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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설향은 몸살을 앓아 며칠동안 등교하지 못했다.

원래 든든한 체질이였으나 가끔 잔병으로 앓아눕군 하는 그였다. 이번에도 곡예단구경을 갔다가 너무나 끔찍한 놀라움을 당한것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찬비에 함빡 물참봉이 되였던것때문인지 그밤부터 몸살이 나기 시작한것이였다.

그날 저녁 설향은 경태와 같이 혜신역앞의 넓은 공지에 풍막을 높이 둘러친 가설극장으로 갔었다.

군에 큰 극장이 없어 곡예단이 올적마다 풍막을 고깔모양으로 둘러친 가설무대에서 공연하군 했다. 그런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비가 억수로 퍼부어 풍막안까지 비물이 줄줄 새들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풍막이 터지게 꽉 들어찼다. 그들은 관객들을 비집고 맨 앞줄에 나가 마른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곡예종목이 끝날적마다 관객들은 와와 소리를 지르며 짜그르르 박수를 치군 했다. 그런데 한 곡예사가 양산우에 공을 튕겨올리면서 바줄을 타고 재주껏 오르는 종목과 사다리에 두다리를 엇걸고 지그자그행으로 휘도는 종목이 방금 끝난 직후였다.

해사하게 생긴 애어린 처녀곡예사가 아찔한 장대끝에 발목을 비끄러걸고 팽이처럼 돌며 빙글빙글 선회하는 종목이 시작되였다.

그 아짜아짜한 순간마다 마른 솔가지에 불달리듯 짜그르르 박수소리가 터지는 속에 설향은 손을 모두어잡고 아슬아슬한 장면을 쳐다보았다.

바로 그 순간 《으악!》하는 관객들의 비명소리가 터짐과 동시에 그 애어린 처녀곡예사가 《철썩!》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관객들은 와-악 일어났다.

막뒤에서도 곡예사들이 왁 달려나왔다. 풍막안은 삽시에 수라장이 되였다. 설향은 속이 화들화들 떨리였다. 쭉 뻗은 곡예사의 팔다리가 파들파들 떨리는것이 얼핏 눈에 뜨이자 설향은 눈앞이 아뜩해져 경태더러 빨리 자리를 뜨자고 재촉했다.

설향이 후들후들 떨리는 몸으로 밖에 나서자 폭우가 쏟아졌다. 그는 우산을 썼으나 잠간사이에 아래도리는 비물에 푹 젖고 길바닥으로는 비물이 강물처럼 넘쳐흘렀다. 경태는 한팔로 잔뜩 겁에 질려 와들와들 떨기만 하는 설향의 등을 느슨하게 안고 《허, 그것 참…》 소리를 거듭 웅얼거리며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밤부터 설향은 잔등에 얼음물 끼얹듯 오슬오슬 떨리며 팔다리가 쑤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지극한 간호로 열도 내리고 아픔도 좀 즘즘해지자 또다시 애어린 곡예사의 해사한 얼굴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군 했다. 그 곡예사가 불쌍하기 이를데 없었다. 고아일가? 부모가 있을가? 문득 곡예사들은 대체로 고아들이라던 말이 상기되였다.

헐값에 팔리여 흥행업자의 돈주머니만 불구어주다가 시신이 돼서도 안아줄 품, 울어줄 사람도 없는 그 가엾은 처녀의 처지가 이를데없이 눈물겨웠다.

설향은 여태 구경을 다니던중 그날은 전에없이 별스러운 날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날 구경표 두장을 사가지고 온 경태의 얼굴이 어덴가 침울해보였다. 늘 활기에 넘치던 그의 얼굴에 그늘이 비끼기는 처음이였다.

《오빠, 무슨 일 있었나요?》

경태는 코웃음을 치며 례사롭게 빈정거렸다.

《흥, 오늘 기분 나쁘게 이 두손으루 땅딸보 오꾸마한테 사죄문을 바쳤지요. …》

설향은 뜨아해서 다우쳐물었다.

《사죄문이라니요? 무슨 일로…》

《아, 글쎄 레코드에 노래 한곡 취입한것때문이지.》

《아니, 그게 왜 잘못이나요?》

《그 뭐 향수를 읊조린것두 배일사상고취라나. 내 입이 써서…》

설향은 단박에 깨도가 된듯 잘라말했다.

《너무 속쓰지 마세요.》

경태는 아무렇지도 않는듯 대수롭지 않은 티를 내였으나 어딘가 모르게 그에게선 쓸쓸한 기분이 감촉되였다. 그래서인지 설향도 썰렁한 기분으로 관람하다가 그런 참사를 목격하게 된것이였다.

