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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철림이 홱 던져주는 책보를 움켜안고 경태의 하숙방을 허둥지둥 빠져나온 호연은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는 자기를 먼저 밖에 내보낸 다음 철림이 번개같이 뒤따라와서 금시 뒤통수를 까제끼려는것 같아 허겁지겁 사위를 살피며 미친놈처럼 줄행랑을 놓았다. 그에게는 철림이가 불범같은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더구나 경태로부터 너같은것은 여라문명이라도 식은죽먹기로 해치울수 있다던 말을 들은 뒤부터는 더 무서운 존재로 생각되였다. 오늘 밤 경태의 방에서 그의 손에 목을 비틀리우지 않은것만도 천만다행이였다. 얼이 뽑힌 그는 발이 홈타기에 빠지고 발부리가 돌부리에 채여 비틀거리면서도 내처 달음질을 했다. 길목의 시커먼 전보대도 단도를 든 괴한같이 보이고 어느 한 집울안의 빨래줄에 걸린 희끄무레한 빨래도 세워놓은 관처럼 보여 머리칼이 곤두섰다.

그는 자기 방에 들어서기 무섭게 문고리를 쇠못에 단단히 걸고 아래방으로 통하는 미닫이문턱우에 약간만 건드려도 털렁 굴러떨어질수 있게끔 깡통과 빈병을 올려놓은 다음에야 후-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자기의 정체가 홀딱 발가진 이상 자기를 없애치우려고 할것은 불보듯 뻔했다. 자기 역시 사이또나 변영근처럼 실종의 신세를 면치 못할것 같았다.

그런데 철림이가 어떻게 자기의 정체를 통짜로 알아냈을가?

《스즈게 묘시.》하고 부르는 소름끼치는 목소리에 즉각 가슴이 털렁 내려앉았지만 《류수렬의 아들 류연호!》라는 사형선고같은 소리에는 천길낭떠러지를 헛짚은듯 머리가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해졌었다.

(바로 그 철림이가 사이또와 변영근을 없애버린게 아닐가?!)

금시 누가 찬물을 잔등에 쫙 퍼붓듯이 몸서리쳐졌다. 이 혜신바닥에 더 어물대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목이 날아날것 같았다.

(사이또가 실종되고 지금껏 그의 흔적도 못 찾아내는걸 보면 히라오까도 더는 믿을것이 못돼. 우선… 우선… 나부터 살고보자. …)

그는 맨 방바닥에 두손을 깍지끼여 뒤통수에 대고 반듯이 누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슬그머니 출입문이 열리며 뜻밖에 번대머리 변영근이 히히히 웃으며 방에 들어왔다.

(아니, 내가 문걸쇠를 단단히 걸었댔는데 저자가 어떻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가?)

변영근은 계속 히히히 웃으며 기신기신 다가오더니 별안간 퉁퉁 부어오르고 온통 피칠갑이 된 징그러운 낯짝을 자기의 눈앞에 바싹 갖다대는것이였다.

《으흐혹…》

호연은 기급하여 눈을 떴다. 순간 변영근은 온데간데 없고 어둑컴컴한 창문만이 희미하게 보였다.

(내가 깜빡 졸았댔는가…)

겁에 질린 호연은 벌떡 일어나 전기스위치에 손을 댔다가 온 천지가 새까만 야밤중에 불을 켰다가는 뭇시선의 표적이 될것 같고 또 어떤 괴한이 창문곁에 붙어서서 자기의 일거일동을 지켜볼것 같아서 손을 떼고 도로 앉았다. 두억시니가 노리는것 같은 이놈의 방에 더 박혀있다가는 심장이 터지여 죽거나 미쳐버릴것 같았다. 그는 소리 안 나게 장을 열고 손더듬으로 사품들을 찾아 배낭안에 쑤셔넣었다. 그러다가 문득 야구공이 손에 잡히자 역시 손더듬으로 명주목도리를 꺼내여 야구공을 감싸고 배낭뒤주머니에서 노끈을 찾아 꽁꽁 비끄러맸다. 갑자기 어떤 괴한과 맞다드는 위급한 순간에 획획 돌려칠 호신용으로 쓰려는것이였다. 그런 후에야 그는 잔등을 벽에 기대고 창문쪽으로 두다리를 뻗치고 앉았다. 그는 절대로 졸지 않으려고 두눈을 부릅떴다. 밖에서 나는 바스락소리에도 머리칼이 곤두섰다. 악몽같은 음험한 밤은 끝없이 길었다.… 이튿날 새벽, 그는 창문밖이 희멀개지자 책과 사품을 쑤셔넣은 배낭을 지고 한손에 야구공목도리를 든 다음 소리 안 나게 문고리를 벗기였다.

