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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회


26. 사창의 쌀이 터졌다


맨상투바람의 한 젊은이가 땀을 철철 흘리면서 지고 온 짐을 내려놓으며 《여기서는 성안에 쌀 가지러들 안 가시우?》 하고 말했다.

《성안에 쌀을 가지러 가다니 무슨 말이요?》

《모르구들 있소? 사창고 군량쌀이 터졌소. 저것들 좀 보소. 다들 쌀섬들을 지구 오지 않소. 나두 세간나부랭이를 꾸려가지구 오다가 사창고가 터졌다길래 짐은 녀편네들한테 끌구라두 오라구 맡기구는 우리 형제는 다시 들어가서 한섬씩 져내오는 길이요.》

말을 듣고본즉 보통벌에 널린 사람들이 지고 오는 짐모양들이 과연 아까와는 달라졌다. 지게뿔에 기름소용을 달아맨 세간이나 이불보퉁이 같은것이 아니라 누런 섬거적들이 많았다. 또 여기저기 길가에는 지고 오던 세간짐을 녀인들과 아이들앞에 부려놓고는 성안으로 부산히 되돌아가는 남정들이 많았다. 빈몸으로 가는 그들중에는 뛰다싶이 하는 사람도 많았다.

《군량쌀이 터지다니 어떤 놈이 한짓인가?》

늙은 가마구비봉군 오장이 묻는다기보다도 펄쩍 뛰다싶이 고함을 질렀다.

《아무리 란시기로서니 그럴법이 있나. 자작 무법천질 만드니 란민들이 아닌가?》

《…》

《대체 어떤 놈이 먼저 그따위짓을 했다던가?》

그는 창대끝으로 호되게 또 한번 땅을 울렸다.

그러나 맨상투바람의 젊은이는 그 말에는 대답을 않고 《여기서 좀 쉬여가자.》 하며 뒤따라온 동생의 쌀짐을 받아놓으며 말했다.

《어떻게 할가? 이번에는 이사짐을 가져오자니? 또 성안에 들어가서 쌀을 한번 더 져오자니?》

《형님두, 원! 이왕이면 쌀을 한섬이라두 더 날라와야지. 남들은 지금두 자꾸 성안으루 들어가지들 않소.》

동생인 총각이 더 극성인듯 했다.

《그럼 그러자.》

형제의 의논이 맞았다.

《하! 오늘 전주머구랑 법근이랑이 본사있게 큰손 쓰던데-》

소매끝으로 얼굴의 땀을 문지르고난 총각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하는 말이였다.

《큰손을 쓰다니 사창고를 그자들이 터쳤단 말인가?》

늙은 봉군이 또 어성을 높이며 물었다.

《전주머구라니- 일전에 행궁앞에서 량반 태질하던 씨름군말인가?》

누구는 또 이렇게도 물었다.

《예.》

《돌중놈 법근이는 혹시 그럴 놈이지만 전주복이 같은 량민두 그래?》

《주머구가 욀루 한몫 더 하던데요. 창문을 쫙 열어제끼구는 어서들 한섬씩이라도 더 가져가라구 제손으로 지워주구, 짐바없는 사람은 짐바하라구 몇천필 쌓아놓은 무명을 쫙쫙 찢어서 주기까지 합디다.》

《저런, 죽일놈들이 있나. 창에 쟁여둔 나라상목을…》

《그래서 처음엔 우리두 다 얼떨떨했어요.》

이번에는 그 형이 말을 받았다.

《웬일인지 몰라서 사람들이 묻습디다. 그 사람네 대답이 우리 농사군의 농량까지두 다 긁어들인 곡식인데 그냥 두면 왜놈의 살이만 할게 라구, 어서들 가져가라구 하더군요.》

《그자들이 저희 욕심 채우노라 하는짓 아닌가?》

《그러지 않아두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인가구 묻는 사람두 있습디다.》

《그래서?》

《전주복이랑 대답이 서산대사라나요? 서산이라는 도승이 시켜서 하는 일이라구 합디다.》

《뭐? 서산대사! 저 향산 어느 절에 있다는 중말인가? 산속에 있는 중이 그런 일을 시켰다는것두 모를 말이지만 또 그런 중놈이 나라재물에 무슨 상관이 있다구 당한 소린가?》

《여보, 좀 가만계시우. 당한 소리건 아니건간에 정말 그랬다면 그 서산이라는 중이 사람 살릴 공론을 낸것 같소.》

이때까지 사람들의 말을 듣고만 있던 돈정신이가 늙은 봉군의 말을 가로막듯이 말했다.

《빈손만 들구나섰던 우리는 나부터두 시재 굶지 않게 됐소.》

《돈서방, 그럼 우리두 들어가볼가요?》

《들어가다마다! 하다못해 길량식거릴 가져와두 어데요.》

피란민들이 이런 말을 하는중에 《지금 가두 쌀이 있갔소?》 하고 어떤 농군은 이렇게 묻기도 했다.

