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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9. 대동관의 왕과 조정대신들


왕의 행궁인 대동관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있는 동헌, 서헌과 련광정뒤의 풍월정과 대동문뒤의 신관과 지금의 서문동근처에 있었던 청화관 등등의 객사들은 물론 민가들에까지도 사처를 정하고있던 고관대작들이 황토길을 짓이기며 대동관으로, 감영으로 부산히 드나드는 그 황황한 꼴이란 보기에도 딱할 지경이였다.

그들은 무엇이 그렇게 급했던가? 지금의 그들은 이 평양성을 어떻게 지킬것이냐 하는것이 아니라 이제는 또 어데로 피해야 할것이냐 하는것을 공론하기에 바빴던것이다. 평양성을 지키자면 어떻게 지켜야 할것이냐 하는 문제는 그전에도 별로 의논한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적이 림진강을 건너선 지금에라도 긴급히 토의해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였다. 지금의 조정공론은 평양을 지킬것이냐 말것이냐 하다가 어느새 평양을 떠나는것은 기정사실로 하고 떠나가는데는 함경도로 갈것이냐 의주쪽으로 갈것이냐 하는 문제만이 갑론을박의 중심이 되고말았다.

그중에는 아직도 평양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하는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것은 바로 며칠전에 령의정이 되였다가 그날로 물러나게 되였던 류성룡과 좌의정 윤두수와 리조판서 겸 평안도 도순찰사인 리원익 같은 몇사람뿐이였다. 이밖의 원임대신 정철을 비롯한 다수의 조정대관들은 하루바삐 평양을 떠날것만을 주장하고있었다. 그 리유는 현재 우리는 새로 군총을 초모하고 훈련하는 등 군사를 근본적으로 재건해야 할 처지니만치 지금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적이 바로 성밑에까지 육박해있는 이 평양성에서는 그런 일이 임의롭지 못할뿐아니라 이 위태한 곳에 《대가를 모시기 황송하므로》 하루속히 의주로 가거나 내지는 압록강을 건너가 앉아서 여유를 두고 완완히 권토중래할 대책을 세우도록 하자는것이였다.

왕도 이 다수의 편이였다. 그가 평양백성들에게 같이 성을 지킬것을 언약하고 또 그러기 위한 대책을 세우노라 한것은 불과 한달전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이 평양성을 떠나기가 누구보다도 급한 사람이였다. 일이 이렇게 되고보면 조정의 공론은 정철이하의 다수는 전제군주인 왕의 뜻을 받들어 정정당당히 주장하는 편이 되고 류성룡과 윤두수 등 몇사람은 구구히 간해보기나 하는 립장에 서게 된다.

그같이 불리한 립장에 서게 된 류성룡과 윤두수와 리원익은 왕의 뜻과 조정공론을 돌리기 위해서 한번 더 왕에게 간해보기로 했다. 그들은 지난 초하루날(6월)에 당한 일을 생각하면 더우기나 지금의 조정공론을 그대로 따라갈수는 없었던것이다. 당한 일이라는것은 이렇다.

명나라의 료동도사가 조선의 사태를 알아보기 위해서 최세진, 림세록이라는 관리들을 보내왔다. 례조판서 윤근수가 조정을 대표해서 그들을 맞았다. 후날에 왕도 그들을 만나보았다. 그런데 림세록의 말에 의하면 일본군이 쳐들어온지 불과 20일이 되나마나해서 조선왕이 수도를 버리게 되였다는것은 알수 없는 일이라는것이다. 그래서 지금 명나라에서는 일본이 조선에 쳐들어온것이 아니라 조선이 명나라를 치려는 일본군을 이끌고 쳐들어오는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는것이다.

딱한 일이다. 당시 대신들은 그 오해를 풀기 위해서 무척 애를 썼다. 그러나 림세록은 여전히 석연치 않은 모양으로 돌아가고말았다.

이러한 오해는 지금 원병을 청하는중인 명나라와의 교섭에 큰 지장이 아닐수 없는것이다.(이에 관해서는 후일에 자세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것이다.)

류성룡과 윤두수는 이러한 사태를 전제로 하면서 명나라의 원병이 올 때까지 이 성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또 시작했다.

