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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간 뒤등은 올리보면 섶나무숲에 가리워 잘 보이지 않았으나 반대로 거기서 내려다보면 저만치에 있는 방아간이며 읍으로 향하는 길이 빤드름하게 드러나있었다.

수옥은 날이 어두워질무렵에 찾아온 철림이와 은해를 물레방아간 뒤등에서 만났다.

《그래서 저는 마음이 통하는 동무 두명을 점찍어놓았습니다. 송찬숙, 박영란인데 한명은 하숙생이고 한명은 률곡면에서 왕복 30리를 꼬박 통학하는 동무입니다.》

은해는 그간의 자기 사업정형을 자세히 보고하였다.

송찬숙은 집안살림이 너무 어려워 퇴학서를 세번이나 썼다가 찢어버리고 하숙비가 좀 눅은 집을 골라 벌써 네집째 옮겨앉은 동무라고 했다.

한번은 자기의 눈물겨운 처지를 동정하는 은해와 함께 대천강버들방천에 나가 《봉선화》를 조용히 부르고나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난 이 세상이 막 숨막힐 지경이야. 퇴학서를 썼다가두 미물처럼 가난에 짓밟히고마는것 같아서 찢어버리군 했어. 결석이 잦다구 쩍하면 귀쌈을 쥐여박구 벌을 세우는 그 악질왜놈교원들과는 앙심을 먹고 끝까지 엇서고싶어. 은해, 넌 다 몰라. 나같은 소힘줄이니까 여태 그냥 배겨있지 남들 같으면 벌써 걷어치운지 오랬을거야.》

그리고는 또 눈물을 걷잡지 못했다.

그의 가슴아픈 정상이 눈앞에 떠올라서인지 모두 말없이 앉아있었다. 은해는 한참동안 있다가 박영란도 화전민의 딸인데 애당초 하숙생활을 할 엄두도 못 내고 원래 보통학교때부터 륙상선수인 그는 입학 첫날부터 왕복 30리를 줄창 걸어서 통학한다고 하였다. 웬간한 사내쯤은 우습게 여기는 그는 처지가 같은 송찬숙이와 각별히 친한 사이라고 했다.

수옥은 은해를 칭찬하였다.

《은해동무가 그사이에 좋은 동지들을 찾아냈어요. 우리는 그런 동무들부터 적극 찾아내여 하나하나 묶어세워야 해요.》

은해는 무엇인가 주저하다가 철림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진설향?》

수옥은 되받아외웠다.

그러나 철림은 머리를 다소 저으며 시들하게 말했다.

《성격도 활발하구 다 좋은데 너무 귀동딸로 온실의 꽃처럼 자라서 …》

《고생을 전혀 모르고 자랐으면 지금은 좀 고려하더라도 후에는 꼭 동지로 만듭시다.》

수옥은 시원시원하게 매듭을 지어 말하였다.

철림은 첫마디로 대번에 신경태를 짚었다. 그는 자기와 송아지친구로서 이날껏 생활의 계단을 어깨 겯고 함께 톺아오른데 대하여, 한무선의 운명직전에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옵던 이야기를 함께 들은, 자신처럼 믿는 동무라고 서슴없이 보증했다. 철림은 또한 뜻밖의 예상치 않던 충격을 받았던 하숙집 옆집주인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워낙 그는 나이도 철림이보다 십년나마 우인데 노상 뚝해서 곁을 주지 않아 대하기가 매우 어려웠었다. 향숙을 연줄로 하여 그의 어머니와도 친숙해지고 이따금 축음기 들으러 가군 하여도 단지쓴지 표정으로나 말로 하등의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밤 향숙이 가져간 고리끼의 《어머니》를 핑게삼아 들고 철림의 방에 불쑥 나타났다. 철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색했다.

그는(김길수) 철림에게 량해를 구하고 가치담배를 꺼내여 피우면서 지나가는 말로 하숙형편이며 두루 묻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군처럼 한때 이런 하숙생활을 했었네. 그때는 하숙방만 얻어가지고 자취생활을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하숙생활이란 고달픈거지. 나는 나이 스물이 지나서야 시흥농업학교에 들어갔는데 참. …》

철림은 그가 무슨 심중한 이야기를 하려는것 같아 마음을 조이며 다우쳐 물었다.

