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5 회


25. 잡약산마을의 서산


산마루에 돌로 쌓은 연대(봉화대)가 솟아있는 잡약산밑에는 산기슭을 따라가며 남향 혹은 동남향으로 창과 문을 낸 십여호의 농가들이 외벌줄로 놓여있다.

서산대사는 이른아침부터 동네앞에 늘어선 버드나무밑의 큰 떡돌 한 기슭에 걸터앉아있었다. 동남쪽으로 바라보이는 평양성밑까지 십리폭이나 되는 보통벌은 새벽부터 피란민들과 이사짐바리들로 덮였다.

사람들과 마소들의 발길에 일어나는 티끌로써 하늘은 흐리고 내려덮이는 먼지로써 련일 폭양에 시들었던 곡식들은 푸른빛까지도 잃었다.

보통문, 칠성문으로 쏟아지듯이 쓸어나오는 사람들! 어제 밤까지도 일만 일천여호나 되는 집집에서 살아온 7만~8만명의 평양사람들이 일조에 집과 생활과 생계를 버리고 산지사방 흩어지는중이다.

이제 평양성은 비게 된다. 서경 평양성이 무너지는것이다. 그 성첩과 문루와 그안의 관아와 전각들과 민가들은 아직도 그냥 서있고 남아있다. 그러나 그런것들로써 평양성이 그냥 남아있다고는 할수 없다. 그안에서 생계를 세우고 생활을 유지해온 사람들이 다 없어짐에 따라 그 성도 무너진다고 할것이다. 이제 그 주인들이 비우고 나가는 평양성은 적들의 유린에 맡겨질것이다.

지금 저마다 창황히 떠나가면서도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는 평양사람들은 이때같이 자기네가 이 성의 주인이였다는것을 느껴본적은 없었을것이다. 지금까지의 그들은 성안에 있는 한채의 집 혹은 한칸 세방살림의 주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자기네가 이 성을 떠나게 되는것에 그같이 애석하고 분하고 수치스럽고 무거운 책임감까지도 느끼지 않을수 없는 이들은 실은 자기네가 이 성의 주인이였던것을 깨닫게 된 까닭이였다. 지금 걸음마다 돌아보는 수만수천사람의 가슴속에 이 평양은 아름답고 정든 내 고향이였다. 혹여 어떤 사정으로 몇몇 집이 이사해가는 길이라면 모를가, 너나없이 송두리채 우리 평양에서 떨어져나게 되는것은 우선 분한 일이였다.

왜 우리는 우리 평양을 지키지 않고 떠나는가?

우리가 이 성으로 다시 돌아올수 있을것인가?

이제 왜적들이 저의 천지나 같이 탕을 치고 판을 치게 될 이 성이 그대로 남아있기나 할것인가?

지금 우리 사람들은 나부터도 이 성에서 빠져나가기만 위주니 이다지도 사람이 없단 말인가?

피란민들은 각기 이고 질수 있는 정도의 세간을 꾸린 보따리에 목과 등어리를 짓눌리면서 또 이러한 공통적인 비분과 수치감과 책임감으로써 마음까지도 짓눌려야 했다.

이 성에서 떨어져난 이 많은 사람들이 너나없이 다 어데로 갈것인가?

이 성을 빼앗긴 우리는 언제까지나 떠돌아다녀야 할것인가?

어데로 가야 생명을 부지할것인가?

아이들은 울었다, 로인들은 신음했다, 녀인들은 흐느꼈다. 저도 모르게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장정들은 이가 갈렸다. 사람들은 자기네 등뒤에 창칼과 조총부리를 겨누고있는 왜적들을 저주했다. 복수욕에 불탔다.

그들의 이렇듯 비분한 격정은 하나의 조국애의 감정이라고도 할수 있는것이였다.

이 준엄한 국란은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공통적인 커다란 감정을 낳게 했던것이다. 360여년전의 일을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것은 단지 상상으로써만 과장해서 말하는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이였다. 이때만의 사실이 아니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러한 경우에는 이러한 감정이 인민속에 탄생되는것이다.

