 늙은이가 수굴 합네다.》

떡돌이라기보다도 넓은 판석이라고 할만치 큰 돌우에 세넷이 둘러앉아서 술을 마시고있던 사람중의 한 젊은이가 이런 말을 했다.

《대사, 우리 같은 사람은 쓸모가 없소? 우리두 성안에서 쌀을 나르다가 저 친구가 어느 빈집엘 들어갔더니 이런 술방구리가 있더라구 가져왔길래 한잔씩 마시드랬소. … 자, 이 사람아, 자네가 술을 지구 온바에는 저기 남새밭에 가서 마늘두 몇밑 뽑아오게나. 그랬다구 누가 도적질했다겠나.》

그 젊은이는 돌우의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모두 땀이 밴 고의적삼에 망건도 안 쓴 머리의 뒤자부니가 어지러운 사람들이였다.

《그래봅세, 하던 이야기는 나 온담에 마저 하게.》

한사람이 동구앞 수수밭 못미처있는 바자둘러친 남새밭으로 갔다.

《대사두 좀 앉으시우. 지금 우리는 저 달이 함지같다는 이야기를 하더랬소.》

그 젊은이는 자리를 비켜서 자기네앞에 지팽이에 의지하고 서있는 로승에게 앉기를 권했다. 서산은 내주는 자리 한기슭에 걸터앉았다.

《우리 같은 사람은 쓸모가 없는가 해서… 그러지 않아두 우린 대사한테 물으러 갈래댔소. 자, 우선 한잔 드시우. 강술이라두 한잔씩 하면서 우리 이야기 좀 합세다.》

젊은이가 술보시기를 내미는데 서산은 좀 당황한듯이 말했다.

《소승은 차차 먹겠습니다. 그리구 우선 말씀이나 듣겠습니다.》

《그럼 내 저 달이 함지같다는 이야길 하리다.》

들었던 보시기를 들이킨 젊은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륙로문밖 선창에서 양덕, 맹산서 건목쳐오는 함지를 깎아먹구 살던 사람이요. 또 여기는 양덕, 맹산서 배루 내려오는 동나무랑 장작을 되받아지구 성안으로 다니던 나무장사군두 있소. 또 저 친구는(마늘을 뽑아가지고 오는 사람) 대동강물을 길어서 먹구살던 물지게장사요. 그런데 나는 이 란리통에 함지부자가 됐더랬소. 어떻게 함지부자가 됐던고 하니 함지장사 주인령감이 피란갈 때 저희 땅이 있는 촌에서 소랑, 작인들을 불러다가 와랑와랑 세간을 실어내는데 다른건 말할것두 없구 상목만 해두 동으로 실어내면서 나더러는 그 함지를 다 맡으라는거요. 십여년이나 부려먹은 나한테-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게 헤지는 판이라구 마지막으루 선심을 쓴다는거요. 인정이 그럴듯두 하지 않소? 정말 함지가 많기두 많았소. 선창뚝에 산더미같이 가려놨소. 아마 남들이 봤으면 부러웠을거요. 그래서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구 나두 좋은 낯하구 준다니 고맙다구 했소. 예, 알갔소? 그 많은 함질 다 받아놨으니! 그런데 말이요, 여기 누구 엊그제부터 성안엘 북나들듯 하면서두 그 건목친 함지를 하나라두 가져온 사람이 있소? 있으면 내 이제라두 가서 고맙다구 절하겠소. 아니, 내가 취해서 하는 말 아니요. 정말이요. 알갔소? 좌우간 그 많은 함질 다 받아놨으니 야단나지 않았소. 한편에서는 사창고가 터져서 와랑와랑 쌀을 져내지, 또 왜놈들이 장독댈 핥으라구 온 성안에 간장탕수를 내는 판인데, 그런데 떡 내해라구 이름지어놓은 함지가 산더미같이 있으니 속이 답답할노릇 아니요. 그냥 둬두면 왜놈들이 하다못해 때려서 불이라두 때기 좋을거란 말이요. 그건 나두 싫거든요. 그래서 불을 콱 지를가 했어두 그건 또 안될 일같구… 왜놈들이 보돌을 핥두룩 했으면 좋겠다구들은 하면서도 로적낟가리에다 불은 안 지르지 않소. 그래 나두 불은 못 지르구 생각하다 못해 강에다 처넣기루 했소. 한겻 품이나마 걸렸소. 그런데 내 십년나마나 함지를 다루어온 놈인데두 그때처럼 함지가 고운건 첨 봤소. 내 죽두룩 안 잊힐것 같아서 이런 말을 다 합네다. 자꾸자꾸 강물에다 처넣는데 그놈의 함지들이 가라앉지두 않구 큰것은 둥둥 뜨구 작은 놈은 동동 뜨구…