영근의 녀편네 방쪽에서 그때까지 아무 기척도 없었다.

그는 출입문을 추슬러올려 열고는 감쪽같이 밖에 나섰다.

그는 40리길인 보산까지 은밀히 달아뺄 잡도리를 하였다.

그가 한 십리가량 허둥지둥 걷고있을 때 뒤쪽에서 자동차발동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길가로 바싹 비켜서서 얼굴을 숨기고 걷던 그는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가 보산농사시험장 목탄차임을 인차 알아보고 날쌔게 적재함에 붙어올랐다. 그제서야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운전사는 후사경으로 장장의 아들임을 알아보았는지 군말없이 차를 내몰았다.

호연은 농사시험장이 있는 덕판가까이에 이르자 차에서 훌쩍 뛰여내렸다.

그가 쏜살같이 집에 달려가 문을 벌컥 열고 뛰여들자 어디로 떠날 차비를 하고있던 그의 아버지는 대뜸 눈을 둥그렇게 뒤집으며 기절초풍하듯 놀래였다.

《아버지, 그간 안녕하셨어요?》

《너 이거 갑자기 어찌된 일이냐?!》

그의 애비는 불의에 나타난 호연의 사색이 된 낯빛에서 심상치 않은 사태를 직감했다.

호연은 지고온 배낭을 와락 벗어 방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풀썩 주저앉았다.

《아버지, 난 다예요. 다 드러났어요! 내가 일본사람이라는것두, 내가 고등계밀정이라는것두… 난 이제부턴 혜신땅에서 더는 살아배기지 못할 신세 되구말았어요.》

호연은 별안간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얼빠지여 호연을 지켜보던 애비는 《그런데 어떻게 무사히 빠져나왔느냐?》하고 침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호연은 자기 애비의 물음은 귀에 닿지도 않는듯 제 설분만 토했다.

《수삼고보에 그냥 다녔으면 아무렇지도 않을걸. 그따위 히라오까의 꾀임에 넘어가 제 아들을 그 더러운 밀정질을 시키구… 아버지는 내 앞길을 다 망쳐놓았어요. 아! 내 이런 처지에 빠지게 되다니. …》

그의 애비는 기가 딱 막히였다. 《황국》에 멸사봉공하는 일선 중대사라며 동향친구간인데 아들을 마음놓고 자기한테 맡기라고 떵떵 장담하더니 종내는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것이였다.

《그럼 별수 있니. 집에 꾹 박혀있으면서 도로 수삼고보과정을 마저 마치면 될게 아니냐?》

《야-아, 아버진 정말, 그자들이 아버지가 보산농사시험장 장장이라는것까지 다 알구있어요. 또 자기의 첩자로 부리던 히라오까가 날 가만둘것 같아요?》

돈벌거지인 애비의 입에서 맹랑한 말이 나오자 호연은 떡심이 풀려 이렇게 하소하였다.

듣고보니 험악한 판국이였다. 그의 애비는 부르쥔 주먹을 푸들푸들 떨며 침통한 얼굴로 한참동안 덤덤해있었다. 《이민》으로 반도에 발을 붙인 다음부터 조선사람 허울을 쓰고 흉측하게 살아온 그였다. 그가 여러 고장을 옮기며 살 때에도 그렇고 여기서도 사람들은 장장을 조선사람으로 알고있었다. 그래야 이국땅에서 살아가기가 편리했고 만약 공산군의 기습을 당하는 경우에도 그 간판이 좀 방패로 될수 있으리라고 믿어왔었다.

그런데 아들때문에 집안의 기둥 하나가 뽑히는것 같았다.

애비는 그냥 잠자코 있더니 별안간 천둥같이 화를 내였다.

《그만 훌쩍거려! 시라소니같은 놈! 그래, 야마도 다마시는 어데 줴깔리구 그따위 반도놈새끼들한테 쫓겨다녀, 엉?》

애비의 우악한 성미를 잘 알고있는 그는 화들짝 놀라 눈물을 뻑 씻고 애비를 쳐다보았다.

