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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회


14. 대동강상의 담판 결렬


칠성문으로 들어가던 서산은 뜻밖에 《아, 스님! 스님께서 어떻게…》 하며 놀랜 소리를 지르며 따라나오는 소리에 돌아섰다.

《오, 너 법근이 아니냐?》

《소승 문안드리오.》

《오냐, 너는 여전히 절에서는 볼수 없으니 웬 일이냐?》

서산은 우선 법근이한테서 풍기는 역한 파, 마늘냄새에 자연 이마살이 찌프러지기도 했다. 한편 또 심한 장난꾸러기 애놈을 보는것도 같아서 웃기도 했다. 중이 그런 냄새를 피우는것만도 일종의 파계였다.

《죄송하올시다.》

저한테서는 의례히 그런 냄새가 날것인데다 더우기 산에서 내려오는 스님에게는 그것이 더 역할줄 아는 법근이는 몇걸음 물러서지 않을수 없었다.

《성안엘 가시더래두 지금 한창 더운데 좀 헐하셔서 저와 같이 가시지요.》

법근이는 돌아서서 옆집의 바자문안으로 들어갔다.

《아주바니, 우리 스님이 좀 헐해가시두룩 합세다.》

《사람의 집에 사람 들이는데 합세다 맙세다가 왜 있갔노. 어서 들어오시라게.》 하는 늙은이의 대답이 들렸다.

뙤약볕에 50여리길을 걸어온 서산은 쉴 생각이 없지도 않던차이라 따라들어가는데 《법근이놈이 끌어들이는것이 웬 사람이갔게. 저 같은 중놈이니 그렇갔지.》 하는 젊은이의 퉁명스러운 말이 들렸다.

《파파로승이로군! 어서 들어오우. 우리 저놈은 그만 제 밸풀일 다 못해서 속이 왜서 그러는게니 허물말구 앉으시우.》

이같이 미안쩍어하는 늙은이에게 합장한 서산은 권하는대로 허청간 그늘밑에 깔아놓은 밀짚장석에 앉았다.

《어데서 온 대산지… 어제 우리 성안에서는 큰 란리가 났더라오.》

이번에는 그옆의 마누라가 역시 변명을 하듯이 말했다. 주복의 어머니는 실은 낯선 외간남정이 들어온다는 바람에 자리를 일려다가 들어오는것이 중이라 그냥 눌러앉았던것이다. 중이라면 사람대접을 않는 풍습이라 내외여부도 없었다.

웃간 문턱을 베고 누워있던 주복이도 고개를 넘싯해보고 다시 누우려다가 늙은이지만 어덴가 보는 눈에 정신이 드는듯 한 그 모습이 보통 누더기중같지는 않은데 호기심이 나서 방문턱에 걸터앉았다.

이때 주인늙은이와 법근이가 서산대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독자들도 알 필요가 있으므로 여기서 작자도 한몫 들어서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오늘이 6월 열하루, 사흘전 초여드레날 아침부터 동대원일대에는 일본군사가 들이밀리기 시작했다. 거기는 우리 군사라고는 한사람도 없었다.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대동강에까지 다달은 적들은 눈앞에 평양성을 건너다보면서 넓은 벌판에 대오를 흐트리고 다리쉼들을 하는 판이였다. 그들은 우선 군마들을 밭으로 몰아넣어 아직 청초나마 제법 곡식꼴이 나는 낟알들을 먹였다. 또 장림벌나무들을 찍어다 세우고 솥가마를 매달아놓고는 근처의 집들을 헐어다가 불을 때서 밥을 짓는 한편 저마다 벌거숭이가 되여 대동강으로 뛰여들었다.

이편의 우리 군사와 백성들은 성첩에 붙어서서 처음 보는 산 왜적들의 모양을 구경하게 되였다. 강에서 물장난을 치던 왜놈들은 이쪽 사람들을 보자 감출데를 우야 더 드러내가지고 원숭이들이 흔히 하는 몸짓을 해보이기도 했다.

그중의 한자가 무엇인가 글자를 쓴 나무패를 대동문 맞은편에 드러난 모래불에 세우고 손짓을 했다. 련광정에 있던 우리 평양수성군의 장수들은 한 군사를 시켜 배를 타고 가보게 했다. 그는 글발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 내용은 일본군장수의 하나인 평조신이라는자와 적진중에 따라다니는 중 현소라는자가 조선조정의 대표로서 리덕형을 만나보자는것이였다.