《그래 어찌 되였습니까?》

《글쎄 2학년때 〈적색독서회〉사건으루 출학을 당하구말았다네.》 철림은 그의 입에 난데없이 《적색독서회》라는 말이 튀여나오자 신경이 예민해졌다. 무슨 뜻으로 낯선 내앞에서 이렇듯 어마어마한 말을 꺼리낌없이 꺼내는것일가?

철림은 정신을 바싹 가다듬었다.

《그때 우리 〈적색독서회〉회원들은 낮에는 공부하구 밤이면 주변마을에 나가 군중계몽사업도 하구 삐라를 찍어 살포하군 했었는데… 글쎄 한번은 삐라를 뿌리고 새벽 3시쯤 되여 돌아오다가 길목에 매복한 경찰놈들한테 몽땅 붙잡혔댔지. 후에 알아보니 한학급생인 지주의 아들놈새끼가 미리 밀고했더군.》

철림은 그가 너무도 태연하게 그런 말을 드러내놓고 하는것이 이상스러워 뜨직하게 물어보았다.

《향숙이 아버지, 그런 말을 내앞에서 막 해두 일없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예상외로 껄껄 웃으며 대꾸하였다.

《그까짓거, 〈적색독서회〉사건으루 출학당한거야 세상이 다 아는거구. … 난 하나 두려울게 없네. 그건 그거구 또 나로서두 사람을 보는 눈이 다 있네.》

길수는 본시 자기는 웬간해서 사람들을 가까이 안하는 성미인데 철림이가 향숙을 친동생과 다름없이 사랑해주는것을 보고 살펴보기 시작하였다고 했다. 그는 겉보기에는 그렇게도 뚝하고 랭담해보였으나 어떻게 알아내였는지 철림이 《고향의 봄》을 부르다가 당한 봉변이며 누구나가 질겁하는 《박부르도그》를 까눕힌 사실까지도 다 알고있었다.

철림은 내심으로 놀랐다. 보아하니 그 역시 믿음이 가는 사람앞에서는 자기를 숨김없이 터놓는 대짜배기였다.

《내 아직 젊은 나이에 경망스럽게 하는 말같이 들릴지 모르겠네만 지내보면 사람들속에는 10년을 함께 지내면서도 모를 속내가 컴컴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짧게 지내보고도 벗이 돼보고싶은 사람두 있다구 보네. 나는 요즘에야 속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내비치는 군을 유심히 지켜보았네. 마음속이 샘같이 맑아야 그럴수 있다구 생각하네.》 하고 길수는 말했다.

철림은 이어 철도기관구에 다니는 자기 하숙집 아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전춘일동무는 나보다 한살 아래인데두 깍듯이 형님으로 부르며 따르는데 덩지는 작아도 늘 자기한테 아무 짐이라도 지워만 주시오, 그러면 냅다 달리겠다는 자셉니다.》

수옥은 기쁜 마음으로 철림의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에만 접근하면 무슨 일이든 순조롭게 풀려나갈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절감하였다. 수옥은 믿음을 먼저 주어야 믿음을 살수 있고 마음을 먼저 열어야 마음을 받아들일수 있다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후덥게 새겨두게 되였다.

《그사이에 동무들의 소득이 정말 큽니다. 앞으로두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 대렬을 계속 늘여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항상 높은 경각성을 가지고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는 핵심대렬에 불순분자들이 끼여들지 못하게 하는것입니다. 그리구 일제놈들의 기를 꺾고 인민들에게 희망을 주려면 선전공작을 널리 벌려야 하겠는데 그중 급선무가 등사기를 구하는것입니다. 이 일은 조금만 실수해두 엄중한 후과를 가져올수 있는것만큼 방도를 깊이 연구해야 할것 같습니다.》

수옥은 품에 넣고 온 문건들을 꺼내놓았다.

《오늘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나눠주겠으니 동무들부터 우선 보고 선발한 동무들한테두 나누어주세요.》

철림이와 은해는 저마끔 나꿔채듯 하여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읽어보았다.

감격과 기쁨으로 한껏 상기된 그들의 얼굴을 지켜보던 수옥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10대강령에는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방향과 구체적인 실행방도들이 명백하게 밝혀져있어요. 우리는 이 강령을 받들고 먼저 혜신지구에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을 꾸리고 그를 계속 확대해서 혜신읍과 주변농촌부락들을 하루빨리 혁명화해나가야 합니다.》

수옥의 말을 마디마디 마음속에 새긴 철림은 빙그레 웃으며 어줍게 말했다.

