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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회


24. 평양성을 떠나는 사람들


다시 지팽이를 옮기기 시작한 로승을 따라선 보패의 뒤로 따라가는 차돌이는 보패에게 《이제는 우리끼리 가두 되지 않아.》 하고싶기도 했다. 공연히 나많은이를 수고시킨다는 생각도 생각이려니와 그보다도 지금까지 보패를 두고 품어온 애정을 지금은 비단 보패에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다 느낄수 있기때문이였다. 누가 알면 부끄러울 단 둘이만의 애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측은하고 그래서 또 다 정답게도 느껴지는 심정이였다. 보패도 그중의 하나인데야 부끄러울것이 있는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러한 자신이였다.

《총각.》

서산이 문득 뒤를 돌아보며 불렀다.

《예?》

차돌이는 그의 곁으로 갔다.

《어제 밤에 총각과 이야기하던 보통벌머사니네 집이 저 보통벌 어데라지?》

《예, 보통문에서 보통벌건너 바루 마주보이는 산이 봉화대가 있는 잡약산인데요, 그 산밑에 있는 한 여라문집 되는 동네야요.》

《그 사람의 이름은 뭐지?》

《어른의 이름이 돼서 모르갔는데요, 그 동네 가서 그저 보통벌머사니라구만 찾아두 다 알아요.》

《그 잡약산인가 하는 산에 봉화대가 있어?》

《예, 있어요.》

《그럼 거기서는 이 성안이 잘 바라보이겠군.》

여전히 긴 눈섭을 드리우고 지팽이를 옮겨짚는 서산의 말은 혼자말같기도 하고 묻는 말같기도 했다.

《예, 그래요.》

차돌이는 로승을 쳐다보며 말했다.

《전에 우리 외가집이 그 동네 있어서 늘 놀러 가더랬는데 그 봉수대에 올라서기만 하면 보통벌은 어데나 안 보이는데 없이 다 보여요.》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뿐인 로승을 다시 쳐다보는 차돌이는 《왜요?》 하고 로승이 물은 까닭을 되묻고싶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 들어선 골목안은 헤나기조차 힘들게 오고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소란했다. 사람뿐아니라 집집의 대문밖과 차면바자(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앞을 막아 둘러친 바자)앞에 더미로 내놓은 세간과 묶어놓은 짐짝들로 앞이 막힌듯도 했다. 이리 피하고 저리 에둘러가며 골목을 지나갈 때 맞은편의 차면바자도 없이 댕그런 외채 초가마가리의 찌그러진 부엌문이 절싹 열리자 행길로 또 절싹 내던져지는것이 있었다. 바로 그앞을 지나가던 한 중년아낙네는 주춤 물러서서 발앞에 허옇게 쏟아진것과 제 치마자락을 굽어보다가 물이 편 신발을 몇번 구르고나서 부엌문쪽을 보며 《아니, 어드러문…》 하고 끌끌 혀를 찼다.

《보선이나 맞추지 않았소?》

미안해서 묻는 말소리와 함께 반백이 지난 머리를 끝댕기도 없이 물레줄같은 노끈으로 맺아서 조그맣게 머리봉을 올린 로파가 나왔다.

《아니, 웬일이요? 이 많은 두부를 버주기채 내치니!》

지나가던 아낙네는 좀 더럽힌 제 신발은 둘째로 길바닥에 허옇게 한벌 깔리다싶이 한 두부와 박산이 나게 부서진 버주기가 웬일이냐는듯이 말했다.

《내니 아깝지 않아 그랬갔소. … 쇠년과부루 하나 받아 기른 아들아이 잔치할라구 했던 두부웨다.》

로파는 기슭도리가 다 피게 해진 몽당치마자락으로 코물을 훔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날을 잘못 받았는지, 세월을 잘못 만났는지 이런 란리통에 잔치니 하갔소. 그러니 또 어데루 가게 될지두 모르는 피란길에 두부버치를 이구 가길 합네까. 그렇다구 그냥 두구 가자니 왜놈의 살이나 할것 같구… 그런 생각을 하문 아깝기는 고사하구 저도 모르게 심술까지두 굳어져서 그랬쉐다.》

이런 말을 한 로파는 코를 훔치던 치마자락으로 눈시울을 닦으며 돌아섰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 서산이 애련당을 좀 지나온 때였다. 등뒤에서 《저, 이보십쇼. 서산대사님이 아니신가요?》 하는 랑랑히 울리는 말소리가 들리였다. 서산은 걸음을 멈추었다.

저편 골목어구에서 멀리서도 향기가 느껴질만치 동백기름을 바른 큰 머리봉우에 얹힌 붉은 꼬둘채댕기를 나풀거리며 연두색꽃당혜 마른 신뒤축을 찰락찰락 끌면서 한 젊은 녀인이 반달음질로 쫓아왔다.

