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34


《탕!》

경찰서장 미우라 사마또는 주먹으로 사무탁을 부서지라 하고 내려쳤다. 그 소리에 주밋거리며 문으로 들어서던 한 경관은 와들짝 놀라기까지 하였다. 미우라가 성이 독같이 올라 날칠 때에는 경관들이 찍소리를 못하고 잰내비엉덩짝같이 검붉어진, 털구멍이 숭숭한 그의 험악한 상판을 각이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부임한지 오래지 않은 부서장 오가와는 댕댕한 표정으로 꼿꼿하게 앉아있고 히라오까는 비양스러운 표정으로 씁쓸해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말야, 엉? 온 거리에 삐라장이 나붙구 길거리에 날리구, 엉? 경찰서를 얼마나 밑씻개처럼 여겼으면 이런 삐라장이 여기 담벽에까지 나붙었겠는가! 엉? 제군들은 국록을 타먹으면서 뭣들 하고있냐 말야. 환도나 절컥거리며 바람쐬듯 나돌이를 하니 염통밑이 곪는것두 모르지 않는가! 보시오, 지금 어떤 판국인가! 연선경비진은 철통같다구 떵떵 을러두 며칠전에는 공산유격대가 문흥지구에 넘어와 포고며 격문을 도처에 뿌리구 촌민들앞에서 일장 반일연설까지 하구 바람같이 사라졌소. 당신네들, 삼촌댁옆에서 자구난 사람처럼 얼뜬해있다가는 어느통에 제 모가지 날아날지 모른단 말이야. 현실적으로 우리 턱밑에 바싹 붙어있지 않는가. 길게 말할것 없단 말이야. 이제부터 총출동해서 흔적을 탐색하구 모조리 수색하구 수상한자들은 마구 잡아들여 몽둥이찜질을 하느라면 범인들을 색출해낼수 있단 말이야. 무자비해야 돼!》

서장실에서 나온 히라오까는 자기 수하의 형사들을 제 방에 따로 모이게 하였다. 그는 서장실에 앉아있으면서도 그의 말은 귀등으로 흘리고 제딴의 생각에 골똘해있었다. 그 역시 무시로 불집이 이는 문흥지구에 신경을 과도히 쓰는 사이에 돌발적으로 발생한 이 삐라사건에 속이 후들후들 떨리였다. 그러면서도 한편 이번 사건이 자신의 예감과 추측에 자연 들어맞아가는것이 신통하여 못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것은 삐라내용이 종전것들보다 상당한 정도로 단수가 높은것이였다. 그것은 그 어떤 막강한 세력이 혜신지구에 뻗치고있다는 증거였다.

웬간한 삐라사건쯤한것은 우습게 다루어온 그였으나 이번 삐라사건은 허술하게 다루어서는 안될것 같은 두려움이 은근히 머리를 들었다.

삐라의 내용은 두말할것도 없지만 삐라살포가 너무도 주도세밀하여 사소한 흔적도 남기지 않은것이다. 이것은 배후에 그 어떤 원숙한 조직자가 배겨있다는것을 시사해주고있었다.

한편 그는 문흥이나 혜신의 그 어떤 세력이든 거물이든 자기가 쳐놓은 그물에 불원간 걸려들것으로 믿고있었다. 그는 정보사업도 하나의 예술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는 형사들이 다 모이자 탁상우에 쌓인 삐라를 가리키며 뇌까리였다.

《군들은 이걸 알아야 해. 우리 담당지구에 드문히 나타나던 삐라들하구 이번 삐라는 그 내용에서 질적으로 현저히 다르다는거야.》

히라오까는 삐라 한장을 들고 읽었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기치밑에 전민족이 단합하여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자!〉 보라구, 지난 5월 5일에 창립된 이 조직의 강령이 벌써 우리 경내 반도인들에게 보급되구있단 말야. 〈공비〉와 결탁된자들의 사업조직이 매우 주도세밀하거던. 솔직히 지금상황은 우리 고등계가 놈들을 감시통제하는게 아니라 그놈들이 우리를 감시통제하는거나 같단 말이야. 오늘은 우선 지식층에서 삐라가 씌여졌겠으니 남고보, 녀고보, 농업학교 등 반도인교원, 학생들의 필적조사부터 선행시켜야 하겠어.》

《주임님, 필적감정을 하려면 조선글로 씌워야 할텐데…》 하고 사이또가 약삭바르게 귀띔을 했다.

