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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회


21. 을밀대아래 집결한 우리 군사들


전날 고충경이의 의로운 용기와 지금 그 누이동생의 예리고 아름다운 마음씨앞에 숙연히 합장했던 서산은 절 문밖까지 배웅해나왔다.

그런데 웬 일일가? 앞의 길이 꽉 막혔다. 영명사 뜰앞 청운교, 백운교의 돌층계로부터 저편 을밀대밑의 기린굴 골짜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들어찼다. 우선 웅성거리는 인기척 그리고 한밤중 싸늘하게 식어가던 동구안이 훗훗할만치 사람들의 진한 땀내가 풍기였다.

을밀대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성벽에 빠끔히 열린 암문에서는 지금도 계속 사람들이 나와서 좁은 비탈길을 따라 동구안으로 밀려드는것이 바라보인다. 그 외발자국길에는 달빛에 번들거리는 창끝들로 줄을 이루었다. 이쪽 돌층계와 그밑의 골짜기에도 쌈으로 묶어세운듯 한 창날들이 번뜩이였다. 우리 군사들이다.

(큰 변이 나나부구나!)

앞서서 나오다가 이런 생각에 등골이 으쓱해진 차돌이는 돌층계우에서 걸음을 멈출수밖에 없었다. 발을 내짚을 틈이 없었다. 돌아보는 보패의 눈에는 금시 《어떡허나?》 하는 걱정이 서리였다. 그뒤의 로승도 《웬일일가?》 하는 불안한 낯색이였다.

딴 길은 없을가? 차돌이는 저 혼자만이면 부벽루 아래벼랑으로라도 내려갈수 있지만 보패가 걱정이였다.

《자, 좀 갑세다.》

차돌이는 망설이고만 있을수 없어서 사람들에게 청하듯이 말했다.

《어델 가?》

《지금이 어드런 때기에 어델 가느라구 그러나, 총각?》

《집에? 집이 어데게?》

총각뒤에 서있는 처녀와 로승을 번갈아 보면서 군사들은 한마디씩 묻고 말했다.

《뭐, 한사정근처?》

《더구나 배루? 아이구, 안되갔는데.》

《지금 강길은 금잡인이야. 그리고 이편이 위태해서 못 가.》

이런 말들을 들으며 두리번거리던 차돌이는 청운교쪽으로 달려갔다.

《보통벌아주바니 아니웨까?》

《차돌이 네녀석이 여기 웬일이냐?》

《아주바닌 어떻게 된 노릇이요?》

《어떻게 되긴… 우린 머사니 아니가.》

《머사닌줄은 아는데 대관절 어떻게 되는 일이요?》

《일? 일이야 우린 머사니니낀 거식하는거갔지.》

이런 투로 말하는 그 늙수그레한 군사는 쳐다보면 군졸이지만 그저 보면 농군 그대로인 아주버니였다. 말하자면 흙물이 누렇게 든 고의잠방적삼에다 시꺼먼 벙거지를 써서 머리만은 군사의 모양이지만 그아래는 농군 그대로였다. 손에 든것도 가래장부였다. 단지 그끝이 넙적한 가래날이 아니고 뾰족하게 벼린 쇠끝 즉 창날이 박혔을뿐이였다. 그옆의 다른 군사들도 거의가 다 어슷비슷한 차림들이였다. 벙거지만을 썼거나 그 반대로 당홍동달이 야청군복만을 걸치고 머리에는 수건을 동인 사람들도 많았다. 군복에 전립을 제대로 갖춘 군사는 그리 많지 못했다. 원체 모자라는것이라 혹은 군복만을 입히고 혹은 벙거지만을 씌워서 얼쑹덜쑹하게나마 조금씩은 군사모양을 만들기 위한것이였다. 그들의 병장기 역시 그랬다. 보통벌머사니모양으로 가래장부에 쇠꼬치를 박은 창이 아니면 보통 식도보다는 좀 긴 검을 집도 없이 허리띠에 찔렀거나 그렇지 않으면 버덩의 새를 베던 장낫을 그대로 들고나온 농군들도 있었다.

