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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10. 장사 임욱경과 평양사람들


대동관 문지기사령이 원임대신 정철대감앞에 큰 문을 환히 열어잡았을 때 사창고앞에서 꺾인 저편 영문 앞거리로부터 종로일판이 툭 터지게 떠들며 조수같이 밀려오는 백성들의 행진이 나타났다. 행진은 행진이지만 어떤 모양으로든 정제하게 대렬을 지은것은 아니다. 그저 이 거리, 저 골목에서 따라나선 가지각색의 평양사람들이 군중을 이루고 또 제각기 떠들고 웃는 소리가 한데 어울려서 하나의 우렁찬 목소리같이 와- 와- 기세를 올리는 행진이였다. 그 떠들썩한 소리에 맞은쪽 대동문거리와 저편 법수머리까지도 어느덧 백차일을 친듯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행진의 선두는 벌써 대동관앞에 이르렀다.

《대체 웬 변일가?》

큰 문간을 나서다말고 주춤한 정철이와 소란한 소리에 놀라서 달려나오기는 하고도 역시 문안에서 기웃거릴뿐인 대신들중에는 《혹시 민란이나?…》 하는 불안이 없지도 않았다.

《저렇게 백성들한테 떠들리운건 대체 어떤자일가?》

《저건 한 토병이 아니겠소.》

《그러게 말이웨다.》

그들은 이렇게 쑤군거렸다. 토병이라는것은 같은 군사지만 서울 영문들에 있는 경군이라는 군사와 구별하여 시골군사를 이르는 말이다.

큰 거리가 꽉 차서 내려오는 행진의 선두에는 백성들우에 덩그렇게 떠들리워오는 한 군교가 있었다. 그는 인두관만치나 넓고 투박한 오동나무집에 꽂은 검을 무릎에다 비스듬히 뉘여쥐고 여러 사람들이 손과 어깨로 떠받들고있는 가게문짝우에서 얼굴을 숙이고 의젓이 앉아있었다.

《옳지, 저 토병은 어데선가 왜적을…》

《글쎄, 그렇단들 백성들은 이 웬일이란 말이요?》

그들이 또 이렇게 쑤군거리는 대동관 큰 문앞에서 백성들의 행진은 멎다싶이 했다. 법수머리와 대동문거리에서 아래물이 치받치듯이 맞밀어오는 사람들을 헤날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이 별장님 말이요?》

그 군교앞으로 모여들어 웅성거리는 사람들가운데서 뛰여나게 큰소리로 웨치듯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별장님은 황주서 왜놈하구 싸워서 그놈들을 죽이구 그놈들한테 끌려가던 우리 사람의 젊은 아낙네들을 구해준 장사요.》

모여든 사람들중에는 《무슨 일이야?》, 《저건 누군데?》 하는 사람도 있었기때문이였다.

《이 임욱경별장이 잘라온 왜놈의 대가리를 볼테면 영문앞에 가보소.》

또 다른 사람은 이런 말도 했다.

임욱경의 당홍동달이 야청군복의 어깨와 소매에는 확 뿜어진듯이 점점이 띠여있는 말라붙은 피흔적이 뵈였다. 그뿐아니라 그가 쓰고있는 갓양태의 한쪽이 갈라져있었다. 그것은 칼과 칼, 그보다도 몸으로써 맞부딪쳐가며 싸운 장렬한 정경을 말해주는것이였다.

《과시 장사다!》

《떠받들만 하다.》

《우리 사람이 다 저러문야…》

《여기서두 보이게 그 별장님을 좀더 버쩍 들어주소.》

이같은 새 사람들의 환성과 갈채로 백성들의 행진은 더욱더 기세가 높아졌다.

《왜놈이 어떤건가 좀 가보자.》 하며 영문쪽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다.

거기는 임욱경이가 베여온 일본군의 수급이 효수되여있었다.

임욱경이가 병사의 령을 받고 황해도쪽으로 렴탐하러 떠난것은 어제 새벽이였다. 림진강을 건는지 열흘나마 일본군이 지금 어디까지나 왔는가? 알려고 영문에서 보냈던것이다.

