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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회


17. 동대원의 일본군


칠성문안의 창창한 송림속 오솔길을 따라 만수대고개를 넘어서자부터 간간이 요란스러운 조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어깨가 쭈삣거리게 놀래지 않을수 없었다. 울창한 소나무가지의 산새들도 지저귀던 소리를 삼키고 소스라치는 날개를 떨치며 이리저리 옮겨앉는 눈치였다.

《어제는 단군진앞에서 나무를 싣고 왔던 촌사람의 황소가 죽었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가를 내려다보고 서있는 서산에게 법근이가 말했다.

《저놈의 철환(총알)은 언제 어데 가서 떨어질지 모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수같이 황소의 모가지를 깊이 찔렀습니다.》

이같이 조총의 류탄의 위험을 말하는 법근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산은 또 걷기 시작했다.

영문앞 하마비앞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리의 좌우쪽의 집들은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종로 큰 거리도 역시 철시되여있었다. 가장 번화하던 관앞 대동문거리가 가까와올수록 사람의 래왕은 더욱 드물어졌다.

추녀끝이 맞닿게 큰 기와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앉은 평양성의 중심지대인 종로의 이 때아닌 정적, 해가 좀 기울었다고는 하나 뜨겁게 타는듯 한 장장하일의 볕은 아직도 대낮이였다. 큰 상전방앞마다 또 곁골목어구마다 대개 한쌍씩 서있는 아름드리 수양버들들은 어제 밤의 소낙비로 더욱 청신해진 록음을 길거리에 치렁치렁 드리웠다. 그러나 그 풍성한 그늘을 즐길 사람이 이 성시에는 없는듯 했다. 서로서로 부딪치는 어깨를 모로 세우고야 길을 어길만치 사처에서 모여드는 사람들 혹은 오래간만에 만난 반가운 인사소리 혹은 금사를 다투어가며 흥정하는 소리, 같이 한잔하자거니, 점심을 먹자거니 서로 끌고 혹은 사양하는 소리, 흰 머리쓰개, 맨상투바람, 정자관, 새파란 초립, 골목이 비좁게 나오는 방립, 고동색이 다 되게 쩔은 패랭이, 볕을 따라 까맸다 희였다 하는 진사립, 수목적삼 등받이에 때가 앉게 늘어뜨린 떠꺼머리, 색동달이 연두색장옷, 혹시는 대낮에도 사초롱을 앞세우고 가는 납채짐바리, 호랑이가죽을 씌운 가마를 앞세우고 권마성따라 말방울소리 요란한 신행행차, 이같이 붐비고 흥분하고 법석하고 혹은 싸우고 혹은 웃고 애놈들이 지절대고 먼지가 일고 풍풍 생활의 냄새가 풍기던 이 거리거리의 버드나무그늘밑에는 지금쯤은 한창 더위를 쫓는 사람들의 삿부채, 합죽선들이 나비깃같이 펄럭일것이였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색갈도, 인간의 냄새조차도 가신듯이 쓸쓸해진 거리의 그 아까운 록음밑에서는 간간이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다말고 지나가는 두 중을 향하여 컹컹 짖는 개소리가 날뿐이였다.

온 성안의 사람들은 깊이 들어앉았다. 대문과 가게문들을 닫아걸었다. 생활들을 접어놓은것이다.

갈수록 강건너 왜놈들의 조총소리만이 잦아졌다. 보이지 않는 몽둥이로 갈기듯이 룡마루의 기와장을 부시고 날아다니는 비수같이 소를 죽이기도 했다. 그것은 오늘 처음 시작된 일이 아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랬다. 그러나 어제까지도 이곳 사람들은 문을 닫거나 생활을 접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들은 왕의 행궁으로 달려갔던것이다. 행궁의 기와장은 그때도 부서졌다. 그렇더라도 성안, 성밖의 사람들은 그리로 모여들었다.

《이 성을 버리지 맙시다.》고 울며 빌기도 하고 혹은 악에 받쳐 웨치기도 했다. 한 젊은 중의 칼질에 웃기도 하고 격분한 한 농군의 《공중배지기》에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왕이 《안 간다.》는 뜻으로써 내보이는 《정행》 두자를 보고야 헤여져 돌아갔던 사람들이였다.

