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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옥은 혜신읍 교외의 위현동 물레방아간집에 자리를 잡았다.

수옥은 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국경연안으로 행군하던중 1936년 8월 24일 만강에 이르러 3일동안 머물러있을 때 장군님께서 친히 주신 국내정치공작임무를 무시로 마음속에 곱새겨보군 하였다.

《…송수옥동무, 지금 조국광복회가 지난 5월 5일에 창립된 후 불과 몇달사이에 동북지방의 조선인거주지역은 물론 국내도처에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이 계속 나오고있소. 우리가 공장, 광산, 철도, 각종 학교를 비롯한 도시와 농촌의 모든 곳에 즉시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을 결성하여야 각계층의 광범한 인민들이 일치단결되여 반일투쟁에 떨쳐나설수 있고 우리의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하기 위한 토대를 튼튼히 닦을수 있소. 물론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망을 늘이는것은 매우 어려운 임무요. 하지만 항상 인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에게 믿음을 주면 모든 문제가 풀릴수 있소. …》

물레방아간집주인 문성근은 수옥이와 인민혁명군 녀성중대에 함께 있던 경숙의 큰아버지였다. 오십줄을 갓 넘어선 성근은 십년전에 룡정에 들어간 동생네 소식을 감감 모르다가 송수옥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자 여간만 기뻐하지 않았다. 더구나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달랑달랑 떠나던 경숙이가 이제는 당당한 인민혁명군대원이 되였다니 참말로 꿈만 같은 일이였다. 성근은 마치 친조카나 만난듯 반가와 어쩔줄을 몰라했다.

눈섭이 류달리 짙고 웅근 목소리로 하루에 두세마디 말밖에 안하는 성근은 성미가 온후하고 어떤 일에서나 서두르는 일없이 무척 진중하였다.

물레방아간은 골개로 흐르는 오시천이 대천강과 합류되는 합수목어구에 터를 잡은데다 달구지길목이여서 읍에서도 낟알을 찧으려고 오는것이였다. 주로는 주변농촌들에서 이고지거나 소달구지에 낟알자루를 모아싣고와서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끊기지 않았다.

방아간에서는 오시천물목을 사선되게 막고 긴 도랑으로 끌어들인 흐름이 세찬 물로 물레를 돌리였다. 해종일 토목치마저고리에 허름한 초신을 끌며 흰 머리수건우에 먼지를 뽀얗게 얹고 세개의 방아확을 채바퀴돌듯 하는 송수옥을 감히 유격대정치공작원으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번은 위현동지구에 청결검사로 가끔 나오군 하는 혜신경찰서 조선인 허순사가 방아간에 피뜩 들렸다가 수옥을 열심히 뜯어보며 물었다.

《저 낯선 녀자는 누군가?》

성근은 짐짓 매우 딱한 표정을 지으며 아주 태연스럽게 말했다.

《걔가 성진서 살다 온 내 외사촌딸인데 글쎄 하늘두 무심하지. 옘병으로 하루아침에 량친을 다 잃구 나한테 얹혀살려구 동냥질을 하면서 예까지 찾아오질 않았겠수.》

《음, 그랬댔군. 일손두 저렇게 걸싸니 문형두 좀 허리를 펴게 됐수다. 》

수옥은 께끼대질, 키질, 풍구질 그 어느 일이나 손에 잡히는대로 손싸게 하였다. 그의 막히는데 없는 일솜씨는 허순사의 눈을 쉽사리 얼려넘길수 있었다. 더우기 수옥의 마음에 드는것은 물방아간주변의 자연배경이였다. 마을언저리로 흐르는 오시천과 대천강기슭으로부터 밋밋한 경사면을 이루며 솟은 산에 수풀이 우거지고 대천강상류를 따라 얼마쯤 올라가면 아찔한 벼랑밑굽이에 깊은 소가 있었다. 이 조화로운 자연풍경은 남들의 눈을 피하기에도 좋고 긴급피신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였다.

어느날 성근이와 수옥은 주위의 동향에 대하여 서로 주고받는 과정에 불쑥 한무선에 대한 소문이 화제에 올랐다.

《요새 항간에 한무선선생이 희생된 소문이 짜하게 퍼졌다우.》

《한무선선생이요?》

수옥은 어디선가 듣던 이름같기도 하고 어쩐지 생소한 이름같지 않아 조용히 반문했다.

《원래 사람이 인물이 훤칠하구 실력이 남달라 대성사립에서 교편을 잡고있을 때부터 학부형들의 존경을 받았다우. 내 어제 그 선생의 삼촌되는 북일사진관주인을 길에서 만났댔는데 너무 절통해서 가슴을 막 쥐여뜯더군. 그 악귀같은 놈들이 조카의 열손발톱을 모조리 뽑고 온몸을 망그려뜨려서 종시 잘못되게 만들었다지 않소.》

수옥은 어느 소학교교원이 탄로나 장백현경찰서에 감금되였다가 어느 형무소에 이송되였다는 소문을 들은적이 있었다. 혹시 그 교원이 한무선이 아니였을가?