…비가 멎은 대천강동뚝길로 설향은 경태와 나란히 산보를 하고있었다. 비에 함빡 젖은 대안의 산발과 들은 수묵화처럼 시커멓고 온 하늘에 널린 누덕구름장들이 오락가락하는 을씨년스러운 저녁녘이였으나 설향의 마음은 그저 즐겁기만 했다. 그렇듯 름름한 경태와 나란히 남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며 거닐 때가 그에게는 더없이 행복하였다. 그런데 돌연 거대한 채찍으로 허공을 베는듯 한 소리와 동시에 돌개바람이 일더니 맹수같이 울부짖으며 허공중에 시커먼 흙먼지기둥을 말아올렸다.

그 찰나에 경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설향은 마치도 그 누가 허궁 던져버리기라도 한듯 온통 헐벗은 무시무시한 숲속의 엉성한 등성이에 오똑하게 서있었다. 사위는 물속같이 고요하고 적막했다.

문득 꼭뒤우에서 꽈리를 부는듯 한 소리가 무시무시한 고요를 스산하게 건드리였다. 겁먹은 눈을 간신히 들어 쳐다보니 사슴뿔같은 죽은 나무가지우에 털이 까시시한 까마귀 한마리가 죽은듯이 앉아서 목구멍으로 내는 소리였다.

설향은 지금 자기가 어데 와있고 또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향방을 알수 없었다. 금시 그 어떤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움켜쥐울것 같은 공포심에 질려 《으악!》 소리를 내질렀다. 그것은 꿈이였다.

그 스산한 꿈은 잊으려 할수록 더 자주 상기되였다. 흡사 그 꿈은 자기가 겪게 될 운명의 그 어떤 흉한 전도와 같이 느껴져 설향의 마음은 더욱 산란해지였다.

설향이 몸져누운지 사흘째 되는 날 경태가 사과구럭을 들고 문병을 왔다. 그는 향긋한 사과구럭을 설향의 머리맡에 놓고는 이마도 맥도 짚어보았다. 설향은 부끄러워 핼쓱해진 얼굴을 살짝 붉히였다.

《그래 좀 어떻소?》

《이젠 한결 나아졌어요. 그런데 어떻게 알구…》

《어제 거리에서 어머니를 만났댔어. 설향이, 제발 앓지 말어. 설향이 앓으면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

경태는 저으기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어떻더나요?》

설향은 눈가에 능청스러운 미소를 담으며 롱조로 물었다.

《그저 앉으나서나 불안하구 공부두 귀에 안 들어오구. …》

경태는 여느때와 같이 진실인지 롱인지 분간이 안가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는 설향의 눈을 생전 처음 보듯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지으며 설향의 손을 다정히 잡고 열에 떠 말하였다.

《비록 우연이긴 했지만 설향이와 오누이된건 정말 행운이라구 생각해. 》

《호호, 오빠두. 뭘 그리 … 새삼스럽게 …》

《아니야, 진정이야. 만일 내 맘속에 설향이라는 꽃같은 녀동생이 없었더라면 달빛없는 그믐밤같았을거야.》

《거짓부리.》

설향은 어리광부리듯 말했다. 그는 경태의 손에 손목을 느슨히 잡힌채 그의 달디단 말을 듣는게 싫지 않았다. 그는 장차 리상적인 배우자로 심중에 자리잡고있는 경태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될 꿈같은 그날을 남몰래 그려보기도 했었다.

경태는 설향의 손목을 놓고 일어나서 제풀에 흥이 돋치여 엮어대였다.

《이제 말야, 학교나 졸업한 다음 내가 어찌어찌되면 설향을 고대광실에 턱 앉혀놓고 이 세상 만복을 다 누리게 할 잡도리야.》

《피- 너무 흰소리치지 마세요.》

《진짜야. 설향은 아직 이 헌헌한 남아다운 경태의 속만은 다 몰라.》

설향은 방긋이 웃음을 지었다.

다음날 자리에서 일어난 설향은 문득 오늘 은해와 같이 혜신도서관에 가자고 약속한 일이 떠올랐다. 그는 서둘러 등교하였다.

그날 오후 은해와 설향은 대천강다리를 건너 가로수그늘이 짙은 거리를 걷고있었다. 그들은 요즘 어디 가나 떠도는 처녀곡예사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가슴아프게 주고받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였다.

그런데 저만치 앞에서 한 소녀가 배부른 배낭을 지고 자박자박 걸어가고있었다. 그 소녀는 사방을 도릿거리며 걷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섰다.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두 녀학생의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노란빛 호박단저고리에 짧은 깜장치마를 받쳐입고 깜장운동화를 신은 소녀는 어느 언니한테 물어볼가 가늠해보는듯 하더니 《저… 혜신남자고보에 가자면 어데루 가야 합니까?》 하고 애된 목소리로 물었다.

