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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12. 서산대사


오늘은 초복이다. 초복물을 낸다는 시늉이라도 하는셈인지 어제 밤에는 오래간만에 한소나기 비가 왔다. 오랜 가물에 시들었던 동금강암의 동구안팎의 나무숲은 어제 본 그 숲이건만 한밤사이에 더욱 깊어진듯 청청한 록음으로 소생했다. 이제 떠오르는 아침볕을 받으면서 잎잎이 청룡의 비늘같이 빛날 대추나무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꽃향기가 그윽하고도 한층 더 싱그럽게 풍겼다. 산새들은 숲속에서 가지와 잎 갈피갈피로 스며드는 맑은 려명의 빛을 반겨 지저귀였다.

마침내는 훤히 안개가 트이는 동녘의 먼 산마루로부터 금빛화살같은 광명이 구름을 꿰뚫어 퍼지기 시작하자 어둠과 안개속에 잠겼던 지상에는 간밤의 비로 멱감은 산과 들이 눈부신 연두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새로 창조된듯 청신한 아침풍경이였다.

그렇듯 맑은 산과 넓은 들에 생기를 돋우는 새 해발은 이쪽 산중턱에 자리잡은 동금강암 작은 암자의 열어젖힌 법당안에도 비껴들어서 마치 태고적부터 세보고 꼽아보아도 셈이 안 닿는 무엇이 있어서 언제까지나 그 한가락을 눌러짚고 궁리하는듯 한 불상의 금박올린 손은 더욱 커뵈였다. 중들은 그앞에서 념주알을 세여넘기면서 일종의 애수를 띤 나직한 소리들로 불경을 외우고 혹은 《관세음보살!》을 찾기도 했다. 그들이 피우고 뚜드리는 목탁소리와 목향냄새까지도 역시 창연하고 태고연한 감각이였다.

그 법당 앞뜰에서 돌층계에 올려놓은 한발의 신들메를 매고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 한 로승이 있었다. 그의 등뒤에서 머리를 숙이고 합장했다가 《서산스님께서 떠나시오.》 하며 고개를 쳐든것은 편석대사였다.

법당과 큰방에서 뜰로 내려와 합장하는 승려들에게 마주 합장하고 돌아선 서산대사는 좁은 마당귀에서부터 바위짬을 아로새겨난 비탈길에 지팽이를 가분가분 옮겨짚으며 내려갔다. 비록 학같이 수척하고 키도 자그마한편이지만 살대같이 바른 자세와 너그러운 장삼으로써 오히려 풍채가 표일한 그의 행보는 지금 일흔두살의 로인이라고는 할수 없을만치 한발걸음의 서슴도 뒤뚝임도 없이 진중하면서도 가벼웠다.

동금강암의 동구는 한가닥 내물을 아홉번 건는다는 격의 구곡양장 깊은 산속은 아니나 역시 될수록 인가근처와는 멀리 절터를 잡는 중들의 취미에 맞는 동구였다. 한가닥 오솔길을 두고 좌우에 우거진 나무숲, 그밑에는 지금이 제철인 도라지, 칡, 싸리 같은 소탈한 야생꽃들이 피고 그우에서는 갖은 산새들이 남남히 지저귀는 소나무, 대추나무, 떡갈 같은 나무숲으로서 산은 은은하고 산개울 장류수는 잔잔히 흘렀다.

이 담화적인 풍경속에서 안개빛으로 담한 수묵색장삼에다 짤막한 비색가사를 수하고 삿갓을 쓴 한 로승, 이따금 지팽이를 멈추고 서서 동천의 구름을 헤치고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는 그의 눈우에는 백설같이 흰 눈섭이 실실이 드리워있었다. 눈을 내려덮은 긴 눈섭이 만일 그같이 맑게 희지 않았다면 칠순이 넘은 로인의 얼굴은 눈섭만이다싶이 탁하고 음험하게도 뵈였을것이다. 그러나 은실같이 흰 그 장미와 그 그늘밑에 마치도 깊은 샘물에 하나씩 던져진 별그림자같이 빛나는 눈으로써 그의 얼굴은 더욱 맑은 혈색이 어리운 동안이 되였다.

동금강암 동구밖에서 순안읍을 들리지 않고 바로 평양으로 갈수 있는 지름길로 들어선 서산대사는 앞의 고개를 넘으면서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동구밖 대추나무밑에는 아직도 한 중이 이편을 향하여 합장한채 서있었다. 그것은 편석대사였다. 한창 록음이 무성한 때에도 그 원체만은 고목이나 다름없이 꺼칠한 대추나무밑에서 먹베장삼을 걸치고 그린듯이 합장하고있는 그는 거기서 돋아난 바위모양으로 언제까지나 움직일것 같지 않았다.

