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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림은 책보를 하숙방에 두고 학생복을 평복으로 급히 갈아입은 다음 서둘러 하숙집을 나섰다.

저물기 전에 성근을 만나 긴급히 상론할 문제가 있었던것이다. 그가 남석면으로 통하는 길어구에 막 이르렀을 때였다. 남석면쪽에서 한 우편배달부가 자전거를 부리나케 몰아오고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편배달부의 자전거가 길어구를 좀 지났을쯤에 불시에 옆골목에서 자동차가 불쑥 삐여져나오는통에 하마트면 맞쪼을번 하고는 비틀비틀거리다가 깊은 도랑창에 허궁 모재비로 나딩구는것이였다. 배달부의 모자는 벗겨져 날리며 땅바닥에 떨어지고 그가 끼였던 검은색안경은 튕겨 날아 돌부리에 부딪쳐 한쪽알이 부서져버렸다.

길가던 사람 서넛이 달려가 자전거에 깔린 배달부를 부축하여 일궈세워주었다.

그 순간 철림은 《앗!》 소리를 치며 눈이 뒤집힐 지경으로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모자가 날아나 대머리를 드러낸 우편배달부는 천만뜻밖에도 대장간주인이였던것이다! 그는 쩔뚝거리며 모자를 주으러 가려다가 한 아이가 집어주는 모자를 받아쓰고 한알이 부서져버린 검은색안경은 손수건에 싸서 바지주머니에 밀어넣는것이였다. 철림은 행인들속에 섞이여 절뚝거리며 자전거를 밀고가는 변영근을 한참동안 까딱없이 지켜보았다.

마치도 꿈의 한장면같기도 했다. 어느결에 감추었는지 우편배달부완장은 팔에서 벌써 안보였다.

(저놈이 남석쪽에서 오는것이 분명한데 왜 변장까지 하고 거기에 무엇때문에 갔댔을가? 무슨 밀고를 받았거나 《요시찰》대상에 대한 미행중이 아니였을가?)

그런데 공교로운것은 변영근의 정체가 돌발적으로 한꺼풀 벗겨지는 모퉁이에서 신통히도 자기와 맞다들게 된것이였다. 마치도 인위적인 조작인것 같은 황당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내가 그한테 너무도 눈초리를 도사리고있기때문일가. 기실 변영근도 자기의 정체를 아무리 숨기려하여도 다만 철림의 눈앞에서만은 홀딱 벗기우는셈이였다.

(남석면방향에 변영근의 감시대상이 누구일가?)

수옥은 다른 지구에 파견된 동지들을 만나러 갔으니 그의 신변에는 별고없으리라고 생각되였다.

...

성근은 히뭇이 웃으며 배심이 든든해서 말했다.

《등사기는 마음 푹 놓소. 제깟것들이 무슨 재간에 찾아내겠소. 철림동무는 담력이 여간 아닌것 같으면서두 이럴 땐 겁이 좀 있거던.》

《문동지를 든든히 믿으면서도 여기가 아지트인데다 수옥동지의 거처가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라도 바리봉동굴로 옮겨볼가 해서 급히 오는 길입니다.》

철림은 진정으로 걱정되여 이렇게 심중하게 말하였다.

《듣자니 금산군 지하조직에서는 특무놈들의 눈이 두려워 서울 오상덕활판소에 가서 삐라를 찍어다 뿌린다구 합니다만 문성근을 믿으시우. 그새 허순사두 둬번 들렸댔구 면소것들두 호구조사를 나왔댔구. …》

《수옥동지를 캐구들지는 않았습니까?》

《한번은 호구조사 나온것들이 어디서 살다왔으며 촌수는 어떻게 되느냐구 따지다가 마침 그날 한발 앞서 나와있던 허순사가 내가 다 보증한거라며 쫓아보냈네.》

《허순사의 동향은 요새 어떻습니까?》

《여전한것 같소. 제 입으로 쏟아놓은 비밀두 많은데 그렇게 마련없이 헤벌거릴 부실한 인간같지는 않소. 요즘은 어디서 주어들었는지 이웃군의 어느 주재소에서 한 순사가 수석, 차석을 까눕힌 다음 총들을 걷어메구 항일빨찌산에 들어갔다는 말까지 성수나서 하더라니까, 허허.》

《들리는 소리마다 얼마나 희한합니까. 10대강령이 널리 퍼져 이젠 유격대입대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것 같습니다. 나두 수옥동지만 오면 당장 입대를 청원할 작정입니다.》

성근은 빙긋이 웃으면서 《아니, 철림동무야 조직책임자인데 승인될가?》하고 될상싶지도 않다는 의미로 말하였다.

철림은 마음을 짓누르고있던 문제를 성근이와 의논하고는 방금전에 목격한 일을 화제에 올렸다.

《참 문동지, 오늘 또 우연히 변영근의 정체를 다시한번 더 알게 되였습니다. 아, 글쎄 그놈이…》 철림은 읍어구쪽에서 본 사실을 그대로 옮기였다.

성근은 흥심이 돋쳐 그 말을 듣고는 한참동안이나 웃어댔다. 그는 찔끔 나왔던 눈물을 옷소매로 훔치며 말했다.

《아니, 그놈이 철림동무의 최면술에 걸려든게 아니요? 최면술에 걸리면 입은 옷두 다 벗어버린다더니, 신통히 그놈이 자기 정체를 벗어보일 때 면바루 철림동무눈에 걸리누만.》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는 정체가 다 발가진 놈이니까 우리 손아귀에 놀아나게 만들어야지요.》

그때 부엌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성근의 안해가 누구인가를 맞아들이는 목소리가 소곤소곤 들려왔다.