오직 이때에는 《이렇게도 사람이 없단 말인가!》 할만치 인민들의 이러한 복수욕과 비분과 책임감과 서로의 동정과 련민의 정을 바로 인식하고 그것을 수습하여 하나의 커다란 력량으로 엉키고 뭉치게 할 사람들이 없었을뿐이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한낱 칠령팔락한 피란민으로서 흩어지게 되였던것이다. 왜적의 손에 죽지 않기 위하여, 또 왜적에게 굴복하는 수치를 면하기 위하여…

물론 이것은 민족적수난이였고 패전국민의 비극이였다. 그러나 이 수난,이 비극속에서도 우리는 조선사람의 자존심과 강의성과 적에 대한 반항과 증오를 찾아볼수 있는것이다. 이때의 평양사람들은 자기네의 집과 살림과 생계와 선조때부터의 모든 노력의 결과가 담겨있는 성을 내놓을망정 결코 적의 노예로서 남아있으려고는 안했다. 원쑤와는 잠시라도 한성안에서 같이 살기를 원치 않는 그들은 송두리채 떠났다. 그럼으로 해서 이 비극은 더욱 거창하고 비장한것이였다.

서산대사는 이 수많은 비극의 주인공들속에 휩싸이고 부대끼며 여기까지 나왔다. 피란민중에 혹시 어떤 녀인의 등에 업힌 어린것이 손에 들었던 누룽지덩이를 떨어뜨리고 울더라도 그것은 이러한 비극속에서는 응당 울지 않을수 없는 한 주인공의 통곡으로 들으면서…

이 잡약산마을에서도 곡성이 났다.

서산은 그 유난히 긴 눈섭이 하얗게 센 늙은 중을 구경하려고 자기앞으로 모여든 동네아이들중에서 곧 보통벌머사니의 아이들을 알아볼수 있었다. 사내앤지 계집앤지 모를 두세살짜리 어린것을 업은 사내아이와 또 그애의 고의가랭이를 한손으로 부여잡고 서있는 대여섯살짜리 사내놈의 얼굴에는 마치 모진 폭풍에 불려서 어덴지 모를 땅에 떨어지기라도 한듯이 불안과 공포와 고독감에 질린 표정이 비껴있었다. 저의 마을에서, 저의 동무들사이에서 그렇다는것은 그애들에게는 큰 불행이 있다는것을 말하는것이다.

《너 몇살이냐?》

서산이 큰아이에게 물었다.

《아홉살? 동생이 몇이냐?》

《나까지 다섯이야요.》

《형이나 누님은 없느냐?》

《없어요.》

그애와 로승이 이런 문답을 할 때였다.

《칠성이 얘네 아버진 죽었어요.》

《얘 아버진 이 동네 머사니댔어요.》

《칠성이 아버진 어제 밤에 싸움에 나갔다가 왜놈한테 죽었대요.》

옆에 있던 애놈들이 묻지도 않은 말을 목청을 돋궈서 떠들어댔다. 칠성이는 부끄러운 일이라도 당한듯이 제옆에 더욱 붙어서는 동생의 손목을 잡고 돌아섰다. 그애들이 들어가는 삽짝문옆의 울바자가 다 헤벌어지고 씨그러진 그 집은 더욱 쓰러져가는 인상이였다.

서산은 지금의 칠성이의 뒤모습에서 60여년전의 자기를 돌아보는듯도 했다.

아명을 운학이라 부르던 서산은 아홉살때 부모를 여의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50이 다되여서 만득자로 태여난 운학은 형도 동생도 없이 혈혈단신의 고아가 되였던것이다. 평안도 안주의 어느 한 마을의 동네에서 한 가난한 선비로 살아온 그의 아버지 최세창은 어린 아들에게 초가집 한채와 몇이랑의 터밭과 몇권의 책을 남겨주었을뿐이였다. 그때의 슬픔과 고독감을 서산은 지금도 아픈 감각으로써 회상한다.

그러나 운학에게 한 은인이 나타났다. 리사중이라는 안주고을의 사또였다. 한성사람인 리사중은 이 고을 사또로 있는 동안에 자기 고을에서 글 잘하고 행세 조촐한 선비 최세창을 존경하여 친교를 맺게까지 되였던것이다. 따라서 그는 최세창의 아들 운학을 귀엽게 보아왔었다. 어린 운학의 총명한 재질을 귀히 여겼던것이다. 엳아홉살밖에 안된 어린것이 몇자 배우지 않은 한문자를 모아서 시를 짓노라는것이 우선 신통했던것이다. 언젠가 첫눈이 왔을 때 어린 서산이 《천리강산》에 《설약화》라고 지은 글귀는 지금까지도 전해오고있다. 글이 잘돼서라기보다도 서산이 어릴적부터 그만치 총명했다는것을 말하는것이기때문이다.