오늘 새벽에 왕이 또 떠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번에 그들은 나가지 않았다.

평양백성들이 자연발생적으로나마 군중운동을 일으켰던것은 임욱경을 떠받든것을 비롯하여 지난 여드레날 또 어제 열흘날 세번씩이나 있었다. 그것은 왕과 조정의 힘만에 의거하자는것은 결코 아니였다. 왕과 조정이 이 성을 지키라고 자기네에게 명령해주기를 바랐던것이다. 그리고 왕이 자기를 중심으로 백성들로 하여금 이 성을 지킬수 있는 힘으로 조직해주기를 바라서 제발 떠나지 말라고 했던것이다. 즉 왕이 자기네 백성들을 거느리고 왜적과 싸우는 령수가 되여주기를 바랐던것이다. 아니, 왕이 손수 백성을 거느리고 진두에 나서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이 성중에 태연히 남아있어주기만 해도 좋았을것이다.

얼마전에 왕은 자기는 이곳을 떠나지만 세자로 하여금 평양을 지키게 하겠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그때 류성룡은 비록 세자가 남아있더라도 임금이 떠난다면 이곳 백성의 민심을 수습하지 못하리라고 말했던것이다. 잘 알고 한 말이였다. 《안 듣는데서는 나라님의 왼공론도 한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백성들은 왕을 크게 알았다. 왕은 백성의 어버이라고까지 믿는 백성들이 없지도 않았다.

왕은 그러한 백성들의 간청을 듣지 않고 떠나고말았다.

《무가내하다!》

백성들은 더 붙들려 안했다. 지금의 그들은 이제는 어떻게 할것이냐? 또 어떻게 되느냐? 하는것뿐이였다. 이것은 누구나 저마다 다하는 걱정이였다. 천이면 천, 만이면 만사람이 다 그런 걱정에 싸여있었기때문에 저마다 깊이 들어앉게 되였다. 자연히 대문은 닫혀졌다. 거리에 나다닐 일조차도 없는 사람들이 되였다.

즉 《왕은 떠나갔더라도 상관없다.》 하고 나서는 사람이 아직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성안사람들이 뿔뿔이 피란짐을 꾸려가지고 흩어진대도 누구 하나 나서서 막을 사람이 없지 않으냐? 하는 걱정을 또 저저마다 하게 되였다. 또 이런 걱정끝에는 왕도 정승들도 짚검불속에 숫돌 빠지듯 빠져나가는데 구태여 나라고 이 험난한, 조석의 운명조차도 헤아릴수 없는 이 성안에 남아있을것은 뭐냐? 하는 결론이 나오게 되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들은 저마다 대문들을 닫아걸고 피란보따리들을 꾸리기 시작했던것이다.

집집이 저의 안뜰에서만 흥분하고 바쁜 평양거리는 쓸쓸했다. 쓸쓸하다기보다도 처량했다. 그렇게도 번화하던 평양 종로가, 이 대동문거리의 정적이 측측한 공포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실로 대동문쪽에는 그 많던 물지게군 하나 없었다.

석양 가깝게 기운 볕에 긴 그림자를 그을며 대동문거리로 지팽이를 옮겨놓는 서산로승은 몇번인가 모르게 한숨을 지으며 련광정쪽으로 갔다.

대동문과 련광정사이의 성첩에서는 이쪽 좌우의 성벽과 강건너 대안의 적진들이 한눈에 보일만치 안계가 넓었다.

우선 이편의 대동문으로부터 서남쪽의 성첩을 지키는 평안감사 송언신과 장경문으로부터 부벽루에 이르는 동북쪽의 성첩을 맡은 녕변절도사 리윤덕 등이 거느린 3천~4천명의 평양수성군중에는 제대로 군복과 군기를 갖춘 군사들보다도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나선 사람들이 더 많았다. 거의가 다 풀대님, 동저고리바람에 수건을 동이거나 망건만을 쓴 농군과 시정인인 그들은 활, 창, 검 같은 병쟁기는 열에 하나도 쉽지 않고 그저 몽둥이를 하나씩 들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맨손만을 들고있는 군사들이였다. 그나마도 대오가 고르롭지 못해서 어느 한곳에는 덧개피게 모여섰는가 하면 또 한편에는 누구 하나 지키는 군사가 없이 텅 비인 성첩들도 있었다. 모란봉과 을밀대근처에는 소나무가지에 옷들을 걸어놓았다. 신립이가 조령에다 허수아비들을 세웠던 본을 따서 강건너 왜적들에게 그 바지저고리를 조선군사로 알아달라는 소위 의병이였다. 련광정에는 강건너 적진에서 바라볼수 있는 앞면과 좌우쪽에다 두터운 나무로 만든 방패들을 세워놓았다. 방패로 병풍을 둘러치듯 한 그안에는 몇몇 종사관과 비장들의 옹위하에 류성룡과 윤두수와 도원수 김명원과 순찰사 리원익 같은 대관들이 있었다.