《병신짝같이 징징거리며 얼빠진 소리만 말구 갑자기 네 정체가 드러난 사유부터 말해봐라.》

호연은 속이 띠끔했다. 자기보다 세살이나 아래인 철림이한테 홀랑 발가벗기운것을 실토했다가는 대번에 성미가 우락부락한 애비의 주먹이나 발길이 면상에 날아들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순간적으로 엉뚱한 거짓을 꾸며 천연스럽게 바로 어제밤 침실에 《변호연, 네놈이 스즈게 묘시지. 네놈은 히라오까의 특무구 네놈의 애비 류수렬은 보산농사시험장 장장이지. 네 모가지없는 황천객이 되기 싫거든 즉시 혜신바닥에서 사라져라.》 이런 협박장이 날아들었다고 말하였다.

애비는 사태가 매우 심상치 않음을 즉감했다. 어떤 놈이 자기 집안의 밑뿌리를 서캐훑듯 캐고드는게 적실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을 일단 안심시키려고 우정 배포가 큰체 허풍을 떨었다.

《이녀석아, 너두 이젠 민법상으로두 성년인데 그만한 일에 잔뜩 겁먹구 헤덤벼쳐서야 사람구실 하겠니? 우린 강점초기처럼 〈이민〉이나 거류민이 아니라 이젠 반도땅의 당당한 주인이구 통치자야. 조선인들이란 한낱 노예에 불과한거구. 별루 떨건 없다. 또 우리 시험장엔 무장을 한 재향군인들두 있는거구. 이 애비두 생각이 있으니 내 수원에 출장갔다오는 기간 문밖에는 한걸음두 얼씬 말구 꾹 박혀있거라.》


처음으로 미우라와 맞서 한바탕 티각태각하고난 히라오까는 결을 새기지 못하여 사무실안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였다.

미우라는 도경찰부장의 모독적인 호된 욕설을 들은 다음부터 조회때마다 고등계가 무사태평하게 앉아 졸고있다거니 그렇게 멍청해있다가는 제 눈깔 뽑히는것도 모를거라느니 등 련거퍼 흠을 잡아 곱씹으며 약을 바짝 올렸다. 미우라쯤은 헌바지처럼 여겨오는 히라오까는 그 모독적인 힐난을 참다참다못해 오늘 울컥 도전한것이였다. 극도로 분격한 그는 당장 《요시찰》인들을 닥치는대로 모조리 잡아들여 마구 족쳐대고싶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와 같은 백해무익한 경거망동은 한창 《무르익어》가는 일을 대뜸 망칠수 있고 사이또처럼 파괴적인 후과를 초래할수 있다는 리성적인 사고가 그를 제지시켰다.

어느날 저녁 그는 사와다형사더러 그사이 발길이 퍼그나 멀어진 변호연을 조용히 찾아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보낸지 얼마 안되여 사와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 눈이 휘둥그래져 돌아왔다.

호연이가 책짐서껀 몽땅 싸가지고 없어졌다는것이였다.

히라오까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러나 책이며 사품까지 꿍져가지고 없어진걸 보면 사이또나 변영근처럼 실종당한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갑자기 어떤 신변의 위험을 상당히 느낀것이 틀림없다.

(신변의 위험이란 곧 그가 스즈게 묘시이고 우리의 첩자라는것이 드러났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렇게 깊숙이 위장시킨 그의 정체가 감히 어떻게 로출될수 있단 말인가? 그는 기가 질리고 오금이 저려들었다. 그는 속이 후들후들 떨리여 한참동안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야 전화로 보산농사시험장을 찾았다.

그러나 장장은 장기출장이라고 했다.

히라오까는 이 순간처럼 자신의 무력함을 뼈에 사무치게 느껴보기는 난생처음이였다. 그 어떤 막강한 적수가 자기와 직접 대결하여 압박을 가해오는듯 한 위압감에 사로잡혔다.


×


제딴에 추리판단에서는 코난 도일에 못지 않다고 자처하는 자기의 머리로써도 호연의 본색이 드러난 원인을 도무지 가상해낼수가 없었다. 그가 얼마나 혼겁했으면 이 주임한테 알릴 경황도 없이 즉각에 꼬리를 사렸겠는가! 그의 애비도 반도에서 태여나자 혈통을 잊지 않게 하려고 단지 이름을 스즈게 묘시로 달아주었을뿐 밖에서는 일점 류연호로만 불리웠던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고등계안에 공산군첩자가 박혀있단 말인가? 아니, 그것도 아니다. 그가 일본사람이라는것은 나와 사이또밖에 모르지 않는가. 물론 변영근이도 몰랐고… 호연이란 이름도 어릴 때 죽은 변영근의 아들 이름에서 딴것이고 영생고보도 자기의 조카가 다니는 학교명칭을 본딴것이였다.