《그거야 리유를 만들기탓이니까… 무슨 〈총독부철자법〉대루 쓰는가를 보기 위해서라든가. … 그 있잖소, 1930년 2월에 나온 〈신철자법〉, 형태주의가 아니라 표음주의… 그건 그거구. 내 생각엔 〈나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짓게 하면 어떨것 같은가?》

형사 하나가 발라맞추듯 맞장구를 쳤다.

《그거 아주 묘안입니다. 하루생활을 요점잡아 쓰게 하는것이 일리가 있을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보는것이 좋을것 같아.》 히라오까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즉시 형사들을 각 학교들에 내보내고 서류함에서 변호연이 만들어준 학급생들의 명단과 집주소, 하숙집주소, 학부형들의 직업을 밝힌 문서를 꺼내였다. 그 문서를 뒤적거리는 순간 호연의 말이 다시금 그의 뇌리에 상기되였다.

《다른 학생들이나 그의 부모들은 그저 신세타령이나 한탄뿐이여서 걷어쥘것이 없는데 노란자위는 역시 학급장과 신경태입니다. 그들은 대성사립때 한무선의 수제자들이였고 송아지친구로서 서로 밀착돼있습니다. …》

호연이 정기적으로 일러바치던 부스레기혐의들을 그러모아 반죽을 쳐보면 이제는 하나의 륜곽을 이룰듯도싶었다. 그들이 이번 삐라사건과도 줄이 닿아있을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후에 각 학교에 나갔던 형사들이 주임의 방에 다시 모여들었다.

히라오까는 형사들이 들고온 작문지뭉테기에서 최철림, 신경태, 변호연의 작문지를 골라내였다.

사이또가 자기 상전의 의도를 직감하고 녀고의 작문뭉테기에서 한장을 솎아 히라오까에게 내밀었다.

《이건 한은해라구 한무선의 사촌녀동생의 작문입니다.》

히라오까도 기억하고있었다.

《한무선의 장례때 법조항을 따지며 대항하더라는…》

《녜, 그 녀고생입니다. 만만치 않은 계집입니다.》

히라오까는 은해의 작문을 먼저 고른 석장의 작문과 함께 따로 놓았다.

형사들은 제각기 삐라장을 긴 탁우에 펴놓고 학생들의 작문글씨와 대조하는 감정에 달라붙었다.

필적감정에서는 이 부면에 이골이 난 사이또를 당할만 한 형사가 없었다. 그의 독수리눈은 글씨의 미세한 하나하나의 획, 지어 점표식에 이르기까지에서도 기묘한 특징을 귀신같이 밝혀내였다. 이 부면에서는 자신의 《관록》을 시위하고싶어 몸달아하는 히라오까마저도 그앞에서는 두손을 들었다.

히라오까는 호연의 작문 첫머리를 건성 읽었다.

《나의 하루는 조속히 황국신민이 되기 위하여 배우고 교화하는 보람있는 하루다. 나는 천황의 적자라는 충심을 안고…》 여기까지 읽고는 사무탁서랍안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신경태의 작문에 눈을 주었다.

《나의 하루는 눈코뜰새없이 뻐근하다. 나는 공부만 끝나면 롱구훈련에 달라붙는다. 지구별예선을 앞두고 매일같이 련마해야 갑종경기에도 출전할수 있다. 다시한번 갑종경기에 진출하여 패권을 쥘 심산이다. 졸업전에 다시금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혜신고보에 나의 자취를 큼직하게 남기고싶다. …》

히라오까는 문득 호연이가 경태는 허울로 동급생들의 인기를 끌고 허세와 익살로 한몫 보며 유명해지고싶어 안달이 난 인물이라고 하던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다른것은 몰라도 공명심이 강한 괴짜라는것이 알리였다. 그는 이어 최철림의 작문을 유심히 읽어보다가 불쑥 날이 선 송곳에 쿡 찔리는듯 한 자극을 느끼며 정신을 바싹 가다듬었다.