《우린 머사니니낀, 그런데 넌 웬 일이가?》

보통벌머사니는 또 이렇게 물었다. 그의 별명이 보통벌머사니이기도 한데다 더우기 지금은 자기네 군사에 관한 일을 내놓고 말하는것이 어떨가 해서 일부러 더 《머사니》, 《거시기》로 말을 꾸려가기도 했다. 번역하면 《우리는 군사니까 싸우러 가는것이지만…》 하는 뜻이다.

《총각, 저기 서있는 처자(처녀)가 고충경이의 누이동생이란 말인가?》

차돌이와 보통벌머사니와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얼쑹덜쑹한 군사들중에 군복, 전립을 갖추고 넙적한 오동나무집에 꽂은 큰 검까지도 들고있는 한 군교가 저편에 좀 동떨어져 서있는 보패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고충경이를 한번 만났으면 했는데…》

군교는 혼자말같이 중얼거렸다.

《고생원을 잘 아시나요?》

《몰라, 그이가 전날 대동강에서 활루 왜적의 조총하구 겨룬 명궁수라는 말만은 들었지.》

《누구신가요? 제가 가서 말씀하지요. 바루 우리옆에 사는데요.》

《말해두 그인 날 모를걸세. 이제 만나게 되면 만나지.》

군교는 시각을 헤아려보는 모양으로 달을 이윽히 쳐다보고있었다. 3경이 지난지 오래다.

《말씀만 하문야 별장님을 왜 모르갔소. 차돌이, 너두 알갔구나. 접때 왜놈의 모가지를 둘씩이나 머사니해온…》

《아- 저, 임욱경별장님이요?》

차돌이는 반갑게 임욱경을 쳐다보며 웨치듯 했다. 그때는 같이 김매던 어머니에게 붙들려서 성안에 들어가보지 못한것이 한스러웠던 차돌이였다.

《요 〈깜정차돌이〉는 햇내기석전군이기는 해두 먼 돌질두 머사니하지만 맞세서 댔다떼는데는 열뗑이웨다.》

《총각이 그렇게 석전을 잘하나?》

보통벌머사니의 말에 임욱경이가 물었다.

《뭘요.》

차돌이는 어색했다.

《그런 포재가 있으면야… 이런 란시에는 더 귀하지.》

《잘할줄두 모르지만 돌이나 가지구야 뭐…》

차돌이는 얼굴을 붉히며 얼버무렸다.

《돌질이 어드래서! 가까이 다가들기만 하면야 활보다두 투석군이 더 무섭지.》

《…》

《고생원을 잘 안다지? 그럼 그한테 의논해보게.》

《글쎄요.》

이쪽에서 이런 말들을 할 때 차돌이뒤로 몇걸음 다가선 보패가 《우리 오라버닌 여기 안 계실가?》 하고 속삭이듯 조심스러운 소리로 물었다. 그저께 일도 있는만치 보패는 지금도 이 군사들중에 어덴가 자기 오라버니가 꼭 끼여있을것만 같았다. 두루 살펴보는것만으로는 안심이 안되던차에 이쪽 사람들의 이야기중에 고충경이가 어떻다는듯이 들리기도 했으므로 더 참을수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앞이지만 체모불구하고 총각에게 물었던것이다.

《고충경 그 사람 말이요? 여긴 안 계시오. 여기는 우리 군사들뿐이웨다.》

총각대신 임욱경이가 대답했다. 대답하면서 처녀를 눈여겨보는 임욱경의 눈이 한순간 커졌다. 처녀의 아름다움에 놀랜 모양이다. 둘러선 사람들중에는 부지중 《야-》 하고 한숨을 짓는듯 하는이도 있었다.

《분명히 여기는 안 계시웨다.》

또 다짐하듯이 말하는 임욱경은 처녀의 근심을 잘 알수 있다는듯이, 그러나 안심하라는 뜻으로 입가장자리에 너슬너슬한 누런 채수염이 흔들리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아 참, 총각.》

조금후에 그는 물었다.

