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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신에 이어 률곡면소재지에서 일어난 삐라살포사건은 온 률곡면소재지를 한바탕 들었다놓았다. 경찰관주재소, 면소주변, 우편국, 소방소, 역홈과 기다림칸, 가게거리 등에 하얗게 살포된 삐라장들은 먼지구름을 휘몰아올리는 세찬 바람에 실려 온 천지를 뒤덮을듯이 흩날리였다.

순경들은 모조리 떨쳐나 사색이 되여 허둥거리였다.

혜신에서의 삐라사건도 채 수습하지 못한 때 예상치 못했던 률곡땅에서의 벼락같은 삐라살포는 히라오까의 눈을 희뜩 뒤집어놓았다. 그는 변영근이가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고 률곡면에 가서 주어온 삐라장들을 뚫어지게 훑어보다가 혜신에서 살포된 삐라장들과 가지런히 사무탁우에 펴놓고 상세히 대조해보았다. 내용도 필체도 똑같았다.

그는 대뜸 그 삐라는 률곡에서 찍은것이 아니라 혜신에서 찍어 날라다 뿌린것임을 직감했다.

히라오까는 머리가 송곳질을 하듯 욱신거리였다.

마땅히 혜신에 드나드는 률곡면민들은 많겠지만 조직적으로 련관이 있을상싶은 놈들을 모조리 색출해내는것이였다.

그는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수굿하고 앉아 자기의 동정을 넌지시 살피고있는 영근에게 투박하게 물었다.

《률곡면에서 혜신에 고정적으로 드나드는것들은 대체 어떤 부류들인가?》

《거야 운송점 마수레군들, 손수레군들, 우체부들 뭐 두루 많습지요.》

《그따위들보다두 통근자, 통학생들 같은 시세에 눈알이 밝은것들 말이야.》

그제야 히라오까의 묻는 의도에 깨도가 된 영근은 인츰 발라맞추었다.

《예, 예, 있습지요. 우선 고녀생이 둘인데 하나는 박영란이라구 도보통학생이구 다른 하나는 송찬숙인데 하숙생이지요.》

히라오까는 어방 짚이는데가 있는듯이 표표한 상판에 희색이 떠올랐다.

《음, 박영란, 송찬숙…》

영근은 히라오까의 기분상태를 가늠하며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그리구 주임님, 제 남석면에 갔던 일은 별로 소득이 없었습니다.》

《왜? 그만하면 소득이 크지. 내 변상이 써낸 자료를 보았는데 조선속담에 나무를 알려면 뿌리를 보랬다구 아, 최철림의 혈통의 밑뿌리를 캔것만도 큰 소득이야. 우리가 그렇게 품을 놓고 찾던 최성만의 아들 최계수가 철림의 아버지라는것을 결국 밝혀내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그 최계수가 어디에 있는가?》

《예, 우리 눈을 피해서 여러 공사판돌이를 하다가 근년에 어느 목재판에서 죽었다구 합니다. 그리구 저… 주임님, 장마당에서 박히택을 때려눕힌자두 내 요즘에야 알아냈습니다.》

히라오까는 얼굴에 짓고있던 회심의 미소를 곧 지우고 귀가 번쩍 띄여 물었다.

《그게 어느자게?》

《역시 최철림생도입니다.》

《역시 그놈이란 말이지. … 음… 늙어두 기생이라더니 과시 변상은 귀신두 놀래울만 하단 말이야.》

《주임님, 이 변영근의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야 그 촉각이 무딜 탁이 있겠습니까?》

히라오까는 저으기 흥심이 돋쳤다. 그는 자기의 예감과 추측이 현실로 아퀴지어가는것이 너무나 신통하다는 생각에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이번통에 철림의 전모를 알게 됐거던. 이제는 그가 주모자라는것이 정해놓은 사실로 판명된셈이거던. 신경태같은건 철림을 홀치기 위한 끈에 불과한것이지만 그렇다구 추호도 놓쳐서는 안되는 인물이란 말이요. 그 끈을 놓치면 철림이두 놓치는것과 같애. 이것 보구려, 지금 공산주의자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활발한지 알아두는것도 나쁠게 없다구.》 그는 자기 사무탁에 놓인 종이장을 밀어던지였다.

영근은 머리를 한번 굽석 조아리며 그 종이장을 황송스럽게 두손으로 들고 보았다.

《…이외에도 ×××도에는 여러가지 명칭을 가진 반일조직들과 각종 조직들이 있는바…


※ 각종 단체 일람표

(최근에 있어서의 조선치안상황) 경무국 보안과 167페지》

영근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종이장을 들고 다 읽은 다음 히라오까의 사무탁에 조심히 가져다놓았다.