《나두 남석면 태생이다보니 그 집 래력은 좀 알구있수다. 할아버지는 서당훈장이였는데 나두 거기서 글을 좀 배웠지요. 그런데 맏아들내외가 무슨 전염병에 걸려 덜컥 죽자 그 선생을 둘째인 북일사진관집에 맡겼다우. 그런데 그 지경 됐으니 …》

한무선의 처참한 최후와 래력을 가슴아프게 듣고있던 수옥은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그런 불행을 당했으니 가족들이야 얼마나 원통하겠나요.》

《그 사진관집에는 은해라는 딸이 있는데 속에 든걸루치면 무선선생에 짝지지 않는 처녀라우. 그 애는 곱기두 하지만 녀고생티 하나없이 수옥이처럼 집안거두매를 손싸게 한다우.》

성근은 수옥이가 생소한 이 고장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싶어하는 눈치를 채고 방아를 세우는 밤이면 그가 굳이 묻지를 않아도 일부러 제가 먼저 이야기를 펼치군 했다. 그는 곳곳에서 낟알 찧으러 오는 사람들과 내내 접촉하는 까닭인지 어지간한 사람들의 집안래력을 손금보듯 꿰들고있었다. 그리하여 수옥은 집안에서도 남들의 래력을 차츰 파악할수 있었다.

《한번은 은해가 땀을 빨빨 흘리며 낟알자루를 머리에 이고 왔길래 〈얘, 은해야. 가까운 정미소를 두구 왜서 고생스레 먼 걸음을 하느냐?〉 하고 물었더니 〈아버님, 어쩐지 멀어도 와보고싶구 마음 편해서요.〉 하질 않겠소. 일손두 또 얼마나 잽싸겠소. 집안에서두 아마 호사만 시키지 않으려구 애초 신발을 단단히 신긴 모양이야. 어릴적부터 오빠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을터이니 그 오라비에 그 동생이 아닐가 하는 생각두 드네.》

이름도 서정미가 풍기는 은해에 대한 이야기는 웬일인지 수옥의 마음속에 감미롭게 스며들었다.

고향에 두고온 그리운 동생에 대한 생각이 불쑥 치밑어오른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는 은해를 하루빨리 만나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만나서 동생처럼 정을 주며 사귀고싶었다. 그는 은해가 자기 사업의 귀중한 실마리로 될것만 같았다.


수옥은 이리로 오던 길에 먼저 남천토장마을에 사는 6촌언니의 집에 당분간 머물면서 계절로력으로 품을 팔며 지하공작을 적극 벌렸었다.

토장마을사람들은 그가 첫날부터 베적삼차림으로 토목치마자락을 허리춤에 걷어올려 바오래기로 질끈 동이고 떼타리개감인 참나무, 자작나무, 느릅나무를 베여 그 짐을 산더미처럼 머리에 이고 씨엉씨엉 산길을 타는거며 타리개를 손싸게 비틀어 남의 곱절로 만드는것을 보고 너무나 놀라와 혀를 내둘렀다. 그의 삽삽한 성미와 걸싼 일솜씨에 대뜸 반해버린 그들은 수옥이와 친동기처럼 인츰 친숙해지였다. 그는 틈을 타서 같이 일하는 녀인들과 떼군들, 떼무이공들에게 혁명가요도 배워주고 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도 들려주면서 핵심들을 료해선발하여 곧 남천반일친목회를 조직했었다.

그러나 여기 혜신지구는 남천과 형편이 근본 달랐다. 혜신은 왜놈들의 중요통치거점의 하나였고 무수한 농촌부락들, 목재소들과도 린접해있었으며 아마공장, 제재공장, 여러 회사들 특히는 남고보와 녀고보가 있었다. 그에게는 이와 같은 환경에서 그 누구보다도 시세에 민감하고 정의감이 강한 학생청년들부터 조직에 결속하여 그들을 선구자로 내세우는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생각됐다.

장군님께서는 이미전에 학생청년들은 반일사상이 강하고 민족적각성이 높으므로 그들을 교양하고 조직적으로 단련하면 광범한 로동자, 농민들을 계몽각성시켜 혁명투쟁에서 선도자적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게 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수옥은 은해라는 희망의 싹을 찾게 되자 무등 기뻤다.

본시 성미가 사근사근하고 인정이 많은 수옥은 낟알 찧으러 오는 녀인들과 벌써 친숙해져 그들로부터 《방아간아지미》 로 정겹게 불리웠다.