《저 칠성문밖의 전주복이라는 사람 모르나?》

《씨름군 쇠주머구 말이웨까? 왜 몰라요. 말은 못해봤어두 잘 알아요. 작년에두 여기서 마룻솔 탔는데요.》

차돌이는 부벽루 앞뜰을 가리켰다. 부벽루와 영명사사이에 있는 공터가 5월 초닷새마다 평양씨름판이 벌어지는데다. 일반사람들은 그뒤의 모란봉에 올라서 내려다보고 평안감사, 평양부윤 같은 관속들은 부벽루에 자리를 차렸다. 그 한편에는 기악이 있고 때로는 봉산탈춤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이 이렇게 급히 될줄은 모르구 오늘 저녁엔 내가 놀러 가마 했댔는데 그만 이렇게 돼서… 언제 전서방을 만나거든 내가 그러더라구 말해주게.》

《예.》

《참말 그 사람네 말이 났으니 말이요.》

차돌이와 함께 임욱경이옆에 서있던 젊은 군교가 말했다.

《혹시 이런줄 알았으면 오늘두 전서방이랑 고충경이랑 또 그 중두 나섰을지 모를거웨다.》

《그렇지 않구. 의례 나서지.》

《그 군들이 나섰으면, 밤중이 돼서 활질은 어드럴지 몰라두 승검술이랑 쇠주머구 전서방이랑은 한바탕 씨원히 들구나설게요.》

《참, 엊그저께 일만 해두 그 군들이 장관이드니.》

임욱경이앞에 모여선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할 때 그옆에 한걸음 떨어져있던 축에서는 《이 사람 김패두, 여기서는 어제 행궁앞의 이야기들을 하는데 자네는 그때 창날이 뭉청 날아났던 이야기나 좀 하게나.》 하고 누가 이런 말을 꺼냈다.

《이 사람은 또 남의 망신스러운 소릴 못해서 그러나?》

김패두라는 젊은 군사의 말에 갑자기 와- 웃음이 터졌다.

《혼났지? 서둘게 내두르다가…》

누가 또 이런 말을 해서 웃음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참, 그때는 내가 큰 실술 해서…》

젊은 김패두가 시무룩했다기보다 엄숙하게 하는 말에 웃음소리는 금시 가라앉았다.

《내니 뭐 그럴 생각이야 꿈에나 했나! 한데 그만…》

김패두의 침통한 말이였다.

《좌우간 나두 안타까운데 말이요! 뭐이 안타까운가 하면 떠나갈 사람들은 누가 아무런대두 가구야말건 뻔한데, 그런데두 여기서들은 다 잡구 길을 막구 모여는 들지, 저편에서는 어서 길을 안 틔운다구 욕사무지루 호령호령하지, 그런데 또 그 전날 일두 있잖아? 이번에두 그따위 죽음이 나면 아까운 사람이 또… 하는 생각두 들지, 그래서 안타깝기보다두 정말 등이 버쩍 달구 화가 나거던!》 하던 그는 《에이 참, 내-》 이런 한마디로써 그때의 안타깝던 심정을 뱉아버리듯 하고 《좌우간 갈 사람들은 다 가서두 오늘 우리는 별렀던 저놈들을 한번 다과치게 됐으니 그러문 됐지 뭐 다른거 있소?》 이같이 의기헌양했다.

《정말 오늘은 우리 평양군사들이 별러온 원풀일 하게 됐소.》

《당신네 성안사람들은 원풀일 하게 됐다구들 하오만 우린 원쑬 갚아야갔소.》

누가 하는 말을 받으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강건너 동촌서 왔소?》

누가 물었다.

《그렇쉐다.》

대답한 동촌사람은 먼저 입안의 침을 모아삼키며 말했다.

《좌우간 저놈들은! 저 왜놈들은 말할수 없이 불칙한 놈들이요. 인골은 썼다구는 해두 하는짓이 사람이라구는 할수 없소. 략탈질하구, 불지 르구, 겁탈하구, 산 사람의 코를 베구 하는건 더 말할나위두 없구 사람을 무우대가리 쳐팽가치듯 하는 놈들이요. 좌우간 인명이 귀한줄 모르구 사람죽이길 식은 죽 먹듯 하는 놈들이요.》

《댁에서두 누가 어떻게 됐소?》

동촌사람이 목의 침이 말라서 잠시 말을 끊었을 때 옆의 사람이 물었다.