웬일일가? 모두 초조하게 붐비는 사람들로 법석하는 먼지속에 잠겼던 좁은 골목안이 금시 밝아지는듯 했다. 그 녀인의 차림이 꽃답기도 하려니와 그 얼굴이 환히 빛난달만치 아릿다왔던 까닭이다. 맑고 그윽한 향기가 풍기기도 했다.

《뉘시온지?》

마주선 서산이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저, 저예요. 저는 이전에 간혹 뵈였는데요.》

숨이 좀 찬 모양이나 역시 랑랑히 울리는 소리로 말하는 녀인은 로승이 저를 못 알아보는것이 좀 야속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얼굴이였다.

《지난봄에두 감사령감 모시구 향산 갔을 때 뵈여서 저는 로장님을 잘 아는데요.》

《아, 그러시오니까. 소승은 다 늙은것이 정신이 사나와서…》

머리를 끄덕이기는 하면서도 역시 기연가미연가하는 모양인 로승의 얼굴을 한쪽뺨의 보조개만이 더욱 깊어지는 엷은 미소로써 좀더 사물거리고 가늘어진 눈으로 바라보던 젊은 녀인은 《전 본부 부기(관가 기생) 계월향이야요.》 하고 제 본색을 밝혔다. 계월향! 과시 명불허전(명예는 헛되이 퍼지지 않음.)이였다고 할만치 우선 그 얼굴과 자태부터 세련되고 아름다운 녀인이였다.

《그러시오니까.》

서산로승도 그 녀인의 눈부신 자태에 놀란듯 잠시 치떴던 눈섭을 다시 내리고 다음 말을 기다리는듯 했다.

그동안에도 끊길 사이가 없이 좁은 골목을 서로 헤치고 큰 짐짝과 짐짝을 부딪치며 엇갈려 오고가는 사람들은 행길 한가운데 마주선 파파로승과 꽃다운 젊은 기생을 혹은 이상한듯 혹은 거칫다는듯 한 눈으로 다시금 돌아보며 지나갔다. 보패와 차돌이는 길을 비켜서 어느 집 담밑에 붙어서서 서산과 기생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계월향이는 서산에게 자기를 묘향산으로 데려다줄수 없겠는가 물었다. 즉 묘향산의 어느 절이나 암자로 피란갈 생각이라고 하면서 아주 밝혀서 하는 말은 아니나 이 가까이 있는 중들을 시켜서 제 약간한 세간까지도 좀 날라다주었으면 하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제가 향산에 가있게 되면야 설마 절에 페만 끼치기야 하겠어요.》

이런 말까지 보탠 기생은 옷고름을 들어 입을 가리우며 교태라기보다 로승에게 응석을 부리듯이 간드러지게 웃기도 했다. 그런 말, 그런 웃음을 들은 보패는 저도 모르게 놀랜 눈으로 저만치 떨어져있는 차돌이를 쳐다보았다. 차돌이도 분명히 《저런!》 하는 눈치였다.

《역시 기생이였구나!》

그런 말, 더우기 서산로승에게 그런 말을 하는데 그 인품이 뚝 떨어지는것 같이 생각된 보패는 이런 생각이 저만이 아니였다는데 더욱 자신있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는 속히 산으로 들어갈것 같지가 않소이다.》

눈을 내리깔고 기생의 말을 듣고있던 서산의 대답이였다.

《모르기는 하겠소이다마는 여기 중들도 역시 그렇게 될것 같소이다.》

또 이러한 서산의 말에 《아, 그러신가요.》 하는 계월향의 음성과 얼굴에는 《마침 만났으니 혹시나…》 하여 요행을 바라고 달려나왔던 일이 틀어진데 금시 실망하는 빛이 나타났다. 무색하기도 해서 어름거리던 제 눈과 시선이 마주친 보패를 보자 더욱 새침해진 기생은 로승을 한번 거들떠보고 다시 돌린 눈으로 처녀를 우아래로 훑어보았다. 보패는 그러한 기생의 눈찌에서 《어데 촌뜨기계집앤가?》 하는것을 느꼈다. 또 다음순간 제 얼굴을 새겨보듯 하는 기생의 시선에 《천한것이 당돌하게-》 하는 괘씸한 생각이 들면서도 보패는 역시 촌계집애답게 붉어지는 얼굴을 푹 숙일수밖에 없었다. 단 몇순간이지만 보패에게는 화도 나고 괴롭기도 한 순간이였다. 계월향의 그 아름다움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 스님, 어서 가보세요.》

기생은 피뜩 제가 공연히 이러고있다는 생각이 든 모양으로 돌아섰다. 그랬다가 《또 언제나 뵈옵게 될지 모르겠군요. 부디 안녕하셔서 다시 세상이 평정해진 때 또 뵈옵겠어요.》 하며 잊었던 무엇을 추송한다는 투의 작별인사를 한 계월향이는 돌아섰다. 총총한 걸음새를 따라 살핏한 겉치마속에서 여름 소용인 옥노리개가 선드럽게 쟁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합장하고 계월향을 보낸 서산은 또 지팽이를 옮기려다말고 서서 엇맞은편에 있는 조그마한 대문간을 바라보았다.