《…나의 하루는 더없이 따분하다. 등교, 교수, 하교, 숙제 또다시 등교… 판에 박은 일과의 기계적인 반복이다. 이것은 지루한 객지생활에서 생긴 허무감에서일가? 나에게서 제일 즐거운 하루는 곡마단구경을 하는 날이다. 이때는 만시름을 잊고 실컷 웃고나면 마음이 맑고 시원해진다. …》

그는 재삼 눈으로 읽으며 입으로 외워보았다. 따분하다는거야 일본교육이 싫고 흥미없다는 뜻이 아닌가. 허무감? 텅 비고 어이없다는 소리 아닌가? 곡마단구경이 제일 즐겁다는거야 지금 받는 교육이 짐승놀이보다 못하다는 조소일가? 철림에 대한 선입감이 많은 그의 제딴의 억측이였다. 그러나 억측치고는 사실과 너무나 근사한것이였다.

그는 지나친 신경과민에 의한 억측같이 여겨져 좀 더 두고보려고 경태의 작문우에 놓고 녀고생 한은해의 작문을 보았다.

《나의 하루를 헛되이 넘기고싶지 않다. 만일 내가 하루하루를 덧없이 넘긴다면 그것은 덧없는 10년으로 이어질것이다. 뜻없이 흘러보낸 삶을 두고 부끄럽지 않도록 나의 하루를 뜻있는 하루로 만들자. …》 지금의 교육자체가 《황국신민화》교육이고 반도인들 머리속에 둥지를 튼 민족의 얼을 송두리채 뽑으려는 교육인데 《헛되다》, 《덧없다》, 《뜻있는…》이란 그에 도전하는 립장의 표명이 아닐가?

자기가 쓰는 이 글을 학교당국이나 그 이상급에서 보리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개의치 않고 써낸것을 보면 문제있는 생도라고 생각되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드러내놓고 단서라고 할만 한것은 못되였다. 머리가 트이고 하나 하면 열 하는 그들이 만약 《황국신민》으로서의 뜻을 키우고 그렇게 살려는 의도에서 쓴 글이라고 하면 입이 막힐수 있었다.

어차피 앞으로 그들의 움직임에서 나타날수 있는 심상치 않은 징조와 오늘의 예감과 륙감이 일치될 때에는 스스로 제모습을 드러내게 되리라고 믿었다.

히라오까는 그들의 글을 필적감정에서 제외시키고 금고에 보관했다.

이와 같이 영민한 사람들은 허투루 자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것이다.

형사들이 모아붙어 이마를 맞쪼으며 눈에 쌍심지를 돋구고 필적감정을 했으나 종시 삐라와 류사한 필체와 글자획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자신만만하게 남먼저 달라붙던 독수리눈 사이또는 의자를 삐걱 뒤로 밀며 물러났다.

그마저 손을 털고 나앉는것을 본 히라오까는 호연이 만들어준 주소문서를 내려다보며 곧 가택수색포치를 했다.

《필적감정을 다른 방법으로도 계속 심화시켜야 해. 우선 고보생들의 집과 하숙집을 빠짐없이 수색하고 공책, 편지 등을 다 감정하면서 삐라흔적이라든가 등사기, 등사원지, 등사잉크, 규격지 같은것을 숨긴 흔적이 없는가 모조리 뒤져야 하겠소. …》

갑자기 벽에 걸린 전화종이 요란스럽게 울었다.

형사 하나가 움쭉 일어나 송수화기를 벗겨들었다.

《예, 고등곕니다. 뭣이? 가만…》하고 그는 주임에게 물었다.

《한포주재소 차석인데 면소등사기는 어떻게 하라는가고 묻습니다.》

《관계치 말고 모조리 뒤지라구 하게. 그런데 그런 지시는 어디서 받았다는가?》

《여보시오, 관계치 말고 다 뒤지라구요. 그런데 그 지시는 어디서…》 하고 형사는 송수화기를 걸어놓으며 말했다.

《서적으로 포치한것 같습니다. 서장님한테서 직접 받았답니다.》

히라오까는 들을만 해있다가 계속했다.