《우리 집에서는 요행 손잡아매는 어린것들두 없었구 늙은이들두 없어서 빨리 피했기때문에 그런 화는 바루 면했소. 하나 그렇지 못했던 사람네는 다 몰사죽음을 당했소. 글쎄 저놈들 하는짓이… 말을 할래두 이새에 신물이 나서 다 못하갔소. … 좌우간 저 왜놈들이 어찌나 잔인한 놈들인지, 이제 겨우 벌레벌레 기기나 하는 젖끝의것을 잡아가지구는 그것의 부모앞에서 두다리를 찢소. 우리 사람들의 생간을 먹는 놈들두 있소.》

《…》

《…》

동촌사람도 하던 말을 끊었고 듣던 사람들도 잠잠했다. 물론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다. 벌써부터 들어온 말이다. 일본군이 대동강 건너편까지 들어온 후부터는 그런 소문이 더 자주 전해왔다. 그때마다 우리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듯이 한참씩은 말들을 못했다. 마음이 얼어붙는듯 했기때문이였다.

《그런걸 내 눈으루 보구는 내가 그 원쑤를 갚지 않구 이 세상에서 더 살 렴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소.》

동촌사람은 또 말을 시작했다.

《그 원쑤를 갚지 않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라구두 생각했소. 내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두 저 왜적들을 내 손으루 다문 몇놈이라두 죽이구 죽어야 내가 사람이갔소.》

또 몇순간의 엄숙한 침묵이 흘렀다.

《말씀 잘하셨소.》

군복만을 입고 수건을 쓰고 짧은 창대를 들고 섰던 한 중년군사가 조심조심하듯이 나직한 말로 침묵을 깨뜨렸다.

《지금 형편이 이렇게 되구보면 이제는 왜적이 우리 나라 땅에서 한발자국을 더 내디디면 그만치 또 우리 백성의 인명이 상하게 될 형편인데 창칼잡은 우리가 제 한목숨 애낄라구 물러서면 그뒤에서는 열사람, 백사람이 죽게 될게웨다.》

《안할 말루 만약에 저놈들이 대동강을 건느게 돼보소, 우리 평양이 어떻게 되갔나.》

《일이 그렇게 되문야 평양뿐이요?》

《아스소! 그런 말씀은 정 머사니하웨다.》

보통벌머사니는 차마 못 듣겠다는듯이 말했다.

《왜놈들이 우리 아이들을 머사니했다는 말만 들어두 오금이 다 재리웨다.》

《…》

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보니 보통벌머사니가 아이들이 많은가부지.》

침통한 분위기를 좀 헐하게 했으면 하는 모양인지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올망졸망한것들이 한 대여섯 됩네다.》

《아이구, 그럼 착실히 벌어야갔는걸.》

《착실히 버느라는게 농사밖에 없쉐다. 하기는 이렇게 란만 머사니 안했으문 내 손으루 뜯어서 먹게는 해놨댔소.》

좀 득의연하게 말하던 보통벌머사니는 문득 《얘, 차돌아!》 하고 찾았다.

《차돌아, 너 언제 우리 동네 갈 일 없니? 나 좀 머사니할것이 있는데.》

《뭐요? 전할 말씀이 있으문 우정이라두 가지요.》

《지난봄에 말이야, 내가 뭐이 좀 욕심나는 일이 있어서 그걸 머사니하느라구 우리 아이오마니두 모르게 남의 빚을 좀 졌는데 그 빚이 그냥 있구만.》

《아니, 이편은 영 집엘 안 갈 작정인가? 남보구 그런 전갈까지 해달라게.》

차돌이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누가 곁다리를 들었다.

《그건 님자 모르는 말이웨. 평지에서두 락상한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머사니할래는데가 어드런 길이와? 그러니끼니 내가 남의 빚을 졌다는걸 우리 집의 사람이 알기나 했다가야 머사니할거 아니갔나.》

《대관절 그렇게 꼭 갚아야 할 빚이 어드런 빚이게 그러시우? 투전을 했소?》

한 젊은이는 머사니아주버니가 걱정하는 내막이나 좀 알자고 했다.