때는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6월 초순, 더우기 거의 한달동안이나 내리가무는 날씨는 대단히 뜨거웠다.

왕은 대청마루 한가운데 북쪽담에 기대듯이 남향하고 나앉았다. 왕궁이 아닌 이 대동관에 룡상이 없는것은 물론이다. 그나마 호상(교의)조차도 내놓지 않았다. 그저 마루바닥에다 돗을 편 우에 얄팍한 수방석 하나를 깔았을뿐이다. 왕의 의관도 익선관이나 곤룡포가 아닌것은 물론이였다. 모르고보면 왕이 전좌했다기보다도 어떤 집 큰 사랑에서 흔히 볼수 있는 한 소탈한 선비의 행색이나 다를바없었다. 그만치 왕의 위의를 갖추었다고 할만 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그의 앞에는 신하들이, 그나마도 전보다는 수가 퍽 적어진 신하들이 부복해있을뿐이였다.

모두 큰 옷에 땀이 배면서 흘렀다. 왕궁이면 이런 여름날에는 어데를 가나 왕의 등뒤에서는 쌍학선 긴 부채가 흐느적일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곁에는 방안을 식히기 위한 얼음 한덩어리 놓여있지 않았다. 무덥지만 대신들이 부복해있는 자리라 왕은 손수 할수 있는 부채질도 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 좀 동안을 두고 좌우로 모꺾어서 직품과 위계를 따라 차례로 엎드려있는 사람들의 사모와 전립밑의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흘렀다. 란시니만치 이때의 대신들중에는 문관이지만 전립에 구군복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군이 림진강을 건너선지 벌써 열흘나마 되는 지금 또 해야 그 소리인것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지난스럽게 더운 날씨였다.

《…거듭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사태가 이러하온즉…》

좌의정 윤두수가 먼저 시작했던 말을 다시 이었다. 이미 의논이 맞았던 류성룡이의 말을 기다렸으나 언제든 자기 조신이 앞서는편인 류성룡이 또 앞뒤끝을 재는지 좀해서는 입을 떼지 않을 모양이므로 제가 먼저 말을 시작했던 윤두수는 이제나 하고 류성룡이 나서기를 기다려서 잠시 말을 끊었던것이였다.

《사태가 이러하온만치 이곳을 떠날것이 아니오이다. 지금 기다리는 명나라 원병도 우리가 이 성을 지킴으로써 더욱 속히 나오리라는것은 명약관화한 일인줄로 아뢰오.》

《…》

왕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또 들어야 그 소리… 하는듯 한 태도였다.

《또 지금 이곳의 사태는 한성과도 다른줄로 아뢰오.》

마침내 류성룡이도 입을 열었다. 이같이 시작만 하면 현명한 그는 사리에 맞는 말을 하는편이였다.

《앞에 큰강이 있어 그 지형만으로도 이 성을 지키기에 유리할뿐아니오라 한성에서는 충주의 패보가 이르자 성안백성들이 다 흩어져 지킬래야 지킬수 없었으나 이 평양백성들은 동요하지 않고있사오니 가히 머물러 이 성을 지킬수 있는줄로 아뢰오.》

《…》

왕은 역시 말이 없었다. 그는 얼마전까지도 《경들이 의논좇아 하오.》 이런 우유부단한 태도의 대답쯤은 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왕은 완전히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한것이였다. 그래서 이미 후궁과 왕자들을 함경도쪽으로 떠나보내기까지 한 그는 아직도 이 평양성을 지키느니 마느니 하는 공론은 한갖 시끄럽기만 했다. 지금 급한것은 오직 함경도로 가느냐 의주쪽으로 가느냐를 결정하는것뿐이다. 그렇거늘 이왕 하고도 남은 말을 왜 지금 또 지긋지긋하게 끄집어내는가?