리사중은 어린 고아를 한성으로 데리고 가서 공부를 시켰다. 서산이 열살때였다. 본시 글읽기를 좋아했던 운학은 어린 소견에도 남이 자기를 그같이 거두어주는것은 자기에게 한끝 촉망하는바가 있기때문이라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과거를 보았다. 그러나 두번씩이나 락방이 되고말았다.

과거제도는 본시 전국의 선비들이 글과 재주로써 경쟁하여 하나의 인재로 국가의 인정을 받아 출세의 길로 나가는 등룡문이였다. 그러나 이 당시의 과거는 최운학이같이 보잘것없는 시골의 한미한 집 자식에게는 너무도 좁은 문이였다. 글과 재주의 경쟁이 아니라 문벌과 세도내기였고 또 뢰물로써 출세의 길을 흥정하는 장터였다.

운학은 그러한 출세의 길을 단념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면 무엇을 할것인가.

이 당시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량반이 못되는 량민(주로 농민)의 자식들은 군역이라는 종신적부역과 호포, 전포, 군포라는 명목으로 가렴주구되는 세납으로 피를 짜내도 모자라는 착취를 받으면서 그냥 량민노릇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화적패가 되거나 또 그렇지 않으면 중이 된다는것이다. 량민노릇을 하기가 그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짐작할수 있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들수 있다. 제13대 왕 명종(선조의 바로 전의 왕)초년에 어린 왕 명종을 대신하여 정사를 본 문정왕후의 비망록의 일절이다.

《량민이 날로 줄어서 군졸을 모아들이기 지금같이 곤난한적은 없다. 그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백성들이 군역의 고통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군역을 피할수 있는 중이 되므로 중은 날로 늘어가고 군사로 충당할 량민은 줄어가니 지극히 한심한 일이다.》

서산대사도 이런 시대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18살때에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머리깎고 중이 되였다.

우리는 지금 그때의 서산이 중이 되지 않으면 안되였던 사정이나 또 그가 중이 되려고 한 까닭을 자세히는 알수 없다. 이미 중이 되였거나 혹은 되기 직전의것이라고 할수 있는 그의 시 한구절을 찾아볼수 있을뿐이다.


흡수귀래홀회수 청산무수백운중.

《물을 길어오다가 문득 돌이켜보니 무수한 청산이 구름속에 묻혔고나!》 하는 이 시에서 우리는 한폭의 웅장한 풍경을 보면서도 일종의 허무감을 느끼게도 된다. 작자인 서산이 그 웅장한 자태를 제대로 드러낼수 없이 구름속에 묻혀있는 여러 메부리중의 하나를 자기자신에게 비겨본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비장충천 명장경인》하리라는 만만한 자신과 청운의 뜻을 단념할수밖에 없어 산속에 묻히고마는 젊은이의 허무감을…

부패하고 암흑한 봉건시대에서 자기의 재질을 믿고 만만한 포부를 가지면서도 량반이 못되고 권력과 재산이 없기때문에 자기의 포부를 펴볼 길이 없이 속절없이 썩고마는 그 당시의 젊은 재사들로서 이러한 허무감에 시달린것이 어찌 최운학이뿐이였으랴.

그러나 젊은 운학은 시들지도 타락하지도 않았다. 금의옥식에 싸인 권문세가의 자식들이 백성의 등골을 뽑아먹는 권력의 길로 출세를 한다면 자기는 한벌 칡베장삼에 솔잎과 느릅나무껍질을 먹으면서라도 높은 선지식과 고결한 덕행을 쌓음으로써 명성을 떨쳐 만인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리라고 결심했던것이나 아닐가?

중이 되여 입산수도한다는것은 그 당시의 운학이와 같은 처지의 젊은이들로서는 공부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중이 된 그는 젊은 정력과 심혈을 공부에 기울였던것만은 사실이다. 《불가의 경전은 물론 유교와 선도의 경전과 제자백가서에 이르기까지 통하지 않은바가 없었다.》, 《대장경을 다 읽고나서 향을 사르며 또 주역을 읽었다.》는 그의 회고담으로도 짐작할수 있다.

