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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생을 태양의 가수로

 

권 원 한(음악가)

 

• 1920년 11월 25일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출생.

• 1945년부터 서울 한성중학교 음악교원, 서울교향악단 가수.

• 1950년부터 국립예술극장 독창가수.

• 1972년부터 모란봉예술단 성악강사.

• 1989년부터 문화예술부 예술인공로자협회에서 사업.

• 2006년 4월 6일 사망.

                                                           

 

 

지금도 우리는 2000년 11월 TV로 방영되였던 《권원한 독창회》를 기억하고있다.

80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맑은 청과 로련한 형상으로 노래를 부르는 로가수의 모습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화제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오랜 세대들은 수십년만에 다시 보는 녀가수의 낯익은 모습앞에서 감개를 금치 못해하였고 새 세대들은 호기심과 존경의 마음이 동하여 권원한이 누구인가고 어른들에게 저마끔 물어들 보았다. 로가수를 소개하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고 그를 원형으로 한 장편소설이 출판되여 독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무릇 사람의 마음은 덮어놓은 책과 같다는 말도 있듯이 몇마디의 추억담이나 한두권의 책으로 살아온 래력은 대략 간추릴수 있어도 고뇌와 환희로 뒤엉킨 한 인간의 곡절많은 내면사까지야 어찌 다 전할수 있으랴.

 

 

해님을 목메여 부른 소녀

 

1930년대 초 어느해 서울의 리화녀자전문학교에서는 녀자중학생들의 전국적인 성악콩클이 진행되였다.

앞날의 인기가수를 꿈꾸며 성악수업을 받아온 녀중학생들이 평양과 서울, 함흥과 부산 등 도회지들에서 뽑혀왔다.

세라복에 구두를 받쳐신고 도랑화장을 진하게 한 처녀들이 무대우에 올라 부르는 노래는 대개가 《안니로리》나 《로렐라이》와 같은 외국명곡들이였다. 자기의 음색이나 음역에는 관계없이 외국명곡을 잘 불러야만 일류급가수로서의 전망을 론하는것이 당시의 류행이였던것이다.

노래가 끝나면 의례히 있군 하는 박수나 꽃다발도 없었다. 오로지 심사석에 앉아있는 음악계명사들의 나직한 수군거림과 심사결과를 가슴조이며 기다리는 중학생들의 긴장된 숨소리만이 들려올뿐이였다.

그러던 장내의 분위기는 회령에서 온 13살의 소녀가 출연하겠다는 소개자의 말에 그만 흐트러지고말았다. 회령이라면 북관 6진중의 하나인 두메산골이 아닌가. 그것도 13살의 보통학교 학생이 중학생들과 겨루겠다고 나오다니… 게다가 부를 노래는 웬간한 전문가수들도 형상하기 바빠하는 이딸리아가요 《오 나의 태양》이란다.

자주색저고리에 까만 목세루치마를 입은 쌍태머리소녀애가 뭇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조심조심 무대우에 나섰다. 아직 촌티가 가셔지지 않은 소녀의 얼굴에는 불안해하는 빛이 력력히 떠돌고있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새여나왔다. 심사원들도 막간의 휴식이 찾아오기나 한것처럼 다소 풀어진 자세에 어지간히 비양조가 비낀 눈길로 무대쪽을 지켜보고있었다.

그러나 피아노소리가 울리고 소녀의 입에서 노래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였을 때 장내는 이내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오 밝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

폭풍이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류다른 소리색갈이였다. 이 나라의 가을하늘처럼 청아하고 산촌의 벽계수처럼 류창한 소녀의 목소리는 한순간에 사람들을 심취시켜버렸다.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오고

하늘에 밝은 해는 비친다

 

경연장이 불시에 극장으로 바뀐듯 모두가 숨을 죽이고 소녀의 노래를 듣고있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였다. 저렇게 체소한 몸안에서 어쩌면 저리도 풍만한 소리가 흘러나올수 있단 말인가. 과연 저애가 해빛 수려한 나뽈리의 하늘을 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인제야 겨우 사춘기에 들어서기 시작했을 애어린 소녀가 태양에 비겨 애인을 찬양한 노래의 감정을 어쩌면 저렇듯 열렬하게 표현할수 있단 말인가.

