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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시그레한 전등불밑에서 히라오까는 의자에 몸을 새우등처럼 옹송그리고 앉은 한 청년을 마치 그의 금새를 가늠해보듯 예리한 눈초리로 보고있었다.

그 모양은 흡사 누기찬 돌각담속에서 해빛이 간신히 흘러드는 돌틈으로 먹이를 노리는 독사의 눈과 방불한감을 주었다. 그 누구든 첫코에 이런 식으로 위압해놓고는 용건을 론하는것이 그의 악습이였다.

그는 별안간 저력있는 쐑소리로 청년의 이름을 불렀다.

《스즈게 묘시!》

청년은 벌떡 일어섰다.

《하잇!》

《류연호!》

《옛!》 그 청년이 또 황급히 답변하였다.

히라오까는 독을 올리며 단호히 말했다.

《군은 바로 이 시각부터 본명인 스즈게 묘시두 아니구 반도땅에서 태여날 때의 류연호도 아니야. 그 이름들은 모조리 땅에 묻어두구 변호연, 오로지 이 하나의 이름으루 불리워야 돼. 변호연! 알겠는가!》

그는 또 불에 덴듯 튕겨일어났다.

《옛, 알겠습니다. 》

히라오까는 그를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두 군의 아버지와 같이 야나무시현 미노베출신이야. 군의 아버지가 〈이민〉으루 반도땅에 건너온 후에도 여러번 상종했었지. 그 과정에 군이 똑똑하구 반도아이들과 섞여자라며 반도풍습이 몸에 배구 또 반도말두 기막히게 잘한다는 말을 듣구 특별히 선발했으니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해.》

《알겠습니다. 떠날 때 아버지두 그렇게 당부했습니다.》

《좋아, 명심해들으라구. 이제부터 거처는 혜신읍 대장간주인 변영근의 집이구 또 변영근은 군의 삼촌이며 혜신고보에는 함흥영생고보에서 전학온걸루 들어가면 되는거야. 단지 군은 우리가 짜주는 각본대로 연기만 능란하게 하면 되는거야. 하긴 그 연기가 쉬운건 아니야.》

히라오까는 움쭉 일어나서 두팔을 엇걸어 앞가슴에 올리고 오락가락하며 모를 박아 주의사항을 력설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스즈게 묘시나 류연호 같은 귀에 밴 이름과 과거는 송두리채 뽑아버려야 해. 한순간에 그것이 드러나면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즉 십년공이 하루아침에 헛일로 된다는거야. 지구상에 첫 공산국가를 세운 레닌두 비밀보장에서 기본은 습관을 버리는것이라구 했지. 그리구 눈치가 매우 빨라야 돼. 옛날 미노베의 도비시마구미에서 힘장사 벙어리를 채용한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눈치빠른지 처녀총각이 은밀히 배맞아 돌아치는것까지 신통히 알아맞추더라는거야. 눈치빨라야 한다는거야. …》

본시 히라오까는 일단 입을 열면 끝을 몰랐다. 더우기 자기를 뽐낼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자기의 《박식》과 《관록》을 자랑하고싶어 안달이 나했다. 오늘도 고개를 다수굿하고 자기의 말을 걸탐스럽게 듣고있는 그에게 한바탕 유식을 뽐내였다. 히라오까는 의자에 다가와앉으며 《나두 군의 나이만 한 때는 꿈도 컸댔지. 황국의 한다 하는 지성인들처럼 나두 〈죽어도 천사, 시종일관의 본보기〉라는 명기를 대의로 품구 뜻있게 황국에 이바지하려 했었지. 그러나 〈야마도 다마시〉가 나를 이 길루 돌려세웠지. … 나두 이 길에서 머리가 희여가고있네. …》 히라오까는 피로 얼룩진 제딴의 경력을 분칠해서 한바탕 지껄이고는 그에게 본색을 위장하는데서 나서는 시시콜콜한 주의사항을 곱씹어 력설했다.

…너무 령리해보이면 대뜸 남들의 주시대상이 될수 있고 또 너무 어수룩해보이면 셈밖에 날수 있다. 실력두 어지간하고 진실해보여야 남들이 끌려들수 있다. 문제는 한학급생들과 허물없는 친구로 돼야 속심을 뽑을수 있다. …

워낙 히라오까에게는 자신을 과도하게 과신하던 나머지 자기의 예감이나 륙감을 실재한 사실로 단정하는 습벽이 있었다. 그것은 지난 기간 륙감으로 예감했던 중요 수사사건이 사실로 확정된 후부터 더더욱 굳어진것이였다.

