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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 회


제 8 장. 흑막속의 모략


3


겐따는 밤이 되여서야 도꾜로 돌아왔다. 이른새벽에 떠났다가 저녁에 돌아오건만 겐따는 생소한 곳에 난생처음 오는것만 같은 기분이였다.

도꾜땅에 들어서는 순간 공습경보가 울리였다. 불야경을 이루던 대도시는 순간에 까막나라로 변하였다.

도꾜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얼마전 비와호반에서 체험하였던 현실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났다. 도꾜에서는 지금 번창함이 사라져가고있었다. 비와호반은 태고연한 정적속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나 다름없이 자랑하였고 황실연회 못지 않는 풍성한 연회탁은 대동아맹주의 꿈이 실현된 일본의 래일을 상징하는가싶었었다.

공습경보는 인차 해제되였다. 적의 비행기가 정찰만 하고 돌아갔는지 다행스럽게도 폭격은 없었다. 멀지 않아 적의 공습이 예견되는 조건에서 수도사수사령부에서 반항공훈련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공습경보가 해제되여 전조등을 켤수 있었지만 겐따는 역경에 반발하듯 불을 끈채 차를 몰아갔다.

겐따는 자기가 나서자란 도꾜가 지금처럼 낯선 고장같이 느껴진적 없었다. 비와호반에서 느낀 상서롭지 못한 조짐때문에 더욱 그럴것이였다.

사람들의 물결이 그칠줄 모르던 거리는 텅 비여있었다.

겐따는 집에 들리기로 하였다. 흥남에서 돌아온지 한달이 되여오건만 한번 피뜩 다녀왔을뿐이다.

아버지를 아직 만나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전번처럼 노여워할지도 모른다.

밤에 성청사로 나가야 지휘성원들을 만날수 없었다. 웬만한 중, 하급사람들은 퇴근하였을것이고 아직 집에 가지 못한 고위층사람들은 회의나 긴급정황처리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있을것이다.

비와호반에서 있은 모임에 대한 보고는 래일 아침에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겐따는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차를 몰아갔다. 아버지의 집앞에 이르러서도 불빛을 볼수 없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같았다.

차전조등을 몇번 껌벅거리자 수위가 달려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수위의 안내를 받아 현관문에 들어서니 집안에서는 불을 켤수 있었다. 창문이란 창문을 꼭꼭 닫아놓고 두터운 천으로 불빛가림막을 쳐놓았으나 집안은 서늘했다.

《부모님들은 주무실겝니다.》

집사는 겐따를 위해 꾸려놓은 별채로 안내했다.

《도련님께 보내온 편지를 상두대에 놓아두었습니다.》

탁상등을 켜놓은 상두대에 놓여있는 편지는 두통이나 되였다.

겐따의 거처지로 정해진 별채는 호텔처럼 꾸려져있었다. 응접실이 있고 서재도 있으며 침실에는 크지 않은 목욕탕과 세면장이 달려있었다.

겐따는 옷을 벗어놓고 목욕탕에 들어가 가볍게 목욕을 하고나서야 침실로 돌아왔다.

침대옆의 상두대에 놓여있는 한통의 편지는 이딸리아로 비행훈련을 받기 위해 떠나간 대학시절의 동창한테서 온것이였다.

《이딸리아로 향했던 나는 도이췰란드로 가지 않으면 안되였네. 비행훈련을 받기로 되여있었으나 지금 나는 이렇게 련락관노릇을 하게 됐지.

어떻게 된 노릇인지 우리의 무선련락이 적지 않게 적측에 알려진다누만.

나는 도이췰란드에 주재하는 일본 오시마대사의 특사로 내각 정보국에 전하는 문건을 가지고 왔네. 사람이 전보와 전신을 대신해서야 어떻게 전쟁에서 이기겠는지.…

어떻게 하겠나. 두주먹을 부르쥐고 발바닥이 닳도록 달리고달려야지.

군이나 내 운명은 산경사면을 따라 내달리기 시작한것 같아서 이제는 멈춰설래야 설수도 없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명치시대 사람들이지만 군과 나는 물고기정신으로 살지 않으면 안되는 대동아전쟁세대들이 아닌가.

베를린 우리 대사관에서 일본군장교 한사람을 사귀였는데 알고보니 군의 쌍둥이형이더구만. 호지로군이 부모님들과 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탁하길래 가져왔네.

