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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의 애국자들의 위인상에 매혹되여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인 1988년 4월 15일 북의 동포형제자매들이 환희속에서 민족최대의 명절을 뜻깊게 기념하고있던 그 시각에 나는 평양비행장에 착륙한 려객기의 승강대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격정에 넘쳐 저도 모르게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 만세!》, 《위대한 김정일장군님 만세!》를 목청껏 웨쳤다.

얼마나 그리웠으며 얼마나 안기고싶었던 품이였던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펴나가는 광폭정치는 만사람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는 숭고한 인간애의 정치이며 민족의 모든 계급, 계층을 나라와 민족의 공동위업을 위하여 굳게 묶어세우는 가장 폭넓은 애국애족의 정치입니다.》

뜻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행복이란 누구에게나 다 있을것이다. 하지만 내가 체험했던 행복은 그 누구도 맛볼수 없었던 류다른것이였다. 나는 력사에 아로새겨진 날인 4월 15일에 의거입북을 단행할 뜻을 기어이 성취하고야말았던것이다.

깊은 감회속에서 태양절을 맞으며 기억을 더듬어 지나온 일을 적어본다.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의 자작농가에서 8남매중 2남으로 태여난 나는 공부를 많이 해서 지성인이 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겠다는 꿈을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나의 향학열을 충족시켜주기에는 우리 집사정이 너무나도 가난하였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고학과 독학으로 사범학교졸업자격과 대학졸업자격을 가지게 되였다.

그러나 부정부패로 얼룩진 사회의 현실은 끝없는 의문을 불러일으켰고 그 의문들은 마침내 걷잡을수 없는 분노로 이어졌다.

1960년대말부터 의거입북하기 직전까지 군산수산대학과 군산실업전문대학에서 체육과목을 전공으로 하는 교수직에 교학과장직책을 겸임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과정은 문자그대로 나에게 있어서 사회현실에 대한 의문과 분노가 커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이 두개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기간 나는 어용학장의 부정행위에 항의하는 투쟁에 앞장섰다가 직위해제를 당하고 경찰들에게서 집단폭행을 당하여 중상을 입었으며 외아들이 반파쑈민주화투쟁에 참가했다가 경찰폭행으로 생명을 잃는 참변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는 땅을 치며 울분을 터뜨렸다.

도대체 사회적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썩은 사회가 과연 내 보금자리로 될수 있으며 재산이 있다고 참된 삶을 누릴수 있겠는가.

울분이 치솟아오를수록 자연히 눈길이 쏠리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다름아닌 공화국이였다.

이무렵에 나에게 충격을 주는 몇가지 일이 벌어졌다.

그 하나는 군산에서 어민으로 있었던 김씨성을 가진 나의 먼 친척 한분이 풍랑을 만나 북에 갔다와서 룡궁에 갔다온것처럼 마을사람들앞에서 《이북은 듣던바와는 다르네. 김일성주석님께서와 김정일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이북은 실은 우리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천당이야.》라는 말을 했다가 《보안법》에 걸려 종시 생명을 잃은 사건이였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 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련방제통일방안을 지지하는 기운이 인민들속에서 높아진데 당황해난 당국이 반공련맹을 내세워 벌린 강연놀음에서 《련방제를 했다가는 사상이 있고 조직이 있는쪽에 3년안에 먹히운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불에 덴 망아지처럼 날친 사실이였다.

나의 심장은 높뛰였다. 천당이 있는 곳이라면 구세주가 계신 곳일것이고 사상과 조직이 있는 곳이라면 우리 민족의 얼과 힘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나는 평양방송에 귀를 강구기 시작하였다.

평양방송이 전한 모든 소식이 다 나를 매혹시켰지만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에 대한 소식은 완전히 나의 넋을 사로잡았다.

가시는 곳마다에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앞길을 휘황히 펼쳐주신 위대한 수령님.

