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7 회


7. 승검술 법근이의 검


법근이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갔으나 고충경이도 보패도 만날수 없었다.

모 꺾어앉힌 대여섯간 되는 깨끗한 초가였다. 안뜰을 둘러싼 수대바자밖에 덧바자같이 둘러심은 앵두나무들은 홍보석같이 무르익은 열매로 가지가 휘였고 마당기슭의 짙은 버드나무그림자아래는 노란 씨암닭 두세마리가 병아리들을 품고 앉아있었다.

《아버지 계시냐?》

바자문안에 들어서며 법근이가 묻는 말에 맞은편 퇴지방에 걸터앉아있던 엳아홉살짜리 어린 놈은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뿐이였다. 그리고는 엇마주난 부엌문안을 보면서 《중이야, 늘 오던…》 했다가 《응, 대사, 그 대사야.》 한다.

부엌에서 누가 《중이 뭐냐. 대사라구 하지.》 이렇게 타이른 모양이 분명했다.

《어데 가셨니?》

《촌의 우리 외할머니집에요.》 하고 또 《래일이나 모레 오신대요.》 한다.

이렇게 그애놈이 대답하는것은 부엌에서 도란도란 나는 녀자의 말을 받아옮기는것이 분명했다. 그 어린 놈은 고충경의 아들인데 부엌에서 나는 말소리의 주인은 보패가 분명했다.

《잘됐다! 난 낯선 사람하구 술을 마시면 취하질 않아서 싱겁더니…》 하며 먼저 돌아서는 주복이를 따라나갈수밖에 없었던 법근이는 《가만 좀 있으래요.》 이런 뜻밖의 말에 되돌아섰다.

이편 퇴로 건너와서 방문밖에 조가비만 한 삼미투리를 벗어놓고 방으로 들어갔던 애놈이 조금후에는 제 키만치나 긴것을 부둥켜안듯이 들고나오며 말했다.

《이거 찾으러 오시면 내드리라구 우리 아버지가 이르구 가셨대요.》

그것은 작년 봄에 법근이가 고충경에게 맡겨두었던 검이였다. 그때 묘향산에서 순안근처에 있는 동금강암으로 옮겨오게 되였던 법근이는 그만해도 생소한편인 작은 절에서는 그런 물건을 간직해두기가 불편도 했고 또 찾아가는 고충경이와 한때 이야기거리가 되기도 할것이므로 가져다가 맡겨두었던것이다. 이때의 일반백성들에게는 환도 같은 무기는 금물이였다. 보통량민들도 큰 장도칼을 지고 다니다가는 관속들한테 빼앗기고 뺨개나 건사하기가 일쑤였던만치 하물며 덮어놓고 사람값에 치지도 않는 중이 검을 가졌다거나 칼을 쓸줄 안다는 소문이 나면 어데서 민란이 나든가 불한당사건이 일어난 때면 비명에 걸려들기가 십상팔구였다. 이러한 일은 림꺽정란이 있은 후부터 더욱 심했다.

유지에 싸서 여러 매끼 동여맨 검을 받아든 법근이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대체 웬 일일가? 누가 언제 찾아간다고 말이나 했던가. 혹시 란시가 되니까 어지러워가는 세월에 이런것을 건사했다가…)

법근이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곧 머리를 흔들었다.

(고충경이는 그런 얄팍하고 초라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오냐, 내가 와서 찾아가더라고 말씀드려라.》 하며 장삼자락을 들치고 허리띠에 검을 찌르며 나섰다.

《이제는 우리두 이런 검을 쓰게 될 때가 왔나부네.》

법근이는 이런 말을 하며 주복이와 같이 함구문안으로 들어갔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