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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서장

위령탑을 제막하는 날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지 꼭 50년이 지나고 아흐레째 되는 주체84(1995)년 8월 24일이였다.

새벽까지도 비는 억수로 퍼부었다. 왜 그런지 이해 여름에는 바다날씨도 심술을 부렸다. 일본 서쪽해안 미야쯔만의 마이즈루와 그 대안에 있는 시모사바가일대에 돌연히 해일이 밀려왔다. 잔잔하다고 소문난 마이즈루앞 바다가 삽시에 무섭게 뒤설레였다. 사납게 곤두선 거무칙칙한 파도가 물갈기를 흩날리며 부두를 들부시기라도 할듯 족쳐댔다. 미야쯔만의 여러 항구들이 온통 물속에 잠겼다.

해일과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시퍼렇게 곤두선 번개가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을 쫙쫙 찢어발가놓자 꽈르릉 벼락이 쳤다.

뗑 ― 뗑 ― 뗑 ―

저 멀리 교회당에서 울려오는 종소리도 오늘따라 마치 장송곡처럼 장중하고도 침울하게 들렸다.

끈덕지게 심혼을 괴롭히며 울려오는 종소리로 하여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에 휩싸였다.

예측할수 없는 신의 계시마냥 종소리는 그냥 울린다.

뗑 ― 뗑 ― 뗑 ―

그래서 그런지 밀려오는 해일과 퍼붓는 폭우가 자연의 단순한 변덕같지 않다고 마이즈루일대의 사람들은 저저마다 쉬쉬하였다. 50년전 이 수역에서 무참하게 목숨을 빼앗긴 조선사람들의 원한이 해일과 폭우, 번개와 우뢰를 몰고와 선조들이 저지른 악착한 죄행을 그 후손들에게 경고하고 벌을 주려는게 아닐가 하는 예감과 어림짐작에서 생겨난 이 뜬소문은 나돌자마자 유령처럼 배회하며 마이즈루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주었다.

지어 어떤 독설군은 바다가 피물처럼 벌겋게 보이더라는 왕청같은 헛소리까지 덧붙였다.

소문이 흉흉해지자 겁에 질리고 재해에 시달려온 사람들이라 하나, 둘 비내리는 부두가에 나타나 줄지어 꿇어앉았다. 워낙 온갖 잡귀신에게 빌기 잘하는 섬나라 족속들이라 노호한 바다에 빌만도 했다.

귀신숭배인습을 대대로 물려받은 그들은 퍽 옛날 가미가제(신의 바람)가 불어온 《덕분》에 원나라의 침공을 면할수 있었다고 믿던 사무라이들의 후손이요, 요즘에는 태평양전쟁 역시 가미가제가 불어 패망을 막아주리라 애타게 바라던 《무적황군》의 후손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피멍이 지도록 바닥에 이마를 조아려대고 두손바닥이 닳도록 종소리에 맞춰 빌고빌었다. 그러나 자연의 광란이 물러갈념을 안하자 겁이 더럭 났다.

(혹시 그 소문이?!)

그들은 당황망조하기 시작했다.

《이건 명을 빼앗긴 령혼들의 원풀이가 아닐가요? 빌어도 소용이 없으니 말이예요.》

《벼락맞을 소리! 어서 직심스레 빌기나 해. 그러면 신이 굽어살피지 않으리요.》

이마를 땅에 박은채 찌프린 하늘조차 감히 쳐다보지 못하는 사나이의 꾸짖음에 퍽 젊은 아낙은 나이많은 남편을 따라 그냥 빌고 또 빌어본다. 그래도 달라질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바다신도 그들의 령혼앞에 어쩔수 없나봐요. 전 아무래도 그들의 혼백이 신으로 승천한것처럼 느껴져요. 이봐요. 우린 바다에 빌지 말고 수장당한 혼에게 빌어보자요. 그럼 그 영령들이 혹시…》

《쓸데없는 소리! 그건 하느님도 바다신도 부처님도 몰라.》

《참, 한심두 하지. 어쩌자고 짐승처럼 부려먹고도 성차지 않아 그 많은 사람들을…》

《딴 생각말고 빌라지 않아―》

아낙의 끈덕진 성화에 말문이 막힌 사내는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사내는 줄곧 젊은 아낙의 눈치를 살폈다. 여러모로 아낙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서는 살아가기가 무척 불편한것 같았다.