왕 선조는 평양을 떠나면서 이들에게 평양성을 지킬 임무를 주었던것이다. 그중에도 윤두수는 평양수성군의 대장으로 임명되였다. 그러니까 이들이 좌정하고있는 련광정은 평양수성작전의 총본영이였다.

《가만… 저것은 서산이란 중이 아닌가?》

늘어세운 방패짬으로 대동문쪽을 내다보던 류성룡이 혼자소리같이 말했다.

《참 그렇소이다.》

《그 흰장미가 여전허군요.》

윤두수와 김명원이도 틈사리로 내다보며 말했다. 이때 서산은 법근이와 같이 좀 사이가 트이게 지키는 군사가 없는 성첩에 다가서서 동대원쪽을 바라보고있었다.

푸른 바위 이끼같은 송낙아래 비록 수척은 했으나 원체 단아한데다 아직 동탁한 맛도 있는 로승의 얼굴은 때마침 비껴드는 석양볕에 산호빛이 나는듯 했다. 동안백발의 표본이나 같이 흰장미는 이때에 더욱 인상적이였다. 그 은실같은 장미만으로도 3년전 국청에서 보았던 로승을 곧 알아볼수 있었다. 그때 서산대사를 본 관료들은 비단 《전상의 호랑이》소리를 들어온 정철이뿐아니라 류성룡, 윤두수, 김명원이도 례의가 아니게 서산이 태연하면 할수록 《한낱 중놈이-》 하는 경멸과 반감이 없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면서도 공명정대하려고 노력하는편인 류성룡은 젊은 리항복이같이 정의감으로 흥분은 안했지만 어쨌든 서산이라는 중의 무죄를 인정했고 또 《하나의 인물이 아닌가?》도 생각했던것이다.

《저 늙은 중이 이 란시에 무엇 허러 산을 내려왔을가?》

또 이같이 중얼거린 류성룡은 피뜩 《혹시나?…》 하는 스스로도 놀라울만치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혹시나?…》는 류성룡만이 아니였다. 입밖에 내지만 않았을뿐 윤두수도 김명원도 다같이 그런 생각을 했고 그뿐아니라 그 중이 반가운 생각조차도 없지 않았다.

지금 그들은 좀 과장해 말하면 사면초가와도 같은 외로운 처지에 있었다. 일왈 평양성 백성들의 자기네에 대한 노여움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어제까지 두번씩이나 겪은 백성들의 야료와 행패,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럴만한 리유가 백성들에게 없지도 않다는것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조정에선 대관의 처지로써는 이렇게 지목해서 말해야 하는것은 물론 생각까지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행궁문을 부시고 궁중을 침범할듯 한 백성들의 기세, 아니 백성들의 반란, 그들에게는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 무서운 일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위험천만한 백성들의 격앙과 행패에는 왕과 조정에 대한 그들의 기대와 관심과 뜨거운 인정머리까지도 느낄수 있는것이였다. 그 일례로서 류성룡이 자기가 백성들앞에 (지난 여드레날) 나서서 타일렀을 때 그렇게 격앙하고 행패하던 백성들은 순순히 물러갔던것이다. 그 까닭은 이 평양성을 지키느냐 마느냐 하는 분분한 조정공론중에서 류성룡은 지키자는 편에 선 한사람이라는것을 백성들이 알기때문이였다. (류성룡은 자기의 《징비록》에서 이 점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만치 백성들은 왕과 조정을 크게 알았고 따라서 그 동향에 큰 관심을 가졌던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성내 백성들의 집집은 첩첩히 문들이 닫혀있다. 백성들은 나다니지도 않는다. 이같이 자기네 고관대작들이 좌정한 근처에서는 의례히 잡인을 금하는 군교라졸들의 벽제소리가 연해 들리는 법이건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이 검둥개 한마리 얼씬 않는 모양이다.

