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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4. 평양거리의 생불


칠성문으로 들어서서 만수대고개를 넘어 영문 뒤등성이에 이르기까지는 한성안이기는 하나 무인지경이였다. 성밖의 동북쪽에 있는 수림의 연장인 송림이 영문 바로 뒤에 이르기까지 그 일대를 뒤덮어 울창했다. 그때의 평양시가는 영문 동쪽의 담장을 끼고 남쪽으로 돌아가있는 포정문밖의 하마비앞에서부터 시작된다.

거리의 집들은 모두 문들이 닫겨있었다. 별러서 잘 쉬고 즐겁게 놀수 있는 시절의 전례대로 철시는 했으나 이번 봄에는 씨름판도 없고 동산에 오르는 녀인네도 없는 평양거리인지라 그저 쓸쓸할뿐이였다. 거리에는 사람래왕조차도 드물었다. 간혹 곁골목에서 풍겨오는 부치개기름냄새와 혹은 어느 집 울너머로 보이는 딴장그네에서 흐느적이는 계집애들의 붉은 댕기가 고작 명절맞이고 봄빛이라고나 할가?

보통문과 맞뚫린 영문 앞거리를 지나 사창고앞에서 꺾이여 종로로 들어서는 큰 거리에도 역시 사람들의 래왕은 드물었다. 오직 대동관에서만은 사람들이 법석했다. 우선 그 드높은 지붕에 올라가서 기와골의 풀을 뽑고 룡마루의 기와와 추녀끝의 막새들을 고쳐놓는 사람들이 뵈였다. 또 환히 열린 문안으로는 떨어진 담모퉁이의 회를 다시 바르는 미장이들과 새 황토를 날라다가 뜰을 고루는 인부들이 보였다. 또 일변 새로 창호지를 한 문짝들을 떠이고 다니는 사람도 보였다. 왕의 행차를 맞을 차비를 하는것이다.

《차부를 하기는 단단히 하나부군. …》

주복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문안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 그럼 상감님이 오시는데…》

옆에 따라선 법근이는 어서 가자고 팔꿈치로 재촉했다.

《아니, 내 말은 꽤 질구하니 차불 한단 말야.》

《이 사람아, 질구하게 아니면 또 평양까지두 내놓는단 말인가?》

《그러게 내 말두 그게 제법이란 말야.》

《진수작말구 어서 가기나 하자.》

역정을 낸 법근이는 어깨까지 걷어붙인 장삼소매를 너풀거리며 앞장을 섰다. 부산히 걸어가던 법근이는 마치 산속에서 뜻밖에 잠든 범을 만나기나 한듯이 주춤했다가 큰 나무등걸에 몸을 감추듯이 두리두리한 주복이곁으로 바싹 붙어섰다.

지금 이들이 걸어가는 법수머리도 방금 지나온 관앞의 종로와 마찬가지로 큰 거리지만 이쪽저쪽의 가게방에 나앉은 사람들이 좀 긴 담배대를 내밀면 대통을 맞대고 맞불질도 할만 한 정도의 너비밖에는 안되였다. 물론 이때는 담배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 바로 얼마전이지만 형용을 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 폭밖에 안되는 거리 저편쪽에 법수머리다리의 돌란간에서 그린듯이 앉아 졸고있는 사람이 있었다. 누더기가 다되게 해지고 처진 옷을 걸치고있는 한 중년의 중이였다. 그의 옆에는 통들이 빈 물지게가 놓여있었다. 법수머리 돌다리건너로 뚫린 륙로문 선창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에 다리목에 서있는 버들가지가 흔들려 그의 얼굴과 어깨를 건드리건만 중은 역시 그린듯이 앉아 조으는 모양이다.

그의 뒤모양이 돌아보이게쯤 지나쳐서야 큰숨을 내쉰 법근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머리를 숙였다. 여전히 졸고있는 그 중은 편석이라는 선승이였다. 사명당과 함께 서산대사의 제자인 편석대사는 오래전부터 산에서 나와 이 평양 대동문 읍호루에서 혼자 선공부(불교공부)를 하면서 이른바 급수공덕을 하고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언제나 홀로 대동문루각의 기둥과 마주앉아 눈을 감고있지 않으면 물지게로 대동강물을 길어다가 이집저집의 물독을 채워주는것이 일이였다. 그것뿐 물을 길어다주는 집의 사람들과도 그는 아무런 인연도 맺으려 안했다. 늘 물을 길어다주는것이 고마와서 혹은 먹을것을 주거나 또는 옷이나 신발을 주어도 받는 법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누더기를 걸치고 제손으로 따로 캐들인 솔잎가루나 도토리와 칡뿌리 같은것들을 먹고살았다. 그렇기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누더기중》이라고는 하지만 《거지중》이라거나 《동냥중》이라고는 안했다. 누더기중은 고맙다는 말인사조차도 받으려 안했다. 그런 말에는 통 대답도, 들은체도 안했다.