왕은 이 자리가 초조하리만치 성가시기만 했다. 그러나 체통에 그런 내색을 할수도 없어 그저 밖을 내다보고만 있었다. 안뜰을 가로막아선 큰 문간 지붕너머로 바라보이는 대동문- 조선봉건왕조의 하나의 미신이다싶이 그 성질이 아주 용맹하고 담대한것으로 알려진 이곳 서도사람의 기질을 그대로 나타낸듯이 날카롭게 쳐들린 대동문의 추녀끝을 바라보는 왕은 이 평양이 새삼스럽게 더 생소한 곳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딴은 한성이 위태해서 이리로 피란을 왔다가 또 여기가 불안해서 다시 딴데로 자리를 뜨려는 하나의 피란객이 잠시 머물러있던 곳이 생소하다는것쯤 새삼스러울것도 없는 일이다.

이런 말은 구태여 왕 선조 한사람을 폄하기 위해서 일부러 비꼬아하는 말이 아니다. 봉건군주라는 사람들은 자기가 나라의 주인이라고는 하면서도 대개는 자기 궁중에서 한걸음만 나서면 모두가 생소한 곳이고 그뿐아니라 그자신이 모든 백성에게 생소한 사람이 아닐수 없는 존재였다.

《신도 같은 뜻으로 아뢰오. 이제 대가가 이곳을 버리고 떠나시면 장차 어느 성을 의지하여 적을 막사오리까?》

윤두수가 류성룡의 말을 받아서 또 말을 시작했다.

《혹시 대가를 받들어 압록강을 건느자는 말도 있었사오나 신이 듣사옵기는 그런 불충불신한 말이 더는 없을줄로 아뢰오.》

이때 《으흠.》 하는 신음에 가까운 기침소리가 났다. 그것은 원임대신 정철이였다. 윤두수의 말에 두손을 안으로 욱여짚고 발뒤축을 모아서 궁둥이를 고이고 엎드려있던 그의 람색천릭(무관이 입는 제복)이 척 끈달라붙은 큰 솥뚜껑만 한 잔등은 한번 큰 경련이 지나가는듯이 꿈틀하고 안 올린 벙거지밑의 반백이 다된 머리는 들먹거렸다. 얼마전에 자기가 했던 말을 더할나위 없는 불충불신이라는데 불끈하는것을 참노라니 자연 신음소리조차 나왔던것이다.

윤두수는 임금앞이라 감히 얼굴을 들어 건너다보지는 못하나 그런 기침소리로써 정철이 얼마나 부르텄다는것을 짐작은 했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또 말을 이었다.

《한번 우리 강토밖으로 발을 내디디오면 구차한 목숨은 부지할지 모르오나 그밖에 더 할 일이 무엇이오니까? 그렇게 되면 모르옵거니와 원병도 없을것이오이다. 이 평양성은 그 지형됨이 금성탕지(매우 견고한 성)라 할만치 지키기 쉽사옵고 또 군사가 많고 군량도 족하오니 여기서 더는 한걸음도 물러설것이 아닌줄로 아뢰오.》

윤두수의 말은 일단 끝났다. 무기라야 활과 창검 또는 고작 조총뿐이던 그 당시로서는 평양성은 과연 금성탕지라고도 할수 있었다. 이 점만으로도 류성룡과 윤두수일파의 말은 옳았다.

이런 말은 지금 처음 하는것도 아니였고 또 처음 듣는것도 아니였다. 그러나 이제 그 말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대답할가? 서로 밀고 기다리기라도 하는듯이 만좌는 잠잠할뿐이였다. 그런중에 《경의 말은 너무 답답하오.》 하는 왕의 한마디가 들리였다. 그러자 만좌는 더욱 숨소리조차도 죽은듯 했다. 그중에도 윤두수와 류성룡의 머리는 더 푹 수그러질수밖에…

무릎우에서 바르르 떨리는 자기 손끝을 굽어보는듯 한 왕의 머리도 역시 숙여있었다. 실로 답답한 모양이였다. 그는 자기 감정을 끝까지 감출줄을 모르는 사람이였다. 소위 《태평성대》의 군주로서의 교양을 쌓아서 시를 짓고 사군자(매화, 국화, 란초, 대나무를 이르는 말)도 칠줄 아는 그는 오히려 자기 감정에 부치는 사람이였다. 평양에 들어오자 이 성을 지키겠노라 하고 또 그러기 위한 조치를 하노라 한것도 실은 그때문이였다.

