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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회


22. 동대원의 전투


을밀대, 모란봉 뒤쪽에서 벌써 몇홰째인지 모르게 우는 닭의 소리를 들으면서 부벽루밑에서 백여척 배에 갈라타고 청류벽 짙은 그림자속으로 소리없이 흘러저어가다가 마침내는 강을 건너 적진을 습격했던 그들은 살아돌아온이가 별로 없었다.

이 야습전은 그 결과로 보아서, 만일 도원수 김명원과 평양수성대장 윤두수 등의 지휘관들이 좀만 더 용의주도하게 작전계획을 세웠더라면 결정적이라고까지는 할수 없더라도 적에게 좀더 큰 타격을 주었을것이였다.

류성룡(그는 명나라의 응원군을 맞으러 가노라 전날 떠났기때문에 이때는 여기 없었다.)의 《징비록》만을 보더라도 그렇다.

김명원과 윤두수 등이 련광정에서 바라보매 벌써 며칠째 강을 건느지 못하고있는 일본군의 경비가 자못 태만하므로 밤을 타서 한번 엄습해볼만 하다고 생각해서 이 용병을 결행했다는것이다. 즉 적정을 알기 위한 정찰 같은것은 해보지도 않았다. 또 3경에 거사하기로 했던것이 어찌어찌하여 시각을 놓쳐서 급기야 강을 건느고본즉 날이 벌써 밝기 시작했으므로 처음 계획했던 야습전도 안되고말았던것이다.

그 결과는 어찌되였던가?

우리 군사의 전멸이였다. 그뿐아니라 탈출한 몇명의 군졸들로 말미암아 적에게 걸어서 건늘수 있는 왕성탄(지금의 옷바위앞)의 여울목을 알려주게 되였던것이다.

이러한 정형을 련광정에서 바라본 윤두수, 김명원 등은 그달음으로 성안에 남아있던 무기를 죄다 풍월루앞의 련못속에 처넣고 평양사람들은 속히 성을 떠나 피란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말을 몰아 달아나고말았다. 전날에 《아욕차검참녕신》(내 드는 검을 빌어 간신을 목자르리)을 운운했던 그 《기백》은 어데 갔던가? 딴은 제 말이 아니라 남의것을 빌었던것이다.

그렇건만 즉 윤두수, 김명원 등 지휘관들은 그같이 무능무모했건만 우리 군사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그 결과 소서행장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우리 군사들은, 아니 군사라기보다도 불과 며칠어간에 평양부근에서 나선 농군들과 시정인들은 말그대로 결사전을 했던것이다. 실로 장렬한 격전이였다. 전투훈련도 없이 또 무기다운 무기도 별로 없었지만 오직 조국과 향토를 수호하려는 단단일념으로써 또 원쑤에 대한 복수욕으로써 육탄전을 한 그 싸움은 비장한것이기도 했다. 그 결과 3천여명이나 적을 살상하는 큰 전과를 쟁취할수 있었다.

장렬히 싸운중에도 장렬했던것은 임욱경이였다. 부하들과 같이 초입수에서부터 적을 무찌르면서 나아간 그는 전부터 노려온 적진중의 가장 큰 초막으로 돌진했다.

그 초막앞에는 차일까지도 치고 주위에는 만장같은 극채색의 기발과 은빛, 금빛의 의장 절월들이 늘어섰다. 그것은 평양성 공략군의 총사령인 소서행장의 군막이였다.

그앞으로 비호같이 돌격하는 임욱경의 앞에는 어데보다도 적의 반돌격이 더 완강했다. 자기 부하들의 선두에 나선 임욱경은 좌충우돌 검을 휘둘러서 앞을 막는 적들을 쓸어눕히면서 일본군의 총사령부인 군막으로 육박하여 발길로 그 담을 이룬 방패들을 걷어찼다. 풍비박산으로 방패들이 날아나고 쓰러져서 길이 트이는대로 뛰여든 임욱경은 몇놈인지 모르게 창칼을 들고 막아서는 적들과 칼을 어우르면서 군막안을 살폈다. 과연 놈들의 우두머리인듯 한자가 저편에 놓인 평상에 걸터앉아서 종졸들의 시종을 받아가며 걸치는 갑옷끈을 드노이는 손으로 매고있었다. 그 요란스러운 차림만으로도 적괴 소서행장인것이 분명했다. 노리고 온 그놈을 발견한 임욱경은 눈앞에 더 딴 놈은 없었다. 앞을 막는 놈들과는 싸운다기보다도 앞길을 열도록 휘두르는 칼로 몇놈을 쓰러뜨리면서 돌입했다. 그 서슬에 소서행장은 투구도 미처 받아쓰지 못하고 저편 방패짬으로 빠져나갔다.