허나 그 시각 소녀가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태양은 낯설은 이국의 태양이 아니였다.

소녀는 두만강물결을 불태우며 솟아오르던 고향의 태양을 그려보고있었다. 시원한 강바람에 실려오던 물비린내, 굼닐며 흘러가는 물이랑우에 무수한 빛가루로 부서져내리던 아침해살, 쏟아져내리는 그 해살에 한껏 미역을 감으며 즐거이 나래치던 조그마한 물새들…

소녀가 나서자란 곳은 북변의 산간고을 회령이였다. 예로부터 녀인들이 아름답고 살구맛이 으뜸이고 백토가 유명하다고 하여 《회령3미》로 소문난 고장이였지만 나라잃은 그 세월에 고향은 소녀에게 가난의 서러움을 때이르게 맛보게 하였다.

본래 소녀의 아버지는 강원도 양양이 고향이였다. 일찌기 할아버지를 여읜 아버지는 살길을 찾아 북간도로 떠나는 외삼촌을 따라가던중 두만강을 건느지 않고 회령에 주저앉아버렸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어머니를 맞았고 여섯 자식을 보았다. 후날 서울에 가서 자식들은 아홉으로 불어났는데 아홉 남매의 맏이가 바로 소녀였다.

어려서부터 소녀는 《신동》이라고 불리울만치 노래를 잘 불렀다. 소녀가 노래를 부를 때면 어른들은 기가 막혀 혀를 차군 하였고 학교에서도 연예공연이 있을 때면 언제나 소녀부터 찾군 하였다.

하건만 소녀의 집형편은 어린 자식의 재능을 뒤받쳐줄만큼 여의치 못했다. 워낙 식솔이 많다는 사정도 있었지만 그보다 아버지가 집에 붙어있지 않고 늘쌍 떠돌아다니기만 하였던것이다.

소녀의 아버지 권학종은 강직하고 결패스러운 성격이면서도 부산스럽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다망하고 다채로운 사람이였다.

한때 청진부두와 정어리공장에서 일하다가 룡정에 건너가 중학을 나온 아버지는 회령지구의 서양선교사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쳤는가 하면 교회합창단의 지휘자노릇도 해보고 신흥학교에서 국어와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통역일을 맡아달라는 서양선교사의 권고를 물리치고 구두수리를 하면서 알수 없는 일에 몰두하여 자주 두만강을 넘나들기도 하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 시기 아버지는 독립운동에 관여하고있었던것이다.

가장인 아버지가 집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나다니기만 하니 가세는 점점 기울어만 갔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아버지는 맏이인 소녀의 남다른 재능만은 어떻게 하나 키워주려고 왼심을 썼다. 철부지딸애에게 채찍까지 대며 악보를 배워주었고 일본에서 류학하고 온 보통학교의 녀교원에게 부탁하여 피아노기초와 성악창법을 가르치게 했다. 소녀의 천부적인 음악재능을 알아본 녀교원이 서울에서 열리는 녀자중학생들의 성악콩클에 소녀를 데리고 가겠다고 나서자 온 식구가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 형편이였지만 주저없이 가산을 팔아 려비까지 장만해준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소녀는 두려우면서도 더없이 고마웠다.

해님이 그리웠다. 묵묵히 딸을 떠밀어주는 아버지의 멍든 가슴에 빛을 부어줄 해님이 그리웠다. 고생살이에 쫓기우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따뜻이 품어줄 해님이, 캄캄한 어둠을 밀어내고 자기의 앞날을 곱게 비쳐줄 밝은 해님이 그리웠다.

하여 소녀는 자그마한 가슴속에 남몰래 담고있던 슬픈 고백과 가지가지 소망들을 담아 목메여 자기의 해님을 부르고 또 불렀다.

 

나의 몸엔 사랑의 별

오 나의 태양 비친다

오 나의 나의 태양 찬란하게 비친다

 

장내에는 정적이 깃들었다. 소녀가 부르는 노래소리를 타고 모두가 어디론가 떠나가버린듯 하였다. 몇순간이 지나서야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심사원들도 경연참가자들도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나어린 소녀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연방 퍼부었다.

그날의 성악콩클에서는 관례를 깨고 벽촌에서 온 보통학교 학생에게 1등상이 수여되였다. 소녀의 이름은 권원한이였다.