한편 성근은 수채나 물레바퀴살을 갈아댈 일감이 생기면 당장 급하지 않아도 수옥을 위해서 우정 도랑물을 뽑고 방아들을 세워두군 했다.

그럴 때면 수옥은 보따리장사군 행색을 하고 북일사진관과 혜신 남고보, 녀고보로 다니는 길을 걸어보면서 눈에 익혀두었다. 그는 일단 형사들과 밀정들의 살기찬 눈길이 미치는 신작로에 나서면 머뭇거림이 없이 발길이 익은 길처럼 태연자약하게 걸어갔다.

어느 일요일 늦은 아침때였다.

오늘은 반드시 은해를 만날 작정을 하고 북일사진관에서 장바 한길이쯤 떨어진 길모퉁이에 서있던 수옥은 삐꺽하고 부엌문이 열리는 소리에 힐끗 북일사진관쪽을 돌아보았다. 때마침 분명 은해라고 짐작되는 몸매가 날씬한 단발의 처녀가 빨래감이 잔뜩 담긴 두리함지를 똬리에 받쳐 머리에 이고 문턱을 넘어서는것이였다. 순간 집안에서 《은해야, 먼 강에 나가지 말구 뽐프물루 빨려마.》 하는 녀인의 목소리가 뒤따라 울려나왔다.

《됐대두요. 어머니, 인차 빨아가지구 와요.》

은해는 부엌문을 닫고 돌아서서 자박자박 걸음을 옮겼다.

한순간 수옥은 그에 대한 말을 들으며 머리속에 그려보던 형상과 실모습이 너무나도 방불한데 내심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은해를 저만치에서 바라보는 순간부터 별로 류다른 친근감을 느꼈다. 수옥은 그를 조용히 불러세우고싶었으나 금시초면이여서 조금 거리를 두고 은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큰길을 두개나 넘고 단층집들이 빼곡이 들어앉은 좁은 골목길을 한참동안이나 걸어서야 대천강뚝이 가로막히였다.

벌써 강변에는 녀인들이 하얗게 널리여 빨래질을 하고있었다. 강녘에는 빨래하기에 알맞춤한 둥글넙적한 돌들로 뒤덮여있었다.

은해는 이불안천인듯 한 넓고 긴 천부터 물에 잠그었다. 그런 다음 옷가지를 비롯한 자름자름한 빨래감들을 강물에 적시여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다. 은해가 한창 빨래질을 하고있는 반쯤 물에 잠기운 너럭돌에서 흰비누거품이 강물에 뽀얗게 흘러들었다.

은해가 놀라지 않게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밋밋한 강뚝을 미끄럼타듯 내린 수옥은 그의 가까이에 다가앉으며 말을 건넸다.

《수고해요. 빨래감이 꽤 많구만요.》

은해는 언니벌 돼보이는 젊은 녀인의 무척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마음이 짜릿해져 웃음을 머금고 할깃 쳐다보았다. 볕에 그을린 가무레해진 단아한 얼굴과 방그레 웃음어린 그윽한 눈매는 처음 보는데도 어디서 많이 보아오던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네-》

《한은해라고 부르지요?》

은해는 흠칫하며 빨래하던 손을 멈추고 반문하였다.

《거긴 누구신데 제 이름까지?…》

가까이에서 빨래방치질소리와 녀인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한무선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온 시내에 쫙 퍼졌는데 나라구 그분의 녀동생 이름을 모를수가 있겠나요.》

한순간 은해의 버들잎모양의 고운 눈에 맑은 물기가 핑 어리였다. 그는 빨래하던 손을 멈춘채 수옥을 미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수옥은 불현듯 은해의 아픈 가슴을 들추어놓은것 같아 저으기 미안스럽고 마음이 쓰리였다.

《내 이름은 송수옥이라고 불러요. 지금 위현동물레방아간집에서 살아요.》 수옥이가 이렇게 서슴없이 자기 소개를 해서야 은해는 눈물을 거두고 새삼스럽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럼 문성근아버님의 친척이신가요?》

《네. 》

《아, 그러세요.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아시고 여기까지 따라나오셨나요?》

은해는 아무러한 꺼리낌도 없는 그에게 호기심이 부쩍 동하여 이렇게 따져물었다.

수옥은 그 말에는 응대없이 화제를 돌리였다.

《은해… 나는 아직 씨나 양이란 말에 습관되지 않아서 어떻게 불러야 할지. …》

은해는 자그만치도 티없어보이는 수옥에게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저 은해라구 불러줘요. 나도 언니라고 부르겠으니 말이예요.》

《그렇게 하자요. 은해,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오빠는 비록 우리곁을 떠나셨지만 얼마나 많은걸 남기였나요. 그래서 사람들이 오빠를 잊지 못해하는게 아니겠어요.》

수옥은 끝없는 호기심과 의혹을 품고 자기를 바라보는 은해의 눈길을 피하며 빨래감을 잡았다.