《얘, 그건 소금섬이 아니냐?》

《예.》

《내실을것이 없어서 소금섬을 져낸단 말이냐? 서해변에 가면 소금이 없갔게 그러니?》

《실을래는거 아니야요. 내다가 저 련못에다 처넣을라구 그래요.》

그 대문간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소용은 없어두 일부러 져내다버릴거야 있니.》

대문간에 나섰던 로인의 말에 큰 소금오쟁이를 지고 나오던 젊은이는 《그냥 둬서는 또 뭘 합네까. 왜놈들이나 잘 쓰라구요.》 이런 말을 했다. 로인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하긴 그렇기두 하다. 그럼 먼데 지구 갈것 없이 저 우물에다 처넣으려무나.》

《우물에다가요?》

이번에는 젊은이가 물었다.

《우물은 그냥 둬선 또 뭘 하갔네.》

로인은 긴 한숨을 지었다.

《하기는 그렇기두 하웨다.》

젊은이는 소금섬을 지고 길건너편의 깨돌로 금정틀을 쌓은 우물로 갔다.

《허-》

이때 서산의 바로 등뒤에서 깊은 외마디 탄식소리가 들렸다. 부푸진 이불짐을 진채 열한두살짜리 계집애와 함께 돌아앉은 집의 담을 의지하고 서있던 한 늙은이였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구보니 그래두 심사궂은 일이 아니겠다!》

그 늙은이는 혼자 머리를 끄덕이며 이런 말을 했다. 우물에서 철썩 소리가 났다.

《우물에다 뭘 그렇게 처넣니?》

《정말 거 뭐요?》

《소금섬이웨다.》

《우물에다 소금섬을?》

《가지고 못 갈바에야 처넣길닐러- 거 잘했소.》

《하긴 그렇기두 하군!》

지나가던 사람들도 이런 말을 했다.

《또 가보자.》

등뒤에서 이런 말과 함께 또 《허!》 하는 외마디 탄식이 들렸다. 머리에 조그마한 길량식자루를 이고 따라서는 어린 계집애와 함께 떠나가는 그 늙은이의 이불짐우에는 가느다란 대 한묶음과 청모, 황모들의 끝이 드러나보이는 작은 보따리가 웃짐쳐있었다. 필시 붓을 매는 필공인 모양이다. 대동문거리로 들어서자 늙은 필공은 걸음을 멈추고 서서 이윽히 대동문루를 쳐다보다가 혼자 말했다.

《단군님적부터 내려온다는 이 평양성이 우리 처에 와서 이렇게 될줄이야 누가 알았갔노! 이렇게 내놓구 떠나가는 이 나부터두 죄인이로구나! 죄인이야.》

《할우반.》

곁에 따라섰던 어린 계집애가 그의 소매를 당기며 불렀다. 그러나 늙은 필공은 역시 제 생각에만 잠긴듯 또 혼자말을 할뿐이였다.

《조상님네한테 큰 죄인이야.》

《할우반- 할우반은 왜 자꾸 그런 소리만 하니!》

할아버지의 떨리는 음성만으로도 저 역시 슬퍼지는 모양인 어린 처녀애는 눈물이 글썽해진 눈으로 늙은이를 쳐다보면서 또 그의 소매를 당기며 재촉했다.

《그러지 말구 어서 가자구, 할우반-》

《오냐, 가자 가.》

비로소 그애의 말이 들린듯 고개를 끄덕인 필공은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대동문거리를 지나 종로로 들어서려고 할 때였다.

《스님!》 하고 소리쳐 부르며 사람의 물결속에서 헤염쳐나오듯이 법근이가 나타났다.

《너는 어델 가던 길이냐?》

묻는 서산의 말에는 질책하는 어기가 있었다. 법근이는 서산을 찾아 영명사로 나가던 길이라고 했다.

《잘 만났다. 네게 할 말이 있어서, 네가 혹시 전서방네 집에 있을가 해서 이제 칠성문밖으로 나가려던 참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서산은 길을 비켜 어느 집 처마아래로 들어섰다.

《이것은 내 혼자 생각만이 아니고 지금 이 성을 떠나가는 온 평양사람들의 의사라고도 할수 있다.》

이런 말로써 자기 말을 끝내는 서산의 말을 듣자 법근이는 주복이를 찾아 칠성문밖으로 달려가고 차돌이는 자기 동네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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