《투전이라니?》 하듯이 고개를 흔드는 보통벌머사니가 빚을 지게 된 래력은 대강 이런것이였다. 바로 저희 동네앞에 피밭치고도 진펄이 낮은 밭 한뙈기가 있는데 보통벌머사니 제가 가지면 그앞의 보통강줄기의 물을 바가지로 퍼서라도 네댓마지기 논을 풀수 있는데 성안에 사는 그 밭임자는 한뙈기 외따로 떨어져있는것이라 별로 돌보지도 않았다. 그러니만치 싸게 살수 있을것 같아서 막상 흥정을 하자고 한즉, 그 멱을 아는 땅임자는 곱값을 불렀다. 안해는 논 아니라 천하없는것이라도 남의 빚을 지고는 못산다고 도랑개지 떨듯 말렸으나 제 터밭논을 가져보겠다고 한번 내켰던 마음을 다시 돌이킬수가 없었던 보통벌머사니는 안해에게는 제 값에 샀노라 속이고 몰래 빚을 지고 사서 기어이 논을 풀고야말았다는것이다.

《그래서 접때는 돌피를 출라구 들어섰더니 벼이파리가 눈을 찌를만큼 크는 재밀 보구 왔는데… 하기는 내가 없으면 농사두 다 머사니하구말게야.》

보통벌머사니의 빚래력이야기의 끝은 이같이 호젓했다.

《왜, 집의 마누라가 있지 않나?》

누가 묻는 말에 《아니.》 하고 보통벌머사니는 고개부터 흔들었다.

《우리 녀편네라는게 올망졸망한 새끼들만 머사니하느라구 나 없으면 품앗이군 하나두 제대루 못 얻구, 쌀이 떨어져서 쌀 한되박 꾸러 가는것두 내가 다녀야 하는 맹꽁이가 돼서 웬걸, 뭐…》

또 머리를 흔들고마는 그의 말은 마음속에 그득했던 말인듯도 했다.

《그야말루 란나는 해에 과거한셈이로군.》

옆에서 누가 중얼거렸다.

《이 사람, 머사니- 세월두 세월이네만 자네가 논을 좀 늦게 풀었네.》

《그렇지! 할우버지적에 했으야 할걸 그랬네.》

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서 모두 웃었다.

《그거야 안 그렇지.》

보통벌머사니는 고집스럽게 머리를 흔들고 떠뜸떠뜸하는 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만 머사니하다마는 세상은 아니니끼니. 우리 손주처에 가면야 그때는 정말 할우버지가 머사니한걸루 될거 아니갔소?》

《과시 무서운 말씀이로군.》

이때 임욱경이는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또 강건너쪽을 바라보면서 《너희놈들이 좌우간 무서운 코에 걸렸느니라.》 하고 허허허 웃었다. 따라웃던 사람들중에 젊은 김패두는 《이거 무슨 일일가? 이렇게 늦어져서야 되나?》 하며 달을 쳐다보고 또 맞은편 암문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 문으로 나오는 사람도 없었다.

《참, 3경이 지난지는 오랬갔소.》

동촌사람 역시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미 3경이 지난지 오랬다. 어데선가 들려오는 닭의 소리는 벌써 몇번째였다.

《얘, 너 갑손이 아니가?》

문득 차돌이가 반갑게 웨쳐부르는 소리였다.

혼자서 날씬한 허리를 휘청거리며 휘파람을 불며 부벽루쪽으로 가던 한 소년이 돌아섰다.

《오- 너 차돌이로구나!》

역시 반가운 소리를 지르며 마주 오는 소년의 머리에는 아직도 애티가 흐르게 호리호리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큰 벙거지가 올려놓여있었다.

《갑손이, 너 어떻게 된노릇이가?》

《어떻게 되긴 뭐이 어떻게 돼?》

갑손이는 정색하고 하는 말투로 대답은 하면서도 생글거리는 웃음을 감추지는 못했다.