그는 수련을 쌓음으로써 벼락이 머리에 떨어져도 태연하고 부귀가 오더라도 오불관언할수 있는 사람된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것은 그 당시에 만인이 다 수긍할수 없는 권력에 대한 반항의 길이기도 했다. 엊그제 련광정앞에서 마음속으로나마 격분을 토로했던것이 이러한 의식의 잠재였을지도 모를것이였다.

서산은 젊어서부터도 계행이 각근한 중이였다. 《망아겸망세》로 공부하기에 자기를 잊고 세상까지도 잊었던 그는 이성에 대한 애욕 같은것은 생각할 여념도 없었다. 또 그동안에는 초근목피도 구할수 없는 겨울에 궁벽한 산속, 퇴락한 암자에서 등불도 없는 긴긴밤을 기한으로 떨며 지난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한 간고한 노력의 결과는 그로 하여금 벌써부터 글 잘하는 시승으로, 덕행이 갸륵한 선승으로 명성을 떨치게 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어두운 밤하늘 어느 한 귀퉁이에서 반짝이는 하나의 별빛 같은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는 했으나 세상을 밝힐수 있는 광명으로 빛나는 이름은 물론 아니였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일왈 그는 세상사람과는 관계가 없는, 말하자면 세상사람에게 아무러한 영향도 도움도 줄수 없는 산속의 한 중이였기때문이였다. 서산자신도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십년 적공과 고행의 결과로써 얻은것은 한낱 빈 이름뿐》이라고 자탄한적이 있었다.

우선 그는 고독한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따라서 랭철한 사람이 아닐수 없었다. 70여살 한평생을 가정을 가져본적이 없는 그에게는 자식이 있을리 없다. 어린애를 가져본적이 없고 길러본적이 없고 가까이할 기회조차도 없는 사람은 자연히 랭담한 사람이 될수밖에 없는것이다. 그런 사람은 우선 많이 웃을 기회를 못 가진다. 또 자신 이외의 사람을 위해서 마음아파할 기회조차도 가질수 없기때문이다.

귀여운 어린 자식을 보는 부모는 까닭없이 웃을 때가 많다. 까닭은 없으나 속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다. 그런 웃음을 많이 웃을수 있는 사람은 자연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자신 우선 행복하다. 그러한 행복을 못 가진 사람은 그만치 따뜻한 마음을 가질 기회도 적다고 할것이다. 서산대사 역시 그 례외일리가 없었다. 더우기 만법개공이라는 무상관세(세상만사가 덧없고 항상 변화한다고 보는 관념)의 눈으로써 보면 세상에는 웃을 일도, 새삼스럽게 감격할 일도, 놀랄 일도, 저퍼할 일도 없으며 또 없어야 한다는 선승의 수련을 쌓아온 서산은 반세기동안 웃을 일도 별로 없었거니와 더우기 울어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한 서산이 오늘 새벽에 울었다. 그뿐아니라 피란민중에 끼여서는 누룽지를 떨어뜨리고 우는 어린것의 울음까지도 응당 그렇지 않을수 없는 통곡으로 느꼈다. 이러한것은 실로 그가 50여년만에 처음 당하는 마음의 큰 동요였다.

서산은 이때까지 자기를 랭정하다거나 랭담한 사람이라고 생각한적은 없었다. 일체 중생을 사파고해에서 제도하려는 불보살의 대자대비를 곧 자기의 마음씨로 하여 길가의 개미 한마리도 밟지 않으려는 자기가 랭정랭담한 사람일리가 없었다. 그는 또 일찌기 자기를 독선적인 거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보살경의 계행을 지켜 일체 중생은 누구나 다 불성을 가졌고 따라서 다같이 성불한다는 생불일여(중생과 제불이 그 천성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는 뜻)의 견지에서 만인앞에 합장하고 머리를 숙여왔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에 대해서 거만하지도 랭담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같이 자신해왔다.

그러나 오늘 그가 흘린 뜨거운 눈물은 이러한 그의 자신을 부인했다. 자기의 가슴속을 뜨겁게 씻어주는듯 한 그의 눈물은 이때까지의 자기는 그 얼마나 랭철한 사람이였던가를 스스로 깨닫게도 했던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깊은 산중에서 일체 중생을 위하여 념해왔다. 그러나 아무도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는 높은 법당에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법을 설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를 도와준적은 없었다. 생각컨대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더우기 놀라운 일이 있다.

