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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회


16. 행궁앞의 평양인민들


왜군에게는 활, 칼, 창 이외에 우리한테 없는 조총이라는것이 있었다. 새를 쏜다고 해서 조총이라고 하는 화승총이였다. 이전에는 우리도 있었다. 고려말엽에 최무선장군이 자기가 손수 만든 화포로써 일본해적을 소탕한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그뿐아니라 고려군대에는 화통도감(화약 제조하는 일을 맡은 사람)을 두어 군사를 훈련했던것이다. 조선봉건왕조 초기에도 역시 그랬다.

지금도 리순신장군의 통솔하에 있는 우리 수군에는 대포까지도 있다. 그러나 그외의 일반군사들은 없기도 하려니와 어떻게 쏜다는것조차도 몰랐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당시의 사람들은 2백년동안이나 《태평성대》가 계속되는 바람에 《백성들은 병쟁기를 익히지 않았다.》고 자랑인지 한탄인지 모를 소리들을 했다.

마른벼락이라도 치는듯 한 소리를 내는 일본군의 조총알은 강을 건너 대동문과 련광정기둥에 두세치씩이나 들여박히기도 하고 더 멀리 날아와 대동관의 기와장을 부시기도 했다.

이미 행장을 다 차리고 발을 저겨딛고있던 왕은 더욱 바빴다. 그는 일본군이 동대원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여드레날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이 길을 막아서 못 떠났다.

《이 성을 끝까지 지키자고 하여 피란갔던 사람들까지도 도루 들어오게 해놓고 이제는 우리를 버리고 떠난다니 그럴법이 있소.》

이같이 항의도 하고 탄원도 하면서 길을 막는 백성들에게 왕은 《안 가겠다.》는 언질을 주었던것이다. 그러나 뒤구멍으로 령을 내려서 자기네의 길을 막았던 백성들중의 주동자라고 지목할만 한 세사람을 잡아 목을 베이게 한 왕과 그 측근자들은 어제 열흘날 또 떠나려고 했다.

식전부터 거리에 군교들이 설레더니 구종들이 안장을 지은 말들을 채찍질해가는것을 본 성안백성들은 또 왕의 행궁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왕이 또 떠난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성안, 성밖에서 흥분한 사람들이 쓸어들었다. 《제발 떠나가시지 말고 우리 백성과 함께 이 성을 지켜지이다.》라고 탄원하는 백성들에게 《안 간다.》는 언약을 하고는 사람을 셋씩이나 죽이더니 이제 또 떠나고야만다? 백성들은 격앙하지 않을수 없었다.

행궁 앞거리에는 창을 든 군사들이 좌우로 늘어서있었지만 사처에서 밀려드는 사람들의 물결을 막아낼수는 없었다. 벌써부터 몇몇 금관자, 옥관자짜리들이 말을 타고 나선 행궁문앞에는 중치막소매끝을 당겨쥔 두손을 땅에 짚고 꿇어앉아서 갓쓴 머리를 조아리며 중언부언 탄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왕이 평양에 오자 불러 보았던 늙은 선비들도 있었다. 또 그 등뒤에는 치마자락으로 눈물을 씻으며 넉두리를 해가며 우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어드러니 이때껏 피란두 안 가구 하늘같이 믿구있는 우리 백성들을 버리구 간단 말이요.》

《나라님(왕)도 가구 량반님네들도 가면서 우리 백성들 보구 남아있으라니 이럴법이 있소?》

이러한 할머니들의 넉두리에 그 등뒤에 빽빽이 둘러선 사람들중에서는 《그 할머니 말 잘했소!》 하기도 하고 《량반놈들, 너희두 같이 죽자꾸나야.》 하는 악에 받친 고함소리가 나기도 했다. 저마다 웨치고 떠드는 수많은 사람의 소리는 하나의 거창한 아우성으로 화하여 마치 바다우를 불어가고 불어오는 회오리바람같이 사람의 물결을 더욱 격동시켰다.