《저… 전번엔 말씀 못 드렸는데 오늘은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던 이야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언니, 정말 사람들속에서 귀동냥으로나 듣던 전설같은 이야기를 직접 보고 겪은대로 말씀해주세요!》 하고 은해도 말꼬리를 달았다. 그에서 용기를 얻은 철림은 《지금 항간에서는 만주땅도 단숨에 삼키구 세계제패를 꿈꾸는 그 강대한 왜놈들을 쥐락펴락하는것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승천입지와 천지조화를 임의로 하시기때문이라고들 한답니다.》

철림은 제편에서 성수가 나 말했다.

그의 말을 저으기 감심한 표정으로 듣고있던 수옥은 대천강너머 산마루에 비끼는 자주빛노을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을 꺼내였다.

《그것은 우리 장군님께서 인민을 하늘처럼 믿으시고 언제나 인민에게 의거하시기때문에 걸음마다 련속 승리를 거두시는거랍니다.》

그는 말을 끊고 또다시 절절한 눈빛으로 먼 산발을 바라보며 말을 다시 이었다.

《장군님께서는 대원들에게 늘 적들의 병력이 아무리 우세해도 우리의 정신력이 강하고 전술이 우세하면 반드시 이기는 싸움만 할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정신우세와 전술적우세면 반드시 이긴다!》

철림은 벌써부터 흥분을 다잡지 못해 이렇게 되뇌였다.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그 정신력과 전술적우세로 주도권을 쥐시구 전투를 조직지휘하신답니다. 적을 한번 친 다음에는 미처 정신을 차릴새없이 련거퍼 족쳐대니 적들은 어느 전투에서나 혼비백산하여 갈팡질팡하다가 무리죽음만 당하구만답니다.》

철림은 너무나 통쾌하여 주먹으로 무릎을 철썩 치기까지 했다.

《글쎄 적들이 오죽 혼맹이가 빠졌으면 장군님의 전법의 하나인 매복전을 두고 〈라와전법〉이라며 벌벌 떨겠어요.》

《라와전법?》

은해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 말은 놈들이 이 세상의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빠질 곳이 없는 포위망함정이라고 넋이 빠져 줴치는 말이예요.》

《야, 그런 통쾌한 전장에 한번 가보기라도 했으면…》

철림은 무척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수옥은 잠간 말을 멈추고 자기의 말을 한마디도 놓칠세라 명심해듣는 오누이같은 그들을 정겹게 바라보며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라자구전투후에 있은 일이예요. 장군님께서 반일부대와의 련합작전을 벌리신 라자구전투는 옹근 사흘이나 걸린 큰 전투였지요. 놈들은 거기에 토성두 쌓구, 물도랑도 파놓구, 온통 철조망두 두르고 또 서산포대며 시설물마다 박격포를 비롯한 각종 화력기재를 집결시키고 나중엔 비행기로 폭탄까지 날라다 떨구며 발광했지만 장군님의 기묘한 전법에 의해 결국 녹아나구말았답니다. 바로 그 전투가 있은 얼마후였답니다. 보름달이 환한 우등불가에서 우리가 만경대에 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리운 고향생각에 잠겨있을 때 한 신입대원이 장군님께 불쑥 이런 말씀을 올렸답니다. 〈장군님, 우리의 라자구진공을 막으려고 삼도하자에 기여드는 적들을 벌판으로 유인할 때 뺑소니치는 놈들을 몽땅 요정 못 낸게 지금도 막 분합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 자리에서 즉시 몽땅 쏴갈겼더라면 속시원했겠다 그거겠소?〉 라고 하시면서 그 대원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우리는 아무리 정황이 긴급하고 아무리 조건이 불리하더라도 인민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절대로 전투를 벌려서는 안되오. 우리 인민들이 티끌만 한 피해라도 입게 해서는 절대로 안된단 말이요. 혁명도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거요. 우리는 항상 인민을 하늘처럼 여겨야 하며 인민에 의거해서 혁명을 해야 하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때 장군님의 그 고귀한 말씀을 들으며 뜨거운 눈물을 삼켰어요.》

《수옥동지, 참으로 오늘 많은걸 배웠습니다. 이제부턴 만날적마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십시오.》

《그렇게 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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