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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변호연은 번거로운 상념으로 하여 금시 머리가 빠개질듯 하였다. 자신에 대한 회의심과 불안, 초조, 알지 못할 공포감이 때없이 머리속에 갈마들었다.

그제 저녁 갑자기 히라오까에게 불리워가서 한시간나마 《체조》를 받고난 다음부터 그는 손맥이 탁 풀려 속으로 끝없이 방황하였다.

(내 왜 이 길에 발을 들여놓았을가?)

특무라는 말만 들어왔지 그런 개노릇은 단 하루도 해본적이 없는 그였으나 동향친구의 아들이라는 명목으로 멋모르고 끌려든것이였다.

《황국》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중대사라고 간곡히 설복하는 아버지의 권고를 애당초 칼로 베듯 자르지 못한것이 지금에 와서 천백번 후회되였다. 그렇지만 이제 그 아무리 발버등을 친대야 범의 꼬리를 잡은 격이 된것이였다. 《한학급 생도놈들의 사상동태와 수상한 기미를 알아내기는커녕 아직까지 냄새두 못 맡고있지 않는가!》하고 서슬이 시퍼래서 독을 쓰던 히라오까의 상통을 상기만 해도 진저리가 났다. 하지만 그의 불만도 무리하지 않는것이였다. 료리집에서 그와 단독으로 만난 후 호연이 해놓은 일이란 무엇인가? 경태의 서재에서 《적색》서적들이 감쪽같이 없어진것을 알아낸것, 저한테 사죄문을 씌운 교장을 땅딸보왜놈새끼라고 악담을 퍼붓던 일… 그러나 그것들보다 중요한 성과로 자인하는것은 경태와 철림이가 한무선의 수제자임을 들추어낸것이였다. 그런데 그중 무른 고리로 점찍은 경태가 허식한것 같으면서도 알속있는 말은 좀처럼 입밖에 내비치지 않는것이였다. 호연은 그가 쉬임없이 지껄이는 말을 채심해 듣고 와서는 무슨 건덕지라도 건져보려고 아무리 채를 쳐보아도 도움이 되는것은 없었다. 불현듯 그는 경태가 불의에 《적색》서적을 솎아 감춘것은 혹시 무슨 눈치를 챘기때문이 아닐가? 그래서 겉으로는 천연스러운척 하면서 속으로 경계하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그가 제풀에 어떤 군가와 비슷한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자기를 힐끗 훔쳐보고는 류행가로 슬쩍 돌리여 흥얼흥얼하는것을 보면서 가슴이 선뜩했었다. 그가 혹시 자기의 정체를 감촉한것 같은 짐작이 들었던것이다. 그후 호연은 그와 한담을 나누는척 하며 이리저리 유도하여 마음속을 주물러 보았으나 그런것 같지 않기도 했다. 그의 순간적인 기분은 그 어떤 타성에 의한 무의식적인것이였다. 하더라도 그 노래만은 불러서는 안될것임이 확연했다. 그게 공산군노래라면 누구한테서 배웠겠는가? 그것이 누구며 그와의 련계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것일가? 호연은 자기가 지내 무리한 억측을 하는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추리는 더더욱 나래를 펼치였다. 그의 추측에 한고향출신으로 고보까지 나란히 걸어왔다는 경태와 철림의 사이에는 순 인간적인 우정만이 아니라 마땅히 불온사상으로 결탁된 그 무언가 있을것 같았다.

그날 밤 히라오까는 얼마전 삼전고보에서 있은 교훈적인 실례를 특별하게 강조했었다.

… 한 일본교원이 교실안에서 일본말을 하다가 복도에 나서면 조선말을 하는 어느 학생의 귀를 비틀어쥐고 복도를 끌고다녔다. 그런데 귀바퀴가 찢기우면서까지 참아오던 그 학생이 돌연 그 교원의 면상을 주먹으로 후려치자 옆에 있던 두명의 학생이 와락 달려들어 그 교원을 때려눕혀 초죽음을 시켰다는것이다. 이 일로 하여 그 교원은 학부형들의 항의에 못이겨 학교에서 쫓겨났지만 대신 세 학생은 류치장에 갇히웠었다.

《그래서 학생들의 평소의 기분상태를 민감하게 포착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거야. 그렇지 않다가는 어느 한놈이 결기를 못 참아 선코를 떼기만 하면 휘발유에 불이 확 당기는 격이 될수 있단 말이야. 그러니 사소한 반항심이라도 있어보이는 놈들은 미리 점찍어두어야 해!》

호연이 잔등을 바람벽에 기대고 앉아 렴탐묘리를 짜내고있을 때 손기척도 없이 사이문이 벙싯 열리였다. 며칠만에 보는 변영근이 손수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이거 갑자기 어찌된 일입니까?》

호연은 너무 뜻밖이여서 놀라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껏 한집에 살면서 구미여우같은 대장쟁이가 이렇게 술상을 차리기는 처음이였던것이다.

그는 술상을 사이에 두고 올방자를 틀고앉으며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자네가 그새 속을 썩인것 같더라니. 속썩을 때에야 약주가 보약이우다. 약소하지만 어서 드시우.》

그는 먼저 술병을 잡으려는 호연의 손을 가볍게 물리치며 놋잔에 병을 기울며 술을 따랐다. 특무노릇으로 늙어오는 영근은 근간에 호연의 낯빛이 전에 없이 어둡고 입을 아주 봉하고있는것으로 보아 렴탐이 뜻대로 안되고있음을 직감했다.

영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두 여태 겪어보면 머리속에 알통이 배긴것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더군. 별것 없다니, 그저 수상한 놈은 꼬리를 놓치지 말구 길목에 옹노와 덫을 놓아두면 영낙없는것 같더군. 허허, 내 이거 취한김에 실없는 소리를 한것 같군.》

그 말은 뻔한 일반상식같으면서도 호연의 머리속에 펑끗 불찌를 날리였다.

호연은 요즘 번거로운 상념에 시달리면서 속이 클클해서 한잔 했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었다. 그런데 《삼촌》이 《조카》의 심리를 신통히 알아맞히고 술상을 챙긴것 같아 여간 고맙지 않았다. 게다가 얼굴이 지지벌개서 취중에 례사롭게 던지는 그의 말은 문어구에서 머무적이는 자기에게 그 무슨 암시를 주는것 같기도 했다. 하긴 이 부면에서는 그가 상당한 《경력자》 라면 자기는 겨우 첫발을 들여놓은 초학도에 불과하지 않는가.

호연은 술기에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으나 영근이 암시해주는 말의 의미를 거듭 되새겨보았다.

《꼬리를 놓치지 말라!》, 《길목에 옹노나 덫을 놓아두라!…》

별로 실수확을 거두지 못하고있는 자기한테는 일종의 경종으로 들리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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