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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문일가? 무엇때문일가?)

설향은 날로 의혹과 불안이 구름처럼 짙어가기만 하였다. 쩍하면 핑게를 만들어가지고라도 찾아오군 하던 경태의 발길이 점차 뜸해지기 시작하고 그래서 이따금 하숙집에 찾아가면 늘 방이 비여있거나 불이 꺼져있었다. 언제인가는 그를 찾아가다가 경태의 하숙집널마루에 걸터앉아있는 호연을 알아보고 되돌아선적도 있었다. 경태의 신변에 혹시 어떤 일이 생겼거나 딴일에 정신이 팔려있든가 아니면 혹시 롱구훈련때문일가?

설향은 그 까닭을 꼭 알고싶었다. 그리하여 그는 어느 일요일 아침일찌기 경태의 하숙집을 찾아갔다. 역시 이른아침인데도 출입문은 꼭 닫겨있고 방안은 빈집처럼 호젓하였다. 그는 하숙집녀인을 찾았다. 녀인은 설향이 올적마다 의미있는 웃음을 지으며 류달리 반겨맞는 좀 수다스러운 형이였다. 처음 한동안은 그 웃음이 싫었으나 지금은 그에 별로 개의치 않게 되였다.

《어머니, 경태오빠가 또 어데 갔나요?》

《글쎄 요새는 저녁술 놓기 바쁘게 어디루 갔다가 샐녘에야 문소리가 나구 공일이면 〈어머니, 좀 나갔다 옵니다.〉 하구선 아침에 나갔다가 늦저녁쯤에야 들어오군 한다우. 무슨 일감이 생겼는지. …》

녀인은 난색을 짓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무슨 일감》 이라는 말이 설향의 신경을 건드리였다.

그는 불현듯 경태가 자기를 따돌리고 나다니는 그 내막을 오늘은 기어코 알아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철림의 하숙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철림의 하숙집어머니는 딱해하였다. 사실은 춘일이와 거의 같이 움직이는 철림의 일을 대강 짐작하면서도 함부로 입밖에 내서는 안된다는것을 자각한 그였다.

설향은 어쩐지 자기가 따돌림을 받는듯 한 허전한감이 들자 그 내막을 시급히 알아내고싶어 마음이 조급하게 달아올랐다. 그리하여 북일사진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은해의 어머니는 담요를 무릎우에 씌우고앉아 설향을 반색하며 맞아들였다.

《걔는 요새 무슨 바람 들었는지 공부만 끝나면 어디루 그냥 쏘다니지 않나, 공일에두 부역일은 제 동생한테 밀어맡기군 통 집에 붙어있질 않는다네.》

설향은 은해 어머니의 말까지 듣고보니 그들 셋이 함께 움직이고있다는 예감이 펀뜻 들었다. 그리고 《무슨 일감》 이 생긴게 아닌지 하던 하숙집녀인의 말이 재삼 가슴을 찔렀다.

다음날 설향은 곁에 앉은 은해의 전과 같이 밝은 표정에서 별다른 기미를 챌수 없었다.

《은해, 너 요즘 어딜 그리 나돌아다니니?》

그는 시침을 뚝 따고 물었다.

《나라구 뭐 나돌아다니문 안된다는 법조항이라두 있니?》

설향은 그가 딴전을 부리는게 속으로 얄미웠다. 그러나 은해의 속내를 타진해보려고 그는 계속 귀속말로 소곤거렸다.

《너 형사한테두 법조항을 따지구들었다더니 법학에 취미를 붙인거구나. 》

《응, 재판소와 검사국을 다 대상하는 사법서사쯤 되려구 그래.》

《요 깜찍한것, 날 계속 속일려구… 내 생각에는 집밖을 나도는게 너만은 아닌것 같던데…》

그 말에 은해의 표정이 별안간 굳어졌다. 이때 칠판에 글을 쓰던 선생이 피끗 돌따보는것이였다. 설향은 가뜩이나 까박붙이기를 좋아하는 물리선생한테 걸려들가봐 부지런히 학습장에 베껴쓰기 시작하였다. …

그후 어느날 저녁쯤에 경태가 불쑥 찾아왔다.

설향은 그가 자기를 넌지시 멀리하는 고까움이 불시에 치밀어 어지간히 앵돌아지였다. 그들은 함께 대천강뚝으로 나갔다. 설향은 대천강뚝에 나갈 때까지 그가 묻는 말에 마지못해 대꾸했다.

경태의 말과 행동은 어쩐지 일부러스럽고 얼렁수같이 느껴지였다.

《오빠, 내가 미덥지 못하지요?》

경태는 그 말에 놀라와하지도 않고 미리 예상했던것처럼 례사로운 어조로 반문했다.

《그건 무슨 왕청같은 소리야?》

《내가 미덥지 못하니 줄창 나다니면서두 그걸 비밀에 붙이고있겠지요?》

경태는 갑작스레 웃음보를 터치였다. 설향이도 정작 내키는대로 그렇게 말해놓고보니 절로 우스워 깔깔 웃어댔다.

《괜찮아, 설향이가 그래서 더 귀엽거던. 그 엇드레질에 정이 폭폭 든단 말이야.》

《싱거운 소리 말아요. 그래 오빠가 나 몰래 하는 일은 뭔가요? 무슨 일이게 내가 알아서는 안되나요?》

《쉿! 누가 듣겠어.》

경태는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 말은 아무데서나 하는게 아니야.》

설향은 그의 무척 당황해하며 줄곧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는 거동을 보고서야 그가 어떤 비밀사업을 하고있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그 한순간에 자신을 그리도 지꿎게 괴롭혀오던 어수선하고 뒤숭숭하기 이를데 없던 생각들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것이였다.

그와 반면에 별안간 알지 못할 불안과 두려움이 검은구름처럼 마음속을 배회했다.

그는 경태가 말하기를 딱해하는 화제는 더 건드리고싶지 않았다. 또한 돌발적인 감정의 변화로 하여 다른 이야기도 더 길게 나누게 되지 않았다.

《설향이, 자주 만나지 못할수록 그만큼 그리움도 더 루적되는 법이야. 날로 우리의 정두 더 굳건해지구. 내 마음속에는 오로지 귀여운 동생밖에 없다는걸 알아야 해.》

그날 밤 경태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짬을 내여 가끔 찾아오겠노라며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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