설향은 입가에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너 혜신에 처음 오는거구나.》

《네. 난 남석면에서 와요.》

《그래. 》

설향은 어떻게 대주는게 좋을가 하여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은해는 남석면은 무선오빠가 교편을 잡고있던 곳이여서 문득 짚이는것이 있어 《얘, 고보에 누가 다니지?》 하고 물었다.

미옥은 은해의 얼굴을 할깃 쳐다보았다.

《오빠가!》

《오빠의 이름은 뭐지?》

《최철림이야요.》

《최철림?》

그들은 동시에 되뇌였다.

은해는 그러고보니 눈매며 꼭 다문 입모양이며가 철림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데서 왔구나. 그럼 우리 함께 가자. 데려다줄게.》

《고마와요. 언니들은 정말 좋은분들 같애요.》

《호호, 너 정말 귀엽구나. 이름은 뭐나요?》

《미옥이야요. 》

《이름두 네 얼굴처럼 곱구나.》

《호호… 언니는 요전번 언니와 똑같은 말 하시네.》

《요전번 언니?》 하고 은해는 마음속에 짚이는데가 있어 반문했다.

《예, 그 언닌 언니들보다 좀 나이든 정말 좋은 언니였어요.》

순간 은해는 옳았댔구나, 수옥언니였구나 하고 속으로 짐작하였다.

설향은 미옥이와 말을 나누는것이 무척 즐거웠다.

《집에는 누구누구 계시지?》

《엄마하구 외할아버지…》

《아버지는?》

설향은 얼결에 이렇게 물은것을 곧 후회하였다. 그는 경태한테서 철림의 아버지가 사망하였다는 말을 들은 일이 피뜩 상기된것이였다.

《아버지는 사망했어요. 그래서 지난 방학에 엄마하구 오빠가 목재소에 갔댔어요.》

은해는 그렇듯 큰 슬픔을 당하고도 여직껏 입밖에 내지 않는 철림의 얼굴이 떠올라 부지중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그 어떤 물음이나 거침없이 당돌하게 대답하는 미옥이가 여간만 령리해보이지 않았다.

《미옥아, 앞머리허물은 언제 생긴거니?》

《그게 알리나요?》

《응. 》

《그건 지주 정가놈의 개화장에 맞은 흠이야요.》

미옥은 말을 자꾸 시키는 설향을 힐끔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언니, 심보 고약한 놈은 꼭 벌을 받는가봐요.》

《그건 뭘 보구서?》

《그놈의 집이 전달에 몽땅 불타버렸거던요.》

《그래, 어떻게 돼서?》

은해는 호기심이 부쩍 동하여 물었다.

《천장사까지 하는 그놈의 집이 철길옆인데 글쎄 기차에서 날린 불찌가 떨어져 몽땅 태웠지요. 그놈이 어찌나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던지 마을어른들은 불붙는걸 깨고소해하며 구경만 했어요. 그놈의 집재산이 재더미되는건 속시원했지만 외양간의 윤두소가 타죽은건 정말 아까와요.》

《그놈의 윤두손데 뭐가 아까워.》 하고 설향은 짐짓 그를 나무랐다.

《안예요, 그 소는 내 동무 분절이네가 암송아지때 가져다 길러서 새끼를 내면 그 송아지를 가지게 된 윤두소였어요. 근데 정말 그 소가 엄지돼서 송아지를 낳지 않았겠나요.》

은해와 설향은 그가 재미나게 하는 이야기를 귀가 솔깃해서 들었다.

《근데 글쎄 그 정가놈은 윤두소하고 분절이네가 키우던 송아지마저 날치기로 빼앗아갔지요 뭐. 분절이네가 울구불구하는데두… 정말 정가놈같은 날도적놈이 어디 있겠어요. 개승냥이같은 놈. …》

미옥을 만나자바람 마음이 끌린 설향은 언제인가 경태가 철림의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이라고 하던 말의 뜻이 리해되였다. 그는 미옥의 머리를 정겹게 쓸어주며 또 말을 걸었다.

《넌 정말 재미있는 애로구나. 너 지금 학교에는 다니니?》

《다녀요. 겨우 사립학교 4학년생이예요. 난 언니들이 막 부러워요. 나두 고녀생이 될수 있을가요?》

《그래. 너같이 똑똑한 애들은 얼마든지 되구말구.》

미옥은 조그만 두손을 모두어 가슴에 대며 활기에 넘쳐 말했다.