《당신네 오까모도가문 조상들은 어쩌면 그리도 악착했나요? 그들이 지은 죄를 왜 저까지 받아야 하나요. 당신에게 시집온 죄인가요?》

아낙은 더 할말이 있었으나 애써 삼켜버리는 눈치였다.

사진으로밖에 본적이 없는 시아버지가 지휘했다는 50년전의 《우끼시마마루》폭파사건을 걸고드는것이 방정맞게도 노호한 이 앞바다를 더 꼬드기는것 같아 입을 오무라뜨리는 모양이다.

《내 가문의 조상들이 저질렀든, 다른 집안에서 저질렀든 그거야 모두 일본사람들이 한짓이니까.》

오까모도라고 불리우는 사나이는 제 조상의 잘못만이 아니라는듯 어물쩍해버렸다.

(우리 일본사람들?! 하긴…)

그 말에 무엇이 켕기는지 아낙도 더는 종알거리지 못했다. 꿇어앉은 왜인들은 빌고 또 빌었다.

하건만 창살같은 비줄기는 그들의 푹 젖은 몸뚱아리를 그냥 조겨대고있었다.

참회할 생각조차 안하는 그들의 심혼을 옥죄이듯 뗑 ― 뗑 ― 뗑 ― 교회당의 종소리는 그냥 울리였다.

억수로 퍼붓던 폭우도 쉼없이 밀려오던 파도도 먼동이 트고 날이 밝자 가신듯이 사라졌다.

침울하던 하늘에 해가 떴다. 축축하고 탁한 습기가 서서히 가셔지자 만물이 생기를 되찾았다.

이른아침 뭉청 떨어져나간 왼다리에 의족을 한 총련 마이즈루지부 부위원장 박진우는 제막식을 앞둔 위령탑앞에 누구보다도 먼저 나왔다. 《우끼시마마루》폭파사건때 희생된 동료들의 명복을 빌려고 세운 탑이다.

70고개가 넘은 그는 동포들이 희생된 쉰돐을 그저 넘길수 없어 제스스로 도안하고 설계한 위령탑건설장에서 노상 살다싶이 해왔었다.

재일동포 1세인 그는 먼저 간 동료들의 령혼이라도 위로해주려고 배가 폭파된 현지인 시모사바가에 탑을 세우는 발기자로 나섰던것이다.

해가 퍼지자 교또일대에 살고있는 동포들이 모여오기 시작하였다.

박진우는 동포들이 힘을 모아 위령탑을 건설하던 전기간은 말할것도 없고 제막을 앞둔 이 시각에도 귀국의 배길에 올랐던 동포들이 흥겹게 부르던 민요 《돈돌라리》 를 록음으로 틀어놓았다. 빠른 장단에 실린 경쾌하고 약동하는 선률이 확성기를 거쳐 온 시내로, 먼 앞바다로 퍼져나갔다.

꽃다발과 꽃송이가 동포들의 손에 들려 물결쳐올 때 그는 먼저 간 영령들이 꽃바다우에 실려 찾아오는듯한 환각에 사로잡혔다.

박진우의 가슴은 한없이 설레였다. 해방된 그해 고향으로 향했던 심정이 되살아나 잠시도 한자리에 서있을수 없었다.

그는 불편한 다리를 지팽이에 의지했으나 모여오는 동포들을 질서있게 정렬시키기도 하고 우호적인 일본손님들을 래빈석에 안내하기도 하면서 분주히 돌아갔다.