황해도땅에 들어서서부터는 두셋씩 몇패로 갈려서 수탐하며 나갔다. 임욱경은 봉산읍에서 일본군이 들어온것을 알았다. 돌아올 때는 아직 날 밝기 전 새벽이였다. 지름길로 들어서 산을 넘는데 밑에서 웬 녀인의 곡성이 들렸다. 달려가본즉 환갑도 더 지났음직한 꼬부장한 할머니가 홀로 최뚝에 쓰러져서 통곡하고있었다. 사연을 들은즉 같이 살던 작은아들은 며칠전에 군총으로 뽑혀나가고 왜적은 바로 옆동네까지 들어오고 해서 젊은 며느리와 과년한 딸을 데리고 중화고을에 있는 맏아들네를 의지하려고 피란을 가는 길이였다. 급해서 세간도 다 버리다싶이 하고 새벽길을 떠나오는중인데 난데없이 귀신같은 놈들이 여라문놈 쓸어오더니 딸과 며느리를 채가지고 방금 저 뒤산으로 끌고 갔다는것이다.

이런 사연을 말하고 또 땅을 치며 울던 늙은이는 《좌우간 그놈들이 사람이냐, 귀신이냐?》 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그런 불한당놈들은 《뒤더수기가 서뽐만큼씩한 놈》이라고 하는데 《그놈들은 상판대기가 서뽐만이나 해보이더라》는것이였다.

귀신이건 사람이건 어쨌든 임욱경은 그냥 둘수 없었다. 그는 자기 동행을 데리고 놈들이 방금 갔다는 뒤산으로 달려갔다. 과연 얼마 안 가서 악을 쓰고 몸부림치는 두 아낙네를 끌고 밀며 나무숲속으로 들어가는 한떼의 왜놈들이 바라보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놈들은 여라문놈이나 되는데 이편은 활을 가진 군사가 단 한명뿐이다. 활을 쏘재도 잘못하면 끌려가는 우리 아낙네들이 상할 념려가 없지도 않았다. 그래서 궁수에게는 짬수를 보아가면서 곁창질로 활질을 하라고 이른 임욱경은 우선 벽력같이 고함을 지르면서 검을 빼들고 달려갔다.

《이놈들아, 섰거라-》

깊은 골짜구니가 쩡- 울리는 고함소리에 이쪽을 돌아보는 놈들은 주춤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비호같이 뛰여든 임욱경은 번쩍 꼬나들었던 칼로 한놈의 대가리를 내리쳤다. 그놈이 석류같이 갈라진 대가리를 메치며 저희앞에 쓰러지는것을 본 일본군사들은 몇걸음씩 물러서면서 긴칼들을 뽑아들었다. 그중의 두목인듯 한 놈이 뭐라고 지껄이자 놈들은 두패로 갈렸다. 네댓놈은 붙들고있던 아낙네들을 끌고 가고 나머지 네댓놈이 임욱경이앞을 막아섰다.

임욱경은 그동안에도 검을 멈추지 않았다. 놈들이 칼을 들어 자기를 겨눌만 한 짬도 주지 않으려는듯이 휘둘렀다. 맹렬히 휘둘리는 그의 검은 전좌우로 둘러선 그 어느 놈의 칼과도 단 두합을 연해 부딪친적은 없었다. 보기에는 제 기운만 믿고 되는대로 휘두르는것 같기도 했다. 앞의 놈의 칼과 쟁그렁 소리를 낸 그의 검은 어느새 또 등뒤에서 번개불을 그리였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동안에 그의 바른쪽을 노리던 놈의 손목이 칼을 쥔채로 떨어졌다. 그러자 비칠거리며 물러서던 그놈은 날아온 화살에 옆구리를 맞고 쓰러졌다. 여전히 검을 마구 휘두르듯 하면서도 임욱경이가 정작 노리는것은 적의 괴수였다. 놈들중에 뛰여나게 장대한 그자는 긴칼을 뽑아들기는 하고도 한걸음 물러서있었다. 놈이 제딴은 단칼에 요정낼수 있는 결정적순간을 고른다는 눈치다. 한놈의 팔목이 떨어지자 놈들에게는 동작에 한매듭지듯이 주춤하지 않을수 없는 한순간이 있었다. 임욱경에게는 기회였다. 전좌우에 육박해있는 놈들의 칼날가운데로 깊이 뛰여들면서 엇비듬히 내리쳤다. 거의 같은 순간에 놈들의 칼도 그를 향하여 내려졌다. 그때는 마치 좁은 골목에서 길을 어기듯이 저편으로 몸을 날리는 임욱경이와 이쪽으로 기울어지는 괴수놈의 몸뚱이가 스치며 엇갈리는 순간이였다. 한놈의 칼이 임욱경의 벙거지의 양태를 끊었을뿐 다음순간에는 큰 기둥 하나가 넘어지듯이 일본군사의 괴수가 모짜로 쓰러졌다. 단지 동가슴만이 아니라 그속의 내장까지도 드러내놓고 넘어진 적의 괴수를 보자 놈들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때 또 벽력같은 임욱경의 고함이 들렸다. 우리 아낙네들을 끌고 가던 놈들은 얼마 더 가지 못하고있었다. 두 녀인은 끌려가던 숲속에서 잡히는대로 나무 하나씩을 팔다리로 감듯이 그러안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을 끌어가던 놈들도 이편에서 벌어진 격투에 더 정신이 쏠렸던것이다. 아차아차하는 동안에 한놈의 팔이 떨어지고 종당에는 저희 괴수가 넘어가고 그러자 또 산이 쩡 울리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조선장사앞에 기가 질린 놈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는듯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편에서는 우리 궁수의 화살이 날기 시작했다. 두세놈이 맞았다. 그러나 놈들의 옷은 원체 치수라는것이 없이 후렁후렁한 후리매라 달아나는 바람에 등에 바람이 풍겨서 뒤로 날아간 화살은 잘 안 받는 모양으로 살이 꽂혀가지고도 나무숲속으로 달아나버리고말았다.

