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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회


20. 영명사에서


차돌이는 매생이를 댔다. 지금으로 이르면 릉라도다리아래를 지나 전금문앞에다 배를 댄것이다. 제물을 넣은 채롱을 들고 먼저 내려서서 닻줄을 당겨쥔 총각은 한손을 내밀었다. 되뚝거리는 매생이에서 몸을 가누며 한발을 내디디려는 처녀의 손을 잡아줄 의사였다. 그러나 보패는 치마폭을 가누는 핑게로 두손을 다 뒤로 돌리고 내렸다.

강뚝에서 전금문을 지나 좀 올라가면 청운교, 백운교라는 두 돌층계가 있고 그 높은 돌층계를 올라가면 곧 영명사의 앞뜰이다.

사위는 고요했다. 중이 근 백명이나 있다는 영명사 절앞에도 인기척이 없는듯 했다. 언제 보나 락락장송 우거진 소나무우에서 금방 날개를 펼치고 날아날듯 한 을밀대로부터 바로 눈앞의 모란봉까지 동구안을 뒤덮은 송림에서도 산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3경(0시부터 2시까지)이 가까우니 여름밤이 깊기도 한 때였다.

어데로 가서 누구한테 말을 붙여야 하나? 차돌이는 이런 때 제가 사내싸게 주변을 내야 하리라고는 하면서도 처음 일이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선뜻 발이 내키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까짓 중놈들…》 해왔지만 절에 와보니 절은 역시 중이 주인으로 우선 기웃해보는 문간의 금강력사부터 속인을 달갑게 받자하지 않는 모양같았다. 그 번쩍거리는 불상들이 들어앉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거창하게 판국을 벌린 가람이 압도적이기도 하려니와 우선 그 문밖에서부터 일종의 신비감으로 느껴지는 목향냄새만으로도 속인에게는 먼 타향같았다.

이때 마침 저편 부벽루의 추녀그림자로부터 한 중이 나타났다. 달빛아래 나선 그 중은 마치 대잎에 눈이 쌓인듯 한 눈섭이 먼저 보이는 로승이였다. 그앞으로 달려간 차돌이는 법근이를 만날수 없겠는가 물었다. 파, 마늘냄새에 고기누린내까지 피우는 법근이지만 중은 중이라 절에 있음직했다. 있기만 하면 제 서투른 말솜씨로 낯선 중을 붙들고 긴말을 해야 할 품만이라도 덜릴것이였다. 그러나 법근이는 없었다. 이왕 말을 꺼낸차이라 차돌이는 같이 온 처녀가 어제 대동강에서 조총질하는 왜적들과 활로 겨루었던 명궁수 고충경의 누이동생이라는것까지도 자랑스럽게 밝혀가면서 이 밤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절을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지팽이끝에 두손을 얹고 서서 총각의 말을 들은 로승은 《그러시오니까. 날 따라오시오.》 하며 앞서서 절로 들어갔다. 대웅전옆에 있는 큰방뒤에 별당같이 따로 떨어져있는 작은 방장으로 들어간 로승은 젊은 중을 불러서 로전승에게 시식 지낼 차비를 하게 하라고 일렀다. 그리고는 보패가 꺼내놓은 백지로 손수 위패를 접기 시작했다. 그동안에 보패는 머리맡에 있는 경상(불경을 얹어놓은 상)옆에 놓인 벼루에 먹을 갈았다. 까맣게 손때가 올라 반들거리는 경상 한 귀퉁이에 문바람을 피해 세워놓은 사기촉대에는 반나마 닳은 초불이 가물거렸다. 그앞에 몸집이 자그마한 로승이 펴놓은 백지를 이모저모 눈겨냥을 해가며 접고있었다. 초불로 모여드는 날벌레들이 눈앞에서도 사물거렸다. 무슨 날카로운 쇠끝을 퉁기는듯도 한 모기소리가 귀전을 스치기도 했다. 그래도 로승은 고개 한번 외치는 법 없이 약간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접어가기에만 실로 일심정력인듯 했다. 오래간만에 하는 일인지 서투른것 같기도 했다. 접어가던 손을 멈추기도 하고 다시 펴서 고쳐접기도 했다.

먹을 갈며 그런양을 보는 보패는 부채가 있으면 모기를 날려드렸으면 했다. 그렇게 해도 체모에 어그러질것 같지 않았다. 아무리 파파로승이라도 처음 보는 외간남자, 그러나 그옆에 앉기가 그리 수줍거나 송구스럽지도 않은것은 웬 까닭일가? 어덴가 관숙해보이기까지도 했다.

《오, 저 눈섭!》

문득 이러한 제 마음속의 말을 들은 보패는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저렇게 고결한 장미를 가지신 어른이 아닐가?)고 이전부터 제가 늘 이런 생각을 해온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로승의 머리도 이제는 삭발이라기보다 이마가 환히 트이게 벗어진 머리였다.

마침내 서산은 다 접은 종이위패를 경상에 세워본다. 그러는양이 다심한 로인이라기보다 귀여운 어린이 같은데가 있는것은 또 웬 일일가? 단순히 점잖다거나 고결하다고만 할것이 아니라 준엄하다고 할 그 눈섭의 대조로 그것은 더욱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보패는 먹을 다 간 벼루를 로승앞으로 돌려놓았다.