돌이켜보면 그날 권원한이 부른 노래에는 앞으로 그가 걷게 될 인생길이 비껴있었던것만 같다.

성악콩클에서 1등을 한것이 연고가 되여 후날 권원한은 리화녀자전문학교 음악과에 입학할수 있었다.

그즈음에 그의 일가도 서울로 옮겨오게 되였다. 여전히 아버지는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집안일을 떠맡기고 바삐 돌아다니고있었다. 권원한은 늘 학비걱정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전차를 타는 돈도 아까워 그는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다니군 하였고 그러고도 어쩔수가 없어 한때는 학교를 중퇴하고 시골에 내려가있기도 하였었다.

그럴 때 리화녀전 음악과 과장이였던 김제식이 처녀를 다시 불렀다. 김제식은 우사 김규식선생의 녀동생이였는데 권원한의 인물과 목소리를 아깝게 여기고 그를 데려다 자기 집에서 양딸삼아 키우면서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공부시켜주었다.

파쑈일본의 광기가 극도에 달하고 식민지민족의 울분에 찬 곡성이 구천에 사무쳤던 세월이였다. 그 시절 권원한은 나라잃은 망국노의 설음을 한탄하는 《봉선화》와 같은 노래들을 많이 불렀다. 김제식의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홍란파가 살고있었는데 홍란파는 이따금 찾아와 권원한이 피아노를 타며 고음으로 부르는 《봉선화》를 듣군 하였다고 한다.

1944년에 리화녀전을 졸업한 권원한은 친구의 소개로 중국 동북에 건너가 심양의 선린녀중에서 음악교원이 되였다. 그러나 패망을 앞두고 온 동북땅을 피비린내나는 살륙장으로 만든 일제의 만행에 몸서리를 치며 그는 이듬해 다시 서울로 나오고말았다.

드디여 해방의 날이 왔다. 숨막히는 암흑의 장막을 찢으며 권원한의 가슴속에 태양의 서광이 비쳐온것이다.

날아옐 하늘이 없어 모대기던 작은 새는 밝아온 조국의 창공에서 마음껏 나래를 펼치고싶었다. 권원한은 한성중학교 음악교원으로 있으면서 서울교향악단 독창가수로 일약 무대우에 나섰다.

그의 남다른 소리색갈과 노래형상은 대번에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서울의 음악계에서는 프랑스류학파요, 일본류학파요 하면서 가수들이 저마끔 외국에서 배운것을 가지고 자기들을 내세우고있었다. 그런 가수들에 비해보면 권원한은 외국물이라고는 먹어보지 못한 순수 국내산이였고 그때문이여선지 서양의 고전성악을 해도 조선사람들의 미감에 어울리게 조선식으로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밝고 청순한 그의 목소리를 좋아하였다. 거기에다가 권원한은 목소리로만 노래하는것이 아니였다. 조화로운 률동과 정찬 웃음을 담은 두눈으로 노래를 불렀기에 어떤 때는 관중들에게서 여섯번이나 재청을 받기도 하였다.

출발은 너무도 성공적이였다. 요란한 박수갈채와 꽃다발, 찬사의 목소리들이 신인가수를 구름처럼 싸고돌았고 새로운 명가수의 탄생을 남먼저 알리기 위해 기자들이 앞을 다퉈가며 펜을 내달렸다.

여기저기서 《노래의 녀왕》으로 군림하기 시작한 녀가수에게 가극의 주역을 맡아달라고 발돋움하며 부탁해왔다. 그리하여 권원한은 《까르맹》과 《동백꽃아가씨》, 《파우스트》, 《리골레또》 등 여러 가극들에 주역으로 출연하게 되였다.

그무렵 가수로서의 권원한의 인기는 가극 《춘향전》과 관련한 일화를 통해서도 다소나마 엿볼수 있다.

해방후 남조선에서는 좌익계와 우익계가 제각기 단체를 무어가지고 예술활동을 벌렸다. 권원한이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대인기를 끈 《춘향전》은 좌익계에서 만든 가극이였다. 이에 우익계도 저들대로 《춘향전》을 만들어 좌익계에 대항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다른것은 몰라도 춘향역을 맡을 배우를 고르는것이 제일 난문제였다. 우익계에서는 어떻게 하든 좌익계보다 못지 않은 주역감을 고르려고 3년동안이나 애를 썼지만 권원한만 한 기량과 미모를 갖춘 가수를 찾아낼수가 없어 결국 그를 자기네 가극의 주역으로 초청하지 않으면 안되였다는것이다.