자기는 50여년동안을 벼락이 떨어지더라도 혹은 뜻하지 않은 부귀가 굴 러들어오더라도 끄떡도 없는 사람된 사람이 되리라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어제 밤의 그 많은 사람들! 그중의 이름을 알수 있는 사람만으로도 임욱경, 갑손이, 보통벌머사니같이 그토록 순순히 대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길로 서슴지 않고 나갈수 있을것인가! 대의를 위해서 소아(자기)를 그렇게 대담히 버릴수 있는 수련을 그들은 언제 쌓았던것일가?

스스로 모든 집착에서 해탈한 선승으로 자처해온 서산은 그 사람들앞에서 자기는 한낱 공념불 구두선승(명색이 중이라는것)에 지나지 않는것 같이도 느껴졌던것이다.

이때의 서산은 사랑이 그리웠다. 막연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념하기보다 단 한두사람이라도 좋았다. 그들을 위하여 자기의 여생을 바쳐 도와줄 사람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그립기도 했다.

서산은 어제 밤에 우연히 혹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무시(불교에서 암만 거슬러올라가도 그 처음이 없음.)로부터 내려오는 륜회(차례로 돌아감.)중에 전생에서 맺어진 인연으로 만나게 되였을지도 모를 (로승은 이렇게도 생각했다.) 보통벌머사니가 남기고 간 고아들을 찾아서 그들을 도와주고 보호해주고싶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보통벌머사니의 집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난데없이 한 늙은 중이 찾아간댔자 그들에게 무슨 위로가 되랴.

《김오장! 연대 오장 있나?》

《누구요?》

《상게두 연대에 있나?》

《글쎄 누구요?》

《나야 나. 가마구비연대 오장이야. 좀 내려오라구.》

《아니, 어떻게 왔소? 왜놈이 성안에 들어왔소?》

《글쎄 좀 내려오라구.》

《예, 내려갑네다.》

하나는 아래서 부르고 하나는 산꼭대기의 연대에서 대답하는 고함소리에 서산은 눈을 떴다. 어제 밤부터 뜬눈이던 서산은 자기를 구경하러 둘러섰던 아이놈들이 흩어져 조용해진 틈을 타서 옆에 있는 짚낟가리의 짚단을 의지하고 잠시 눈을 붙였던것이다.

눈앞에 우뚝 서있는것은 당홍동달이 야청군복에 시꺼먼 산수털벙거지를 쓰고 대목에 붉은 상모가 달린 창대를 세워짚은 한 군총이였다. 흰 털이 드문드문 섞인 숱많은 구레나룻을 한손으로 내려쓸며 서있는 그는 중늙은이지만 그의 든든한 창대와 같이 기골이 정정했다. 그의 고함소리에 우선 동네사람들이 나왔다. 모인 사람들은 그 정정한 봉군 오장과 그옆의 짚낟가리를 의지하고 졸고있는 모양인 다 늙은 로승을 번갈아 보았다.

《어떻게 오셨소?》

뒤산 나무숲사이의 길로 내려온 이곳 봉군 오장이 인사겸 물었다. 그는 젊은이였다. 마주선 그들은 나이는 다르나 같은 옷차림에다 역시 같은 창대를 가지고있었다.

《어떻게가 다 뭔가. 이게야 답답해서 사람이 살겠나.》

가마구비 오장은 창대끝으로 굳은 땅을 한번 쿵 울리면서 말했다.

《내 이 나이되두룩 40년이나 연대를 지켜오건만 이렇게 답답하구 클클해보기는 첨일세.》

《답답하다니, 우리 연대에서 내가 안 올라서 말이요? 그래 채근왔소?》

이곳 연대의 젊은 오장의 말은 좀 시룽거리는 롱조였다.

《말말게. 태평성대가 돼서 이렇게 일이 없다면야 좀 좋겠나.》

《그야 그렇지요. 무사할 때야 맞은편 연대에서 내가 벌껏 오르면 이거 또 무슨 일인가 해서 섬찍했지.》

《여기 사람은 안 그런가?》

《뭐 말이요?》

《난 새벽부터 사람단련을 받다받다 못해 왔네.》

《무슨 사람단련이요?》

《우리 연대근처의 성안사람들은 아마 거의다 왔다갔네, 무슨 소식이 없나 해서…》

《한성소식 가마구비에서 먼저 안다구… 그래, 한성소식 물으러 옵디까?》

《이제야 한성소식이 아니지. 뒤에서 무슨 소식이 있을가 해서지.》

《뒤대에서 무슨 소식이 있을래니 어떻게 있겠소. … 하기는 나부터두 맘은 그렇지 않아서 죽은 말 지키듯 연대에 올라가있기는 합네다만 엊그제 떠난 상감님은 아직 어데 가서 자리두 못 잡았을게구, 성안에 남아있던 대감령감들은 다 달아나구… 뻔한 일 아니요.》