《변상, 사태가 이러하니 언제 발편잠을 잘 경황이 있겠는가! 요즘 삐라사건만 봐두 등잔밑이 어둡거던. 지금 철림이가 주동인물로 지목되기는 하나 한갖 학도로서 폭넓은 활동을 할수 없을터인데… 벌어지는 사태로 미루어보아 틀림없이 배후에 조종하는 큰 인물이 서있는것 같거던. 그러니 최철림, 신경태 그밖의 고보생송사리들을 그물안에 은밑히 휘몰아서 큰고기를 낚아내는게 당면목표란 말이요. 물론 문흥지구에 주목을 돌리면서 여기에도 감시미행의 초점을 박아야 해. 큰 뿌리… 큰 놈…》하고 제풀에 주절대다가 엉거주춤이 그냥 서있는 영근에게 《좀 앉구려.》하고 자리를 권했다.

《그래, 지금 문흥지구는 어떻던가?》

영근은 그 말이 나오기를 바랐던듯이 엉치를 들썩이며 신이 나서 보고했다.

《제 보건댄 원래 공산빨찌산들이 나들어 터가 잡힌데다 사처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든 철도공사장이여서 판이 좀 클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히 제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감시망이 조밀한것두 좋지만 우선 인부들 출입이 잦은 로무계나, 식자깨나 있음직한 인부들속에나 주막거리에서 좀 외따른 다리목의 주막집 같은데, 말하자면 사람들이 속을 헤치고 제마음껏 지껄일수 있는 장소들에 정보원들을 박아넣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히라오까는 입을 딱 벌리고 듣다가 무척 탄복한 어조로 그를 칭찬했다.

《역시, 변상의 로련한 눈이 정말 다르구만! 엉, 단 며칠새에…》

그러나 의뭉한 영근은 혜신에서 본것 같은 녀자방물장사를 문흥에서도 보았다는 말은 아직 아리숭하기도 하지만 딴 속심이 있어 입밖에 내지 않았다.

은해의 련락을 받은 영란과 찬숙은 사진찍으러 오는척 하며 은해의 집에 모였다.


×


은해는 사진실사이문으로 들어서는 그들의 손을 와락 잡아끌며 반색하였다.

《영란이, 찬숙이, 동무들은 정말 큰일을 했어!》

《우리가 뭐 큰일 한게 있니, 조직의 분공을 집행했을뿐인데.》

성미 팔팔한 영란이 례사롭게 말하였다.

철림은 삐라를 살포하기 전날에 주도세밀한 조직사업과 함께 약간한 실수도 없게끔 주의사항을 깐깐히 강조하면서 찬숙이도 은밀히 함께 가도록 했었다.

그리고 그동안에 영란이가 조직의 위임에 따라 받아들인 4명의 청년들도 삐라공작에 인입시키도록 했었다.

《영란동무, 속이 떨리지 않던?》

은해는 영란을 선망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다정하게 물었다.

《솔직히 처음엔 좀 속이 떨렸댔어. 그러나 은해동무랑 벌써 한 공작인데 우리도 따라서자 하고 정작 거리에 나서니 담이 절로 커지더구나. 그때 문득 철림동지가 하던 말이 머리속에 생생히 떠오르더구나. 우리가 먼저 코를 꿰일것이 아니라 우리 먼저 놈들의 코를 꿰여 끌고 다니구 감시를 받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반대로 놈들의 일거일동을 손금보듯 아는 능동적인 존재로 되자고 하던 말이…》

그들 셋은 자매간들처럼 마주앉아 그날 겪은 일을 도란도란 주고받았다.

《그러지 않아두 오늘 낮에 철림동지가 신신당부했단다. 률곡에서 다니는 고보생은 너희들밖에 없는데 대뜸 놈들의 주목을 끌수 있으니 사소한 의심 살 일도 없도록 극력 주의하구 감시의 눈이 항시적으로 따른다는 생각을 조금두 늦추지 말라구 단단히 이르더구나.》

은해는 철림의 간곡한 당부를 그루박아 전하였다.

《명심하겠어. 그러나 5년동안이나 달리며 단련된 이 박영란을 놈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거야.》

웬간한 사내쯤은 우습게 보는 영란은 제멋에 으쓱해하였다.

그때 찬숙은 불현듯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제풀에 키득키득 웃으며 영란을 부추기였다.