궂은비를 맞아가며 한성을 떠나서 5백 50리길을 달려오느라 7~8일동안을 난생처음 당하는 고생을 겪다가 평양성에 들어서고보니 대동강과 청류벽은 천작으로 금성탕지를 이루었고 락락장송에 둘리우고 수양에 그늘진 성시는 아름답고 번화하고 사람들은 많고 씩씩해보이고 가옥제도도 살만 한데 그는 우선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꼈던것이다. 따라서 《이 성은 꼭 지켜야 하겠다.》는 생각도 안한바는 아니지만 그보다도 《이만하면 지킬수 있지 않은가!》 하는 자신이 먼저 앞섰던것이다. 이러한 자신은 물론 자신이라기보다도 일시적인 기분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인줄은 자기는 몰랐다. 그랬기때문에 불과 한달전에 백성들에게 했던 자기의 언약을 다 잊어버린듯이 지금은 이곳을 떠날 생각만이 급했던것이다. 본시는 백성을 속이려던것은 아니나 자기 기분에 떠서 했던 언약이기때문에 그 기분이 다 사라진 지금에는 잊어버린듯이가 아니라 참말 다 잊었을는지도 모른다. 이런 점까지는 천착(억지로 끌어다가 리치에 맞도록 말을 하는것)해볼 길이 없으나 하여간 그는 그런 기분때문에 하나의 변덕스러운 사람이 될수밖에 없었던것만은 사실이다. 아무리 변덕스럽더라도 왕은 왕이라, 더우기 진노한 왕의 앞이라 모두 숨도 크게 못 쉬고 엎드렸을 때에 《좌상(좌의정)의 말이 비록 옳다 하더라도…》 이런 말이 떨리는 소리로 울려나왔다. 정철이였다. 일단 말을 끊고 기침을 한번 하고나서 계속하는 그의 격분한 말소리는 더욱 떨리고 높았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손 신자의 도리로써 그럴법이 있소. 신자로서 어찌 감히 성의를 거슬려서까지 대가를 이런 위경에 만류한단 말이요. 그 방자한 거조 죄주어 벌하심이 마땅한줄로 아뢰오.》

정철의 이런 말에 부복해있던 사람들의 체지들은 더욱더 가드라들고 졸아들었다. 군주의 뜻을 거슬렸으니 마땅히 주어야 한다는 벌은 결코 헐한것이 아니기때문이였다. 만일 이 자리가 임금앞이 아니였다면 그 말을 하는 정철은 손세 잘하는 제 버릇대로 손을 들어서 제 목을 도리는 형용까지도 해보였을는지 모른다.

어떤 처분이 내릴가? 왕은 그저 잠잠했다. 이상 더 가만히 앉아있기가 난감했던지 왕은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편전으로 들어가고말았다. 비로소 대신들은 긴 한숨을 내쉬고 일어들 났다. 내시가 부채를 몇자루 가져다놓았다. 부채가 몫에 돌아온 사람들은 소매속으로 바람을 부쳐넣으며 서성거렸다. 어떤 사람들은 뜰로 내려갔다. 한낮이 기울가말가 한 폭양은 처마그림자조차 린색하게 짧은 뜰안을 자글자글 끓이는듯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긴장해있던 자리보다는 역시 자리를 옮겨 거니는편이 좀 나을것 같았다.

《판서대감… 리판서대감.》

리덕형이가 이렇게 재차 불러서야 돌아보는 병조판서 리항복은 《웬 실없는…》 하듯이 싱그레 웃었다. 며칠전까지도 리조참판벼슬에 있다가 왕의 특별한 처분으로 벼슬다리를 한둘쯤은 건너뛰여 일약 병조판서가 된 리항복은 《판서대감》이 아직 자기같지가 않아서 어색도 하려니와 더우기 무관한 자리에서는 《이 사람아》, 《자네》로 통하는 죽마고우인 리덕형이가 그렇게 부르는데는 웃지 않을수가 없어 《그래 참판령감, 무슨 말씀이요?》 하며 마주섰다. 같이 뙤약볕의 뜰을 거닐다가 저편 앞채의 처마그늘밑에 들어선 때였다.

《가부간 결말은 속히 나게 됐네.》

《어째서?》

리덕형의 말에 리항복이 되물었다.