서울시민들은 권원한이 출연하는 가극을 보기 위해 시공관(극장)으로 밀려가군 하였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녀가수를 에워싸군 하였던지 공연이 끝나면 한성중학교의 힘꼴이나 쓰는 학생들이 자기네 음악선생을 호위하느라 진땀을 빼지 않으면 안되였다.

옥색갈의 모시저고리는 권원한이 제일 즐겨 입는 옷이였다. 연한 하늘색저고리에 검정색이나 자주색치마를 받쳐입고 흰 버선에 코고무신을 받쳐신은 그가 보기 좋게 큰 옥색리봉을 머리에 달고 거리를 지날 때면 미인가수를 구경하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군 하였다.

권원한의 앞길에 인생의 활무대가 펼쳐지는듯싶었다. 허나 어인 일인지 인기의 절정에 오르면 오를수록 그는 점점 더 깊은 번민의 나락에 빠져들군 하였다.

(과연 나는 참다운 예술인인가?)

그는 예술을 사랑했다. 정치적혼란과 충돌이 온 남녘땅을 회오리칠 때에도 그는 예술이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고 감동을 안겨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초기에 그가 아무런 정치적편중이 없이 좌익이든 우익이든 자기를 불러주는 곳이면 그 어데건 달려가 노래를 부른것도 그때문이였다.

하지만 일본을 대신하여 미국이 종주국행세를 하는 남조선의 현실에서 그것은 한갖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

해방의 감격속에 내걸었던 인민위원회간판들이 도처에서 내리워지고 민족을 반역한 어제날의 친일파들이 애국자들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웠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왜정때나 다름없이 굶주림과 무권리에 시달리는데 저들의 부귀영달만을 꾀하는 매국배족의 무리들은 외세와 야합하여 하나의 강토를 두동강내려고 발악하고있었다.

먹을것에 주리고 자유에 주리고 정의에 주린 사람들이 항거의 길에 나섰다. 처음에는 피터지게 절규하고 다음에는 압제자들에게 돌멩이를 날렸고 나중에는 손에 총을 들고 일어났다. 그들속에는 권원한의 아버지와 남동생도 있었다.

애국이냐 매국이냐, 정의냐 불의냐 하는 갈림길에서 순수한 예술의 길이란 지상공론에 불과한것이였다.

더우기 남쪽의 뜻있는 문예인들이 북으로 갔다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권원한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군 하였다. 박세영, 송영, 조령출, 황철, 최승희, 문예봉… 남조선문예계에서도 한다하는 재사들로 알려진 그들이 사선을 무릅쓰고 찾아간 곳은 온 겨레가 민족의 태양으로 흠모하여 마지 않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곳이였다.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기 위해 포악무도한 일본제국주의와 결사항전을 벌려오신 장군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시여 인민을 위한 바른 정치를 펴고계신다는 소식은 권원한도 여러 기회에 들을수가 있었다. 토지개혁법령, 로동법령, 남녀평등권법령… 정녕 그이께서 내놓으시는 시책들은 어느것이나 할것없이 이 나라 백성들의 세기적인 숙망을 담고있었다.

언젠가 권원한은 《산업건국의 노래》며 《산으로 바다로 가자》, 《밭갈이노래》와 같은 북녘에서 불리우는 노래들을 들으며 남쪽과는 판이하게 변모되여가는 북녘의 현실을 심장으로 감득한적이 있었다. 그 노래들은 하나같이 밝고 씩씩하고 환희로 충만되여있었다.

노래에는 시대가 비낀다고 했다. 어두운 시대는 암울한 노래를 낳고 밝은 시대는 흥겨운 노래를 낳기마련인것이다. 《산업건국의 노래》와 《산으로 바다로 가자》를 작곡한 리면상선생의 경우를 보아도 해방전에는 망국노의 쓰라린 가슴을 움켜잡고 비애와 설음만을 하염없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러던 작곡가가 오늘은 그리도 벅찬 희열과 랑만에 넘쳐 온 세상에 소리높이 새 생활창조의 기쁨을 노래하고있는것이였다.