나는 하는 일 없어도 빨리 떠나야 하니까 만나지 못할것 같네.

건강하게. 슝꼬양을 사랑해주게.

동창생 미노리로부터.》

동창생은 겐따와 슝꼬의 사랑을 맺어준 중매군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는 겐따보다 먼저 슝꼬를 마음에 두었었지만 아무런 앙심이나 원망없이 제스스로 물러서고 사랑의 패자역을 맡았다.

미노리가 슝꼬에 대해 품었던 감정은 그의 가슴속에 이성에 대해 생겨났던 첫사랑이였다. 그가 자기의 짝사랑을 포기한것은 겐따와의 우정을 중시하는 의리때문이 아니였다.

대동아전쟁은 겐따네 세대들앞에 밀려온 하나의 거대한 해일이였다. 이 해일앞에서 겁에 질린 사람들은 자포자기와 실망에 빠지였고 대동아맹주의 꿈을 자기 보호의 감투로 쓴 사람들은 화평과 평화론을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맨발로 바위를 차는 격임을 알면서도 《천황》만세를 부르짖으며 죽음에로 나가야 한다는 도쯔게끼(돌격 앞으로)파도 생겨났다.

겐따의 동창생 미노리는 첫 류행에 속한다고 할수 있었다. 《천황》을 위해 대동아맹주의 꿈을 실현하는데 자기 한목숨 바쳐야 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는 전쟁을 두려워하였고 죽음을 피하려 하였다.

동창생 미노리의 길지 않은 편지에서는 자포자기와 숙명론이 진하게 풍기였고 그것은 염전과 전쟁공포에 뿌리두고있었다.

겐따는 동창생 미노리의 편지를 보는 첫 순간 순결하고 천진란만했던 학창시절로 되돌아가는것 같아 기뻤으나 글을 보고나서는 음식에 빠진 쉬파리를 보는 기분이였고 그 음식을 떠먹은것 같아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메스껍고 께름직했다.

겐따의 이런 생각은 배다른 형 호지로의 편지를 보고나서 더욱 강해졌다.

《겐따에게!

믿음직한 인편이 생겼길래 내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보낸다.

어려서부터 우리의 사이는 상서롭지 못했다. 너와 내가 사이나빴던것은 너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 관계때문이였지. 너와 나사이의 미묘한 알륵과 마찰은 너의 이름과 나의 이름에 그대로 비껴있지.

이 세상 관례와 풍습대로 하면 내가 형이니까 겐따가 되여야 하고 너는 나보다 사흘후에 태여났으니 호지로란 이름을 가져야 하지. 너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사이의 반감과 적대시는 이 이름에서 시작되였다고 할수 있지.

이제는 모두 까마득히 흘러가버린 옛일이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너와 나는 배다른 쌍둥이로 숙명지어졌어. 누가 며칠 먼저 태여난게 무슨 대수냐. 너는 나의 변신이고 나는 너의 변신이다. 아버지가 너의 어머니를 통해 나의 변신인 네가 태여나게 했고 나의 어머니를 통해 너의 변신인 내가 태여나게 하지 않았니. 이건 피할수 없고 변경시킬수도 없는 너와 나의 운명이야.

우리는 이 운명에 순종해야 하는거구.

겐따!

나는 너라는 나의 변신이 있는지 한동안 알지도 못하고 살았지. 너도 그랬을거구. 우리들이 어렸을 때 너와 나, 너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 그리고 우리 가문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였던 끔찍스러운 그날을 너도 잊지 않고있겠지.

우리 가문이 모인 자리에서 막내삼촌이란 사람을 할복자살하게 만들던 그날에야 나는 너라는 배다른 쌍둥이가 있다는걸 처음 알았지. 나는 그때 너를 처음 보았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시뻘건 피줄기를 뿜으며 목이 떨어지던 막내삼촌의 주검이 떠오르고 아버지말이라면 좋든 나쁘든 무조건 그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의 머리속에 깊숙이 뿌리박히였지.