《왜, 제가 쓰지.》

이때 문밖 쪽마루에 앉아서 들여다보던 차돌이가 툭하는 투로 이런 말을 했다. 보패는 금시 빨개지도록 당황했다.

《쓸줄 아시면야 손수 쓰시는것밖에 더 있겠소.》

서산은 연상에서 꺼낸 붓과 위패를 보패앞에 놓았다. 기가 차는듯 해서는 차돌이에게 매운 눈총을 주고싶기도 했으나 그럴수도 없었다. 마지못해 붓을 들었다.

이미 한 말이지만 딸자식까지도 집에서 어느 정도의 글을 가르치는것이 고려집의 가풍이랄가. 역시 어려서부터 오빠한테 글을 배우고 글씨도 써본 보패는 부엌일을 하다가도 어린 조카가 잘못 읽는 글을 틔여주고 바느질손을 놓고 어린 조카의 붓잡은 손을 잡아 운필과 선후 획을 가르치기도 했다.

대웅전에서 간소한 시식이 시작되였다.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늙은 로전승은 그물거리는 초불과 피여오르는 목향연기로써 흔들리고 뒤섞이는 음영이 더욱 현란스러운 불상앞에서 그 비둔한 몸집을 매번 끙끙 소리를 내듯이 일으켰다 굽혔다 하며 혹은 요령을 흔들고 혹은 목탁을 쳐가며 경문을 읊는다. 그뒤에는 보패가 오른쪽무릎을 꿇고 왼쪽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또 그뒤에는 서산이 합장하고 서있었다. 또 그뒤에는 영명사 중들이 통털어 나오다싶이 문밖을 에워섰다. 물론 그중에는 차돌이도 있었다.

《실없이 큰 재(불교에서 명복을 비는 불공)가 되는데!》

《그러게 말이요.》

《서산스님께서 웬 일이실가?》

《글쎄 웬 일이요.》

문밖의 중들은 이렇게 쑤군거렸다. 이들중에는 주지는 물론 좀해서는 자리를 뜨지 않는것이 격으로 되여있는 선방의 조실(참선을 지도하는 선승)까지도 구경을 나와있었다. 《실없이 큰 재가 되였다.》는것은 부처앞에 벌려놓은 공양이 풍부하고 값지다거나 또 손님들과 구경군이 많이 모였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다. 공양은 오히려 보잘것없이 간소하고 재주(불공을 올리는 주인)도 오직 어린 처녀 하나뿐이지만 서산스님이 몸소 끝까지 참여했다는것을 말하는것이였다. 불상앞의 재가 끝나고 제물을 옮겨서 위패를 세운 령단앞에서 지내는 시식이 끝날 때까지 서산은 보패뒤에서 합장하고있었다.

서산은 이 영명사에서는 이런 일에 아무런 책임도 있을리 없는 한낱 객승이였다. 그뿐아니라 더우기 그는 선승이였다.

한마디로 《불교》라고 말하지만 불교에는 크게 나누어 선종과 교종의 두 교파가 있다. 이런것도 잠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 《교시불지언》- 즉 《교는 부처의 말씀》이라고 하는 교종에서는 석가여래를 비롯한 력대의 고승들의 언행록과 그들이 만든 경전들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불(부처)의 경지에 들어가기를 념원하는것이라면 《선시불지심》- 즉 《선은 부처의 마음씨》라고 하는 선종에서는 그런 경전이나 언행록 같은 글과 말로 된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맑힘으로써 자기 마음속에서 부처의 마음씨를 찾자는것이다. 즉 선종에서는 부처의 마음자리를 밖에서 배우려는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서 찾자는것이다. 그러니만치 그들은 한낱 물체로 된 불상을 다른 교파의 불교도들같이는 숭상하지 않는다. 《아불례불이나 아불경불》이라는 말도 그들이 하는 말이다. 혹은 《밤이면 부처와 같이 자고 아침에는 같이 일거늘 하필 금박 한꺼풀만 벗기면 진흙덩어리인 등신앞에 절을 할것이 뭐냐.》 하기도 한다.

선승인 서산이 오늘따라 웬 일일가? 이렇게 생각하는중 그들 역시 전 같으면 재를 올리거나 시식을 지내는것쯤 구경거리가 아니였다. 더우기 이 란시에 물려먹을만 한 공양도 없는 초라한 시식쯤 일부러 나와 볼것도 없었다. 지금 나와서 보는것은 서산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늙은 로전승 역시 그 비슷한 심정이였다. 우선 이 밤중에 귀찮은 일이였다. 그래서 외우는 진언도 또박또박 다할것 없이 요새 말투로 《대강 자세히》 해버리고말 작정이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서산스님이 참가한 시식이라 그렇게 마구 해치울수가 없었다. 오히려 조심스러워서 뺨가죽이 늘어진 얼굴은 물론 비둔한 잔등에서도 땀이 철철 흐를 지경이였다. 례식절차와 외우는 진언에 외착이 날가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직업적으로 익숙한 일이라 진언 같은것은 입만 벌리면 얼음에 박밀듯 하게 되므로 정성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좀 더듬기도 하고 억양도 좀 달리해야 했기때문이였다. 그래서 좀더 엄숙하게도 되고 길어도 져서 실없이 큰 재가 되였다고도 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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