지난 아흐레날 리덕형은 대동강 한가운데서 그자들을 만났다.

(임진란에 관한것이면 소설이건 단순한 기록이건 대개는 다 이 면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들을 해온것이기때문에 여기서는 자세한 묘사는 그만두고 골자만을 추리기로 한다.)

리덕형은 사모관대하고 한척 편주에 올랐다. 동행이라고는 지필묵을 갖추어든 박성경이라는 한 군관과 배를 젓는 군사 한사람뿐이였다.

저편에서도 우리가 보내준 배를 타고 마주 왔다. 련광정앞의 강 한가운데서 배전과 배전이 맞대게 되였다. 왜장 평조신과 왜승 현소는 4~5명의 군사들에게 옹위되여있었다.

리덕형은 그자들과 구면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그자들은 일본국사라는 명목으로 두번씩이나 한성에 왔던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리덕형은 접반사로서 그자들을 대해왔던것이므로 그자들도 조선조정의 대표로서 잘 아는 리덕형을 만나자고 한것이였다.

《다시 만나게 된 그대들을 전날같이 두 나라의 친선을 의논할수 있는 사신으로서 륭숭히 맞을수 없는것을 유감히 생각한다. 이러한 리유는 그대들이 더 잘 알것이다. 묻노니 일본은 어찌하여 전날의 친선교린의 맹약을 저버리고 명목없는 군사를 들어 이렇듯 전란을 일으키는가?》

리덕형이 먼저 써보인것은 대개 이러한 뜻이였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서 왜승 현소가 써보인 글은 다음과 같다.

《우리 일본은 당신네 나라와 서로 통할 의사가 있었으나 동래부산서부터 한성에 이르기까지 말을 전해주는자가 없어서 전전하여 사태가 오늘에 이른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은 두 나라사이에 의사를 소통할 길이 열렸은즉 곧 군사를 거둔 후에 의논할것이 아닌가?》

《우리 일본군이 조선에 요구하는바는 오직 명나라에 조공할 길을 빌리자는것뿐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동래부사 송상현이가 이미 명백히 한바 있었다.》

이같은 리덕형의 답변에 필담은 잠시 끊어졌다.

지난 4월에 일본군이 동래성을 공격하면서 《길을 빌리기만 하면 무사하리라.》고 써보인데 대하여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리기는 어렵다.》는 글로써 대답한 송상현은 끝끝내 굴하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한것이였다.

리덕형의 글발을 받아든 늙은 중 현소는 평조신과 한동안 뭐라고 씨부렸다. 글을 모르므로 지금까지 오고가는 필담에는 마이동풍인양 먼눈을 팔아 평양성을 건너다보고만 있던 평조신은 현소의 말을 듣자 제 울깃불깃한 갑옷같이 낯빛이 변하면서 흥분한 어조로 지껄였다. 그앞에서 백포장삼에 금빛가사를 걸친 몸을 소약하게 쪼그리고있던 현소는 마침내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일본군사는 오직 앞으로 나갈줄만 알고 한걸음도 물러갈줄은 모른다.》

리덕형은 들고있던 붓을 놓았다. 그러자 배창날이 움직거리는 인기척을 등뒤에 느꼈다. 《일은 틀렸다.》고 본 군관 박성경이가 곧 칼을 빼려는 기세를 보이고있었다. 리덕형은 눈짓으로 말렸다. 현소는 글을 좀 아는 까닭에 비서격으로 따라다니는 한낱 늙은 중이고 평조신은 적의 한 무장이기는 하나 일본에 조공을 바치면서 풍신수길의 앞잡이노릇을 하는 대마도해적의 한 두목에 지나지 않는 위인이였다. 리덕형은 그깐것인 이자들을 죽여서 적에게 타격을 주기보다 이편의 신의를 떨어뜨리는 손실이 더 들것이라 생각했기때문이였다.

어쨌든 담판은 결렬되였다. 량편의 배는 강상에서 갈라졌다. 그때부터 일본군은 평양성에 대고 조총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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