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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 회


30. 불씨는 살아있다


잡약산동네는 새벽부터 밥짓는 연기에 잠겼다. 한지잠을 잔 피란민들은 끼식을 끓이는것도 역시 저마다 부엌에서 할수 없었다. 혹은 어느 집 토지방밑에서 혹은 마당귀에서 또는 뒤산기슭에서 돌에다 솥을 걸고 식구끼리 모여앉아서 불을 지폈다. 솥가에 둘러앉은 어린것들은 밥을 기다려서보다도 우선 어머니가 만들고있는 불이 그리웠던것이다. 삼복여름이지만 밤이슬을 맞으며 한지잠을 자고난 새벽은 떨릴만치 춥기도 했다. 그러한 어린 자식들앞에서 어머니들은 소중히 간수해온 자루나 짚망태속에서 꺼낸 조그마한 화로에서 조심조심히 재를 헤집고 찾아낸 불씨를 부드러운 짚이나 새로써 만든 불기아리에 싸서 불을 만드는중이였다.

불씨를 불고있던 녀인네중에는 그득해진 눈물이 넘쳐흐르기도 했었다. 타기 시작한 불기아리의 내가 매워서만도 아니였다. 불씨가 살아있어주었다는것이 우선 반가왔던것이다. 지금까지 자기네 부엌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였다. 그렇게 덤비고 붐비고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해온중에서도 살아있는 불씨가 반갑고 고맙기까지도 했던것이다.

시집온이래 크건작건 한살림의 주부로서 시할머니, 시어머니의 대를 이어 간수해온 불씨였다. 설혹 먼 타향으로 떠나가는 경우라도 그 불씨는 소중한 이사짐중의 하나였다. 이때 풍속으로는 혹시 불씨를 떨구고 남의 집으로 불기아리를 들고 불씨를 얻으러 간다는것은 살림하는 녀인으로서는 개차반이라는 시비를 들어도 싼 일이였다. 그보다도 조상적부터 전래해오던 집안의 오랜 전통중의 하나를 제 대에 와서 끊어버린셈으로 크게 죄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비록 가난한 살림이라도 여러 대째 내려오는 불씨가 있다는것은 그 집의 지조를 말하는 한 자랑거리기도 했던것이다.

그렇듯 소중한 불씨를 지금까지 오래오래 간수해온 《우리 집》 부엌이 아닌 남의 집 마당귀에서 불고있거니 하면 처량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불씨가 살아있다. 희망이 약속되는 길조(좋은 일이 있을 조짐)같기도 했다. 검은 연기속에서 펄떡 불길이 일어났다. 둘러앉았던 어린것들은 처음 보는 신기한 일이나 같이 기뻐한다. 이러한 가지가지의 느낌으로써 눈물이 나기도 했던것이다.

이같이 각각 소중히 간수해온 불은 있었다. 그러나 물이 없었다. 들이밀린 피란민들때문에 불과 십여호에서 먹던 우물은 금시 바닥이 드러났다. 이 잡약산동네만이 아니라 옆의 미럭당동네와 뒤의 서재골동네에서도 물가난이 들었다. 고향을 빼앗긴 사람들의 간고한 생활은 우선 물가난으로부터 시작되였다고도 할것이였다. 미리 손을 써서 밤물을 길어두지 못했던 사람들은 보통강까지 가야 했다. 미럭당앞에 곁갈래 강줄기가 하나 있기는 하나 오랜 가물에 오다가다 조금씩 고인 웅뎅이의 죽은물뿐이였다. 먹을 물을 구하자면 원줄기 보통강까지 가야 했다. 평양성밑까지 다가지는 않지만 3리가량은 가야 했다.

차돌이 어머니와 같이 보통강물을 길어온 보패는 칠성이네 집 부엌에서 불을 만들고있었다. 오라버니가 하라는대로 차돌이 어머니를 따라서 이 동네로 오게 되였던 보패는 칠성이 어머니가 서산대사를 위해서 치워놓았던 건넌방 한칸을 얻어서 몇몇 녀인들과 같이 들어있었다. 저의 조상이 개성에서 이사해올 때 가져왔다는 불씨로 불을 만들어서 아궁이에 지폈던 보패는 불덩이를 골라서 다시 불씨화로에 담고 부뚜막에 가려놓았던 옛날 돈 열잎을 마치 밤이라도 굽듯이 불덩이속에 집어넣었다. 해동통보니, 삼한통보니 하는 글자들을 새긴 고려시대의 엽전은 보패가 제 주머니끈에 달았던것과 늙은이들의 주머니귀를 털어서 모은것이였다. 그 고전으로 눈에 쓸 약을 만드는중이였다. 여름철이라 눈을 앓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도 칠성이 어머니는 본시 여름이면 앓던 눈인데다 며칠째는 눈물로 지내온만치 더욱 심했다. 그들을 본 서산이 보패에게 초약방문을 가르쳐주었다. 불속의 엽전들이 빨갛게 달았을 때 차돌이 어머니가 애기어머니들의 젖을 얻어가지고 왔다.