《그러게 답답한 일 아닌가. 백성들은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다싶이 하는데 지금 성안에는 아무도 없네그려.》

《왜, 백성들이 있지 않소.》

《이 사람아, 그런 실없는 소린 뒀다 하세. 성안뿐아니라 나라에 주인이 없단 말이야, 내 말은…》

늙은 봉군의 목에서는 무슨 큰 덩어리가 넘어가듯이 턱밑의 불쑥 내민 울꾸리가 한번 꿈틀거렸다. 그는 또 말을 이었다.

《부산연대에두 봉군이 그냥 있던가?》

《있긴 있는 모양입디다. 왜요?》

《대동강건너 화사산연대에는 동대원에 왜적이 들어오자부터 사람의 그림자도 볼수 없으니 말이네.》

《여기서부터 북쪽에는 그냥들 있을게요. 부산연대에서 보면 그담 연대에두 있을게구. 또 거기서 보면 그담 연대에두 있구. 그렁그렁해서 의주까지는 다 있을게요.》

《그럴가?》

《그렇지 않구요. 거기 봉군들두 다 우리 맘이나 다를거 있소.》

《허허!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렇게 되구보니 별게 다 반갑구먼! 지금 자네 그 말두 반가와…》

가마구비 오장은 몇방울 눈물이 맺혀 흐르는 구레나룻을 내려쓸면서 허허허 웃었다.

《정말! 저 숱한 사람들이 다 어데루 간다?》

버드나무그늘에 모여앉아서 두 봉군 오장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이 동네 사람들이 보통벌을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였다.

《촌으루들 가지, 어데루 가.》

《정말 성내 아니면 촌으루밖에 더 갈데가 있나.》

《그러구보니 우리 농사군이 더 죽어나게 생겼다.》

《왜?》

《왜라니? 저 숱한 사람이 입은 하나씩은 다 가졌거던.》

《성안에서는 안 먹었나? 그 폭이 그 폭이지.》

《그건 모르는 소리… 이때까지는 저 사람들이 그래두 뒤대에서 베랑,앞대에서 창호지랑이라두 날라다주면서 먹었느니.》

《그런데 지금은 아가리들만 가지구 나섰다? 지금까지는 농사하는 우리보다두 더 잘들 먹었으니 이젠 좀 굶어보라지.》

《뭐, 굶으라구요? 여보, 이편이 그런 독담을 안해두 굶게 된 사람 많소.》

이같이 그 농군의 말에 문득 비위 뒤틀린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나섰다. 그는 언제 왔는지 보따리들을 내려놓고 그늘아래서 땀을 들이는 칠팔명 피란민들중에 칠순이 가까운 로파와 젖먹이어린것을 업은 젊은 녀인을 데리고 온 한 부상군같은 젊은이였다.

《우리 같은 사람은 잘 먹은것두 없지만 잘 먹었든 못 먹었든간에 하던 살림 다 팽개치구 나서서 지금 맘이 어데까지 가는지 모르는데 그래 그런 소리만 앉아서 탕탕하는 이편은 속이 알량할건 뭐요?》

그는 때국이 흐르는 무명고의가랭이를 성가신듯이 무릎까지 끌어올렸다내렸다 하며 또 이렇게 시까슬렀다.

《여보 이손, 그만 말에 그다지 화낼거야 있소?》

이때 그옆에 앉았던 한 늙은 농군이 허허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저 사람의 말은 아무튼 쇠술루 밥 떠넣는 사람의 입은 언제나 우리 농군이 치게마련이니 이런 세월에는 더구나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 아니겠소.》

《로인의 말씀을 듣구보니 그렇기두 하우. 시에미 역정에 개옆구리 찬다구 하두 화가 났던김이니 그랬지 나두 본시는 농사하던 사람이요.》

이렇게 말하는 그 젊은이 역시 허탄하게 웃고말았다.