그런중에 《너희놈들은 뭘 하느냐.》하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문밖에 나선 관원들중에 맨앞에 서있던 선전관이였다. 혁을 당겨쥔 마상에서 한손에 채찍을 들고있는 그자는 자못 귀찮다는듯이 량미간을 찌프리고 백성들을 흘겨보면서 《썩썩 길을 내도록 쓸어버리지 못하느냐!》고 군사들에게 버럭버럭 고함을 질렀다. 어쩔수가 없어 한동안 멎었던 군사들은 할수없이 이번에는 사정을 안 본다는 투로 창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눈을 감고 내두르는 창날에 사람들은 뒤로 움치기 시작했다. 관원들앞에는 얼마의 공간이 생겼다. 그러나 물이 찐 자리에 우둑우둑 남아있는 큰돌들과 같이 그 자리에 그냥 남아있는것은 몽둥이나 도끼 혹은 검을 뽑아든 몇몇 장정들이였다.

휘두르는 군사들의 창끝이 그들에게로 육박해갔다. 덜렁 몽둥이를 떨어뜨린 한 장정의 소매속에서 피가 손등을 적시며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러자 피를 보고 무춤한 사람들 틈에서 곁쐐기치듯 한 검이 그 창날을 창대로부터 뭉청 잘라버렸다.

《잘한다!》

《거 씨원하다.》

《승검술 돌중이 오늘은 쓴다!》

몇순간 무춤했던 군중들속에서는 금시 또 이렇게 웨치고 떠드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웨치는 소리들에 살기는 없었다.

승검술 법근이가 찍은것이 사람을 찌른 군사의 팔이나 목이 아니고 그의 창대였으므로 그 류혈사건을 한낱 실수로 만들었다. 우선 사람들을 웃기였기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제 팔의 상처를 이편 손으로 눌러잡고 서있던 장정부터가 창날이 뭉청 달아난 자루만을 들고 두리번거리는 젊은 군사를 보고 허허허 웃었다. 군중들도 따라웃었다. 실수가 아니라 고의였더라도 이제는 한낱 몽두깽이가 된 창대를 들고 멋적고 미안한 낯으로 울상이 되다싶이 하고 서있는 군사를 용서하는 웃음들이였다. 법근이도 한번 크게 웃고는 다시 군중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같은 웃음으로 흥분과 격앙과 살벌을 풀어버리는 군중들의 허심한 상태를 기화로 삼으려는자가 있었다. 바로 선전관 다음에 섰던 관원이였다. 그자는 견마잡은 구종에게 말을 몰라고 재촉했다. 말은 몇걸음 나갔다. 그러나 길은 트이지 않았다.

웃던 군중들은 행차가 움직이는것을 보자 다시 앞을 막았다.

《썩썩 길을 트이지 못할가-》

버럭 호통을 뽑은 그자는 선전관의 손에서 채찍을 앗아들고 사람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아이구구-》

넉두리를 하며 울던 한 할머니가 문득 비명을 지르며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그자의 말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저마다 큰소리, 긴 사설, 외마디소리로 웨치고 떠들던 군중이 일시에 한입으로 지르는듯 한 《와-》 소리가 터졌다.

말우에 덩그러니 앉았던 그자가 한손에 채찍을 든채 물우에 짝배기로 뜨기나 한듯이 번뜻이 공중에 들리웠다. 제쳐진 말거미같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그자의 머리에서는 탱탱한 사모가 떨어져서 땅에 굴렀다. 맨 상투바람이 되여 망건의 옥관자가 더욱 번쩍이는 관원을 두팔로 추켜든 주복이는 어떻게 해야 화풀이가 될지 몰라 쩔쩔매는 눈치였다. 제앞에서 한 로파가 채찍에 맞아 쓰러지는것을 보자 눈에 홰불이 서는듯 한 주복이는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가서 그자의 뒤덜미를 우쩍 잡아들었던것이다.

《쇠주머구다!》

《잘한다!》

《이번엔 공중배지기로구나!》

《주복아- 그 옥관자짜리가 지금까지 도적해먹은 국록을 다 게우두룩 꺼꾸로 쳐들어라.》

사람들은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지 않아도 성이 난 주복이는 목덜미와 잔허리를 움켜쥐고 쳐든 그놈을 두손으로 맞집어서 수세미같이 비벼서 으깨놓든가 육장이 되게 태질을 하고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사람은 상하겠고… 그래서 밸풀이를 못해 어쩔줄을 모르는 주복이는 마당발의 열가락이 낱낱이 다 짚신총을 꿰뚫고나가게 벋디디고 선채 제풀에 후두두 떨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만 있었다. 만일 이때 말리는 사람이 없었으면 주복이는 화는 나고 어쩔줄은 모르고 해서 울었을지도 몰랐다. 마침 임욱경이가 나서서 말렸다.