《영란동무, 은해동무한테 풋내기 밀정놈을 혼내우던 이야기나 좀 들려주려마.》하고 저혼자 또 웃어댔다.

은해는 어리뻥하여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럼 한마디 하지. 한번은 천연산의 노을을 바라보며 혼자 걷노라니 그만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더구나. 그래서 나도 모르게 〈녀성해방가〉를 흥얼흥얼 불렀다. 그렇게 한참동안 걷는데 별로 누가 내뒤를 밟는것 같은 감촉이 들지 않겠니. 그래서 슬그머니 돌아보니 참대꼬쟁이같은 웬녀석이 모자를 꾹 박아쓰고 뒤따르다가 내 눈과 딱 마주치자 슬쩍 얼굴을 돌려 먼산을 바라보는척 하잖겠니. 때는 석양이라 인적은 끊어지구. …》

《호호, 그래서?》

은해는 귀맛이 바짝 당기여 재촉했다.

《그담엔 좀 빨리 걷는척 하다가 홱 돌아다보니 그 녀석두 또 무춤 서는게 아니겠어. 난 그만 후끈달았지. 자존심을 짓밟히는것 같아 참을수 있어야지. 그래서 더 속도를 내다가 갑자기 돌개바람처럼 몸을 홱 돌려 그놈에게 맞받아 육박했지. 그러자 그놈은 와뜰 놀라더니 손바닥만큼한 낯짝에 붕어눈이 금시 튀여나올것 같더라니까. 내 들이댔지. 〈당신은 누구야요?〉, 〈그건 왜?〉, 말투가 사납더라니 나두 막말로 들이댔지. 〈왜 내뒤를 따르는거야? 너 나한테 눈독을 들이구 무슨 냄새를 맡자는게 안야?〉》

그 말에 은해와 찬숙은 허리가 부러지게 웃어댔다.

영란은 시치미를 뿍 따고 동안을 두었다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자식이 한다는소리인즉 〈이게 머리가 돈 녀자 아니야?〉, 〈그래, 난 머리가 돈 녀자다. 너두 머리가 돈게 아니야? 반하지 않았다면 왜 기신기신 뒤를 밟는거야? 그럼 네가 밀정이 아니야?〉》

또 와 웃음이 터졌다.

《〈뭐, 밀정?〉그놈은 숨통을 찔린것처럼 혀가 얼어붙더구나. 〈밀정이 맞게 기신기신 사람의 뒤를 밟지. 학생의 뒤나 밟아서 얻자는게 뭐야? 땀내나 맡자는거야? 네 다리갱이 성한게 원쑤같지 않으면 내뒤를 밟지 말라!〉 이렇게 을러메구 픽 돌아섰지.》

《그래, 결과는 어떻게 된?》

《어떻게 될거나 있니. 한참 걷다가 돌아보니 어느새 사라졌더구나. 정작 그놈이 없어지니 마치 무인지경에서 백골귀신을 만났던것 같아 몸이 오싹해지지 않겠니.》

《호호. 영란이, 그러다 그놈이 그걸 언턱잡아 물고늘어지면 어떡하려구 그랬니?》 은해는 사뭇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 내가 무인지경 외통길에서 단둘이 일 대 일로 맞다든건데 누가 보는 사람 있기를 했니. 그런 일 없었다구 단마디로 딱 잘라매면 다지. 이 박영란이 그만한 담두 없이 그랬을가, 원.》

《그렇기는 하지만 뒤를 밟는다는건 놈들이 벌써 무슨 냄새를 맡았거나 무엇인가 짐작하고있다는 징조가 아니겠니. 만약 책보를 뒤지여두 언턱을 잡힐것이 티눈만큼도 없이 해야 하지 않겠니?》

은해는 매사가 몹시 걱정스러워 어른스레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찬숙이도 그에 덧붙여 말했다.

《더구나 률곡에서 재차 삐라사건이 터졌기때문에 영란동무나 나한테 놈들이 손을 뻗칠수 있어. 놈들을 홀시하지 말구 은해동무의 말대로 각별히 조심해야겠어.》

《그런데 하숙생인 찬숙동무가 삐라사건 전날에 률곡에 왔다간 일두 혐의에 걸리지 않을가?》

은해는 아직도 무언가 안심치 않아 있을수 있는 경우를 세심히 따져보았다.

《그건 눈치채지 못했을거야. 찬숙동무는 날이 저문 다음에 들어섰다가 다음날 밝기 전에 나하구 같이 지름길을 타구 떠났으니까. 그리구 은해동무두 알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바깥일에 아예 관심이 없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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