《이런 분요한 때에 산을 떠나심은 어떠한 뜻이온지?》

편석대사는 엊그제부터 끈히 물어왔다. 그는 지금도 그런 자기의 의혹을 깨쳐주기를 바라서 서산의 한마디를 기다리는것 같기도 했다.

《그저 한번 가보고싶으니 가는 길이요.》

서산대사의 대답은 이것뿐이였다.

서산이 묘향산 금선대에서 내려온것은 그저께였다. 보현사를 지나 십리쯤 온 길에서 편석대사를 만났다. 서산이 평양으로 나가는 길이라는 말에 편석은 놀랐다.

《어떤 뜻이온지?》

그때부터 그는 이렇게 물어왔다. 며칠전까지도 평양에서 《누더기중》 혹은 《누더기생불》로 호가 가게 급수공덕을 해온 그는 《지금 평양형편이 어떻소?》 묻는 서산에게 《그런것을 소승이 알수 있습니까.》 했을뿐이였다. 사실 모르기도 했다. 거리에 나다니기는 하지만 오직 보시니, 인욕이니, 정진이니 하는 불승의 여섯가지 계률을 상징하는 여섯총배기 륙바라밀이라는 제 짚신만을 굽어보며 물지게를 지고 이집저집의 부엌을 드나들지 않으면 어데 주저앉아 조을기만 해온 그는 평양에 있으면서도 평양형편을 알리가 없었다. 뿐만아니라 그런것은 선승이 알바가 아니라고도 했다. 그러나 임욱경이가 베여온 수급과 백성들의 행진에 분요와 내지는 피비린내나는 살벌을 느꼈던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러한 평양은 더 있을 곳이 못된다고 해서 총총히 떠나 다시 산속으로 찾아오던만치 《그 분요한 평양에를 가신다니 어떠한 뜻이온지?》 하는 편석대사는 단지 자기 스님의 뜻을 알아보고싶어서만이 아니라 《가시지 맙시사.》고 만류하고 반대하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묘향산까지 다 갔던 길을 되돌아서서 스님의 뒤를 따라왔던것이다.

안주성을 서쪽으로 바라보며 지나오던 때였다. 내내 서산의 그림자를 밟지 않을 정도로 따라오던 편석대사가 문득 《스님.》 하고 부르며 한편 길섶으로 비켜서서 합장을 했다.

《스님께서 지금 말씀하신것을 소승에게도 알려주실수 없사올지?》

그는 돌아보는 서산에게 이렇게 물었다.

《호- 내가 그만 입맥이 없어서…》

서산은 스스로 어이없다는듯이 웃으며 말했다.

《언젠가 지었던 환향시가 생각나서… 아마 그것이 중얼거려졌나보오.》

《예? 환향시오니까.》

편석대사는 자못 의외인듯이 그 숱한 눈섭을 치뜨며 물었다.

《아직 그런 이야기를 안했던가?


일행녀아규창지 학발린옹문성명

유호방통상읍하 벽천여해월삼경


이런 시였소.》

나직이 웃은 서산은 돌아서서 또 걸으며 말을 이었다.

《옛날 고향근처를 지나노라니 그런 생각도 나나보오. 늙었으니까!》

그의 말끝에는 나직한 한숨이 따랐다.

편석대사는 더 묻지 않았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따라가는 그의 얼굴에는 뜻밖이라는것만이 아니라 실망한 빛까지도 뵈였다.

하찮은 늙은 한 행객의 신세로 떠돌아다니던 길에 고향의 어느 한 주막에 들려서 백발이 다된 이웃집 늙은이와 한담을 하던중에 피차 아명을 대고본즉 같이 자란 어릴적 동무라 애놈들이 창구멍으로 들여다보며 키득거리는것도 상관않고 두 늙은이는 하도 반가운김에 또 덧없이 늙은 서글픔에 눈물을 흘려가며 구회를 푸느라 밤새는줄 몰랐다는 환향시는 서산대사가 3년전에 저도 모를 역적루명을 쓰고 한성으로 잡혀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이 안주땅인 고향근처를 지나면서 읊었던 시였다. 실지 그런 일이 있었던지 없었던지는 모르나 어쨌든 그 몇자 안되는 글에서 옛날 고향과 친구를 그리는 늙은이의 애수를, 그뿐아니라 인생이란 가다가는 그런 뜻밖의 반가운 회우도 있으니 역시 즐겁지 않느냐고 웃을수 있는 한 극적장면까지도 보여주는 시였다.