《너 언제부터 군총이 됐니?》

《나? 벌써 오래다야.》

《오래다니, 언제부터게?》

《벌써 반달이나 된다야.》

갑손이의 대답은 어지간히 뻐기는 투였다. 옆에서는 《반달?》 하고 웃는 사람도 있었지만 차돌이는 더 커진 눈으로 뜻밖에 만난 동무의 모양을 훑어볼뿐이였다. 까맣게 찌든 끈으로 볼록한 두볼이 잘록하도록 졸라매쓴 시커먼 산수털벙거지뿐 그리 깨끗치도 못한 잠뱅이적삼에 군복도 없이 맨발에는 짚신을 신고 그 역시 칼집이 없는 자그마한 검을 허리띠에 찌르고있는 갑손이의 모양은 볼수록 뜻밖이였다.

《좌우간 너 어떻게 된노릇이가?》

차돌이는 또 묻지 않을수 없었다.

《나 군총으루 들어간거 말이가?》

《그래.》

《나는 왜 못된다던? 척 이렇게 되면 되는거지 뭐 별다르게 되나.》

갑손이는 여전히 생글거리며 이런 대답을 했다.

《아니, 너두 나 같애서 말이야. 그래서 묻는거 아니가.》

차돌이는 제가 곰비임비 묻는데도 생글거리기만 하는 갑손이가 좀 얄궂기도 한 모양이였다.

《응, 그거-》

갑손이는 말귀를 이제야 알아들었다는듯이 한번 픽 웃었다.

《처음에는 일이 좀 우습게 되기두 해서. 너 우리 주인집 김감역네 알지?》

《그래.》

《처음에는 정말 내가 어처구니가 다 없었다야.》

갑손이는 역시 생글거리는 얼굴로 옆의 사람들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감역 그 두상놈네 바깥사랑방에서 자는데 말이야, 아닌밤중에 누가 흔들어 깨우지 않니? 그래 벌떡 일어나서 보니 웬 사람들이 우뚝우뚝 섰는데 다 군교들이야. 군교들이 나더러 다짜고짜루 가자구 썩썩 나서라거던. 그래서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어델 가자구 그러는가 물었더니 뭐 내가 군총으루 뽑혔다나! 그래서 나는 아니라구 그랬지. 나는 남의 외아들이 돼서 군적에는 들지부터 않았다구 그랬더니 군교 하나가 척 하는 말이 〈우리가 다 이 댁 김감역나으리의 둘째자제분인줄 알구서 데리러 왔는데 이 왜 이러우-〉 하지 않아? 능청스럽게 말이야. 그 소릴 듣구보니 정신이 피뜩 들더구나. 〈옳지! 그저 능청스럽게만 들을 말이 아니댔구나!〉 어처구니가 없단 말이야. 뭐인가 하면 김감역 그놈이 날 보쌈에 넣을 작정이더구나. 김순량이라는 그 두상놈의 둘째아들놈이 스물여섯인가 일곱엔가 난 놈인데 군적에 들어가지구두 이리 피탈, 저리 피탈 하구 군영에 들어갈걸 안 들어가구있더니 종내 슬쩍 빼돌리구는 나를 대신 집어넣을래는거야. 뻔하지 않아?》

《저런 불칙한 놈들이 어데 있나!》

《그래서?》

소년의 이야기에 주의가 끌려서 듣고있던 사람들중에는 끌끌 혀를 차기도 하고 이야기를 재촉하는이도 있었다.

《그런데 말이요.》

갑손이는 밝은 달빛에 맵시로 동탁한 소년다운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고나서 또 이야기를 계속했다.