참된 정치가 참된 삶을 마련해주고 참된 삶이 참된 예술을 낳는 법이다. 이 땅의 만백성들이 진심으로 따르는 품, 이 나라의 의로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달려가 안기고싶어하는 품, 그 품이야말로 참다운 인생을 가꾸어주고 진정한 예술을 꽃피워줄 위대한 태양의 품이 아니겠는가.

권원한은 예술인이기 전에 량심인이였다. 하기에 화려한 무대와 명성속에서 개인의 안락을 누릴 대신 겨레를 위한 투쟁의 대오에 과감히 뛰여들었던것이다.

그는 애국적인 예술단체들에서 주최하는 공연들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사람들을 투쟁에로 고무추동하는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리원녕(공화국 초대보건상 리병남선생의 딸)은 당시 숙명녀고에 다니면서 학생운동에 참가하고있었는데 좌익계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종로의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권원한 등 가수들이 군중들앞에서 혁명적인 노래들을 부르거나 보급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였다고 한다.

해가 바뀔수록 남쪽땅은 애국과 매국의 치렬한 대결장으로 더더욱 화해갔다. 미제와 매국노들은 단말마적으로 발악했다. 려수의 항쟁자들이 피흘리며 쓰러졌고 4. 3의 제주도가 불바다에 잠겼다. 그야말로 온 남녘땅이 폭압과 학살의 암흑천지로 변해버렸다.

해빛이 그리웠다. 암흑을 불사르고 새날의 광명을 안겨줄 태양을, 동토대를 녹이며 새봄을 안아올 구원의 태양을 녀가수는 목마르게 기다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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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선택 3^bb 1. 한생을 태양의 가수로 1) 해님을 목메여 부른 소녀 운명의 선택 3^bb 1. 한생을 태양의 가수로 2) 태양의 품을 찾아 수천리 운명의 선택 3^bb 1. 한생을 태양의 가수로 3)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 운명의 선택 3^bb 2. 금별메달에 비낀 한생 1) 항쟁의 거리에서 운명의 선택 3^bb 2. 금별메달에 비낀 한생 2) 그가 안긴 품 운명의 선택 3^bb 2. 금별메달에 비낀 한생 3) 서울에 안고 간 김정일화 운명의 선택 3^bb 3. 한 무용가의 운명 1) 운명의 배에 돛을 달고 운명의 선택 3^bb 3. 한 무용가의 운명 2) 깃들인 인생의 보금자리 운명의 선택 3^bb 3. 한 무용가의 운명 3) 우리 장단, 우리 춤가락으로 운명의 선택 3^bb 3. 한 무용가의 운명 4) 최승희의 무용은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운명의 선택 3^bb 4. 《동요할아버지》가 부른 노래 1) 설음의 시, 눈물의 동요 운명의 선택 3^bb 4. 《동요할아버지》가 부른 노래 2) 한생을 꽃봉오리로 살고싶어 운명의 선택 3^bb 4. 《동요할아버지》가 부른 노래 3) 그의 삶은 영원하다 운명의 선택 3^bb 5. 무대에서 찾은 한생의 진리 1) 방황의 먼지오른 고달픈 청춘시절 운명의 선택 3^bb 5. 무대에서 찾은 한생의 진리 2) 인생의 가치 운명의 선택 3^bb 5. 무대에서 찾은 한생의 진리 3) 누려온 행복, 못다 이룬 소원 운명의 선택 3^bb 6. 조선화의 거장으로 성장하기까지 1) 《해변》 운명의 선택 3^bb 6. 조선화의 거장으로 성장하기까지 2) 《5월의 농촌》 운명의 선택 3^bb 6. 조선화의 거장으로 성장하기까지 3)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운명의 선택 3^bb 6. 조선화의 거장으로 성장하기까지 4) 후대들의 추억에 새겨진 모습 운명의 선택 3^bb 7. 설음을 불사른 웃음의 한생 1) 족쇄를 찬 희망 운명의 선택 3^bb 7. 설음을 불사른 웃음의 한생 2) 환생 운명의 선택 3^bb 7. 설음을 불사른 웃음의 한생 3) 웃음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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