서산자신도 그 시를 사랑했다. 혼자 읊조리고는 혼자 웃기도 하고 또 한숨을 짓기도 했다. 그뿐아니라 몸은 이미 고목이고 마음 또한 재같이 식었다(서산은 늙은 자신을 흔히 이렇게 말했다.)고는 하나 그 시를 읊조릴 때면 가슴속 어덴가 온기를 느끼는것이였다. 아직도 그런 온기를 지닐수 있는 자신이 비록 머리는 셌을망정 마음까지는 세지 않았다는 생각에 스스로 미덥기도 했던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한끝으로는 《이제 내게 무슨 고향생각이랴.》 하고 웃기도 했다. 중이 된지 50여년, 산중에 들어앉아 일체 속세의 인연에서 해탈한 불보살의 마음을 내 맘으로 하기 위한 선공부를 쌓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때로는 그러한 회고와 추억으로써 창연해지는 애수를 느끼게도 되는 로승은 《내 이 무슨 잡념과 번뇌냐?》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꾸짖게 되고 한편으로는 《두어라.》 하기도 했다.

《정답던 고향을 그리는것은 사람의 심정이 아니겠는가? 고향은 그 회상만으로도 그윽하지 않은가!》

그렇기때문에 그는 자기의 회상과 번뇌를 제자앞에서 숨기려고 안했다.

편석대사는 이러한 서산의 심정을 몰랐다. 그렇기때문에 의외이기도 했고 불만이기도 했다.

서산스님의 시라면 일찌기 그가 보여주었던 자락가와 같이 《어데 가 머물러도 그만, 또 가도 천천히 하늘을 우러러 웃고 땅을 굽어 한숨 들이니 천지가 다 내 집이라, 들고나는 문인들 따로 있으랴!》 응당 또 이런것이려니 했던것이다.

서산스님은 이미 속세와 인연을 다 끊고 오직 서방 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할것만을 념원하는 열반의 경지에 든 대선사 스님이 아니겠는가. 응당 《나》라고 하는 관념을 다 버리셨거늘 어찌 내 고향이라는것이 따로 있긴들 하며 황차 그런것에 대한 집착과 번뇌가 있어 될말인가? 편석대사는 이렇게 생각했던것이다.

그뿐아니라 편석대사는 자기가 존경하고 아끼는 스님이 이 분분하고 살벌한 때에 평양으로 나가는것을 만류하고싶었다. 그래서 다 갔던 향산길을 되짚어 따라오면서 《어떤 뜻이온지?》 하고 끈히 물었던것이다.

이에 대하여 서산은 그저 《한번 가보고싶은 길이니 간다.》고 했다. 사실 그랬다. 이런 까닭, 저런 리유가 있어서보다도 서산은 이 국란에 깊은 산속에만 들어앉아있을수가 없었던것이다.

《하고싶은대로 해서 잘못될것은 없다. 가는것이 부질없지는 않으리라.》

서산은 이같이 자기를 믿는달가 혹은 유가(유교)에서 말하는 종심소욕이라도 불유규라는 자기의 칠십고령을 믿었을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하고싶은대로 해서 별로 후회한 일은 없다.》는 자신만은 있었다.

이러한 서산스님에게서 자기의 의혹을 깨뜨릴만 한 대답을 들을수는 없이 오히려 뜻밖의 《아상》과 《집착》과 《번뇌》만을 듣고 본듯 한 편석대사는 선승이 거처할데가 못된다고 생각해서 떠나온 평양으로 스님을 모시고 다시 갈 생각은 없었던것이다.

서산은 편석대사의 불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한 편석대사를 보는 서산은 사명을 생각했다.

사명대사와 편석대사는 나이도 비슷하고 또 한무렵에 서산문하에 들어온 제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서산문하의 제자라기에는 너무도 그 격과 풍이 달랐다. 그보다도 우선 같은 선승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선승다운 중이라면 누구나 편석대사를 먼저 꼽을것이다. 그러나 중도 사람이라는 눈으로 보면 사명당은 사람중에도 사내로 태여났고 편석대사는 배속에서부터 장삼입고 합장하고 나온 중이라고도 할것이였다. 서산대사는 대낮 폭양이 내려쪼이기 전에 길을 조금이라도 더 줄여두리라는 생각에 바삐 지팽이를 옮기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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