수령님께서는 로동자, 농민들의 살림집을 찾으시고는 친히 쌀독도 열어보시고 부엌의 솥뚜껑까지 열어보시며 다심하게 보살펴주신다니 정녕 그이이시야말로 인민들이 진정으로 애타게 찾던 구세주이시였다.

남녘의 민심은 북으로 달리는 나의 심장에 더욱 채찍을 가하였다.

1984년 공화국정부와 인민들이 동포애의 정으로 큰물피해를 입은 남조선인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주었을 때의 일이였다.

내가 잘 아는 군산시내의 한 로인도 북에서 보내여온 구제미를 받았다. 그런데 로인은 어려운 처지에 있었지만 북의 구제미를 자기 가정에서만 소비하지 않았다.

그는 구제미대상자가 아닌 온 시내바닥의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북의 동포형제자매들의 손길이 어린 구제미를 한줌씩 나누어주었다. 한줌의 이북쌀을 받은 사람들은 저마다 그것을 집의 쌀과 골고루 섞어 한끼 밥을 지어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먹었다. 그때 그들의 기분은 그대로 잔치를 치르는 기분이였다.

1986년 7월말경 군산의 어느 한 곳에서 《김정일장군님은 자주정치의 거장》이라는 제목을 놓고 여러 대학 의식화단체가 진행했던 공동토론회 또한 나의 가슴에 격랑을 일으켰다.

그때 토론회에 참가했던 전남대학교의 한 교수는 이렇게 열변을 토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와 김정일장군님께서 민족의 주체성을 굳건히 지키시여 겨레의 운명이 담보되고있다. 열렬한 애국자이신 김정일장군님 계시여 민족의 존엄이 있고 민족의 찬란한 미래가 기약되여있다.》

토론회에 참가한 우리 대학의 한 교수는 이렇게 힘주어 말하였다.

《이북을 민족존엄의 양지로 만드신 김정일장군님의 광망은 남쪽에로 이어지고있다. 민족자주권의 회복을 위해 그이를 높이 받들어나가자.》

또한 전주대학교의 한 학생은 이렇게 호소하였다.

김정일장군님은 우리 민족의 운명이시고 미래이시다. 불세출의 위인이신 김정일장군님을 조국통일의 구성으로 굳게 믿고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성전에 힘차게 나서자.》

민심의 이러한 흐름은 나로 하여금 남조선사회와 결별하고 인민의 구세주에게 안겨 통일위업에 한몸바칠 결의를 다지게 하였다.

나는 여러차례 입북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1988년 봄 나는 민족최대의 명절날인 4월 15일에 평양에 가닿기로 단단히 작정을 하고 3월 28일 서울을 떠났다.

나는 마침내 어버이수령님탄생 76돐이 되는 날인 1988년 4월 15일 낮 12시 30분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기였다. 이날은 정녕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나의 새 생활이 시작된 뜻깊은 날이였다.

그때로부터 어언 15년세월이 흘러갔다. 나는 그간 사랑의 품속에서 조선체육대학 박사원을 나오고 공화국의 부교수학직과 학위도 받았으며 새 가정도 이루어 두 남매를 둔 아버지로 되였다.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에 입당하는 영예도 지니였다.

그러면 오늘 내가 누리고있는 행복은 어떤 행복인가.

우리 집을 방문했던 미국의 CNN TV방송기자단에 말해주었던것처럼 그것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태양의 품속에서 누리는 행복이다. 진정 나의 생활은 자주적인간, 창조적인간으로서 사람이 누릴수 있는 최대의 행복인것이다.

나는 지금 매일, 매 시각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품속에서 삶을 누리는 자주적인간, 창조적인간으로서의 긍지를 가슴뿌듯이 느끼고있다.

나는 지난 15년간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품속에서 받아안은 크나큰 은정에 보답하기 위하여 필승의 보검인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 선군정치를 심장으로 받들고 6. 15공동선언실현에 모든 힘과 지혜를 다 바쳐나갈것이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원 리우갑

(《로동신문》 2003년 4월 11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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