이러한 정적, 백성들의 침묵, 그것은 백성들이 이편에 등을 돌리고있다는 증좌가 아닐수 없다. 백성들의 노여움- 그 노여움은 흥분하고 격앙한 노여움이 아니라 신뢰와 기대와 권고와 관심까지도 다 털어버리고 오직 경멸과 랭소만을 끼얹는듯 한 노여움이 아닐수 없다. 고관대작들은 이렇게 느꼈다.

이런 처지에서 비록 한낱 산승이기는 하나 일찌기 《한 인물이 아닌가?》고까지 류의해보았던 사람이 뜻밖에 나타났을 때 일종의 반가운 정을 느꼈다는것은 비록 류성룡이하의 고관들만이 아니라 사람이면 흔히 그럴수 있는 한 본능적인 감정이기도 한것이다.

그러나 보통사람들과 다른 점은 곧 뒤이어 그들의 마음속에 머리를 쳐드는 《체통》이였다. 허턱 누구를, 더우기나 이렇다할 지위도 직함도 없는 야인이나 중을 반기거나 반색해 맞는다는것은 자기의 체통을 손상할뿐아니라 잘못되면 자기의 권력까지도 타격이 미칠는지 모르리라는 채심이 또 하나의 본능이 되다싶이 한 관료 류성룡은 《하나의 인물같은데…》하는 3년전의 생각을 되씹는것으로써 금방 반갑게 느꼈던 자기의 감정을 변호했달가, 수정했달가, 혹은 정치가적도량으로 바꾸었달가? 어쨌든 이런 전제로써 그는 잠시 옅은 사색을 시작했던것이다. 그는 우선 한때 고서를 취미로 읽었던 《눌재집》중에서 군사에 관한 글들을 떠올리기까지도 했다.

즉 옛날 고구려에서는 당태종의 침략군을 막을 때 승병 3만을 동원한 사실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거란군이 쳐들어왔을 때 역시 많은 승병들이 활약했다는 기록이다.

《아조(우리 나라)에서도 〈승병〉이라는 명목은 안 붙었지만 중들로 하여금 산성을 지키게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는 류성룡은 아까와 같이 (혹시나?… 저 로승 서산도 그런 포부가 있어 산을 내려온것이나 아닐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서산은 연산군이래 오래동안 페지되였다가 명종시기에 다시 시작했던 첫 승과에 급제하여 한때는 선교 량종의 판사를 겸해서 전국의 사찰과 승려들을 장악하고 지도한적이 있었다. 그러한 경력만으로도 서산은 일찍부터 불교도간에 명망이 높았다. 불교도간에만 아니라 일반민간에까지도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있다. 전부터 글 잘하는 시승으로 또는 덕행이 갸륵한 선승으로 서산의 이름을 아는이도 많았다. 그보다도 《상감님까지도 알아주는 도승!》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던것이다. 아직도 그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새로운 정여립의 사옥을 모르는이가 없는만치 그때의 한 짤막한 이야기로서 서산의 이야기도 널리 퍼졌던것이다. 8도의 방방곡곡에 목탁을 두드리며 다니는 동냥중들까지도 이야기할 기회만 있으면 언필칭 자기는 서산의 제자라 했고 또 《우리 스님》의 이야기를 과장함으로써 자기의 《위신》은 물론 조선봉건왕조에 들어와서 땅에 떨어진 불교의 위신을 높이고 선전하기에 입에 침이 마를 지경이였다.

이러한 선전으로써 민간에서 아는 서산대사의 이름에는 흔히 신비로운 후광이 따르기도 했다. 불가에서는 본시부터 륙통이라는 말이 있어왔다. 도를 통하기만 하면 가만히 앉아서도 천리밖의 일도 환히 내다볼수 있는 눈이 열린다는 천안통, 눈을 내려깔고있어도 남의 가슴에다 창경을 붙인듯이 그 마음속을 꿰뚫어볼수 있는 타심통, 비록 쩔쩔 말은 안하더라도 십년, 백년후의 앞일이 어떻게 되리라는것까지도 다 알수 있는 숙명통 등등. 서산대사가 바로 그러한 도승이라는것이다. 그뿐아니라 서산대사는 조화를 부리는 도술이라는 신통력도 가졌다는것이다. 그 일례로 그의 수제자인 사명당은 닭알을 외벌줄로 스물네알이나 치올려쌓는데 서산대사는 그 반대로 첫알을 공중에 매달듯이 우로부터 내려고인다는것이다.