《그래요! 우리 할아버지는 뭐라시는지 알아요? 사람은 머리에 든게 있어야 하느니라. 그래야 옳고 그른것두 쉬이 갈라보구 세상물정에두 밝아지구 세상의 속내두 알게 되는거란다. 어디에 가서들랑 입건사를 잘해야 한다. 생각보다 말이 앞서지 말아야 한다. … 그저 이런 훈계지요.》

그들은 미옥이가 할아버지의 입내를 내여 어른스럽게 말하는것이 너무도 우스워 배를 그러쥐고 웃어댔다.

설향은 자기 마음을 말끔히 정화시켜주는듯 한 미옥에게 줄곧 말을 걸었다.

《미옥아, 외할아버진 당수도 잘하신다는데 요즘은 뭘하시니?》

미옥은 놀랍게 설향을 쳐다보았다.

《언니, 그걸 어떻게 아시나요? 음, 오빠한테 들었나요?》

《그래서 녀고생들이지.》

《호호, 요즘 할아버진 부대밭초막에 아주 나가사세요.》

《그건 왜?》

《메돼지가 자꾸 감자밭을 뚜지거던요.》

《그럼 식사랑 네가 내내 가져다드리니?》

《호호, 이 언닌 시골생활을 영 모르시네. 식사야 돌찜한 감자를 잡수면 될거구, 밭머리에 파밭도 있구 숲속에 샘물도 있으니 된장단지만 갖구 가시면 되거던요.》

미옥은 당돌하기도 하거니와 아는것도 많고 생활물계에도 어른 찜쪄먹게 밝았다.

은해는 문득 철림의 어린애같은 천진성과 소탈함도 이렇듯 아름다운 가정에 뿌리를 둔것이라고 생각되였다.

한편 미옥이와 함께 걸으며 매양 감미로움에 취해있던 설향은 자기한테도 미옥이같은 동생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감질나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그들은 미옥의 엉뚱하고 흥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덧 남고보정문에 이르렀다.

은해는 손수건으로 미옥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좁쌀알같은 땀을 닦아주며 물었다.

《미옥아, 이건 뭐게 배낭에 뽈록뽈록하게 지고 다니니?》

《돌배예요. 오빠 좋아하는 돌배. 이건 내가 마련한거예요. 그래서 내가 엄마대신 학비랑 하숙비랑 물러 오는 길에 지고왔지요 뭐.》

이때 마지막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렸다. 좀 지나서 교사 좌우측출입구로 학생들이 밀려나왔다. 차츰 성글어지는 학생들속에서 어느새 철림을 알아보았는지 미옥은 조그마한 배낭을 진채로 《오빠!》하고 총알같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철림은 미옥의 배낭을 한쪽어깨에 걸치고 은해와 설향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그들은 동시에 례의를 표했다.

《정말 수고들 했습니다. 우정 이렇게…》

철림이 우선우선하게 사의를 표하자 은해는 《아니예요. 도서관에 가던 길에… 그럼 우린 먼저…》 하고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하였다.

《언니들, 안녕히 가세요.》

미옥은 인사하며 손을 까댁거리였다.

미옥은 하숙방에 이르기 바쁘게 뒤마당에 나가 뽐프물에 오빠의 빨래를 하느라고 바지런히 서둘러댔다. 그만두라고 거퍼 말리는데도 벗어놓은 내의랑 모조리 빨아서 빨래줄에 널고서야 손을 닦으며 방에 들어왔다.

그는 오빠앞에 돌배를 꺼내놓으며 말했다.

《오빠, 송수옥이라는 언니가 집에 왔댔어요. 정말 인정많구 잘생긴 언니였어요. 엄마도 그 언니가 첫눈에 마음들어 온밤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엄마는 그 언니한테 오빠이야기두 다 했다.》

철림은 미옥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후더워졌다.

그간의 집안소식을 빠짐없이 《보고》하느라고 연해 재잘거리던 미옥은 피곤이 몰렸는지 어느새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철림은 베개를 바로 베워주고 볼수록 그지없이 귀여운 동생의 얼굴을 정이 철철 흐르는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미옥은 아직 애티를 벗지 못했으나 속깊은 말, 엉뚱한 말들을 곧잘하였다. 또 의사표현도 얼마나 어른스러운지 사뭇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도 종종 《조막만큼 해두 속에는 령감 몇이 들어앉아있느니라.》 하고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철림은 오래간만에 미옥의 곁에 누우니 잠이 다 달아나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미옥의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그는 마치도 어머니가 부엌에서 김치소감 무우를 채치는 아늑한 소음과 향긋한 양념내풍기는 뜨뜻한 구들에 누워있을 때처럼 마음이 감미로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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