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5 회


15. 일본사무라이의 원흉 풍신수길의 몇가지 문건


《명나라에 조공할 길을 빌리라.》

일본이 이러한 요구를 이번에 비로소 처음 제출한것은 아니였다.

풍신수길은 벌써부터 소위 국서라는것으로써 그것을 강요해왔던것이였다. 단순히 명나라로 래왕할 길을 빌리자는것만이 아닌것은 물론이다. 그 리면에는 어떠한 야망과 흉책이 숨어있었던가.

여기서 몇가지의 문건을 들어보기로 하자. 다음의 문건들은 이번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의도가 어데 있다는것을 수천만어의 해설이나 묘사보다도 더 명확히 형상적으로 보여주는것이기때문이다.


신묘년(선조 24년) 3월에 보내온 풍신수길의 《국서》.

(대강한 뜻을 우리 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일본국 관백(풍신수길)은 조선국왕에게 글을 올리노라. 우리 나라의 60여 주는 오래동안 서로 쪽나고 싸워서 나라는 어지럽고 강상은 없어졌더니 바야흐로 이내가 어미배속에 잉태하매 해가 어미품속에 들어보이는지라 관상쟁이 하는 말이 《해볕이 미치는 곳에 비치우지 않는데가 없으므로 이 아이 자라매 장차 그 어진 이름과 위풍이 사방에 미치리라.》 이렇듯 기이한바 있었으므로 자연히 싸우면 이기고 치매 반드시 얻는바 있어 천하가 이미 평정되고 우매한 백성을 어루만지고 고아들과 짝잃은자들을 긍휼히 여겨서 백성은 가멸코 나라의 재물은 풍족하여 천지개벽이후 오늘같이 흥성함이 없을지라. 사람의 일생은 백년도 다 못살거늘 내 어찌 이대로 울울한 세월을 보내고만 있으랴. 내 이제 곧 명나라로 뛰여들어가서 중국의 4백여주, 억만백성으로 하여금 그 풍속을 우리 나라의 풍속으로 바꾸게 하고 우리의 교화를 받도록 할지니 그때에 당신네 나라는 앞장서 들어가도록 하라. 미리 먼 앞날일을 념려하면 가까운 근심이 없는 법이라 내가 원하는바는 오직 내 아름다운 이름을 3국에 떨치려는것뿐이다.


신묘년 1월 18일에 풍신수길이 일본전국에 내린 명령서.

전국 각 진영의 군사 50여만명은 래년 임진년 봄까지 떠나도록 할것. 모든 제후들은 각각 3년 먹을 군량을 마련하라. 먼저 고려(조선)를 정복하여 그곳으로 일본백성을 다 옮겨서 밭갈고 씨뿌리게 하여 장차 당(중국)을 칠 기틀을 삼을것이다. (중략) 당의 천하는 내 소매속에 있다.


또 다른 하나의 명령서.

낮에는 고려의 성들을 빼앗고 빼앗은 성을 튼튼히 쌓는 일은 밤에 하라. 한시각이나마 잠시라도 머무는것을 허락치 않는다. 겨자 한알까지도 다 주으라. 싸움터에 나서서는 한놈이라도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 산이거든 산을 넘고 물이거든 물을 건느되 비록 함정을 만나서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뭐라고 개구를 하거나 발걸음을 멈추는것을 용서치 않는다. 오직 앞으로 나갈따름일뿐 죽은자만이 뒤에 남으라. 만일 뒤로 물러서는자가 있거든 왕후장상이라 할지라도 그 목을 베이고 그 권속들을 전멸하리라.


그해 12월에 풍신수길은 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즉 《나라를 통 기울여 다 갈것이다. 부자형제를 막론하고 한사람도 집에 남아있지 못하리라.》는것이다.

또 다른 문건에는 이런것도 있다.

즉 자기네 몇개인의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전국백성을 깡그리 전쟁마당으로 내몰려는 풍신수길에 대하여 반감을 가진 여러곳 제후들은 모두 이것이 무슨짓이냐? 하여 관백에게 반기를 들고일어날 쑥덕공론을 하게까지 되였으므로 풍신수길은 제자리를 비여놓을수가 없어서 제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조선으로 건너오지는 못했다는것이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