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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제 2 장. 사랑의 비극


3


달래는 검은 경관복을 입고있는 돌쇠를 알아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활랑거리고 자신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달래는 자기 정신이 아니였다. 달래는 자기가 무엇때문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발을 앞으로 무작정 내짚기만 하였다.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아름드리 소나무가 앞에 보이였다.

본궁 솔밭어귀였다.

리성계가 서울에서 내려와 여기에서 살았다고 하였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다른 곳에서 자라는 소나무들보다 줄기가 류별나게 미끈하고 아름졌으며 키높이 솟구치였다. 다른데서는 흔히 볼수 없는 소나무였다.

소나무는 보통 몇백년을 산다고들 하였다. 리성계가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도장을 가지고 서울에서 여기로 내려오던 때가 500년전이니 그때 심은 나무들은 아닐것이다. 어디에 가나 소나무는 흔해도 이 소나무처럼 크고 곧게 자라는 나무는 이곳에 와야 볼수 있다.

달래는 이곳에서 돌쇠와 헤여졌었다. 철부지 어린시절에는 이웃에 살아 별다른 뜻없이 오빠라고 불렀고 부모들이 모두 없어 돌쇠네 형제가 달래네 집에 와서 살던 그때에는 친남매나 다름없이 오빠라고 하였다. 헤여졌다 다시 만난 후에도 여전히 스스럼없이 오빠로 여기였으나 웬일인지 이전보다 서먹서먹하고 어색해지는 감정을 어쩔수 없었던 달래였다.

무궁화식당에서 잃어버린 돈때문에 동생을 때리는 돌쇠를 말리려들다가 그의 주먹에 한대 맞은 후부터 더욱 그랬다. 그때 휘두르던 돌쇠의 주먹은 달래의 얼굴보다도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해주었다.

돌쇠가 동생을 남겨두고 어디론가 떠나간 이후부터는 안타깝고 애모쁜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게 되였었다.

작별의 시각에 돌쇠는 갑사댕기 한감을 주었다. 그런 후 돌쇠는 달래의 두손을 꼭 잡았다. 그때 돌쇠는 데리러 올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하였고 앞으로 달래가 울 일이 없게 해주겠노라고 하였었다. 그때 달래의 두손을 잡아주던 돌쇠의 손은 후들후들 떨리였고 달래는 웬일인지 전기라도 통하듯 온몸이 찌르르 해오며 불덩이처럼 달아올랐었다.

헤여져 지금까지 소중한 추억을 불러오고 가장 귀중한 사람으로 마음속에 깊이 간직되였던 돌쇠는 오늘 원쑤가 되여 나타났다. 지금 이시각 달래의 가슴속에서는 배반당한 수치감과 모욕감이 끓어번지였고 그럴수록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달래는 아름드리 소나무의 둥치를 내려다보며 움직이지 못하였다. 바다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소나무갓이 솨- 소리를 내며 설레였다.

길쪽에서 찌르릉 찌르릉 자전거종소리가 울리였다. 두명의 경관이 자전거를 타고 룡흥공장쪽으로 가고있었다. 달래는 검은 제복의 두 경관을 보는 순간 돌쇠의 외삼촌 오윤봉이 떠올랐다.

오윤봉이 룡흥공장로조계를 책임지고있었다.

달래는 오윤봉이 하숙주인으로 알려져있으나 5대공장로조들과 련결되여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달래는 구체적인 내막은 몰라도 룡흥공장폭발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배후에 오윤봉이 관계되여있음을 직감으로 느끼였었다. 달래는 남모르게 해야 하는 오윤봉의 심부름을 여러번 하였고 경관들이 그것을 알면 류치장으로 끌고가리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공장에서 큰 폭발사고가 일어났으나 오윤봉은 하숙주인으로 면식이 있는데다 적지 않게 공장관리들과 상종해왔고 경관들과도 모르는 사이가 아니여서 지금까지 무사했다.

흥남감독관 구마모또가 죽고 억쇠가 체포되였으니 경찰의 수사는 이제 이곳으로 뻗쳐올것이다.

돌쇠의 출현으로 지금까지 어물쩍해넘기고 덮어버린 사실들이 모두 꼬리를 드러낼것이다.