그러니 정말 귀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밝혀낼수 없을것이였다.

또한 히라오까가 자기의 기호에 딱 들어맞는 호연을 물색하게 된것도 자기의 신중한 교훈에서였다. 그가 헌병대에 있을 때 령리해보이는 한 반도청년을 헌병보조원으로 소개했더랬는데 그는 맡은 정보수집에는 등한하고 히라오까의 뒤만 몰래 캐여 그가 한 기생과 간통한다는 추문을 퍼뜨려 쫄딱 망신을 당한적이 있었다. 그후부터 반도인이라면 혈압이 올라 질색하였다. 그러나 변영근의 경우만은 례외였다. 그는 제 애비적부터 《황군》이 던져주는 부스레기돈맛을 들인 충견인데다 반도인들앞에 지은 죄가 많아 《황군》의 편에 붙어살지 않고서는 제명을 부지해나갈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니 그러한 특종의 적임자를 골라내기가 조련치 않을것이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마저 다 잃지 않았는가. 이로 하여 히라오까는 허무감에서 헤여나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실망하지는 않았다. 호연은 비록 뺑소니를 쳤으나 그만하면 《공》은 세운셈이였다. 그것은 신경태를 어지간히 삶아놓은것이였다. 호연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일이였다.

신경태의 줄만 든든히 틀어쥐면 사이또나 변영근, 스즈게를 잃은 봉창을 하고도 남음이 있을것 같았다.

(단지 아쉽기 그지없는것은 문흥지구에 변영근을 대신할만 한 인물을 보낼수 없게 된것이였다. )

그는 호연을 통해서 신경태의 속내를 마치 거울에 비추어보듯 환히 꿰들고있었다. 그는 좌익서적이요, 야학이요 하며 시세에 눈이 튼 청년들이면 의례히 들뜨는 흔해빠진 정보보다 경태의 남다른 이색적인 취미와 방탕기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그리하여 그는 속으로 호연이 물색대상을 면바로 쥐였다고 흐뭇해하였다. 돌이켜보면 경태는 자신의 사상동태에서 꼬리를 잡힐 말은 거의 번지지 않으면서도 자기라는 인간을 기탄없이 드러내보인것만은 사실이였다.

히라오까는 호연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 전말을 그와 딱친구가 된 경태는 혹시 알고있을것 같이 짐작되였다. 그러니 무슨 방법으로든 경태를 더 바싹 틀어쥐여야 한다. 하지만 호연이만 한 인물을 다시 탐색할수는 없었다. 수하에 밀정들은 수두룩하나 호연이나 영근이처럼 써먹을 변변한것들은 없었다.

그는 자기와 손을 맞잡고 고등계사업을 추켜세울만 한 재목으로서는 사와다만 한 부하가 없으리라고 믿어지였다. 그는 얼핏 보기에는 지내 약삭바른감은 느껴져도 수사경험이 그중 오래인데다가 성미도 자못 침착하고 진중했다. 그러한 침착성과 진중성을 고등계사업의 제일장점으로 보는 히라오까는 사와다를 자기와 배가 맞을 적임자로 여기였다.

어느날 저녁 히라오까는 사와다를 데리고 일본료리집으로 갔다. 속이 클클하거나 기분이 저락할 때면 또 밀담할 건덕지가 생기면 버릇처럼 찾군 하는 단골이였다.

료리집주인이 비둔한 몸을 굽신거리며 그들을 맞아 특별히 뒤골방에 안내했다.

접대부대신 왜주인이 나선것은 고등계주임을 설설 기며 귀빈으로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지체없이 료리상이 차려지고 작부가 머리를 조아리며 위스키를 잔들에 따르고 역시 머리를 조아리며 나간 후 히라오까는 한잔 들이키더니 말꼭지를 떼였다.

《이렇게 단둘이 마주앉기는 처음인데 실컷 들게나.》

《네, 주임님두 요사이 속타는 일 많겠는데 오늘 푹 푸십시오.》

《그러지 않아두 요즘은 무슨 도깨비놀음판인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수가 없거던. 게다가 내 길들인 생도놈마저 꽁무니를 뺐으니 이 경부꼴이 뭐가 됐나 말이요?》

《거 전번에 내가 찾으러갔던 그놈 말이지요? 간이 콩알만 한 그깐 애새끼는 줴깔린셈치시지요.》

히라오까는 부채질하듯 손을 내저으며 사와다의 말을 부정했다.

