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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3. 노루꼬리가 《있다》, 《없다》


전주복이네 집은 바로 칠성문밖 성밑에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바룩한 두귀와 탐스러운 꼬리를 말아세운 삽살개는 반갑게 마주 나오는데 웬 까닭인지 집안사람들은 모두 《왜 어느새들 오노.》 하는 눈치였다.

《아주머니, 이번엔 송아지는 못 끌어왔어두 샅바 한번 안 줴보구 상목이 한필 생겼쉐다.》 하는 법근이의 말에는 대답하는이도 없었다. 늙은 아버지는 작두간에서 썰어두었던 조짚여물을 일부러 줌으로 쥐여서 구유통에 나르노라 바쁜체 하는 모양이 분명했고 부엌문으로 한번 깔깃 내다본 처는 부뚜막의 바가지들을 일부러 소리나게 뒤엎는양이 분명했다.

《어서 너의 방으루 들어들 가거라.》 하고 어머니는 으시시한듯이 팔짱을 지르고 뜨락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남 길 걸어서 더운데 왜 방으루 들어가라구 그러우?》

모두 을씨년스러워하는 눈치에 저마저 퉁명스러운 대답을 하며 뜰안에 들어선 주복이는 웃간방 대돌앞에서 주춤했다. 그 문턱에는 때가 오른 갓을 숙여쓴 웬 낯모를 사람이 걸터앉아있었다. 남의 집문턱에 걸터 앉아서 코밑의 노랑수염을 이편저편 갈라붙이듯 쓰다듬고있던 그 사람은 《이 집 젊은 쥔인가?》 하고 단박에 하게로 말을 붙인다.

《예, 그렇쉐다.》

주복이는 토방에 걸터앉으며 대답했다.

《나는 애련당골 박참봉댁에서 왔는데 빚을 회계하자구 온 길일세.》

《빚이라니요?》

주복이는 금시 눈이 휘둥그래졌다.

《뭐? 빚이라니? 하, 이거 큰일낼 사람들 아닌가! 아니, 애련당골 박참봉나리는 님자네 전주님이지?》

《예, 그래요.》

《그런데 작년 겨울에 그 댁에서 벼 두섬을 장리루 갖다먹은걸 모른다?》

《그 빚이요? 그 빚은 금년농살 해가지구 섣달에 가서 물기루 한 빚이니 그래서 하는 말 아니웨까.》

주복이는 《이 무슨 영문인가?》 하는 얼굴이였다.

《안돼. 제 기한에 가서 받을래문야 이 분주통에 왜 신발 처지구 받으러 다니겠나. 님자네만이 아닐세. 박참봉나으리댁에서는 엊그제 준 장리까지두 다 받아들이는터이니 지금 회곌 해야 하네.》

《지금이라니요?》

주복이는 또 놀랐다.

《그러게 내 말을 다 들어. 님자네 늙은이들과는 이미 한 말일세마는… 작년 동지달 스무날부터 금년 정월, 이월…》

손가락을 꼽아보이며 그는 말했다.

《오늘까지 여섯달 반이 아닌가. 5푼달변으루 매달 꺾어돌려서 변상 가리하면 열닷말 두섬에 그동안 리자가 열두말 하구 아홉홉되수가 달리네만 참봉나으리말씀이 아홉홉되수는 떼구 회계마감을 하라는걸세.》

그 빚은 주복이가 장가들 때 례장과 잔치에 드는 비용이 모자라서 껄끄렁벼 서른말을 장리로 가져다 쓴것이였다.

《이제두 말했쉐다. 한데 그건 금년 섣달에 가서 물기루 하구 쓴 빚인데요.》

《그러길래 참봉나으리께서두 우수리리자는 탕감해주신다구까지 않던가.》

《탕감이나마나 지금 물수 있대문 그때 빚을 내지부터 않았을거 아니웨까.》

주복이는 속이 좀 달은 모양이였다.

《그럼 안 물갔다?》

《못 물지 왜 안 물갔소.》

주복이의 이번 말은 좀 퉁명스러웠다.

《빚진 종이라는 말두 없잖아있는데 되려 제편에서 말이 거칠어진다? 하- 인심이 이렇게두 변할수가 있나? 아무리 란리기로서니…》

《변한건 누군지 모르갔소. 기한두 되기 전에 빚채근을 하니. 나 원!》

주복이는 쓰겁게 한번 혀를 찼다.

《뭐? 그래 진 빚을 안 물겠다?》

노랑수염은 버럭 어성을 높였다.

《얘야, 너 왜 벌써 와가지구 그러니.》

그동안에도 팔짱을 끼고 서성거리던 늙은 어머니가 대돌앞에 와서며 말했다.