《언니, 손을 적시지 마세요. 빨래는 제가 해요.》

《괜찮아요. 함께 해보자요.》

수옥이와 은해는 빨래를 말끔히 한 후 꼭꼭 짜서 함지에 담았다. 다음 이불안은 강물에 들어서서 마주쥐고 비틀어짰다. 은해는 수옥의 날랜 일솜씨와 농군의 손같이 크고 억센 손으로 큰 이불안천을 잽싸게 비틀어짜는것을 보고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대하는 품이며 말하는 품이 범상치 않다는 직감이 들었댔는데 일하는 품 역시 아주 여무지고 능란하였다.

빨래함지를 풀판우에 놓고 그들은 강쪽을 향하여 가지런히 앉았다. 정작 가지런히 앉고보니 별로 더 서먹서먹해지고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수옥은 손우사람답게 먼저 입을 열었다.

《은해는 공부를 하면서도 이렇게 집안일을 도맡아하는가요?》

《어머니가 산후탈이 심해서 잘 움직이지 못하니 내 자연히…》

《그래두 그게 쉽나요. 요새 신식처녀들은 손끝에 물묻히기를 싫어들 하는것 같던데…》

《아니, 전 아직 마음뿐이지 일손은 설어요.》 하고 은해는 열적은 표정을 지었다.

《은해는 학교에 갔다와선 동자질만이 아니구 낟알 찧으려두 다닌다면서…》

은해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푸근하게 끌려드는 수옥을 정겹게 쳐다보며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호, 그걸 어떻게 아나요? 오라, 문아버님이 말씀한거군요. 근데 이상하지요. 언니는 오늘 처음 보는데두 왜 어디서 꼭 보던 얼굴같을가요?》

《그건 사람이 좋으면 그래보이는거예요, 호호호.》 하고 수옥이 좀 익살을 피우자 은해도 따라 웃었다.

《언니두 제 자랑을 다 하시네, 호호호.》

《호호호. 그만한 자랑두 못할가 뭐…》

수옥의 그 한마디 말이 은해의 마음을 일순 맑게 해주었다.

은해는 문아버님과 깊이 통하는것 같은 수옥이가 어쩐지 남같지 않고 또 당장 하늘이 무너진대도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을것 같은 도도한 인품에 막 안겨들고싶은 심정이였다.

《은해는 고녀를 졸업하면 무슨 일하려고 해요?》

《아직은… 꿈은 많은데 딱 무엇을 해야 할지 마음속으로 정하지 못하고있어요. 》

《나두 한때 공부를 좀 해보았지만 그 꿈이라는게 정말 귀중한것 같아요. 어떤 녀성들은 고보나 대학공부를 하는것두 신녀성의 체모나 갖추고 학식이 있는 멋쟁이 청년을 배우자로 만나서 리상적인 가정이나 꾸리는것을 희망으로 여기더군요. 그게 무슨 꿈이겠어요. 자기만을 위해 사는게 어떻게 사람답게 사는거겠어요. 제 나라 말두 못 번지고 제 나라 글도 마음놓고 써보지 못하면서 남의 정신을 따르는게 무슨 사람다운 생활이겠나요. 구차한 생이지.》

은해는 너무나도 평이한 말로 생활의 진리를 표현하는 수옥을 대단히 놀랍게 쳐다보았다.

《언니는 정말 누구나요?》

《나? 나야 빨래터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언니지.》 하고 수옥은 빙그레 웃었다.

은해는 그가 한낱 범상한 녀인같지 않았다. 한점의 구김없는 세련된 거동이며 대번에 마음을 그러잡는 포옹력있는 어조가 다 간단치 않은 인물로 은해의 마음에 육박해왔다. 그러나 그가 자기를 자꾸 감추려는게 싫었다. 어찌하여 내가 진짜 누구다 하고 툭 터놓지 못할가? 아직은 내가 미덥지 못해서일가?

《은해, 이제 차차로 알게 되지. 그리구 나하구 마음을 나누고싶은 생각이 있으면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 물레방아간집에 찾아와요.》 수옥은 은해가 어리뻥하여 서있는 사이에 머리에 똬리를 얹고 제꺽 빨래함지를 이였다.

은해는 펄쩍 뛰며 함지를 도로 제가 이려고 했으나 수옥은 벌써 강뚝에 올라섰다. 은해는 수옥의 자그마한 보퉁이를 들고 뒤를 따랐다.

《언니, 관둬요. 내가 이고가요.》

수옥은 두말할 사이없이 강뚝을 넘었다. 그의 걸음이 얼마나 날랜지 은해는 부리나케 발걸음을 다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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