토목기술자인 그에게 있어서 이 위령탑은 그의 물리적창조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심혈을 쏟아부은 넋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제막식이 각일각 가까와옴에 따라 그의 눈길은 더욱더 근엄해지기도 하고 무섭게 번뜩이기도 하면서 저주로운 저 먼바다를 끝없이 쏴보기도 한다. 50년전 그날이 지겹게 눈앞에 밟혀왔던것이다.

이윽고 제막식이 선포되고 탑에 씌웠던 천이 벗겨지자 어린 녀자애 세명과 그 웃쪽에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은 녀인의 군상이 드러났다.

박진우는 저 녀인상을 고향에서 기다리고있을 어머니로 생각하고 도안해서 그런지 이 순간 저도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학생아이들이 군상앞 대돌우에 꽃다발과 꽃송이를 놓았다.

(이 사람들아, 이젠 꽃속에 파묻혔으니 편히 잠들게. 편히…)

아직도 바다밑에서 거센 파도에 실려 정처없이 떠다니며 괴로움을 겪고있을 그들을 위로하고싶었다.

그는 조선녀인들의 군상을 보며 그냥 눈굽을 적셨다.

이때 한 일본인로파가 탑가까이에는 말할것도 없고 조선사람들이 진을 치다싶이 한 그 앞광장까지도 감히 접근할념을 못하고 멀리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있었다. 손에 들린 흰장미꽃은 분명 70고령의 그 로파가 위령탑앞에 놓으려고 이른아침부터 꽃방에서 고르고 골라 사왔을것이였다.

로파는 조용히 다가서다가 흠칫 멈춰섰다. 꼭 50년만에 박진우의 눈길을 보았던것이다.

무슨 사연인지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건만 로파에게는 그의 눈길이 무서웠다. 그는 가슴이 서늘하여 서둘러 걸음을 뗐다.

20대 청춘시절에는 그렇게도 정답던 눈길이였다. 헤여져 이날이때까지 보고싶어도 볼수 없었던 눈길이였다.

만나기 싫어서가 아니라 만날 명분이 서지 않아서였다.

그랬어도 로파는 박진우의 기나긴 반생을 속속들이 알아냈고 어느 한순간도 그를 잊어본적이 없었다. 더구나 그가 최근에 시모사바가에 위령탑을 세우는 발기자로, 설계자로 솔선 나섰다는것도, 오늘 그 제막식을 거행한다는것도 퍼그나 멀리 떨어진 교또의 오랜 절간에서 살면서도 다 알고있었다. 그래서 그는 인생말년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용단을 내여 이렇게 찾아왔다.

하지만 로파는 정면으로 마주치지도 않은 박진우의 그 눈길에 그만 손에 든 장미꽃을 저도모르게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살맞은 뱀처럼 기가 꺾이운 로파는 다시 꽃방으로 물러나면서 귀에 푹 익은 조선민요 《돈돌라리》를 들었다.

그 선률 또한 가슴을 도려내듯 육박해오자 그는 끝내 주저앉고말았다.

퍼그나 시간이 흘러서야 그는 다시 생신한 꽃을 사들었다. 탑앞에 나가고싶은 욕망은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묵도가 선포되자 더욱 강렬해졌다.

로파는 조심스레 탑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또 못박혀 서있지 않을수 없었다. 피를 토하듯 가슴을 허비듯 울부짖는 박진우의 짤막한 추도사가 마치 자기를 겨냥하여 울려오는듯싶었던것이다. 평생토록 귀가에 맴돌며 떠나지 않던 박진우의 목소리였다. 그 옛시절에는 그렇게도 열렬하고 다감했던 저 목소리, 생전에는 다시 들어볼수 없으리라던 저 목소리…

로파는 귀가 뚫리도록 듣고싶었고 순간이라도 듣지 못하면 몸살이 날 지경으로 안타깝던 저 목소리를 백발이 된 지금 다시 듣게 되자 화살처럼 날아가고싶건만 몸이 늙어서가 아니라 달려갈수 없는 처지가 야속하여 다시 물러서지 않을수 없었다.