서산대사에 대한 민간의 이러한 랑설들은 결코 웃어버리고말 심상한 일은 아니였다. 류성룡은 이렇게도 생각했다. 왜냐하면 비록 허망한 랑설이지만 일면 서산대사에 대한 민간의 숭앙과 인기를 말해주는 사실이기때문이였다. 충분히 리용할 가치가 있는…

류성룡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백성들을 가까이 이끌라. 그러나 그들의 이목을 가리워 몽매케 하라.》는 즉 백성들을 오직 리용할뿐이라는 봉건전제정치가들의 공통한 사고방식의 일면이였던것이다.

어쨌든 류성룡은 한번 그 로승을 불러보고싶었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썩 나지 않았다. 그 첫째 리유는 앞서 이미 말한바다. 즉 관료적인 채심, 다음 리유는 불러올린 그 로승에게 일왈 왜 불렀다고 할것인가? 구면이라 반가와서? 말이 안된다. 혹은 《로장께서 이처럼 먼길을 수고롭다 안하시고 오셨으니 혹여 우리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 있사오니까?》 이것은 량혜왕이 자기를 찾아온 맹자에게 했던 말이다. 그 비슷한 말이라도 그것은 자기로서는 참람된 말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그뿐아니라 우선 저 로승을 불러올린다면 앉을 자리를 줄것인가? 물론 경국대전에 그런 조항이 있을리 없다. 그만치 파격적인 일이다. 오직 왕 한사람만이 할수 있는 파격이다. 중을 불러보았다! 자칫하면 큰 말썽이 생길 일.

그러므로 다음 입대하는 기회에 《상께 아뢰기로 작정》하는것으로써 류성룡은 자기의 사색을 끝내기로 했던것이다.

이때 성첩밑에서 강건너쪽을 바라보고있는 서산의 뒤에 한걸음쯤 물러서있던 법근이는 벌써 몇번째나 저 《아수라들! 아수라들!》 하고 입밖에 내서 중얼거리는 로장의 말을 들었다. 아수라는 싸움을 일삼고 살륙을 즐기는 악귀같은 패류들을 이르는 불경의 말이다.

어제 밤에 지나간 한소나기비에 물이 좀 불기는 했으나 역시 넓게 드러난 맞은편 나루터 모래불에서부터 강뚝을 따라간 장림벌 큰길과 그 건너편의 들에는 실로 그 아수라들이 욱실거리였다. 동대원에서 남쪽 연천교까지의 넓고 탄탄한 길은 예로부터 로우주라고 하는 길이다. 무연한 벌에 강바람은 거칠데 없이 씽씽 불고 좌우에 늘어선 버드나무, 느티나무는 무르익은 록음으로 길을 덮어주므로 아무리 삼복더위의 늙다리 소라도 걸음이 성큼성큼해진다는데다.

일본군사들은 실로 형형색색으로 아수라의 모양을 하고 아수라의 행동들을 하고있었다. 그늘밑에서 다리를 뻗고 앉았거나 짐짝을 베고 사지를 내던지고 자거나 입과 코로 푸른 연기를 뿜으면서 서성거리는 한가한 놈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저마다 들어붙어서 장림벌일대를 적지로 만들기에 골몰한중이였다. 곡식밭에 군마를 놓아 먹이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놈들은 아직 이삭도 패기 전인데 수수가을, 조가을하는중이였다. 몇백놈이 긴칼을 뽑아들고 해파리같이 퍼져서 장낫으로 과동새를 베듯이 청초 곡식들을 후리며 나갔다. 그뒤에는 몇백놈이 따라가며 단을 묶고 날랐다. 푸르던 벌판은 늦벌레떼가 지나간것 같이 금시 붉은 동촌 흙빛으로 드러났다. 적지가 되는것은 곡식만이 아니였다. 장림의 그 좋고 운치있는 나무들까지도 결딴이 났다.

