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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5. 두엄냄새 구수한 소발통


남문거리 이편의 옥골과 그 엇맞은쪽의 구골물목어구에서는 여러가지 음식냄새가 풍겼다. 우선 시큼한 김치냄새가 앞서는 골목들에서는 이집저집의 굴뚝모퉁이나 뒤담밑에 붙여놓은 딴솥들에서 선지, 곱밸같은 술국이 끓고 지짐부치개들이 우실거리고 그옆에 놓인 옹배기함지에서 김이 오르는 삶은 돼지고기와 소고기 혹은 순대 또는 그릇그릇에 메밀묵을 띄운 깨국과 질그릇자라병이나 혹은 유지배접을 한 버들방구리에서 풍기는 소주, 탁주냄새가 한데 뒤섞여서 식욕을 충동했다.

그런 음식그릇과 술방구리앞에는 여러 모양의 사람들이 모이고 둘러앉았다. 그중에는 한자리에서 같이 명절을 지낼 처자도 집도 없이 돌아다니는 막벌이군인듯 한 맨상투바람의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뒤머리를 한줌 듬뿍 놓고 칭칭 따서 늘어뜨렸거나 체두머리를 한 나먹은 총각들도 끼여있었다. 혹은 무슨 급한 길인지 짚신감발을 가뜬히 한 보행군이 있는가 하면 풀대님한 무명고의가랭이를 무릎까지 걷어올린 외촌농군들도 있었다. 그중에도 눈에 뜨이는것은 시커먼 털벙거지에 당홍동달이 야청군복을 입은 군교들이였다. 란시풍경의 하나로 요새는 외읍에서까지도 모여드는 그런 복색들을 많이 볼수 있다. 혹은 또 잔등에 횡십자로 걸친 멜빵으로 표가 나는 보교군도 보이고 꽁무니에 채찍을 찌른 마삯군들도 있었다. 어떤 술국솥앞에는 갓망건에 행전까지 친 중치막짜리가 선채로 수염에 탁주방울을 흘려가며 긴 목저가락을 엎쥔 손으로 술보시기를 기울이고있는것도 볼수 있다.

비록 씨름판도, 동산에 오르는 사람도 없는 봄이지만 그래도 봄맞이라 랭면집, 장국집, 상술집 같은데는 문을 닫았으므로 이런 골목의 로점들에서 흥정이 싸는 판이다. 비좁은 골목길은 먹고 마시고 떠드는 사람들로 왁자했다.

그런 골목안에 들어서서 기웃거려보는 음식함지와 옹배기곁에서는 《대추, 잣 다 박은 증편이요.》, 《훔훔한 소발통이요.》, 《문문한 엿이요.》,《달사 한 물구지찜이요.》 하고 주어섬기는 소리들을 듣게 된다. 혹시 처음 들어온 사람으로 보이면 《봄맞이에 한몫 본다구 잔뜩했던 놈의것 막 눅게 팔겠소.》, 《오늘 먹구 래일 죽을지두 모르게 된 세월인데 애꼈다 뭘 하갔소. 실컨들 자시구나 가소.》, 《상목 작은 한필(두자)이면 두셋이 술에 고기에 실컨 자시두룩 드릴테니 어서들 자시오.》 이런 투의 환영도 받게 된다.

《그 아주마니 음식은 못 사먹갔군.》

주복이와 법근이의 등뒤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그러자 《왜요?》 하는것은 《오늘 먹구 래일 죽을지두…》 하던 중년아주머니였다.

《우린 잘 먹구 래일두 모레두 살아서 기운을 써야 할 사람들이니 말이웨다.》

《아니, 그럼 내 말이 새없었소? 말 곤칩세다가레. 별장님 같은이가 잘 자시구 정말 이 란시에 이 소힘줄같이 힘을 써주시문야 얼마나 좋갔소. 눅게 해드릴테니 념려말구 자시오.》

《별장님》이라는것은 벙거지쓰고 군복입은 사람이면 군교나 하졸들에게라도 듣기 좋게 하는 말대접이였다.

《그러다보니 훔훔하게 무르질 않은 모양이웨다그려.》

이번에는 또 이렇게 타지(트집)를 잡는 투로 말하며 함지앞에 나앉아 보자기를 들썩해보는 사람은 눈에 뜨이게 장대하고도 퍽 부드러워보이는 군교였다.

《왜 안 물렀갔소.》

아주머니는 소발통 하나를 들어서 엄지가락손톱으로 가죽을 밀어보이며 말했다.

《자, 좀 보시오. 이만하면 장옷쓴 새색시는 시에미 몰래 먹기 좋구 초상난 상주님두 방립 쓰구 남몰래 먹기 좋게…》

입담좋게 주어섬기던 아주머니는 장삼소매가 불룩하게 큰 술병을 감추어들고 서있는 법근이를 쳐다보며 또 말을 이었다.

《저런 대사님네두 장삼소매루 입만 한번 가리웠다나면 언제 넘어갔는지 모르게 물렀쉐다.》

골목안에는 웃음이 터졌다.

《그러고보니 그 아주마니 입이 꽤 험하댔다. 저 대사를 돌중놈이라구 슬그머니 욕하는거 아닌가.》

《그러지 않아두 평양성중 모르는이 없는 난봉중인데그래.》

《저 아주마니가 한가지만은 몰랐쉐다. 저 대사는 익은 고기보다두 생살을 더 좋아한답디다.》

여기저기 술군들중에서 이런 험담이 나와서 웃음판은 더욱 왁자했다.

《가세.》

입심이 남한테 지지 않던 법근이도 좀 무춤했던지 주복이의 소매를 당기며 돌아섰다.

《가만, 이거 두어개 사가지구 가세나.》

주복이는 함지앞에 다가앉았다.

《살것이 없어서 그런걸 사?》

《소발통이 왜 어드래서. 두엄냄새가 구수하니 얼마나 좋게그래.》

《말씀이 더 구수하웨다. 나두 그 구수한 맛이 좋아서…》

주복의 말에 그 낯모를 군교가 이런 투로 말을 붙였다.

《초면이지만 우리 같이 한잔 안하갔소? 나는 평양이 처음은 아니라도 하두 오래간만에 왔더니 아는 사람두 없구 그렇다구 혼자 먹기는 슴슴하구, 그래서 저빗저빗하구만 있던차이웨다.》

군교는 초면이지만 낯이 익어보이게 부접이 좋은 사람같았다. 그래서 《고마운 말씀이기는 한데…》 하며 주복이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우리는 어데 좀 가볼데가 있어서 그렇쉐다.》

《아, 그러시우.》

《방색하는건 아니니 나삐 알지는 마시소. 평양 계시문 또 만나게두 될거웨다.》

《그럼 어서들 가보시소.》

이렇게 그 군교와 작별한 주복이와 법근이는 이것저것 익은 음식들과 술을 사가지고 골목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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