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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2. 석장군앞의 전주복이와 중 법근이


《왕이 종내 우리 평양엘 오구야말게 됐다?》

새 풀잎으로 단장한 양지바른 잔디밭에 번듯이 누웠다가 일어나 앉으며 《나 원, 어떻게 되는 놀음인지…》 또 이렇게 중얼거리는것은 맨상투바람의 한 젊은이였다.

《어떻게 되긴… 그 담엔 란리가 뒤따라올지두 모르지.》

같이 누웠다가 이런 대꾸를 하며 일어나 앉은것은 한 젊은 중이였다.

《얘, 제발 그따위 방정맞은 소린 하지두 말아. 정말 그렇게 되문 어떻게 되니?》

《어떻게 되긴? 란리지. 어지럽다는 란자, 떠난다는 리자라 모두 풍비박산…》

《듣기 싫어야. 너희 절의 부체님이 그렇게 탑삭탑삭 새없던?》

《하하하… 부체님이 새없다!》

《너는 우스우니? 정말 너처럼 무우밑같은 중놈은 웃을 일인지 모르갔다 해두…》

젊은이는 상투밑에서 떼낸 작은 나무살짝으로 뒤자부니를 득득 긁어 올리기 시작했다.

《부체님은 사람의 모양이기나 하지. 네 봐라. 저 석장군은 그저 저 생길대루 생긴 우뚝한 바위라두 이런 란리가 날줄 알구 피를 흘렸다지 않던?》

《또 한다는 소리가, 누가 그런걸 봤다던?》

《본 사람은 없어두 세상이 다 그렇다면 그런줄 알려무나.》

이들이 지금 그것을 건너다보며 이런 말을 하는 석장군은 평양에서 순안으로 가는 시오리쯤 되는 큰길가에 서있는 바위였다. 이번 임진란이 시작되기 전에 그 큰 바위에서는 피가 흘러 십리길을 적시였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그것은 물론 누가 제눈으로 보았다는 사람도 없고 또 누가 처음 그런 말을 지어냈는지도 알수 없는 하나의 갑작전설이였다. 이번 란리에 여기까지도 사람의 피로 땅을 적시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생겨난 그 갑작전설은 더욱 인심을 불안케 하면서 퍼졌던것이다.

《석장군》이라는 바위에서 피가 흘렀다는 이야기는 나라가 큰 변란을 당하게 되매 우리 조국강토의 하나의 돌까지도 무심치 않았다는것을 말하는것이다.

이와 마찬가지의 이야기로서 천고가 울었다는 전설도 있다. 즉 일본침략군이 나고야에서 조선을 향하여 떠나는 날 우리 나라 상공에서는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났다는것이다. 앞으로 큰 국란이 있으리라는것을 하늘이 경고했다는 전설이다.

《들리는 소리란 소리는 다 그따위 소리만이니 정말…》

《맥이 나?》

《듣기 싫어. 누굴 비술 멕이느라구 그러니?》

젊은이는 벗어놓았던 무명수건을 질끈 동여매쓰며 투덜거렸다.

《비가 와두 너 한몸 넝납새아래루 들어만 서면 비설겆이가 다되는 너같은 놈은 모르갔다 해두…》

《에이 이 자식, 떠돌아다니는 중놈이라구 너무 수모하지 말아. 나두 리별하면 속에서 간장피 날 님이 있어! 알았니?》

《흥, 그림의 떡?》

《어디서 상투가 수범의 똥자루같은 자식이 무식두 하다. 같은 값이면 그림의 선녀라구나 하려무나.》

《바라보기만 하기야 떡이면 뭘 하구 선녀면 뭘 하니.》

《거 누가 아니? 사파세계 한 모퉁이에다 바늘 하나 세워놓고 사천왕 하늘에서 겨자씨 한알을 던졌더니 고놈이 그 바늘에 꼭 꿰운것 같은 인연이 있을지 혹시 알겠니?》

젊은 중은 대낮볕에 반들거리게 민머리에다 삿갓을 올려놓으며 이런 말을 했다.

《응, 그래. 어서 바람먹구 구름똥이나 싸라. 난 상게 보지는 못했다 해두 그 고려집 큰애긴가 하는 처녀는 꿈자리가 사나울게다.》

《왜?》

《너 같은 돌중놈이 오매불망 못 잊어하니 안 그렇구 뭘 하겠니.》

《모르는 소리. 꿈에라두 서루 마음이 비치우기만 하면야 사납긴 왜 사나와. 주복아, 너와 말이지 난 정 죽갔다.》

젊은 중은 털썩 쓰러지듯이 다시 잔디밭에 누워버렸다.