억쇠는 달래의 어머니를 친어머니로 알고있었고 이곳에 이사와 호적등본을 내던 때 달래 아버지의 성을 달도록 하였다. 달래 아버지가 어디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 사람은 여기에 없었다.

오윤봉은 억쇠의 외삼촌이였으나 호적등본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것으로 되여있었다.

돌쇠는 억쇠가 자기의 친동생이고 오윤봉이 자기의 외삼촌임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돌쇠는 일본검정개옷을 입었으니 자기 외삼촌도 물어제낄것이다. 개는 사람들이 버리거나 치사하게 여기는것도 서슴없이 먹는다.

사람노릇을 그만둔 인간짐승이 무엇을 가리고 꺼려하겠는가.

설마 그러기까지 하랴 하는 미련이 마음 한구석에 깡치처럼 남아있었으나 달래는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일제경찰의 수사망은 이제 곧 오윤봉한테도 들씌워질것이 틀림없었다.

감옥에 찾아갔다 돌쇠를 만난 소식을 알려주어 오윤봉외삼촌이 몸을 피하든 대책을 취해야 했다.

달래는 서둘러 집으로 향하였다.

달래네 집은 오윤봉네와 나란히 있었다. 원래는 오윤봉네가 쓰던 맨웃간에 부엌을 달아 달래네가 살았다. 달래네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웃간에 오윤봉네 아들내외가 살고 아래간에 오윤봉내외가 거처한다.

오윤봉네 집이 끝나는데서 하숙주방이 시작되나 오윤봉네 마당과 주방사이에 부엌일을 하는 녀인들이 쉬기도 하고 자기도 하는 건물이 들어앉아 하숙쪽으로는 드나들수 없다.

달래네 집과 오윤봉네 집 마당쪽으로 외양간과 허청간이 있고 달래네 집 부엌과 허청간사이에 다른 사람의 집이 등지고 들어앉아 달래네는 오윤봉네 마당을 거쳐서야 바깥출입을 할수 있다.

달래가 날라온 소식이 일으키는 파문은 컸다. 울거미가 반나마 끊어진 다랑치속에 꼬장떡꾸레미가 그대로 남아있고 차입을 못시키고 가져온 속옷가지들이 있는것을 보고 소리없이 쿨쩍거리던 달래 어머니는 달래가 전하는 말에 기절초풍을 했다.

《뭐라구?》

달래의 어머니는 애당초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잘못 봤겠지.》

십년나마 헤여져 지냈으니 십분 헛보았으리라는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였다.

가슴이 아프지만 달래는 자기가 잘못 보지 않았다고 어머니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안되였다.

《세상에 이런 변도 있냐. 동생은 죄수가 되고 형은 간수가 되고… 원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헤여졌던 형제가 이렇게 만나다니…》

어머니는 달래가 감옥마당에서 돌쇠를 보았다는 말을 형제가 손에 칼을 뽑아든채 두눈 부릅뜨고 마주 섰다는 소리처럼 들었다.

억쇠를 어려서부터 품에 끼고 키워온 달래의 어머니는 억쇠를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여기였다. 오래간만에 이루어진 형제의 기구한 상면보다도 억쇠가 이제 자기 형한테 고초를 당해야 하는 사실에 더 가슴이 저려지는 어머니다. 모녀는 서로 붙안고 울었다.

일보러 나갔던 오윤봉이 외출할 때 입군 하는 국민전투복차림에 각반을 친채 달래네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머리에 국방색천으로 지은 물날은 전투모를 쓰고있었다.

일제는 이런 복장을 전시하 국민복이라고 하였고 단벌작업복으로 살아가는 로동자들과 인부들은 어쩌지 못한다 해도 하급사무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국민복을 입도록 강요했다.

억쇠가 체포된 후 자리펴고 며칠째 누워있는 달래 어머니의 병문안을 왔던 오윤봉은 돌쇠소식을 듣고 기가 찬지 헛소리같기도 하고 헛기침 같기도 한 헛- 헛 소리를 몇번 내더니 주머니에서 담배쌈지를 꺼내였다. 오윤봉의 괴춤에는 담배쌈지가 두개 있었다. 하나는 자기가 일상적으로 피우는 막써레기가 들어있는 쌈지였고 다른 쌈지는 사업용으로 쓰는것이였다.