《그새만 해두 잘 먹지두 못하구 고생들을 해서 저마다 젖이 다 발라서…》 하는 차돌이 어머니는 여러 애기어머니들이 돌림몫으로 짜주더라고 하면서 한숨을 지었다. 젖보시기를 받아든 보패는 저의 형님이 해산했을 때마다 이웃집 애기어머니들의 젖을 얻어다가 갓난 조카의 입에 떠넣어주던 생각이 났다. 어드러면 젖빛같다고- 또 어드러면 젖줄이 헤운다고도 하는 젖에다 빨갛게 단 엽전을 집어넣기가 안되기도 했다. 재를 불어가며 한잎씩 집어넣는 보시기의 젖은 마침내 끓었다. 조반후에는 눈앓는 사람들이 모여왔다. 눈뿐아니라 그새만 해도 앓는 어린것들이 많아졌다. 어머니들은 손쉬운 초약방문을 물으러 서산대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서산은 바자밖으로 내다보이는 마당귀 도랑기슭에 얼마든지 있는 풀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또 어제 아이들과 같이 뒤산에서 뜯어다가 담모퉁이에 걸어두었던 약초를 내주기도 했다. 서산이 가르쳐주는 약방문은 모두 손쉽게 할수 있는 단순한것들이였다. 이때 글하는 선비치고 항용 돌아가는 약방문 한장 못 내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서산은 그중에도 민간약처방과 같은 단순소박하면서도 벼락같이 맞는 단방약들에 정통했다.

조반이 끝나고 불씨를 다시 간수한 가족들중에는 이 마을을 떠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서산을 따르던 어린것을 데리고 와서 작별인사를 하는이들도 있었다. 혹은 사창고의 쌀을 마치 서산이 준것이나 같이 치하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는 이제 가족들을 피란시킨 후에는 저만은 다시 서산을 찾아오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정작 작별하게 된 어린것들을 보는 때의 로승의 태도는 퍽 랭담한듯도 했다.

《이놈아, 스님한테 저는 갑니다 하구 인살 해야지.》

어떤 사람들은 짧은 머리채가 달린 어린 놈의 머리를 눌러서 인사를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서산은 마치 끊임없는 영겁의 륜회에 리별이라는것이 따로 있긴들 하랴 하는듯 《오냐.》 소리도 하지 않았다.

《혹시 칼 같은데 상했을 때에는 말씀이올시다…》

서산은 묻지도 않는 단방약을 어른들에게 말해줄뿐이였다. 언제 어데서 적의 창칼에 상하게 되는 일이 있을는지도 모르기때문이였다.

이 부근마을들에서 평양성안으로 드나들던 사람들은 이날 낮이 기울자부터 다 돌아왔다. 고충경이이하 성안에서 묵고있던 사람들도 이제는 곧 돌아가게 될터이므로 저녁밥을 보내지 말라고 했다.

을밀대와 암문에서 건너다보이는 모란봉 금수산일대에서 지금까지 되는대로 흩어져있던 왜적들은 대렬을 정돈할뿐아니라 성안에 대고 맹렬한 조총사격을 시작했다. 이제는 평양성으로 들어올 기세를 보이는것이였다.

보통벌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끊어졌다. 그대신 이쪽 보통벌 주변산기슭에 널려있는 부락들에서 뒤산을 넘거나 골짜기로 빠져서 서북쪽으로 흩어져가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아졌다. 이제 평양성으로 들어간 왜놈들은 반드시 이 근처의 부락들을 습격하고 략탈할것이기때문이였다. 벌써 놈들이 대동강을 건너서는 길로 모란봉 금수산기슭의 작은 촌락들을 불지르고 가축을 빼앗고 우리 사람들을 죽였다는 소문이 전해왔다. 그곳 부락들은 물론 십리벌을 사이에 둔 이 부근의 마을들도 사람들이 다 떠나서 완전히 비게 된 동네가 많았다. 이 잡약산동네에서도 피란민들이 많이 떠났다. 로약자들이 더 많이 줄었다.

저녁때부터 보통문, 칠성문의 루각들과 그 좌우의 성첩들에 드문드문 늘어서게 된 만장같은 왜적의 기발이 빈 십리벌을 불어오고 불어가는 석양바람결에 펄럭이기 시작하면서 임진년 6월 15일은 저물어갔다.

우리 조국강토를 강점하고 우리 인민을 멸종시키고 내지는 대륙에까지도 그 독수를 뻗쳐보려는 야망으로써 불의의 군대를 일으켜 우리 강토를 피로 적시면서 이곳까지 진격해온 사무라이 일본침략군이- 그중에도 특히 이 길을 자원해서 택해왔던 소서행장수하의 일본군이 평양성을 점령함으로써 십상팔구 조선정복은 완전히 끝내고 또 뒤이어 명나라로 쳐들어가게 되리라고- 그래서 누구보다도 원훈수공(나라를 위한 가장 큰 공훈)을 세우게 되리라는 큰 기대와 욕심을 가지고 왔던 그들이 벼르고별렀던 평양성을 무혈점령하게 된것을 기뻐했던가? 혹은 락담했던가? 하는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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