왜놈들은 도끼, 톱, 칼로 그 나무들을 찍고 자르고 잎을 훑었다.

장림벌! 지금까지도 그대로 전해오는 그 이름에 우리는 그 나무숲을 보지 못하고도 아름다움과 운치를 느낀다. 그 운치, 그 멋을 위해서 우리 조상들은 장림을 가꾸었던것이다. 그런 장림이 왜놈들이 들어온지 사흘이 못돼서 벌써 볼꼴이 없이 되고말았다. 결딴을 내고 적지를 만든 나무와 곡초들을 날라다가 그들은 강뚝을 따라가며 초막들을 짓는중이였다. 이미 세워놓은 초막들도 많았다. 초막을 세운 진지에는 울깃불깃한 기발들을 무수히 늘여세웠다. 만장같이 길게 드리우는 오색기발이 강바람에 뒤섞여서 너울거리는 강안일대는 마치 큰 장사행렬이 늘어선듯도 했다. 더욱 그렇게 보이는것은 흉물스러운 방상시같은 탈바가지들이였다. 왜놈들은 그런짓을 해서까지 저희들의 무위를 뽐내고 이편을 위압하려는 심사일것이다.

지금 강변모래불에서 혹은 말을 달리거나 혹은 그저 뜀박질을 하는 왜놈들중에는 형형색색으로 흉물스러운 탈바가지들을 쓰고 뛰노는자들이 많았다. 옻칠을 해서 새까맣게 번들거리는것, 원숭이볼기짝같이 새빨간것, 도금을 해서 시누렇게 번쩍이는것, 풀빛으로 초록색이 나는것, 또 그런 색갈들이 한판에 뒤섞인것, 그 색갈만도 각색인데다가 또 그 모양도 각가지였다.

큰 탈바가지가 온통 다 눈이다싶이 왕방울눈이 디룩거리는 놈, 그런 눈꼬리가 곤두서듯이 치째진 놈, 반대로 눈알이 흘러빠질듯이 처진 놈, 혹은 상판 한가운데 뻥한 눈이 하나밖에 없는 놈, 이마에 뿔이 돋친 놈, 질병자루같은 코가 하늘을 향하여 거들먹거리는 놈, 귀밑까지 찢어진 아가리에 주홍같은 혀바닥이 널름거리는 놈, 메돼지어금이같은 이발이 턱주가리까지 내려뻗은 놈… 이런 탈바가지들이 뒤섞여 돌아가는 일본군사들의 진지는 이승에서 볼수 없는 지옥의 한 장면이기도 했다. 그같은 악귀, 아수라의 모양을 한 왜놈들은 칼과 창들을 휘둘러 당장 사람을 찍고 찌르는 시늉들을 하며 돌아가기도 했다. 그들은 대개 엄청나게 큰 칼들을 가지고있었다. 긴 자루끝에 날우에 날이 덧붙은것을 둘러메고 다니는 큰 칼은 더 말할것도 없고 허리띠에 한두자루씩 찌르고 다니는 칼들도 무척 큰것이 많았다. 어떤것은 사람이 칼을 찼는지, 칼에다 사람을 붙들어맸는지? 또 괴상한것은 물론 더워서 하는짓은 짓인데 벗으면 흔히 웃동을 벗건만 놈들은 반대로 아래도리를 다 드러내놓은데다 모자까지 쓰고 다녔다. 《동국통감》에 《왜는 옷이 우의것만 있고 아래것은 없어서 거의 벗다싶이 한다.》더니 사실이였다. 그 모양들을 하고 껍적거리고 백사장을 거닐던 왜놈들중에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꺼꾸로 서서 제 사타구니밑으로 이쪽을 건너다보며 뭐라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하늘로 치킨 제 날궁둥이를 철썩철썩 두들겨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편을 경멸하노라는짓인데 그보다 제가 먼저 경멸을 받을짓을 하는줄은 모르는 모양이였다.

《스님, 련광정에서 스님을 내다봅니다. 아마 류성룡대감인가 봅니다.》

법근이가 나직이 하는 말이였다. 법근이는 이리로 오는 길에 지금 련광정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말했던것이다. 그러면 혹시 스님이 그들을 찾아보지나 않을가? 하는 억측뿐아니라 호기심과 기대까지도 가졌던것이다. 이런 란시에 늙은 서산스님이 산을 내려온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닐것이라고 법근이는 생각했다. 더우기 떠나오던 길에서 편석대사를 만났다고 하지 않는가. 편석대사는 의례히 만류했을것이다. 편석대사뿐아니라 늙은이의 이번 길은 다 말렸을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온것은 무슨 까닭이 있지 않을가?