두 녀인을 궁수와 함께 먼저 보낸 임욱경은 적들의 수급을 셋중의 둘만을 베였다. 첫번 놈은 골이 갈라져서 지저분하기때문에 그냥 버려두고말았다. 성하다는것도 꿈자리가 사나울것이였다. 상투밑을 미노라 하기는 한 모양인데 이마라 할것없이 통 내려밀어놓은 놈들의 상판은 정말 서뽐만이나 해보이는것이 아주 흉했다.


임욱경이와 궁수는 중화읍까지 안동해온 세 아낙네들과 작별하고 돌아왔다. 그들이 대동문나루를 건너서자부터 우리 군사가 일본군사의 수급을 가져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임욱경이가 영문에 들어가서 다녀온 보고를 하고 나왔을 때는 그앞의 거리에는 이미 터지게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저마다 가까이 가서 보려는 사람들은 밀고 당기고 붐비였다.

《그 별장님을 다 보게 어느 지붕에라두 좀 올려세울수 없소?》

저편 끝에서 이렇게 웨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말 그렇게라두 합세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틔워서 우리앞으루 지나가게라두 하든지 무슨 변통을 대야겠소.》

이같이 들고일어나듯이 여기저기서 떠들었다.

《저건 뭐냐?》

《거참, 굿하다 괭이다리 아닌가.》

또 이런 소리들이 났다. 사람들의 머리우로 큰 가게문짝 하나가 둥둥 나뜨듯이 앞으로 나가는것이 뵈였다.

《이제 저 가게문짝에다 그 별장님을 올려앉혀서 떠받든댄다.》

앞에서 이런 말이 전해왔다.

《거 누군지 그럴듯한 수를 냈다.》

《참 고마운 사람인데!》

사람들은 발돋움을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그 군교가 속히는 떠오르지 않았다.

임욱경이가 그럴수 없다고 고집하기때문이였다.

《아니, 이건 우리 몇몇 사람만이 생각한 일은 아니웨다.》

가게문짝을 가져온 사람들의 말이였다.

《별장님이 정 그렇게 고집할테면 이 사람들한테 다 물어보구 하소.》

임욱경은 더 사양할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사람들우에 덩그러니 떠올랐다. 환성이 일어났다.

평양사람들의 행진은 이렇게 시작된것이였다.

리순신장군을 존경하고 신각을 애석히 여기고 류극량을 칭찬해온 사람들은 지금 또한 쾌하고 미더운 사람을 직접 자기네가 맞이하게 된것이 기뻤던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였다. 한갈피 더 번지고보면 지금 동요하는 대동관에 대한 격려이고 경고이고 시위라고도 할수 있었다.