혹시 어떤 집의 마음여린 아낙이 《늘 미안해서 저걸 어떻거나?》 걱정을 하면 《처음엔 미안두 했지만 저 좋아서 하는노릇 어떻거겠소.》 하는 남정들이 많아졌다. 물지게를 지고 어느 집 부엌문턱을 드나들든 언제나 인기척도 없이 표연히 나타났다 표연히 사라지는 편석대사는 무슨 그림자같기도 한 사람이였다.

사람들은 그런 편석대사를 두고 《사람이 그만큼 욕심이 없어지고보면 육중한 맛도 없어져서 발소리조차 안 내게 되는 모양이라》고들 했다. 그런 말이 퍼져서 나중에는 《간밤에 어느 집에서는 인기척이라고는 도무지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본즉 물독이 가득차있더라.》고 마치 복도깨비장난이라도 있은듯 한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편석대사는 또 잘 자는 중이였다. 지금같이 물지게를 지고 다니다가 저 편안한데 앉아서 조을고있는 편석대사는 여기서뿐아니라 강뚝에서도, 삿전골앞의 떡돌우에서도, 애련당골 풍월지련못가에서도 볼수 있다. 아무리 붐비고 떠들썩한 거리에서라도 그같이 한가히 조을고있는 그를 생각하려니 시 한수가 떠올랐다.


청봉정상일간옥

부세천착불상관


이라는 격일가? 비록 만여가호가 사는 평양성내에 있으면서도 그만은 첩첩산중의 그 어느 한 봉우리우의 한채 집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허망한 세상사는 내 알바 아니라는듯이 살아가는 사람이였다.

사람들은 그러한 그를 생불이 다된 중이라고도 했다. 따라서 그를 《누더기생불》 혹은 《누더기신선》이라고도 불렀다. 속세의 무진한 번뇌를 다 해탈한듯 한 그를 존경은 하면서도 제대로 경의를 표하기가 게면쩍기도 하고 또 좀 입이 험하기도 한 평양사람들이라 일부러 비꼬아서 하는 말이였다.

《이 돌중놈아, 넌 언제나 저런 생불이 되니.》

주복이가 지꿎게 일부러 큰소리로 하는 말이였다.

《가만있거라, 스님 듣갔다.》

엄한 훈장앞을 몰래 피해나온 글방애놈같이 비로소 기를 폈던 법근이는 다시 그쪽을 돌아보았다. 젊은 중 법근이는 존경하는 서산대사 큰 스님과 그밑의 사명당 같은 스님들보다도 편석대사를 더 무서워하는편이였다. 그렇다고 편석이 가래침을 돋구는 투로 《카-ㄱ》일갈을 하며 법장을 을러메는 성미는 결코 아니였다. 다른 스님들은 타이르는적이 있지만 편석은 불립문자그대로 통 말도 없었다. 오직 저자신 계률을 지키고 고행을 쌓는데만 용수가 없다고 할만치 엄격할뿐이였다.

법근이는 그러한 스님앞에 서기가 더 무서웠다. 자기를 대하는 편석의 눈이 못마땅해하는 눈이기때문에 그런것도 아니였다. 편석은 그런 눈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깎고 장삼입고 가사를 멘 같은 중이면서도 도무지 중답지 못한 제 행실이 스스로 보기에도 못마땅하기때문에 그 스님앞에 서기가 무서운것이다.

《…〈일의일반절인정 기포무심도자고〉 허허허…》

혼자 중얼거리던 법근이는 또 혼자 껄껄 웃었다.

《왜?》

《한심해서 말이다.》

《뭐가?》

《음… 나두 철들어서 중이 될 때는 저 편석스님같이 한벌 장삼에 바리대만 가지구 나서면 시끄러운 속세인정 다 끊어버리구 굶으나먹으나 도를 닦아 〈전미개오〉, 한번 깨쳐보자던거다.》

《그래서?》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중 법근이는… 아사라.》 하던 말을 내던지듯이 법근이는 쯧쯧 혀를 차고말았다.

《너두 물지게를 못 져서 그러니?》

주복이는 싱글거렸다.

《이놈아, 저렇게 물지게를 지기까지는 이만저만 맘공부를 해가지구는 되는 법이 아니다. 너같이 무식한 놈은…》

법근이는 문득 흑 느껴운듯이 숨을 들이키면서 코를 벌름거렸다. 이때 마침 한 수모인듯 한 늙은 로파를 앞세우고 색동갈이 빈 소매들이 펄럭이는 색스러운 장옷들을 쓴 젊은 아낙네들 몇이 웃으며 재갈거리며 스쳐지나갔다. 동산에는 못 올랐으나 봄날이라 역시 음식을 차리고 옷을 차리고 찾아가고 찾아오는 려염집부인네의 나들이가 분명했다.

《아- 동백기름냄새! 내 이래서 사파세계를 못 잊거던. 미운 놈두 있지만 고운것이 더 많거던. 미운 놈은 미워두 고운 놈은 고우니 그래 그것이 무슨 죄구 무슨 잘못이랴? 흥, 또 맛있는건 맛있구.》

법근이는 또 한번 코를 벌름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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