전부터 그앞에서는 바로서기조차 조심스러운 로스님이라 감히 물어볼 생각을 못하는 법근이는 그 까닭이 더욱 궁금했다.

(어쨌든 앞으로 무슨 일이든 있기는 있을것 같다!)

어떤 일이든 전에없이 새로운 일이면 희한하고 더구나 저도 한몫 들어 덤벼볼수 있는 일이면 더욱 좋아하는 젊은이답게 법근이는 저도 모르게 흥분도 했다. 더우기 지금까지 향산 금선대암자에서 꼼짝 안하던 서산스님이 이런 란시에 자리를 떴다면 필시 어떤 큰일, 나라일을 위한 어떤 포부와 경륜이 있어서 산을 내렸을것이라고까지 생각하는 법근이는 한낱 돌중인 제가 지금 서산스님을 모셨다는것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용기가 나기도 했다. 법근이는 지금도 장삼속에 감추어가지고있지만 전날 고충경의 집에서 찾아온 검을 왜적의 싹이 보이기 시작하자부터 늘 숨겨가지고 다니다가 어제는 그만 많은 사람들앞에서 더구나 행궁앞에서 앞뒤일을 재지 못하고 뺐던것이므로 어떤 죄책이나 받지 않을가 해서 지금도 뒤가 마려운중이기도 했다.

《스님, 류성룡대감께서 또 내다보십니다.》

법근이는 또 이렇게 서산의 등뒤에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혹시 저분들을 만나보실 일은 없으십니까?》 하고 묻거나 재촉하는듯 한 말이였다.

아까부터 듣기만 하고 여전히 강건너를 바라보고만 있던 서산은 이번에도 한두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을뿐이다. 그러나 법근의 말에 지금 서산의 마음속에는 약간의 파문이 없지도 않았다. 법근이의 뜻을 짐작하는 서산은 (이녀석, 나더러?…) 하는 무춤한 생각이 솟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그런 생각을 하는 자기 마음이 아팠다.

이때의 서산의 심정을 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우선 지금 내가 무미하게 그들앞에 나선다면 그들은 까닭없이 저희들앞에 하정배를 해가며 접근하려는 한 늙은 중놈의 아첨으로밖에는 더 달리 생각할 거리가 없지 않느냐 하는것이였다. 그뿐아니라 사람을 보면 먼저 량반이냐 상놈이냐부터 가려가지고야 대하는 사람들, 부귀로써만 사람을 저울질할줄 아는 소인들, 소위 량반이라는 저희들외에는 눈아래에 사람이 없는자들, 그렇건만 저런 아수라들앞에서는 완전히 무능한 등신들,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저희들의 배를 불리우기만 위주하는 탐관오리들, 그럼으로써 이런 국란에 처해서는 왕도(임금이 마땅히 가야 할 길)는 백성을 위한다는 말은 알면서도 백성의 힘을 힘으로 해서 이 국란에 당하려는 생각조차도 못하는 한심한 정승들, 불현듯 이런 타매가 끓어넘치는듯 서산은 아, 내 이 무슨 비불사도(불교교리에 어긋나는 길)의 생각을 하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는 이렇게 스스로 전률했다.

《저 아수라들앞에서, 저 아수라들을 저주하던 내가 저 아수라들을 닮았단 말인가?》

그리고 이같이 서산은 반성하였다.

《부처님의 계를 범치 않으리라- 높은이에 대하여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하는 십대수조차 나는 잊었는가? 그런 불계는 차치하고라도 70이라는 나이가 있지 않는가!》

또 이같이 자신을 책했다.

(내가 저분들을 지금 찾아보지 않는것은 이렇다할 말이 없기때문이 아니냐. 즉 내게도 이렇다할 아무런 주책이 없기때문이 아니냐. 나는 먼저 이렇게 생각했어야 할것이다.)

이같이 돌이켜 생각하는 서산은 자기가 너무도 그릇이 작다고도 생각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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