《너 정 그러면 머릴 기르려무나.》

주복이는 한결 덜 퉁명스러운 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그래가지구 한번 혼사말을 내보자꾸나.》

《나더러 환속을 하라구? 내가 이제 이 먹베장삼을 벗구 다시 속인이 된다 해두 또 고리백정밖엔 더 될것이 없다.》

젊은 중은 또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내비적부터 천대받는 고리백정이 돼서 난 세상에 미운 놈이 많아.》

불쑥 어성을 높여 이런 말을 하는 그의 부리부리한 눈망울에는 금시 붉은 실이 어리는듯도 했다. 그러나 그는 또 퍼더버리고있는 제 무릎을 치며 큰소리로 너털웃음을 쳤다.

《허허허, 그런 속세의 인연을 다 끊어버리자구 중이 된 이 법근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가.》

이같이 제 일을 남의 말하듯 하던 젊은 중 법근이는 얼굴을 떠인채 하늘을 쳐다보며 잠잠해버렸다.

《할수가 없거던.》

이번에는 마치 잠에서 깨난 사람같이 나직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렇게 종달새는 지저귀구 아즈랑이는 가물거리니 취할것 같다. … 얘 주복아, 너 늘 자랑하는 너의 색시자랑이나 한번 더해라. 나두 미운 놈은 미워두 고운 사람은 곱다. 풍년이 들면 나두 기쁘구…》

《풍년, 풍년이 들문 뭘 해? 왜놈들은 왜 오구, 또 얼마나 오기에 나라에서는 그것두 왜 못 막는거야? 량반대감들은 다 명주자루의 개똥인가?》

《건 그럴듯한 소리다.》

《에이, 속이 상해서. 어데 보자!》

벌떡 일어선 주복이는 법근이가 베고 누웠던 무명 한필을 집어들자 길을 꿰건너 맞은편 언덕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쿵-》

엇멨다 내려치는 주복이의 주먹소리가 울리자 돌각담이 무너지듯이 어석더석한 석장군바위의 뿌다귀 하나가 부서져내렸다.

《저런 놈의 욱장군 봤나! 한다는즛이!》

어안이 벙벙해서 혀를 쭉 뺐던 법근이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문 그렇지. 핀 무슨 놈의 피야.》

거무틱틱하게 이끼가 앉은 바위돌의 한쪽이 이지러져서 허옇게 드러난 상처를 만지며 이런 말을 한 주복이는 무명필을 법근에게 던졌다.

《정말 피가 나면 싸매줄랬더니… 옛다, 받아라.》

《그래, 어서 가서 술이나 마시자.》

무명필을 받아든 법근이는 장삼자락을 너풀거리며 신바람이 나서 앞장을 섰다.

그 무명은 부산장거리의 씨름판에서 받아온것이다.

이번 봄철에 평양에는 씨름판이 없었다. 이런 란시에 무슨 씨름이랴. 그럴 경황들이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평양에서 20~30리라도 떨어져있는 외촌장거리들에서는 작게나마 역시 씨름판을 차렸다.

주복이는 씨름을 못하면 몸살이 나는 성미지만 그런 촌장거리의 작은 씨름판에는 삐치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법근이가 하도 조르는 바람에 부산장거리로 갔던것이다. 아니나다를가 그 씨름판에서는 《평양 전주복이가 왔다.》, 《뭘? 그 쇠주머구가?》 하고 어느새 짜하니 소문이 돌았다. 그래가지고는 어제 첫날도 비교씨름을 했다는데 오늘따라 총각씨름, 초립동이씨름으로 시작된 씨름이 중낮이 되여도 마루씨름으로 클줄을 몰랐다.

《벌써 상송아지임자가 와있는데 해봐야 소용있나. 괜히 땅바닥이나 지구 일어설라구.》

하여 촌마루씨름군들은 샅바를 껴볼 생각도 안했다. 한몫 보자고 했던 씨름판이 초판에 파장이 될 념려가 있어서 주복이를 기권시키려고 장사치들이 따로 벼름해서 두자 상목 여섯필내기 무명 한끝을 내놓았다. 이번에 주복이가 끌어오는 상송아지는 꼭 잡아먹는다고 별렀던 법근이는 《약소한대루…》 이렇게 제편에서 생색을 내며 받았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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