《사와다군, 그는 그렇게 허술히 볼 애숭이 아니네. 웬간한 형사쯤은 찜쪄먹게 불온분자들의 속알을 뽑아낼줄 아는 난 놈이라니까. 그동안에 우리가 주목하는 인물을 반죽처럼 주물러놓기두 하구 꼬리두 잡고…》

《아, 그래요.》 사와다는 닭다리를 물어뜯으며 건성 대꾸했다.

《그런데 하던 일 매듭 못 짓고 도망간게 괘씸하단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봐야 밀정노릇이 몸에 배지 않다보니 괜히 노루가 제 방귀에 놀라 삼십륙계를 놓은것 같단 말이야.》

히라오까는 어지간히 실망한듯 거퍼 잔을 내였다.

《주임님… 너무 속을 썩이지 마십시오. 행방도 모르는 놈을… 그래 그가 주물러놓은 대상은 누굽니까?》

《혜신고보생인 신경태인데 이젠 그놈과 이어졌던 줄이 끊기였거던. 조금만 더 있어두 그놈뒤의 큰고기를 나꾸채였을텐데…》

《주임님, 그럼 신경태를 당장 잡아들여다 족쳐대면 되지 않을가요?》

히라오까는 벌써 취기가 올라 게슴츠레해진 눈으로 사와다를 건너다보며 저가락을 그의 눈앞에 대고 내저었다.

《우리는 조종을 받는 신경태가 아니라 조종하는자를 잡아내야 해. 그 조종자를 홀치려구 품을 들이던건데.》

사와다는 별안간 목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주임님, 이제야 별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하지만 아직은 좀더 두고보자는거야. 이제부터 군은 그를 조금두 놀래우지 말구 일거일동을 감시하게. 사찰과 형사의 여무진 솜씨를 한번 보이라는거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

《그러되 사이또처럼 성급하게 즉시즉결방법에 매달리는것은 일을 망칠뿐이야. 바로 그 성급한 성미가 사이또를 먹은것이지.》

사와다는 더 위로할 말이 없었던지 잠자코 먹어댔다.

《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네만 우리 일이란 덮어놓구 소동을 피우구 란장판을 벌린다구 되는것도 아니구 문제는 침착히… 엉, 침착히 염통을 뽑는거라구. 난 군을 믿네, 크게 믿어.》

그는 제풀에 흥이 올라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저가락장단을 쳤다.

이때를 기다린듯 출입문에 똑똑 손기척을 내며 화장을 진하게 한 말쑥한 기생이 호들갑을 피우며 들어왔다.

《아이구, 주임님이 오셨군요.》하고 애교를 부리며 사와다에게도 깍듯이 목례를 하였다.

곱살한 얼굴에 허리가 날씬한데다 엉치가 푹 퍼지고 봉긋하게 솟은 앞가슴이 대번에 눈길을 끌어당기였다.

아무에게나 금시 감겨붙을듯 한 그의 요사스러운 몸놀림은 호색한들의 뼈도 순식간에 녹여낼듯싶었다. 그는 샤미생을 타며 일본노래를 간드러지게 불렀다.

히라오까는 사와다에게 눈짓을 하고는 손을 입에 대고 《온지 얼마안되는데 어느 기생학교졸업생이라네.》하고 큰 비밀이기나 한듯 이렇게 귀속말로 수군거렸다.

이방저방에서 기생들의 노래소리와 깔깔거리는 야지러진 웃음소리, 남자들의 법석 떠들며 박수치는 란잡한 소음이 들려왔다. 밤마다 왜풍이 휩쓰는 읍거리는 이렇듯 질탕거리는 잡스러운 소음으로 차고넘치였다.

히라오까는 기생이 부어주는 술을 련거퍼 마시며 그에게 창가를 계속 부르라고 채근했다. 멋들어지게 부르는 그의 노래가 한곡조씩 끝날 적마다 히라오까는 림복자(기생)의 잔등을 다독여주었다. 술놀이가 지내 늦어지는것 같아 초조해하던 사와다가 그만 돌아가자고 귀띔을 해주어서야 히라오까는 비칠거리며 일어섰다. 사와다는 히라오까를 부축하고 료리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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