좀 지나서 찬기운에 얼굴이 발깃발깃해진 수옥이 방에 들어섰다.

철림은 용수철튕기듯 일어나며 인사말을 하였다.

《수옥동지, 수고하셨습니다. 그간 고생이 많았겠군요!》

수옥은 성근이에게 인사를 하였다. 성근은 서둘러 자리를 내주며 따뜻한 아래목을 권하였다.

《수고했수다. 어서 여기 와앉으시우. 요즘은 나다니기가 더욱 조련치 않겠는데. …》

《그렇잖아두 집에 들어서기 전에 두어바퀴 주위를 돌고 들어서는 길입니다.》

철림은 마음 놓이지 않는듯 걱정스럽게 한마디 하였다.

《지금 밀정들이 길목마다 지키구 경관놈들의 검색이 더 우심해졌습니다.》

수옥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토벌대〉놈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속으로두 혼자서 마음대루 다녔을라니 그깐 놈팽이들쯤이야 떨게 있나요. 참 아버님, 조카가 잘 싸우고있대요!》

《그래요!》 성근은 격정에 겨워 말하였다.

《최근에 국내로 파견되여온 동지가 전해주더군요.》

《그러니 결국 우리 조그마한 반일회두 장군님의 부대와 직바루 련결돼있는 격이군.》

성근은 흥분된 심정을 걷잡지 못해하였다.

《그리구 철림동무의 어머님도 반일회 회원이 됐어요.》

《아, 그렇습니까! 어머니도 같은 혁명동지로 되셨군요!》

철림은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기라도 하듯 희색이 만면했다.

《이번에도 어머님의 곁에서 하루 묵고 왔어요. 고 깜찍한 미옥이 오빠 만나러 따라오겠다는걸 겨우 떼두고 왔어요.》

수옥은 이번에 학봉산 불당골에서 열린 정치공작원들의 모임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모임에서는 우선 수옥이보다 먼저 문흥지구에 파견된 정치공작원의 활동정형과 수옥이가 지금 한창 꾸리고있는 ×××비밀근거지의 일대인 남천, 남석, 삼포, 혜신지구들에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을 결성한 정형에 대한 총화가 있었다. 그리고 문흥은 철도공사장도 있고 특별히 범위가 큰 지구인것만큼 수옥이도 그곳 정치공작원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조직을 계속 확대해나가기 위한 방도들이 토의되였다.

이윽고 수옥은 철림에게 이번 모임에서 토의된 문제의 골자를 간단히 알려주었다.

《지금 전국도처에 조국광복회 산하조직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전략상 지형조건이 유리한 요충지들에는 비밀근거지가 꾸려지고있어요.

그 비밀근거지는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국내공작의 거점, 다시말하면 활동기지, 령도기지, 작전기지, 후방기지들로서 도처에 꾸려지게 됩니다. 당면해서 우리는 단 한명의 청장년이라도 일제놈들의 편에 넘어가지 않도록 반일애국교양에 더 힘을 집중해서 반일투쟁에 묶어세워야 합니다. 우선 지금 벌리고있는 야학을 통한 반일애국교양올 줄기차게 밀고나가면서 더 많은 핵심군중들을 반일회조직망에 흡수해나가야 하겠어요.》

수옥은 다른 단위의 경험과 교훈도 들려주었다.

《수옥동지, 그간 김길수동지를 위시하여 인민혁명군 입대를 청원하는 동무들이 여러명이나 됩니다.》하며 입대청원자들의 명단을 수옥에게 주었다.

《김길수, 삼룡리 화전청년들인 문철호, 남명현, 춘산리 농촌청년 윤석기, 허성수, 송찬숙, 박영란.》

수옥이 입대청원자들의 명단을 보고있을 때 철림은 그들의 입대자격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였다.

《그들은 다 반일회조직에 망라되여 충분히 검토된 동무들입니다.》

수옥은 한참 무슨 생각에 골똘해있다가 말했다.

《길수동지야 나이두 좀 있구 가족이 달려있는데 힘들지 않겠어요?》

《나도 그런 식으로 말했더니 막 펄필 뜁니다. 내가 시흥 〈적색독서회〉때 항일유격대와 손을 잡으려구 두번씩이나 간도땅을 헤매다가 같이 간 동무를 놈들의 총탄에 잃기까지 한 사람인데 뭐가 모자라 입대할수 없단 말이요, 이렇게 완강히 나옵니다. 누구도 그 뜻을 꺾지 못할것 같습니다.》

《그래요?…》

《저, 그리구.》하고 철림은 수옥이와 성근의 기색을 번갈아 살피며 힘들게 자기의 소원을 말하였다.

《수옥동지, 나도 총들구 왜놈들과 직접 맞서서 싸울수 있게 좀 해주십시오. 》

《호호, 또 그 청이예요. 꼭 인민혁명군에 들어가야만 놈들과 싸우는게 아니지 않나요. 철림동무 어깨우에는 더 무거운 임무가 걸머지워있어요. 저마끔 자기의 욕망을 앞세우면 되겠나요? 나 역시 부대에 돌아가 총들고 싸우는것이 제일 큰 소원이지만 국내공작사업은 장군님의 뜻이기때문에 선뜻 이 길에 나선거예요. 철림동무나 나나 지하투쟁은 한대오에서 직접 무장을 들고 싸우는거나 같다는 생각을 한시두 잊지 말자요.》

성근은 조용히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인민혁명군에 보낼 원호물자는 국경을 넘어야 하는것만큼 보다 충분히 마련된 다음 보내기로 협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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