《김감역 그 두상이 돌아가면서 멕일 놈 멕이구 군정을 모으러 다니는 군교들한테두 코아래진상을 해가지구는 나를 저의 둘째아들루 만든거야. 그런줄 알구보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난 아니라구, 나는 이 집 사환군아인데 지금 열일곱살밖에 안 났으니깐 이 집의 둘째아들하구는 나이만 해두 십년이나 틀린다구, 나는 본시 함구문밖에서 이 김감역네 밭을 부치던 작인의 아들인데 열두살때 어머니가 죽어서 우리 아버지가 홀애비루 나 하나 데리구 농사를 하다가 전주네 빚은 자꾸 늘어만 가구 부역두 많아지구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하다하다 못해서 3년전에 나를 이 집에다 맡기구는 어데루 떠나가구말았다구, 그래서 내가 빚값에 사환군으루 오기는 했어두 우리 아버지가 종문서를 넣구 나를 이 집에다 팔아먹은건 아니니까니 이 집주인이 나를 그렇게 맘대루는 못한다구, 그래서 난 안 간다구 그랬지. 그랬더니 처음에는 능청맞게 얼리기두 하구 썩썩 나서라구 으르딱딱거리구 잡아끌기두 하던 군교들두 더 할 말이 없는 모양이야. 슬며시 놓구말지 않아? 내 우스워서! 무섭기두 하구 또 저따위놈의 두상 봤나! 골두 나서 한번 김감역두상한테 해댈 생각두 난단 말이야. 그래서 안방으루 막 뛰쳐들어갈래다가 가만히 생각을 하니 나두 우습거던. 남들은 다 군총으루 나가는데 저만 빠져볼라구 비실비실 피해다니는 김가놈의 꼴을 늘 저 개자식! 하구 봐오댔는데 말이야. 이번엔 내가 또 어드르니 안 나간다구 하는걸 생각하니 나두 우습잖아? 그런데다 또 그 개싼 김감역두상네 집에서 그냥 심부름이나 하구있으면 나두 그놈들 금사밖엔 안되갔다는 생각두 들더구나. 그래서 대문간으루 나가는 군교를 보구 〈여보, 나두 같이 가겠쉐다.〉 하구 불렀지. 그랬더니 갑자기 웬일인가 하는 눈치야. 그래서 〈내가 뭐 군총으루 나가기가 싫거나 무서워 그랬던건 아니웨다. 탁없이 남의 대신으루나 끌려가기가 싫어서 그랬지. 그러니까니 지금 내가 가는건 뉘대신이 아니구 나는 나대루 가는거니 말이요. 그것만은 우리 똑똑히 밝히두룩 합세다.〉 하구 나섰지.》

《거참, 말이 됐는데.》

《과연 똑똑하다!》

《똑똑만 해가지구두 안될 일이웨다. 장하웨다, 그 생각부터가!》

둘러선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말이야, 내 또 우스워서…》

갑손이는 한번 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마 김감역의 로댁이 사랑문뒤에 뻗치구 서서 우리 하는 말을 다 듣던 모양이야. 불시루 안방엘 들어갔다가 새 잠뱅이적삼 한벌을 들구 나오더니 나더러 갈아입구 가라는거야. 그러면서 하는 수작이 〈갑손아, 너 이번에 가서 란리만 잘 치르구 오너라. 그러면 그때는…〉 어쩌구 하지 않아. 그래서 〈여보, 내가 뭐 당신네 아들대신으루 가는줄 아우? 이건 아마 당신네 아들이 입구 갈걸 내가 대신 가는것 같애서 날 입으라는 모양이지만 나는 나대루 가니까니 그런건 안 받소.〉 그러는데두 로댁이 그냥 뭐라구 하길래 〈이 란리를 잘 치르구 오라구요? 그 말은 잘했소. 당신네처럼 이편네 아들은 빼돌리구 남의 자식을 대신 보낼 궁리나 하는 사람들이야 백년 가니 이 란리를 치러보갔소? 비키소, 어서 비키라구요. 당신네 같은 사람들은 우리 조선땅에서 다 잃어지라구요.〉 하고 나왔지요.》

갑손이의 말에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고개들을 끄덕이였다.

《그래, 총각이 바루 그렇게 말했나?》

《정말! 그따위 놈들만 있으면야 백년 가니 이 란리를 치를수 있을라구.》

얼마후에 군사들은 이런 말들을 했다. 누구는 《그러길래 당신네 같은 사람들은 우리 조선땅에서 잃어지라구요 했다지 않소?》 이렇게도 말했다. 그러나 이때 갑손이는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 말만은 그 댐에 가서야 생각난 말이야요. 정말 그 말이 그때 생각나서 그렇게 말했으면 내 속이 좀더 씨원했을텐데… 분해서!》

이러한 갑손이의 말에 사람들은 웃었다.