《그리고 지구별로 관청과 회사들에 있는 등사기 등록대수와 현물을 철저히 대조확인하구… 사이또형사는 나머지 남석면, 보산면, 률곡면, 문흥면, 청수면, 동산면 주재소들에 급히 전화를 걸어서 등사기검열을 일제히 하도록 긴급지시를 하달하시오.》

《알겠습니다. 》


×


학교에서 늦게야 돌아온 경태는 하숙방의 문을 여는 순간 두눈이 홱 뒤집힐듯 경악하였다.

키가 껑충한 건명태같은 사이또가 순경 하나를 달고 와서 하숙방을 발칵 뒤집는것이였다. 방바닥에 한벌로 깔린 책더미우를 흙투성이 구두발로 마구 짓밟고다니며 사이또는 책장을 빨칵빨칵 뒤지고 순경은 돌아가며 바람벽을 쾅쾅 두들겨보았다.

경태는 욱하여 한마디 내쏘았다.

《이건 무슨짓입니까?》

사이또는 홱 머리를 돌리며 올빼미눈을 부릅뜨고 을러댔다.

《뭐? 무슨짓? 조선놈의 새끼, 어따대고, 앙! 공무집행을 방해하는거야?》

《그렇지만 이거야 너무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빈방에서…》

경태는 울컥하여 만만치 않게 응수했다.

낯짝이 구겨질듯 발끈해진 사이또는 불이 번쩍나게 경태의 따귀를 후려갈기고 구두발로 그의 정갱이를 련거퍼 걷어찼다. 다행히도 경태는 체격이 든든한 덕에 넘어지지 않고 벽에 잔등을 부딪치며 겨우 지탱했다.

《이 생도놈의 새끼, 계속 무슨 아가리질이야!》

사이또의 손은 권총집에서 뱀의 혀처럼 날름거렸다.

그놈은 일단 권총을 뽑으면 뭐이든 쏴갈기고서야 권총집에 도로 넣는다는 말을 들은 하숙집녀인이 그를 감싸안듯 하며 옆구리를 꾹 찔렀다.

사이또는 책상우에 따로 골라놓은 소설책 3권을 게다리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속 을러멨다.

《너 이 새끼, 조선글로 된 책은 왜 가지고있어? 〈불온문서 림시취 재령〉도 몰라, 앙! 조선글로 된 책이나 출판물은 모두 없애버리게 돼있단 말야. 네놈은 그것만으로도 〈부정선인〉이야. 여, 나까무라!》

왜순경은 사이또에게 낯을 돌렸다.

《이 책들을 당장 소각해버리라구.》

《녜.》 왜순경은 소설책 3권을 마당에 들고나가 좍좍 찢은 다음 옆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여 거기에 불을 달았다.

사이또는 텅 빈 서가의 뒤벽이며 책상밑바닥도 두드려보고 구두발로 굴러도 보았다.

《딴데 책을 감춰둔건 없는가?》

녀인은 오금이 질려 겁먹은 소리로 대꾸했다.

《없습니다. 책은 이 방밖에…》

한순간 경태는 금지도서들을 미리 솎아 창고에 감춘 일이 피뜩 떠올라 가슴이 섬찍했다.

사이또는 긴팔을 뻗쳐 천정을 손가락으로 두루 찔러보기도 하고 무슨 건덕지가 더 없을가 하여 구석구석을 다시금 휘둘러보고는 《다음번엔 용서없어.》하고 긴다리로 문지방을 넘어섰다.

당장이라도 일을 낼것 같이 욱하던 경태는 미친놈같은 사이또의 발길에 채운 정갱이가 저리여 찍소리를 못하고 한쪽구석에 서있었다.

삐라사건으로 하여 온 혜신땅이 삽시에 죽가마끓듯 하고 군경들이 사색이 되여 날뛰는 꼴이 통쾌하기 이를데 없었으나 은해는 내색을 하지않고 등교하였다. 좀 늦게 등교한 설향은 방긋이 웃음을 머금고 살며시 은해의 손을 꼭 잡았다놓으며 의미있게 눈을 끔쩍해보였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