사업용으로 쓰는 쌈지에는 소털처럼 가늘고 길게 썰어 대통에 넣어 피우는 담배씨가 차있고 곤청색공단으로 만들어 수까지 놓았다.

읍사무소나 공장의 하급관리들, 돈냥이나 있는 장사군이나 경관들과 마주설 때에야 쓰지 저 혼자 담배를 피울 때에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오윤봉이 꺼내 손에 든 담배쌈지는 허세를 부릴 때 사용하는것이였으나 평상시의 관습을 어기고 담배쌈지에 둘둘 말았던 끈을 풀었다.

그 쌈지에는 생당쑥뿌리로 묘하게 만든 물주리가 들어있다.

물주리대가리에는 번쩍거리게 닦은 황동판을 대고 담배대가 들어갈 구멍을 뚫었고 입에 무는 끝에는 구리관을 잘라 대였다.

구리를 입에 물면 담배맛이 달다고 했다.

오윤봉은 엄지손가락처럼 굵직하게 담배를 말아 물주리에 끼우더니 길다란 불찌가 달리도록 련거퍼 빨았다. 오윤봉은 물주리에서 꾸르륵 꾸르륵 소리가 나도록 련거퍼 담배를 갈아댔다.

달래는 그 무슨 업수임을 당한것처럼 분해하고 억울해하며 빠질빠질 속이 타들어 안절부절해하는 오윤봉의 마음을 알았다.

《외삼촌, 잠시 어디로 몸을 피하세요.》

한숨과 함께 겨우 내뱉듯 하는 달래의 말에 오윤봉은 한동안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오윤봉은 담배를 석대나 피우고나서 재털이대신 내놓은 쓰레받기에 버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나보다 네가 몸을 좀 피해야겠다.》

오윤봉은 달래에게 이렇게 말하며 달래 어머니쪽으로 얼굴을 돌리였다. 달래 어머니는 곤두세운 한쪽무릎을 치마폭으로 감싸 두팔로 안은채 고개를 무릎우에 기대이고 맥없이 앉아있었다.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온몸에 슴배여 가득찬 설음과 눈물이 터지여 흐를듯 싶었다.

《제수님, 내 오늘 가서 구룡길거리에서 지짐장사하는 로친을 만났수다. 얼마전에 아들이 징용에 끌려가서 지금은 로친이 혼자서 사우다.

로친네 집이 신룡성역에서 가까와 오고가기도 편리하고 집이 두칸이여서 마침하웨다. 웃간에 부엌을 달겠다고 말하니 로친이 내인들끼리 같이 살면 되는데 부엌역사를 벌릴게 있냐고 하오다. 마음무던한 로친이오다.》

로친네가 사는 근처에 룡성역이 있었다. 새로 생긴 룡성역은 지하까지 3층으로 번듯하게 역사를 지어놓았다.

오윤봉은 어머니와 이전부터 이사문제를 두고 이야기해온가싶었다. 어머니는 침묵으로 반대의사가 없음을 나타내고나서 달래를 바라보았다. 달래는 어머니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다른 의견이 없었다. 다른데로 거처지를 옮기는 문제가 억쇠체포이후 달래네 식구들과 다른 사람들이 입게 될 피해를 막기 위해 지하조직에서 취하는 조치임을 달래는 이때에야 깨달았다.

일제경찰의 체포놀음이 미친개 날뛰듯 소란스러워지면서 로조와 지하조직에서도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방안에는 오윤봉이 피운 담배연기가 가득찼다. 자욱한 담배연기와 함께 방안에 무겁게 드리우는 침묵은 폭풍전야의 고요와 같았다. 힘겹고 눈물겨운 싸움이 격전장에 어리게 될 포연을 예고하는지도 모른다.

그 포연에 사람들이 질식되여 죽을수도 있었다. 이 싸움은 적아사이 보다 혈육과 친척들사이의 골육상쟁으로 될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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