《그래 지금은 성안에서 뭘 하구 지냈소?》

늙은 농군이 물었다.

《소금장사하댔소.》

《피란은 어데루 가우?》

《할수 없으니 떠났지 어데 갈데가 있는걸 떠났소?》

《소금장살 했으면 서해변 한천근방이야 잘 알지 않겠소. 아는 사람 두 있을테구.》

《이 주젤 하구 고향엘 가요?》

소금장사는 문득 또 허허 웃었다.

《고향이면 더 좋지 않소.》

《웃음에 소리요. 고향이 무슨 고향이겠소.》

《고향이랬다 아니랬다 하는걸 보니 필경 무슨 까닭이 있는 고향인게로군.》

《까닭은 없어두 우스운 이야기나 하나 들어보실라우?》

소금장사가 저부터 또 웃으며 이런 말을 하자 그옆에서 어린것에게 젖을 빨리던 젊은 아낙네가 《여보, 어서 갈길이나 갑세다. 남부끄럽게 또 무슨 그따위 이야길 할려구 그러우.》 하며 눈을 흘기기까지 했다.

《그렇게 바삐 갈데가 있거든 님자가 앞서게나. 이번엔 내가 님자뒤를 좀 따라다녀봅세.》

이러한 부처의 말에 귀가 좀 어두운 모양인 그의 로모는 아들며느리의 입을 번갈아 쳐다보며 무슨 슬픈 소식이라도 들은듯이 꺼지게 긴 한숨을 지으며 설렁설렁 채머리를 흔드는것이 보기에 퍽 처량했다.

《지난봄에 한천으루 소금을 받으러 가지를 않았더랬소!》

소금장사는 그럴수록 배심 유하게 늑장이나 부려보자는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침 한천 장날이라 염벌에서 소금을 받아놓구는 파장머리에 주막에 들어가서 술을 마셨소. 실컷 마시구 거리루 나섰는데 앞에서 웬 의관한자가 마주 오다가 내가 이쪽으루 가면 그자두 그쪽으루 오구 저리루 가면 또 그리루 가구- 암만 길을 어길라구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해두 그냥 맞서질 않소. 술이 다 깨서 생각하니 실상은 내가 갈지자걸음을 한것인데 그때는 꼭 그자가 내앞을 막아서는것만 같거든요. 그래서 슬그머니 골이 났는데 되려 제편에서 〈이 웬놈이 희야치느냐.〉구 호통을 하길래 〈뭐야?〉 하구 한번 받아넘기질 않았소. 했더니 그자가 코통을 움켜쥐구 자빠지면서 뭐라구 소리를 지르자 난데없는 사령들이 달려와서 날 꽁꽁 묶는단 말이요. 묶여서 어데루 끌려갔는가 하면 증산고을이요. 사람이 기가 막혀서! 알구보니 그자는 증산골 리방인데 한천에 무슨 사실할 일이 있어서 사령들을 데리구 왔더라나요. 큰코를 다쳐놨으니 꼼짝 못하구 볼기를 맞게 됐는데 에라, 한번 엄살이나 해보자 하구 곤장이 떨어질 때마다 〈을지문덕장군님 뼈부스러진다! 진다!〉 하구 소리를 질렀소. 그랬더니 원님이 쌍창을 드르륵 열구 내다보면서 〈이놈, 그 무슨 소리냐?〉 하구 묻길래 〈소인이 할턱이 없어서 소금장사는 하지만 성인즉은 돈씬데 돈씨루 말하면 근본이 을지문덕장군의 후손이 아니오니까. 그 장군이 나시구 공부하신 석다산, 불곡산이 다 이 경내에 있는 안전, 아문에서 소인이 볼기를 맞게 되니 조상님에게 더 죄스럽구 불초한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올시다.〉 했더니 원님이 〈네 정녕 그러냐?〉 하구 몇번 재쳐묻더니 놔준단 말이요. 그래서 내가 살던 고향은 아니라두 조상의 고향덕은 입은셈이요.》

《허! 엉망중에두 그런 꾀를 내는걸 보니 돈서방이 아주 의사가 충충하우.》

늙은 농군의 이런 말을 시초로 여기저기서 이야기들이 벌어졌다.