로파는 교또에서 그중 력사가 오래다고 하는 그리 크지않은 한 절간의 중이다.

일찌기 스무살에 속세를 떠난 그는 지난 50년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멀지 않은 곳의 큰 절인 광륭사를 찾아갔다.

먼 옛날 조선이주민들이 세웠다고 하는 광륭사, 조선중세 불교문화의 흔적이 너무도 력력한 미륵반가사유상앞에 꿇어앉아 이날이때까지 자기자신의 불행해진 처지와 자기 족속들이 저지른 씻을수 없는 죄악을 저 조선식불상에게라도 속죄해보려고 빌고빌었다.

그만큼 빌었으면 원한품고 바다에 잠긴 영령들앞에 나설 체면은 섰으리라 생각하고 불원천리 달려왔건만 막상 제막된 저 위령탑앞에 서있는 박진우를 띠여보자 그만 자신을 수습할수 없었을뿐아니라 마지막으로 헤여지던 50년전 그날에 서있는것 같은 괴로운 심정에 빠졌다.

패전당시 속세에 있던 그 시절 로파의 이름은 무라야마 미사꼬였다. 스무살의 한창 꽃다운 청춘시절에만 불리우던 이름이다. 속세를 떠난 다음에는 줄창 법명으로만 불리워지다보니 그자신도 본명을 잊을 때가 많았다. 그러니 항간에서 그의 본명을 기억하는 사람도 아마 없을것이다.

그의 짐작에 의하면 아직도 자기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동족도 아닌 저 조선사람 박진우 한사람이리라.

70살이 된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속세에 나온 로파가 그 걸음이 가닿아야 할 곳이 위령탑이건만 어찌하여 여기서 더 가지 못하고 맴돌지 않으면 안될 처지가 되였는가.

뭇사람들의 눈에 띄우게 법의를 걸친것도 아니고 조선녀자상제의 본을 따서 흰치마저고리로 소복단장을 한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이 여의치 않아 조선상제의 흉내라도 내고싶어 수수한 흰옷차림에 삭발한 머리를 조선할머니들처럼 흰수건으로 감쌌을뿐이다.

8월의 따가운 볕이 로파의 손에 들린 흰장미꽃을 벌써 몇번이나 시들게 했는지 모른다.

드디여 이글거리던 볕도 사그라지고 저녁노을도 서서히 바래여지자 시원한 바다바람이 불어왔다.

어느덧 탑두리에는 무수한 초롱불이 켜졌다.

밤이 퍼그나 깊어지자 차마 자리를 뜰수 없어 그냥 탑을 에돌던 초롱불들도 하나, 둘 꺼졌다. 허나 한개의 초롱불만은 의연히 자리를 뜨지 않았다. 박진우의 초롱불일것이다.

은하수가 희미해질무렵에야 로파는 지칠대로 지친 몸을 끌며 새로 사든 흰장미꽃을 들고 도적고양이마냥 탑앞에 다가갈수 있었다. 만약 박진우의 초롱불이 온밤 자리를 뜨지 않았더라면 그는 한송이의 꽃이나마 탑앞에 놓을수 없었을것이다.

꽃송이를 탑앞에 놓고 무릎을 꿇어앉은 로파는 거의 한생을 수도한 불가의 도를 따라 두손바닥을 맞대고 고개숙여 주문을 외우며 정성껏 빌고빌었다. 지은 죄 용서를 바라기보다도 영영 돌아올 길 없는 영령들의 명복을 빌었고 되찾을 길 없이 속절없이 시들은 한많은 청춘시절이 인생말년에 다달은 지금 또다시 환생될가 겁이 나 빌었다.

쭈그리고앉은 로승의 머리우에 여름밤 이슬이 소리없이 내렸다. 쉬임없이 불어오는 찝찔하고 비릿한 해풍도 축축히 젖은 그의 어깨와 등을 종내 말리워주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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