《어째서나마나 그만하면 나올 말은 다 나오지 않았나.》

리덕형은 여전히 빙긋이 웃었다. 30이 갓 넘은 당상관 리덕형은 풍신이 맑고 준수한 편이였다. 말바로 관옥같은 그 얼굴의 빙그레한 웃음을 보는 리항복은 어려서부터 잘 아는만치 《또 무슨 실없는 소리를 하려구…》 하면서 물었다.

《나올 말이라니?》

《아, 그 한마디면 그만인 말이 있잖어? 〈신자의 도리로써… 으흠!〉 하는…》

《쉬- 대체 령감께서는 모가지가 몇이나 되시길래 그따위 소리를…》

쯧쯧 혀를 차는 리항복은 말은 롱조였으나 그 눈은 날카롭게 주위를 살폈다. 그러한 리항복 역시 리덕형 못지 않게 독설가라면 독설가이고 풍자객이라면 풍자객이였다.

《자네나 내나 다 목이 하나밖에 없길래 지금은 개구를 안하지 않소.》

이번에는 정색하여 이런 말을 하는 리덕형 역시 한때는 정철이와 함께 평양을 떠나자고 했던 사람이였다. 그때문에 리항복이한테서 사사로이나마 톡톡히 꾸중을 듣기도 했던 그는 혼자소리같이 《좌상의 말씀이 옳기는 한데…》 하며 또 거닐기 시작했다.

아직 삼십소리하는 이 두사람은 소위 당상관이라는 조정의 대신관리치고는 가장 젊은 축이였고 또 한때는 그 재질과 아울러 바른말을 능히 하는 패기로써 일찌기 이름을 날렸던 소장파였다. 그러나 행이랄가 불행이랄가 소년등과해서 조정에 선지 10년 경험은 이들로 하여금 조정공론의 귀결은 누구의 옳은 주견으로보다도 누가 잡도리를 더 잘하는가 못하는가에 달렸고 또 어느 편이 먼저 《신자의 도리》라는것을 을러메고 상대편을 내려치는가에 달렸다는것을 잘 알게 된 사람들이였다. 그리고 또 자기들은 조정에선 신하로서 도리상 옳다고 생각하는바를 건의는 하되 잡도리는 안하는 사람으로 자처하는만치 조정공론의 대립이 격화될 때면 언제나 구경하는 립장으로 물러서는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였다.

《사리의 당, 부당은 고사하고 말문을 막는 탄핵부터 나오니…》

같이 거닐던 리항복이 역시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이때 문득 대청마루에서 큰소리가 났다. 좌상 윤두수의 소리였다.

《아욕- 차검- 참녕신을!》

목청을 돋구어 길게 뽑아 읊조리듯이 웨치는 《아욕- 차검- 참녕신을》이라는 그 시구절은 《내 드는 검을 빌어 아첨하는 간신을 베이고저!》하는 뜻이다.

서성거리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흔들거리던 부채도 일시에 딱 멎었다. 긴장한 몇순간이 왔다.

《어허-》

너털웃음의 한토막같기도 하고 혹은 큰 신음소리같기도 한 정철의 소리가 들린다. 합죽선을 딱 접어 덜렁 내던진 정철은 윤두수앞으로 다가섰다. 두 재상은 마주섰다. 다같이 륙순이 가깝지만 아직도 정정하니 허우대가 좋은 그들은 키내기라도 하듯이 더욱더 허리를 펴서 뒤로 잡아제끼면서 몇순간 서로 마주 노리였다. 이때 《두분 대감- 이 무슨 일이오니까. 수통스럽소이다. 그만들 허시오.》 하며 둘사이에 나선것은 류성룡이였다.

접었던 합죽선을 쫙- 펴서 노발이 상지한 두 대감의 열을 식혀주듯이 활활 부치면서 그는 호탕히 웃기도 했다. 이런 때의 그의 버릇인 약간 채머리를 흔들듯이 그 봉긋한 수염을 좌우로 흔들며 랑랑히 웃는 웃음이 더 효과적이여서 두사람의 열을 식히는듯도 했다.