《이 사람! 놓게. 이래가지구 일추갔나? 이러쿵저러쿵해두 다 우리 사람 아닌가.》

주복이는 말없이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임욱경이가 어덴가 같이 가자는것도 (아마 어데 가서 술이라도 같이 한잔하자는 뜻이였을것이다.) 못 들은척 하고 달아빼듯이 집으로 돌아오고말았던것이다. 나흘전에 넓은 마당 술청에서 팔씨름을 한 후부터 주복이는 임욱경이와 퍽 친해졌던것이다.

《우리 저놈은 뚝심을 좀 쓰는 놈이 천생 의젓은 하구… 그래서 누가 싸우재두 사람다칠가봐 대척은 못하구… 그래 그만 제 역정에 며칠씩 몸살을 하는 놈이웨다.》

로인은 문턱에 걸터앉아서 선하품을 하고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혼자 허허 웃었다.

임욱경이가 왜적의 수급을 베온 이야기와 또 평양사람들이 임욱경이를 떠받들었던 이야기까지도 끝났을 때 《오시는 길에 왕의 행차를 보셨다지요?》 하고 법근이는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 물었던 말을 또 물으면서 말했다.

《그럼 스님께서 한번 〈가시지 맙시사.〉구 말씀해보실걸 그랬습니다.》

《…》

서산은 듣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다.

《스님은 이전에 뵈여서 잘 아시는터에 잘 말씀을 하시면 상감님께서두 들었을지 모를거 아니웨까.》

또 이런 말을 하는 법근이는 실은 서산대사에게보다도 옆의 사람들에게 《우리 스님은 왕도 친히 알아주는 사람》이라는것을 자랑하고싶었던것이다. 그때는 이 집 식구들만이 아니라 옆집사람도 몇이 와있었다. 때가 때니만치 손에 일도 잡히지 않거니와 또 뉘 집에 낯선 사람이 왔으면 혹여 무슨 새로운 소식이나 얻어들을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로 자연 모이게 되는 사람들이였다.

이전에 본적이 없는 로승, 지금 법근의 말을 들으면 왕까지도 알아준다는 로승, 그러고보면 서산대사라는 이름은 전부터 익히 들어온 이름이기도 했다. 혹여 무슨 별다른 말이나… 하는 사람들은 무슨 구경거리나 같이 둘러서서 서산을 보고있었다.

《이 성안사람들이 다 나서서 만류하는 간청두 안 들으셨다지 않느냐.》

또렷하나 좀 잠긴듯 한 음성으로 나직이 대답하는 서산의 말에는 은근히 《부질없는 말을 왜 하느냐.》 하는 여운이 들리였다.

《대사가 서산대사라지요?》

이때껏 아무런 말참견도 않고 그저 뒤자부니에 살짝질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먼산바라보기를 하며 선하품만 하고 앉았던 주복이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럼 도술두 하구 앞일두 알갔는데 세월이 어떻게 될것 같소?》

그 음성을 따라 주복이를 바라보던 로승의 얼굴에는 표나게 눈섭이 약간 치떠지며 얼은 물살같은 웃음이 지나갔다.

《오래간만에 산에서 내려와서 지금 일도 잘 모르는 산승이 앞의 일을 알리가 있습니까. 그것은 도리여 소승이 여러분께 묻고싶은 말씀이올시다.》

이같은 대답을 한 서산은 이제 나올 사람들의 말을 들을양으로 귀를 기울이듯이 잠잠했다. 사람들도 잠잠했다. 마침내 《가보지 않으려느냐?》하는 눈으로 법근이를 본 서산은 지팽이를 짚고 일어섰다. 오래 앉았던 무릎에서 우적우적 소리가 나는 몸을 바로세운 로승은 사람들을 향하여 합장하고 바자문밖으로 나섰다.

《거리에 나다녀두 무사할가?》

주복이 아버지가 로승을 따라나서는 법근이를 보며 물었다. 법근이가 어제 행궁앞에서 칼을 뺐던 까닭에 하는 걱정이였다.

《조정량반들두 렴치가 있지. 저희는 갈데루 다 가놓구… 이제두 또 사람을 죽이갔소?》

법근이는 이렇게 두덜거리면서 서산을 따라갔다.

《욕심없이 늙은 대사로군!》

혼자소리로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마당까지 따라나간 주복이 아버지는 웨쳤다.

《대사- 이 담에 지나거든 또 들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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