《점두룩 해야 그 말씀인데… 우리 얘는 너무 의젓해서 자꾸 그러시문…》

《아니, 의젓해서 빚진 놈이 배내미나? 허 참!》

《얘야, 넌 좀 가만있거라. 그러다가는 너 또 몸살할라.》

또 뭐라고 대꾸를 하려는 주복이를 타이른 어머니는 쫓겨난 달래알같이 빨갛게 토라진 노랑수염을 한번 쳐다보고나서 눈을 내려깔며 혼자소리같이 말했다.

《답답이, 없어서 그러지 않소. 있으문야 왜… 그런걸 가지구 자꾸 부알 돋구문 이 의젓한것이 또…》

《아주바니, 이리 오시우.》

불쑥 법근이가 찾았다. 그동안 뜨락에 펴놓은 밀짚장석에 주복이의 아버지와 같이 앉아있던 그는 로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주바니, 제 이야기 한마디 할겐 들어보실라우?》

《대낮에 이야긴 또 무슨 이야길…》

앞채 외양간지붕으로 오르기 시작한 박넝쿨을 쳐다보며 한심해 앉았던 로인은 금시 태평인양 흐흐흐 웃었다.

《이건 옛말이 아니라 바루 얼마전에 있은 일이웨다.》

법근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전에 맹산군수가 양덕군수를 찾아갔더랬는데 두 량반님이 이런 말, 저런 말 하다가 맹산군수는 노루꼬랭이가 있다구 하구 양덕군수는 노루는 꼬랭이가 없다구 해서 아웅다웅 말다툼이 났더래요.》

《흐흐흐… 노루의 꼬랭이가 있다? 아무런들 이 사람아…》

《아주바니, 정말이웨다. 그래서 그 고을 좌수늙은이가 듣다못해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본읍 양덕노루는 꼬리가 없사와도 맹산노루는 꼬리가 있는줄로 아뢰오.〉 했답니다. 그제서야 두 군수나으리는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했다나요.》

《아이구맙시사, 그런것들이 다… 그러니끼니 세상이 왜…》

《하- 쓸데없는 소릴, 입새없이 원…》

마누라를 막지른 로인은 여전히 남의 집문턱에 좌이부동으로 걸터앉아있는 박참봉네 차인을 한번 흘끔 쳐다보고 끌끌 혀를 찼다.

《가만들 계시우. 이 얘기가 그것만이 아니웨다.》

법근이는 또 말을 이었다.

《그 담엔 그 좌수늙은이가 하는 말이 〈제 사위놈이 웬일인지 오늘 세배를 오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한번 떠봤답니다. 했더니 한 군수나리는 하는 말이 〈8월 추석인줄 알구 온게지.〉 하구 또 한 군수나리는 〈아니지, 5월 봄날이니까 세밸 왔겠지.〉 하더랍니다.》

《흐흐흐, 봄날에 세배? 잘들 해!》

《웬걸요. 그런 철부지들은 추석이나 봄날에 세밸 다닌다는 놈들만이 아닌가봐요.》

법근이는 시치미를 따고 이런 말로 이야기를 끝냈다.

《제잡담하구 회계나 끝냅세. 박참봉나으리말씀두…》

박참봉네 차인은 책상다리를 바꿔얹으며 제 말을 되살렸다.

《벼가 없으면 상목으루라두 회곌 할 때는 벼 한섬에 쌀 엿말 두되씩 쳐서 두섬에 열두말 너되 하고 리자 열두말에 닷말 되수 해서 쌀이 합쳐 열일곱말가웃이 아니겠나. 그런데 그걸 상목으로 회곌 하면 옹근 한필에 닷말씩 쳐서 세필 하고 두자자투리 일곱끝으로 타첩해서 청장을 하구말라는걸세.》

《그건 너무합습디.》

이번에는 주복의 아버지가 말참견을 했다.

《뭣이 너무하단 말인가?》

《그 껄끄렁벼 한섬에 쌀이 나야 고작 닷말 이편저편이구 또 요새 시세루 말씀하면 상목 옹근 한필이면 쌀이 열말인데 지금 전주님댁 말씀대루 하면 우린 안팎으로 솔그니 하는 말씀입디.》

《안팎으루 솔그나마나 아버진 웬 상목이 있긴들 하웨까?》

《정말 무슨 상목이 있다구 괜히 술마리 무당의 만수받이하듯 하우.》

이같이 모자가 몰아세우는 바람에 로인은 《회곌 바루하자문 말인즉은 그렇다는 말이다.》 하고 돌아앉았다.

《하, 이거 정말 큰일낼 사람들 아닌가? 있구두 없다?》

《있으문야 왜 그러갔쉐니까. … 정말 버선목이라구 뒤집어두 못 보이구…》

주복의 어머니는 몽당치마자락으로 식은 코물을 훔쳤다.