수도의 소위 구중궁궐이였다면 모를가. 발딱한 대동관의 동향은 어느 대신이 어떤 말을 했다는것까지도 곧 알려지는 형편이였다. 물론 지금 그런 말을 입밖에 내는 사람은 없었다. 자기네가 지금 대동관사람들에게 《좀 봐라!》 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속에는 그런 의식이 없을리가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단지 임욱경을 칭찬하는 환호만이 아니라 환호성을 올리는중에 문득문득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씻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감격이 지나쳐서 그렇다고 생각할는지는 모른다. 물론 그렇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은 《우리 백성들은 이렇건만…》 하는 울분과 흥분때문에 더욱 뜨거운것이 아닐수 없었다. 그들의 감격과 아울러 이같은 울분과 흥분으로써 그들의 행진은 더욱더 활기를 띠고 기세가 오르게 된것이였다.

도중에서는 《자, 나두 한몫합세다.》 하며 임욱경을 떠받들려 나서는 사람이 뒤를 이었다. 종로로 꺾어드는 어름에서 《이번엔 중두 한몫 나섰다!》 하는 소리가 났다. 우선 그 복색이 표가 나서 이야기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거 생불인가?》

《아니, 돌중이요.》

사람들이 이렇게 주고받는 말로 떠드는중에 그 앙천대소한다는 격인 법근이의 뢰락한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대사가 수굴 하는데 주머니에 솜이나 두툼히 둬서 하나 기워줘야갔다.》

누가 또 이런 말을 해서 사람들은 더욱 웃었다. 이 행진에는 이런 롱담과 웃음도 있었다.

지금 행진이 멎다싶이 한 관앞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머리우로 허연 사기병과 꺼먼 질그릇병들이 몇이 떠들려왔다.

《우리 별장님한테 술 한잔 드리게 길 좀 내주소.》

술병을 치켜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사람들 틈을 헤치고 앞으로 나오는 그들의 손에는 긴 문어발이나 넙적한 암치 같은 마른안주감도 들려있었다.

임욱경의 앞에는 저마다 따라서 내미는 술보시기들이 많았다. 임욱경에게 권할 차례가 오지 않는 사람들은 그를 떠받들고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잔을 주기도 했다.

《여기서 이럴것이 아니라》는 한가지 새로운 공론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길을 틔여서 행진은 다시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주복아, 너두 오너라. 이 별장님은 너두 알지 않니?》

임욱경이를 떠메고 걸어가면서 일변 큰 보시기의 술을 들이키던 법근이가 웨쳤다. 앞에는 전주복이가 있었다. 칠성문밖에서 뒤늦게 소식을 듣고 구경왔던 주복이는 아닌게 아니라 떠받들리운 군교가 낯이 익어서 더 자세히 보려고 앞으로 나섰던것이다. 지난 5월 초닷새날 구골에서 초면이지만 같이 한잔하자던 그 사람이였다. 주복이는 한번 괴춤을 추켜올리고 법근이와 나란히 들어섰다.

행진은 법수머리를 지나 륙로문 선창안의 넓은 마당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배길로 들어오는 외곳 사람들을 맞는 려각과 큰 주막들이 있었다. 산골에서 내려온 동나무, 장작배와 바다에서 들어온 고기배의 배사람들이 많았다. 양덕, 맹산에서 내려온 떼목군들도 있었고 사투리 다른 남도배군들도 있었다.

임욱경을 들여앉힌 3간통간의 큰 술청은 앞뒤뜰에까지도 사람들이 꽉 찼다. 멍석과 섬거적 같은것으로 있는껏 자리를 만들었다. 그래도 자리가 모자라서 맨땅에 앉거나 선채로 술잔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렇게 안팎에서 술잔을 드는 사람들은 대개가 두자짜리 상목을 한끝이나 혹은 두끝씩 술청 부엌과 통하는 새문턱에다 얹어놓았다. 거리에서 좌고를 보는 장사치들이 많았다. 보통벌과 강건너 동촌에서 들어온 농군들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는 개켰던 자리가 노랗게 쩔은 중치막을 떨쳐입은 늙은 생원님들도 있었다. 또 상목 한끝을 갖다놓고 문밖에서 임욱경을 한참 들여다보기만 하고 돌아가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어떤 깐깐한 사람이 부엌을 들여다보며 《나두 상목 한끝 놨으니 별장님이랑 오늘 수고한 장사님네한테 한상 좋이 차려드리소.》 하는 말에 무치는 고기를 주물던 주모가 《걱정마소. 우리두 이 손님네한텐 장사두 안합네다.》 해서 술청안팎이 웃었다. 누가 누군지 모르게 뒤섞여 돌아가는 틈에 한몫 끼여들어 잘 먹고 입만 씻고 돌아서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술도 고기도 풍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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