《있다뿐이요. 사창앞에랑 넓은 마당에랑 산더미같이 로적해둔 겉곡은 말할것두 없구 창안에 있는 쌀만 다 져낼래두 아직 멀었소.》

《그럼 우리두 가세.》

《우리 농군은 군량미로 바쳤던 우리 쌀 찾아오는 폭이네.》

《지금 그런거 따질게야 있나? 그냥 뒀다가 왜놈의 살이 하느니 우리 사람이 먹는것만 해두 크지.》

제각기 이런 말을 하면서 일어서는 농군들중에는 《이제 성안에 들어가두 무사할가?》 하고 의질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중 법근이가 영명사 중들을 데리구 을밀대랑 그 근방의 성랑에서 망을 본다는데 왜놈들이 아직두 동대원에서 자리를 뜨는 기색이 안 보이드랍디다.》

쌀을 지고 온 젊은이의 말이였다.

《중들이 망을 봐요?》

《절이 무너지자 중놈들이 쓸어나오듯 한다더니 란이 나자 중들이 웬일이야?》

그들은 이런 말을 하면서 웃기도 했다. 돈정신과 피란민 몇이는 가족들과 짐들을 이 동네에 남겨두고 먼저 떠났다.

이 동네에서도 짐을 질수 있는 남정들은 다 성안으로 들어갈 차비를 했다. 혹은 지게를 지고 혹은 짐바만을 들고 혹은 뒤산기슭에 매두었던 소를 끌고 왔다. 모두 고의가랭이들을 가뜬히 걷어올렸다. 또 먼길을 떠나는 사람을 배웅이나 하듯이 녀인네와 아이들까지도 버드나무아래로 모여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긴장한 빛이 뵈였다. 이런 때 성안에 들어가서 무사할가? 하는 불안과 그러나 이제 먹을것이 생긴다! 하는 기대가 그들의 마음속에서 다투는듯 한 긴장이였다.

《사창의 쌀이 터졌다!》

《성안으로 쌀 가지러 간다!》

이런 말이 이 동네에서뿐아니라 보통벌에서도 오구자하니 떠들어오는듯도 했다. 보통벌에서는 확실히 먼지가 더 많이 떠올랐다. 그속에서 활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남들은 다 가는데 우리는 갈 사람두 없구나.》

모여선 사람들중에서 문득 이러한 녀인의 넉두리가 들렸다.

그 녀인은 품에 안은 갓난것에게 속이 다 빠진 베개같이 시들은 젖을 빨리고있었다. 아까 칠성이의 고의가랭이를 붙들고있던 어린 사내놈과 또 그보다 더 어린 계집애가 그 녀인의 몽당치마자락을 부여잡고 붙어서있었다. 그들옆에서 역시 등에 업은 어린것을 추석거리던 칠성이는 고개를 숙이고 신도 안 신은 발가락으로 땅바닥을 후비적거리고있었다. 그러자 메마른 땅의 복닥복닥 보풀이인 누런 봉당을 점점이 적시는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이때 서산이 그들한테로 가까이 갔다.

《댁에두 쌀이 좀 올것이올시다.》

녀인은 그를 한번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로승이 자기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로승의 말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잠시 이야기거리가 되여 웃기도 했던 로승의 말과 그의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놀라기도 했다. 십여명의 중이 쌀섬들을 지고 오는것이였다.

《네 이름이 칠성이라지? 칠성아, 너 저 쌀 지고 오는 중들을 너의 집으루 모셔다드려라.》

로승의 지시에 따라 십여석의 쌀이 다 씨그러진 보통벌머사니네 집 바자안으로 들어가는것을 보는 사람들은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대사, 대사가 서산대사라는이 아니요?》

가마구비연대 오장이 나서서 물었다. 그는 《그럴법이 있나!》 하는 의분에 북받쳐 한때 기승을 부리듯 했으나 더 들어주는 사람도 없이 모두 쌀을 가지러 성안으로 들어가노라 부산한통에 할 일없이 한옆에 비켜서있을뿐이였다. 그렇다는 뜻으로 합장하고 허리를 굽히는 로승앞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무심히 보았던 로승을 다시 자세히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대사, 나는 이 동네서 늙어온 김가성쓰는 농군이요.》

늙은 농군이 서산앞으로 와서 말했다.

《대사의 덕으루 우리 동네 걱정거리던 한 집 식구가 살게 됐소. 우리 동네사람이 다 한시름 덜었다구두 할수 있소.》

이렇게 치하하는 로농에게도 서산은 역시 합장할뿐이였다. 쌀을 가지러 가는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늙은 봉군도 젊은 봉군과 같이 성안으로 들어갔다. 동네는 다시 조용해졌다. 조용한중에 《웬 일인지는 몰라두 아이새끼들이 시재 굶지는 않게 됐나부웨다. 아이고, 아이고-》 하며 새롭게 곡성을 터뜨린 녀인의 넉두리가 들렸다.

서산은 떡돌에 걸터앉아있었다. 두손으로 지팽이를 비스듬히 뉘여짚고 앉아서 길고 흰 눈섭으로 완전히 눈을 내려덮고 조으는듯 한 그는 이따금 손을 들어 귀를 후비면서 아직도 동탁한 맛이 있는 볼과 턱을 움직여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마치 누가 하는 자기 왼공론에 입이 쓰겁기라도 한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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