《버선목? 저건 뭔가? 씨름판에서 타왔다는 저건 빚 못 물건가?》

노랑수염은 법근이앞에 놓인 무명필을 채기라도 할듯이 궁둥이를 들먹거렸다.

《아니, 이건 소승의 물건이올시다.》

중 법근이는 무명필을 한번 들었다가 제자리에 다시 놓으며 말했다.

《이놈네 집엔 아까부터 별것이 다 오리발의 새가죽처럼 끼워나서가지구 말썽이 아닌가.》

《뭐, 이놈네 집…》

그자를 한번 힐끗 노려보며 이렇게 뇌까린 주복이는 다시 머리를 숙이고 앉아서 두주먹을 쥐락펴락하면서 길게 한숨을 지을뿐이였다.

《얘야, 넌 들어가렴. 해야 그 말인데 그러다가 또 몸살할라.》

어머니는 애가 탔다.

《아사리 모르긴 하갔쉐다. 이번 란리통에 우리가 그 빚을 못 갚구 다 죽을지는…》

이번에는 아버지가 말을 시작했다.

《그렇기 전이야 기한만 되면야 그 빚을 어련히 갚소오리. 전주님네는 혹시 우리두 어데루 피란을 가서 없어질것 같애서 미리 빚을 받자는거지만 우리 같은 농사군이 어델 가갔소. 란리를 만나 죽어두 제손으루 가꾸던 낟알포기를 쥐구 죽소옵디.》

《아주바니, 걱정마시우. 여기까지는 란이 안 날것 같습데다.》

로인의 말에 좀 처량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휘저어놓듯이 법근이가 또 말을 꺼냈다.

《그러문야 작히 좋으리. 어드래서?》

법근이가 하는 말이면 흔히 웃으며 들을 말이라 로인은 듣기도 전에 먼저 흐흐흐 웃었다.

《석장군바위에서 피가 흘렀다구… 그래서 여기까지두 란이 날거라구들 떠들지 않소?》

《그래, 그런 말이 도나부드군.》

《그런데 이제 오다가 남 꽃같은 색시 데려다가 깨가 쏟아지게 살래는데 란이라니 하구 주복이가 화가 나서 그 바위를 주먹으로 한대 먹여댔더니 큰 방치돌만큼씩 으스러져서 와르르 무너졌는데 그래두 피 한방울 안 났거든요.》

《우리 저놈이 또 그따위짓을 했나?》

로인은 주복이를 한번 돌아보고나서 웃었다.

《어데 손 좀 보자. 정말 시퍼렇게 피가 졌구나.》

아들의 손을 만져본 어머니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래 속이 좀 씨원하더니? 넌 그렇게 해서라두 성풀일 해야 몸살을 안하는데… 천하 의젓한것이 사람한테야 누가 아무런대두 그런 화풀일 하긴들 하나…》

이런 어머니의 말은 좀 서글펐다.

그러자 저도 주복이의 손을 넘성해보면서 반치나 되게 기른 새끼손톱으로 제 코등을 긁적거리고있던 박참봉네 차인은 웬 일인지 문턱에서 내려 토지방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런양을 본 법근이는 턱으로 문턱을 가리키며 주복이에게 눈짓을 했다. 주복이는 육중한 몸을 일어 그 문턱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또 노랑수염은 일어나서 토방아래로 내려갔다.

《그럼 언제 또 올가?》

《또 오시지 않아두 기한만 되면야 어련히 갖다가 갚지 않소오리.》

《그렇게 말씀을 드려는 보갔소만 이편두 알아채려서 처사를 하우.》

일어서며 말하는 로인에게 이번에는 말투까지 고쳐서 뒤를 누르는셈으로 말한 그자는 총총히 돌아서 나갔다.

칠성문쪽으로 사라지는 그자의 뒤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흔들며 한번 크게 웃은 법근이는 상목필을 절반 쭉 찢어들고 《새아주머니.》 하고 찾았다. 그동안에는 바가지소리도 안 내고 조용하던 부엌에서 아직도 새색시티가 가시지 않은 젊은 아낙네 하나가 나왔다. 달래풀각시같이 윤이 흐르는 얹은머리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풍기였다. 그 머리봉우에서 한들거리는 빨간 꼬둘채댕기가 더욱 새색시티를 돋우었다.

《이건 나하구 주복이 몫이구 이건 새아주만 몫인데 이 아주바니 술 한잔 받아다드리시우.》

무명끝을 받아든 색시는 덕스러운 얼굴도래안에 붙임붙임이 오붓이 들어앉은 낯을 붉히며 《저녁은 어떡하라우?》 하고 물었다.

《저 돌중놈이 이제 란이 나면 또 못 볼지두 모른다구 한상 낸다네.》하며 주복이도 따라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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