《우리 듣기엔 그때 했으나 지금 하나 마찬가지루 씨원하다.》

《좌우간 용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때는 갑손이는 벌써 제가 한 말을 다 잊고 또 옆에서 칭찬하는 말도 들리지 않는듯 했다. 오직 소년다운 호기심으로 젊은 김패두의 군복을 만져보다가 차돌이를 돌아보며 《나두 이런 군복이나 하나 척 입었으면 좋갔다야.》 하고 웃을뿐이였다.

《글쎄, 그랬으면 좋았을걸 그랬구나.》

이렇게 대답한것은 차돌이가 아니라 임욱경이였다. 그리고는 제 군복의 앞깃을 굽어보면서 《우리것은 너무 커서 안되갔구…》 하는 임욱경은 어린 사람의 원대로 해줄수 없는것이 실로 딱한 모양이였다.

《아니야요, 괜한 소리야요.》

갑손이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젓기까지도 했다. 임욱경별장이 너무 고지식하달만치 걱정을 해주는데 송구해진 소년은 그앞에 그냥 있기가 미안한 모양으로 돌아서서 아까와 같이 휘파람을 불어가며 부벽루쪽으로 갔다. 차돌이도 따라갔다. 그러나 채 가기 전이였다.

《자, 이제는 다들 나서소.》 하는 고함소리가 돌층계밑에서 들려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떠나게 됐답네다.》, 《그럼 갑세다.》 하는 소리들이 났다. 내려다보는 골안에서는 묶어세운듯 했던 창대들이 움직이고 꽉 막혔던 앞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말소리, 기침소리, 병장기들이 부딪치는 소리, 저벅저벅 걸어가는 신발소리들과 함께 혹은 내딛고 혹은 서로 비키고 에둘러 소용돌이치는 물결같이 움직이는 사람들로써 동구안은 금시 끓어번지는 큰 솥과 같이 술렁거렸다. 술렁거리기는 하나 그것은 무한히 무거운 침묵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소리이고 움직임이였다.

《차돌아, 나 가-》

그런 광경에 잠시 정신이 팔렸을 때 어느새 달려갔는지 모르게 돌층계로 달려내려가는 갑손이의 소리였다. 차돌이는 미처 대답도 못하고 쫓아갔다. 그러나 벌써 사람들의 물결속으로 뛰여든 갑손이를 가려볼수는 없었다.

《갑손아-》

한번 불렀다. 대답이 없다. 앞이 틔여서 나가기 시작한 군사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달빛에도 알아볼수 있게 먼지를 일으키며 우리 군사대렬의 선두는 강뚝을 향하여 전진한다.

차돌이는 보통벌머사니를 찾아보았다. 그 역시 보이지 않았다. 임욱경별장도 김패두도 동촌사람도 다 안 뵈였다. 청운교, 백운교의 돌층계는 이미 드러났다. 지금 골바닥에서 엉켜돌며 풀려나가는 군사들의 차림차림은 제각기 다르지만 그중에서 누구를 가려볼수는 없었다. 차돌이는 다시 갑손이를 불러보고싶었다. 그러나 부르려는 제 소리가 입안에서부터 떨리는것 같았다. 떨리는 소리를 질러서는 갑손이뿐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들어도 좋지 않을것 같았다.

그뿐아니라 지금따라 제가 저 하나 구실을 못하는것 같은 생각까지도 들어서 잘 아는 갑손이와 보통벌머사니는 물론 임욱경별장을 비롯한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여러 아저씨들한테까지도 죄스럽고 부끄럽기도 해서 나무그림자밑으로 들어서고말았다. 이때 본즉 서산로승은 지팽이를 땅에 눕혀놓고 떠나가는 군사들을 향하여 합장하고있었다.

참말 작자는 여기서 그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밝히지 않았다. 그만 수고를 아껴서 그런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 이야기에 다시는 등장하지 않기때문이다. 이름을 밝힌 갑손이, 보통벌머사니, 임욱경별장도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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