나날이 공기가 흉흉해지는 근간에 《치안》유지에 저촉되는 크고작은 형사건들을 종합추리하면서 경찰서의 관할구역에서는 그중 큰 학교인 혜신남고보에 배일사상의 온상이 혹시 있지 않을가 하는 예감이 지꿎게 머리를 파고들었다. 만약시 그 예감이 사실로 번져지기 전에 예방하지 않으면 혜신고보 역시 광주고보와 같은 화약고가 될수 있다는 무서운 위구심이 뇌리에 갈마들군 했다.

밀고에 의하면 함흥형무소에 수감중인 한무선의 영향을 받은 제자 여렷이 혜신고보에 진학해왔고 한무선이 추방된 바로 그날 밤 대성사립에 박아넣은 《조개턱》이 생눈알을 뽑힌 건도 아직 미해명이였다. 또 혜신고보 졸업생가운데서 다섯명이나 서간도를 거쳐 공산유격대에 들어갔다는 밀고도 이미 받았었다. 또 수일전에는 남석면에서 형사 하나가 야밤중에 목이 비틀리워죽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보다 앞서 보산면에서는 대낮에 자전거를 타고 란간없는 다리를 건느던 일본인경관이 원인모르게 허궁 추락되여 즉사하였다. 그 경관의 만신창이 된 몸뚱이에는 《일본침략자들의 말로》라고 쓴 공갈장이 덮여있었다. 그리하여 경찰서와 면주재소경관들을 총출동시켜 주변일대를 샅샅이 뒤졌으나 역시 티끌만 한 단서도 잡지 못했던것이다.

련이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형형색색의 사건들로 하여 불안과 공포에 질려있던 히라오까의 머리속에는 불현듯 일종의 신통한 묘책이 떠올랐다. 감시나 검질긴 미행보다도 더 실용성있는 방법, 이를테면 미심쩍은 집단속에 심복자를 잠입시켜 염통을 들어내는 방법이였다. 그래서 그는 문흥지구사건과 같은 큰 건들을 다루어야 하는 바쁜 속에서도 고보를 잠시도 방심할수 없어 거기에 박아넣을 적임자를 물색하던중이였는데 삐라수사건으로 보산면에 머무는 기간 천만뜻밖에도 스즈게의 애비 이꾸따로를 만났던것이다. 원래 그는 미노베에서 히라오까의 이웃에 살던 무직건달배였는데 로일전쟁 말기에 숱한 불량배들에게 《이민》 의 껍데기를 씌워 조선땅으로 들이밀 때 묻어온 놈이였다. 놈은 삼남일대를 돌아치며 헐값으로 토지를 수탈하려다가 도끼와 낫, 쇠스랑으로 저들을 때려눕히려는 조선농민들의 무서운 눈을 피하기 위해 농민으로 둔갑하여 이름도 류수렬이라고 고친 다음 헐값으로 기름진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었다. 히라오까는 일본에 있을 때 벌써 이꾸따로가 적지 않은 토지를 타고앉은 거부가 되였다는 소문을 풍문에 들었었다. 그러했던 그가 어느새 예까지 흘러들어 뜻밖에도 보산농사시험장 장장자리를 차지한것이였다. 지금도 필요할 때에는 류수렬로, 접촉하는 대방에 따라 이꾸따로로 불리우는 동향인인 그와 두세번 상종하는 과정에 그의 아들이 보산보통학교 졸업후 두뇌가 어지간히 비상하여 가까운 이웃군 고보에 다닌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히라오까는 속으로 환성을 올렸다.

사실상 이꾸따로는 외아들인 스즈게를 자기의 후임으로 키우려고 무던히 왼심을 써왔다. 그는 제 아들이 그닥 약질은 아니였지만 조선아이들속에서 축잡히지 않게 하려는 흑심에서 취학나이가 넘도록 잔뜩 끼고있다가 나이를 세살이나 줄여 보통학교에 입학시켰던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스즈게는 스무살안팎또래의 고보생들속에 섞이여 공부하지만 실지 그의 나이는 23살이였다.

워낙 제 애비의 모조품같은 그는 어릴적부터 다른 아이들의 색다른 학용품이나 놀이감 같은것을 무슨 수로든지 후려내여 제것으로 슬쩍 만들어버리는 악습이 배여있었다.

이꾸따로는 히라오까의 요구가 별로 달갑지 않았으나 혹시 앞으로 고등계의 발판이 아들을 위해 리로우면 리로웠지 해될건 없을것 같아 선뜻 응낙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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