《그런 말을 내는 돈서방두 용하지만 그 말을 듣구 놔주는 증산현령두 된 사람이요. 증산현령이 누구든가? 옳지, 조의라더군!》

《조의가 된 사람이나마나 자기 경내에 그런 사적이 있는 을지문덕장군의 후손인줄 알구서야 안 놔줄수가 있나.》

《그러구보니 사람은 나구볼 일이야. 그런분은 천여년후에두 자기 후손한테 음덕을 끼치거던!》

《자기 후손뿐이겠소, 지금 이런 때 을지문덕 같은분이 계시면 우리 온 백성두 더 걱정이 없겠소.》

이런 말들을 하는중에 또 새삼스러이 이렇게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돈서방의 성이 정말 돈씨요?》

《돈가는 정말 을지문덕장군의 후손인가요?》

《남들이 그러니 그런가부다 하지, 내니 아우.》

정작 본인인 돈서방의 대답이 이러했으므로 이때까지의 이야기는 룡두사미로 되고말았다.

지금 우리가 돈서방이라고 부르는 소금장사 돈정신이 이때는 그렇게 말했지만 《평양지》 같은데서 전하는바에 의하면 그는 늘 자기가 을지문덕장군의 후손이라고 자랑했다는것이다. 그는 몸이 날쌔기때문에 돈비신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도 전한다. 지금 돈정신이 그렇게 말한것은 일부러 그런것이라기보다도 그가 바로 그런 자랑을 한것은 이 이후부터의 일이였을는지 모른다.

《금년농사는 어떨것 같소?》

이야기가 한동안 끊겼던중에 피란민 한사람이 각설로 이런 말을 물었다.

《글쎄요. 화불단행(재앙은 매번 겹쳐온다는 뜻)이라구 이런 란시에 농사니 웬걸 잘되기 바라겠소.》

늙은 농군의 말이였다.

《일왈 일손이 없소. 장정들은 다 군총으루 뽑히구 더러는 피란가구.》

《우선 또 너무 가물지 않소?》

《오는 스무하루날이 중복인데 그전으루 비가 와주기만 하면야 아직두 괜찮기는 하지요. 허나 하늘이 하는 일을 알수가 있소.》

버드나무밑의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할 때 문득 뒤에서 걸걸한 말소리가 들렸다.

《지금 자네가 자시는것이 벽곡(곡식은 안 먹고 솔잎, 대추, 밤 등을 조금씩 먹고사는 일)한다는거 아닌가?》

늙은 봉군 오장이 창대끝으로 역시 땅을 쿵쿵 구르듯 하며 넓은 마당 한 기슭에 놓인 큰 떡돌에 걸터앉은 로승앞으로 갔다.

이때 서산은 바랑에서 꺼낸 바리대에 물을 떠다가 미시가루를 풀어서 먹는중이였다. 그는 조반을 먹지 못했던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런 땐 대사 같은 중의 팔자가 상팔잘세.》

늙은 봉군은 로승앞에 놓인 바리대를 들어 냄새를 맡아보면서 말했다. (그것은 당장 먹고있는 남의 음식그릇이였다. 그러나 중이기때문에 실례여부가 없었다.)

《본시부터 나라두 없다, 처자식두 모른다 하구 저 한몸 좋을대루 부운종적(뜬구름과 같이 자취가 없다는 뜻) 떠다니다가… 아까는 보니 짚단속에서 자더니 지금은 또 솔잎가루를 먹으니 이런 란시엔들 무슨 걱정이 있겠나.》

본시 걸걸한 음성인데다 지금은 또 시까스르듯 하는 말이라 늙은 봉군의 말은 더욱 기승스럽게 들리는 말투였다.

《이것 말씀이오니까? 콩가루도 좀 섞었습니다.》

로승은 나직한 말로 이런 대답을 했다. 사람들은 웃었다.

그의 바리대와 마찬가지로 감붉은 옻칠을 한 나무숟갈을 한손에 들고 그 긴 눈섭에 그늘진 눈을 가늘게 뜨고 앉은 로승의 대답이 동문서답같이도 들리는 말이기때문이였다.

《소승도 농사지으시는분들의 덕을 입고 사니 하는 말씀이외다.》

사람들의 웃음끝에 또 이같은 나직나직한 로승의 말이 들리였다.

《…》

앞에 마주선 늙은 봉군은 숱많은 구레나룻을 내려쓸뿐이다. 두사람을 돌아보는 사람들도 잠시 말들이 없었다. 그러나 곧 새로운 이야기거리가 생기는 장면의 전환이 있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