《어허 참! 해괴한 일이로고.》

마침내 이런 한마디를 던진 정철은 늘 삐뚤어지는 자기 사모를 바로 앉히군 하던 습관대로 두손을 들어서 안 올린 벙거지를 만지면서 허전허전한 걸음걸이로 대돌을 내려섰다. 그러한 그는 지금도 취하지나 않았는가싶었다. 정철은 안 취한 때보다 취한 때가 많은 사람이였다. 취하기만 하면 자작 지은 시가를 읊조려가며 (그는 《관동별곡》과 《사미인곡》 같은 시가를 남긴 시인이다.) 고담준론을 늘어놓을 때는 사모나 갓이 바로앉기보다 삐뚤어지는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취해서가 아니라 윤두수한테서 당한 모욕으로 격분한때문에 전립도 삐뚤어지고 걸음도 허둥거리는 모양이였다.

후세사람인 우리가 그 당시의 문헌들에 나타난바로써 미루어보건대 정철은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 고전적인 시가를 우리에게 남겨준 훌륭한 시인으로 존경할수는 있으나 이러한 큰 국란에 처하여 국가를 담당해나갈만 한 정치가는 아니였다.

그같이 정철에게 모욕을 준 윤두수는 아직도 대청에서 뒤짐을 지고 왔다갔다 거닐고있다. 그 역시 정철이와 마찬가지로 안 올린 벙거지에 구군복을 하고있었다. 저번 개성에서 어영대장으로 임명된 그는 지금은 좌의정을 겸한 장군이였다. 장군인 윤두수가 자기네의 주장을 반대하는 정철이를 베이고싶다고 한것이다.

그런데 그는 《드는 검을 빌어…》라고 했다. 왜 하필 남의 검을 빌어야 했을가? 하기는 그가 웨쳐 읊조린 그 시 역시 옛날사람의것을 빈것이다. 남의 말을 빌어서라도 자기의 진정을 곧대로 말했다면 상관은 없다. 그러나… 왜 이런것까지를 꼬치꼬치 따지게 되는가 하면, 정말 그가 자기네의 주장을 반대하는자들을 제거하기만 하면, 그래서 반대하는자들이 없어진다면 자기네의 주장을 꼭 관철할수 있는 무엇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없지 않기때문이다. 이 《무엇》이라는것은 그들이 주장하는바 평양을 지키기 위한 어떤 명확한 성산이나 계획을 말하는것이다. 우리는 어떤 기록에서든 그럴만한것을 찾아볼수는 없다. 그뿐아니라 오래지 않아 그들이 한 일로 보아서 이 의문은 더욱 풀리지 않는다. 아니, 겸손할 필요없이 말한다면 그런 계획이나 성산 같은것은 있었던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자기네의 주장이 그렇게 확고한것이 못되고 한낱 미둥거둥한것이니만치 그 반대자를 제거했으면 하는것도, 혹시 누가 검을 빌려주기나 한다면… 하는 정도였을것이다. 여기서 좀더 까놓고 말하면 이때의 윤두수가 정말 자기네의 반대자를 제거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기나 했던지? 만일에 윤두수가 그런 옛 시구절을 몰랐다면 그래서 자기의 말만을 가지고 말해야 했다면 정철을 그렇게까지 모욕할 용기가 있기나 했을는지?

이 당시의 윤두수 같은 사람들은(통털어 유식하다는 사람들은) 그런 시구절을 잘 따로외우기때문에 그것을 빌어서 자기네 생각을 혹은 자기 감정을 적절히 표현했다기보다도 오히려 그런 옛날의 시구절에 저자신이 구사되여 자기 생각이상으로 허장성세를 하는것은 물론 남을 폄하는데 지나치게 독설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것이 그 당시 문사태번이라는 일종 문자시대를 이루었던 이 시기의 사람들의 고약한 버릇이기도 했던것이다.

각설-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때에- 평양을 먼저 떠났던 정철이는 지금 허둥거리는 걸음걸이로 문간을 향하여 나가는중이였고 그보다는 며칠 더 평양에 남아있었지만 역시 결국은 떠나가고말았던 윤두수는 아직도 대청을 거닐고있는 이때에 조정대신들에게는 한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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