《네 뛰면 어델 뛸테냐!》

소리를 벽력같이 지른 임욱경은 등뒤로 달려드는 놈을 또 몇놈 찍어버리고 소서행장을 쫓아나갔다.

소서행장은 군막뒤의 등대에 두었던 말을 타고 내닫기 시작했다. 쫓아나간 임욱경은 마상에서 장창을 휘두르며 앞을 막아서는 한 적장의 복통에다 검끝을 처박아떨구고 말을 빼앗았다. 《끼랴-》 소리와 함께 쳐몰아서 내닫기 시작한 말잔등에 몸을 날려 올라탄 임욱경은 소서행장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날은 이미 훤히 밝았다. 적들은 등뒤에서 활과 조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폭음과 핑- 핑- 퉁겨지는 활시위소리를 따라 철환과 화살이 비발치듯 귀전을 스친다. 임욱경은 검날등으로 채찍질해서 말을 몰았다. 앞에서 쫓기는 소서행장은 한두번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말머리를 돌려서 마주설 생의는 못 내는 눈치다. 비껴들었던 장창까지도 내던지고 말갈기속에 구겨박히듯이 엎드려서 내달을뿐이였다. 미처 투구를 못 쓴 머리의 상투가 풀어져 산발이 된 그자의 끄뎅이가 거슬리는 바람에 어지럽게 흩날린다. 임욱경의 눈에는 그자의 대가리만이 보이는듯 했다. 노리는것은 그것이기때문이였다. 조금만 더! 한걸음만 더! 속으로 재촉하며 말을 채찍질하던 검을 돌려 임욱경은 눈앞에 한일자(-)의 번개를 그었다. 아아! 분한 일이였다. 흩날리던 소서행장의 머리칼 한모숨이 허공에 날았을뿐- 그 순간이였다. 어느새 그렇게 가까와졌던가? 눈앞이 어뜩하게 마주서는 머구리산(지금의 문수봉)이 핑그르르 돌지 않는가! 임욱경은 이를 사려물고 금시 맥이 탁 풀리는 손의 검을 소서행장의 뒤더수기를 겨누고 던지자 달리는 마상에서 굴러떨어져서 절명하고말았다.

대흥산(대성산)마루에 새벽 붉은빛이 어리기 시작하고 룡악산 저편으로 기울며 지새는 달은 더욱 해쓱하게 빛을 잃어가는데 하늘을 뒤덮은 만장홍진속에 동대원일대의 싸움터에서는 함성과 말발굽소리와 총성만이 들려왔을뿐이였다.

마침내는 함성이 그치고 적들의 조총소리도 드물어지고 먼지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모란봉뒤의 금수산너머로 비껴드는 해발에 동대원과 장림벌일대는 사람의 시체로 덮이고 사람의 피로 걸뜬 주검의 황야로 드러났다. 일본군의 진지는 여지없이 유린되여있었다.

군막들은 짓밟혀 무너지고 진지를 장식했던 기치와 절월들은 쓰러져 피에 잠겼다. 우리 군사들의 공격이 그 얼마나 치렬장렬했던가를 과시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잘했다 못했다 할 무엇도 없이 애초에 작전계획이라는것이 없었고 야습을 한다던 시각조차 지키지 못했고 또 적의 력량에 비하여 이편은 우선 수적으로까지도 엄청나게 미약했기때문에 용전분투한 우리 군사는 전투에서 이기였으나 개선해 돌아온 사람은 없었던것이다. 지금 그 전투마당에 횡행하는것은 적들뿐이였다. 일본군은 혹은 말을 달리며 혹은 뛰여다니며 창과 칼로써 부상당한 군사들을 살륙하고있었다.

그것은 아수라들이 피를 탐내며 날뛰는 악귀의 한 장면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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