제기랄 놈의거! 가라앉지두 않구 자꾸자꾸 멀리루 떠내려가둑새 건목친 그놈의 함지들이 더 하야니 련꽃송이같단 말이요. 알갔소? 내 나 많지 않구두 별놈의 꼴 다 보지 않소. 글쎄 어드러니 그놈의 함지가 련꽃송이같아서 남을 울린단 말이요, 예? 나 주정으루 하는 말 아니웨다. 정말 눈물이 났소. 어처구니가 없지 않소. 그래, 그놈의 함지가 허리 잘록한 내 녀편네란 말이요? 눈깔 새까만 자식새끼란 말이요? 나는 리별할 처자식두 부모두 없소. 집두 없소. 오구칼이랑 함지깎던 잡은것두 내해가 아니댔소. 그건 다 주인두상태기가 가지구 저 갈데루 갔소. … 나는 지금 그것부터 대사한테 의논해보구싶소. 왜 눈물이 났나? 지금두 눈물이 나지만 모르갔단 말이요. 그저 분하기만 하단 말이요. 이렇게 성안에서 쫓겨나온것이 분하단 말이요. 그렇다구 평양을 통채루 떠지구 올 재간이 있긴들 하우. 어떡허면 좋단 말이요, 예? 대동강물을 한지게 져온다구 씨원하갔소? 그 잘난 장작을 져오란 말이요? 나는 함질 다 대동강에 띄워버렸소. 성안에 두고 온건 아무것두 없소. 그래두 분하단 말이요. … 자, 이번엔 한잔 드시우. 이렇게 쫓겨나서 쳐다보는 저 달두 대동강에서 남을 울리던 함지같단 말이요. 제기랄 놈의거, 이 무슨 꼴이란 말이요.》

이렇게 말을 맺은 그 젊은이는 손등으로 비분한 눈물을 씻으며 서산에게 보시기를 돌렸다.

《성씨가 뉘시오니까?》

서산은 보시기를 받으면서 나직한 말로 그 젊은이에게 물었다.

《내 성 말이요? 함지박이나 깎아먹는 나 같은 상놈한테 성씨는 다 뭐요. 천한 성이 황가요.》

《황씨?》

그의 성을 마음에 새기려는듯이 한번 뇌인 서산은 보시기를 옆의 사람에게 돌리며 말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오. 저 평양성을 잃게 된것을 그토록 분해하고 애석해하시는이가 바로 저 평양성의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이 나라의 주인! 그 얼마나 귀한이오니까. 저 평양성을 도루 찾고 이 나라를 도적질하러 온 왜적아수라들을 쫓아 물리칠이도 그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대사…》

황서방은 문득 목이 메는듯 말을 끊고 돌아오는 보시기를 기다려서 한모금 기울이고나서 말을 이었다.

《너무 과남한 말씀이요. 지나친 말씀이요. 평생 가다 처음 들어보는 말씀이요. 누구레 우리 같은 상놈한테 그런 말을 하긴들 했소. 그래서 더 역겨울만치 반갑구 기쁘기두 한 말씀이웨다. 그런데 대사! 대관절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뭐를 할수 있갔소? 우리 그 말씀 좀 들읍세다.》

《한평생을 산중에서 늙어온 중이 무어 아는것이 있습니까. 있다면 소승도 이런 국난을 당탁해서는 그저 산속에만 들어앉아있을수 없다는 정성뿐이올시다. 앞으로 할 일은 여러분 같으신이들과 널리 의논을 해야 할것이올시다.》

잠시 말을 끊은 로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 몇번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또 말했다.

《지금 말씀중에 성안의 곡식을 왜 그냥 두었느냐고 하신 말씀은 다시금 생각한즉 참으로 찔리는 말씀이올시다. 그런것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던것이올시다. 어리석은 생각에는 단지 우리 사람들의 땀으로 맺힌 곡식이 귀하고 아깝기만 했소이다. 이제 그 말씀을 들으면서도 아직도 한끝으로는 불을 지른다든가 하면 우리 사람들의 몸김이 식지도 않은 성내의 집들까지도 타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소이다. 차마 못한다는 불인지심때문이올시다. 그러나…》

서산은 돌아오는 술보시기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모금 입에 차게 마셨다. 그리고는 또 말을 이었다.

《이왕 지난 일이옵고- 모르기는 하오나 앞으로 그런 화공법을 써야 할 때도 미상불 있을것이올시다. 여기 같이 계셔주신다면 그때 가서는 여러분께 상의하게 될것이올시다.》

《대사의 말씀대로 우리 평양을 도루 찾을 일이라면야 무엇인들 못하겠소.》

젊은 황서방은 이렇게 말했다. (이들의 말은 후일에 그대로 한 언약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떡돌우의 이야기는 밤깊도록 계속되였다. 돌아오는 보시기를 조금씩이나마 사양치 않고 받은 서산은 칠십평생에 처음일는지도 모르게 큰 웃음을 웃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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