이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 나의 본능처럼 되고말았지.》

겐따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의 눈앞에는 어린시절에 보았던 일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보료우에 펴놓은 백포, 백포우에 웃옷을 벗고 무릎을 꿇은채 앉아있던 사나이, 막내삼촌이라는 그 사나이가 악 소리를 지르며 번쩍거리는 칼을 자기 배에 가져다대자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죽는자의 고통을 덜어준다며 긴칼을 들고 뒤에 서있던 무사가 그의 목을 내리쳤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하여 겐따는 알지 못하였다. 겐따는 왕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품으로 기여들었다. 그날 겐따는 기절초풍할듯 놀랐으나 호지로처럼 까무라치지는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아버지는 겐따에게도 공포의 대상이고 상징이였다. 아버지를 무서워하면서도 겐따는 어머니가 심어준 거부감을 버리지 못하였다. 어머니가 불귀의 객이 된 이후부터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점차 가시여지는 대신 의탁심이 자라났으나 거부감은 완전히 뿌리뽑히지 않았다.

겐따는 감았던 눈을 뜨고 호지로의 편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겐따, 아버지의 별장에서 너와 헤여지던 그날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구나.

너는 아무 말도 안했지만 나는 네가 도이췰란드로 가게 된 나를 은근히 부러워하는 마음을 안다. 그때는 나 역시 내 처지가 너보다 좋다고 생각했고 속으로 좋아했지. 지금은 그렇지 않아. 네가 부러울 지경이야.

여기 베를린도 도꾜 못지 않게 들볶이우고 긴장되여있다. 히틀러가 모스크바를 당장 먹어버릴것처럼 기세가 등등하던 때와는 달리 쓰딸린그라드에서 밀려나고 꾸르스크에서마저 실패하게 되면서 내가 알건대 지금 도이췰란드지성인들은 쏘련군대가 도이췰란드국경에 이르는것이 시간상의 문제라고 생각들 하고있어.

번화하던 도이췰란드는 지금 빈궁에 시달리고 반전, 반히틀러기운이 태동하고있어 .

아직 사람들이 히틀러만세를 부르짖으며 나치스인사를 주고받지만 진심으로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사람은 없어. 나치스의 승리를 믿는 사람들 역시 그래. 일반사람들은 나치스의 운력걸음에 떠밀리워 마지못해 따라가지.

도이췰란드에 우리 일본군대 대표들이 적지 않게 와있는데 그들도 불난 집에 들어앉아있는 기분이야.

불에 타죽을바엔 남의 집에 와서 타죽기보다 제 집에서 죽는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남의 집에 불이 났을 때 그 집 가보나 재물을 빼내가기 쉽다고 생각해 객기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지.…

난 어서 집으로 갔으면 한다.》

겐따는 호지로의 편지 구절구절에서 풍기는 염전기분에 입이 쫙 벌어질 지경이였다.

일본땅을 떠난지 언제라고 호지로는 그렇게 빨리 염전주의자가 되였단 말인가. 호지로와 헤여진 이후 겐따는 호전기분이 오히려 더 강해졌고 대동아맹주의 꿈을 실현하려는 의욕이 더욱 강렬해지였다고 할수 있다.

(도이췰란드가 망하겠으면 망하래라. 일본은 기어이 대동아의 맹주가 될것이다.)

이것이 겐따의 생각이고 립장이였다.

사다리를 타고 벼락출세를 해서만이 아니였다. 대동아맹주가 되는 길에 자기 운명의 미래가 있기때문이고 전쟁에서 지면 자기 생명도 사라지지 않으면 안되기때문이다. 전쟁에서 이겨야 하고 지면 죽고만다.

호지로가 이것을 모른단 말인가. 살기 위해서라도 사무라이기강을 세워야 하겠는데 염세와 염전에 빠지다니…

겐따는 호지로의 생각에 찬성할수 없었다.

겐따는 호지로가 곁에 있으면 꾸짖고싶었고 호되게 때려주고싶었다.

겐따는 호지로보다 자기가 강자라는 자부심이 들었다. 이번에 겐따는 별 하나를 더 받았으니 군사칭호도 높았다. 겐따는 어느모로 보든지 호지로보다 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존자대의 자부심이 생겨났다.

그러면서도 비와호반에서 생겨난 의혹때문에 흐려진 기분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지금의 아라가쯔 붕사꾸나 니시나 요시오처럼 학자님들이 마음을 합치지 못하면 언제 어떻게 《겡시 바꾸단》을 가지겠는가.

전쟁국면을 역전시킬 새로운 무기를 가지지 못하면 대동아맹주의 꿈은 둘째치고 일본은 싸움에서 지고말것이 아닌가.

제뿔뿔이 놀아대는 학자들을 하나로 융합시킬 촉매는 《천황》숭배였다. 《천황》숭배자들이 손에 쥐여야 할 무기는 《겡시 바꾸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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